정토회 오기 전에는 '봉사는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치부했습니다. 자기 앞가림이나 하고 잘 살 일이지 뭐한다고 저러고 다닐까 흉도 봤습니다. 그러나 불교대학에 입학하여 만나는 선배 도반들의 늘 밝고 환한 미소를 짓는 얼굴을 보며, 돈도 나오지 않는 봉사를 하며 무엇이 이 사람들을 이리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드는지 궁금했습니다.
지금은 지역활동가의 일원으로 행복한 세상 만들기에 동참하고 있는 송파법당의 든든한 주춧돌, 권선옥 님의 수행담을 나누어 봅니다.

강동 행복학교 진행자인 김혜선 님과 함께 (왼쪽 권선옥 님)
▲ 강동 행복학교 진행자인 김혜선 님과 함께 (왼쪽 권선옥 님)

내가 원하는 삶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이 곧 내가 원하는 삶인 줄만 알고 살았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살았지만 채우고 또 채워도 헛헛하고 빈 수레처럼 느껴졌습니다. 불평불만과 함께 삶은 행복하지 않았고 무기력과 우울감이 계속되었습니다.

2005년, 잘 나가던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났고 같은 해 친정 엄마가 쓰러졌습니다. 형부가 몸이 아파 본인이 운영하던 식당 일을 그만 두게 되었고, 저는 언니와 함께 평생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신 차릴 틈도 없이 온갖 일들이 밀물처럼 밀려왔습니다.

끝도 보이지 않은 터널을 지나는 듯했고, 무엇 때문에 이런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는지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다만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어려운 상황이지만 포기하지 않는 부모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고, 그 마음 하나로 그 시기를 버텼습니다.

법화경을 시작으로 연이 닿은 정토회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처럼 팔릴 때까지 한다고 했던 언니네 식당도 2년 만에 정리가 되었습니다. 예전처럼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지만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어 갈 때 즈음 한 지인이 법화경을 사경하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며 제게 법화경을 선물했습니다.

불교가 종교는 아니었지만 좋다니까 꾸준히 따라 써보았습니다. 한 권을 쓰고 다시 한 권을 쓰면서 뭔지 모르게 부처님이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하는 의구심과 호기심이 생겨 불교방송을 기웃거렸습니다. 어느 스님의 금강경 법문을 들으며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기쁜 충만함이었습니다. 뭔가 해답을 찾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전과 비교하니 제가 초라하게 느껴지고 괴로웠던 거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니 가족들이 모두 건강하고, 비 피할 집이 있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함께 살 수 있고, 이 모든 것이 감사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면서 이 공부가 무엇인지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마침 공부는 취미도 없고 게임만 하던 작은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작은 아이가 꼴찌를 하더라도 이번에는 내 손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2013년, 집과 가까운 정토회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가락행복학교 1기, 2기 참가자들과 함께
▲ 가락행복학교 1기, 2기 참가자들과 함께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

정토회 오기 전에는 '봉사는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치부했습니다. 자기 앞가림이나 하고 잘 살 일이지 뭐한다고 저러고 다닐까 흉도 봤습니다. 그러나 불교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한 달 후 제게 모둠장이라는 소임이 주어졌고, 또 봉사시간을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습니다. 연등을 만들러 서초 법당에 갔는데 그때 화장실을 청소하던 한 선배 도반의 환한 미소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할 만큼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불교대학 담당이던 선배 도반의 늘 밝고 환한 미소를 짓는 얼굴을 보며 돈도 나오지 않는 봉사를 하며 무엇이 이 사람들을 이리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드는지 궁금했습니다. 정토회가 스님은 물론이고 그 큰 단체가 단 한 사람도 월급 받는 사람 없이 유지된다는 것이 경이롭기까지 했습니다.

모둠장 소임을 하며 여러 행사에 참여하고 봉사를 하지 않았다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공부를 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부딪치고 깨져야 진정한 내 것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버거울 때도 있지만 그것을 넘으면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됩니다.

송파지역 행복광장 삼전도비 역사기행을 마치고(오른쪽 맨 끝이 권선옥 님)
▲ 송파지역 행복광장 삼전도비 역사기행을 마치고(오른쪽 맨 끝이 권선옥 님)

외줄타기 하듯 흔들거리며 걸어온 길

송파 법당이 신생 법당인 시절 봉사자가 없었기에 첫 기수인 우리 기수가 불교대학 학생일 때부터 여러 일들을 맡아 하였습니다. 저는 경전반에 입학해서는 자원활동 팀장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일의 규모도 어마어마하고 와우 시스템이 생기기 전이라 모든 일이 수작업이나 엑셀로 이루어졌습니다. 또 회원관리 프로그램을 법당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서 일이 끝나고 밤늦게 법당에 들러 밤 12시가 지나서까지 일할 때도 많았습니다.

매일 아침 눈뜰 때 내가 이 일을 넘어설 수 있을까 반문하곤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을 겪은 것이 살아가며 참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저녁 늦게 집에 오면 방과 후 내내 게임만 하는 아들과 싱크대에 가득 쌓인 설거지를 바라보며 이 길이 과연 맞는 길인가, 내가 선택한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나를 반문하길 여러 번이었습니다.

정일사 때 법사님과 상담하며 외줄 타기 하듯 흔들거리며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히려 아이 핑계 대고 집에 있었다면 기대에 못 미치는 아이와 실랑이 하며 자식과 원수가 되었을 텐데, 믿고 기다린 덕분에 아이는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고 본인 일을 알아서 하는 의젓한 20살이 되었습니다.

봉사는 나를 위한 일

스님 말씀처럼 최고의 교육은 화목한 부부 사이이고, 가르치려 하지 말고 부모가 바로 서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참 교육이라는 말씀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가 어떤 길을 가건 응원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 제일 큰 변화입니다.

봉사는 남을 위한 일이 아닌 나를 위한 일임을 알아갑니다. 저의 현재 소임은 통일특별위원회 송파구 행복학교 담당입니다. 내가 행복하면 내 주위에 열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있는 중입니다. 행복학교를 진행하며 역시 내가 가장 큰 수혜자임을 실감합니다. 행복학교에서 짧은 기간 동안 변해가는 참가자들을 볼 때 봉사의 보람도 느끼고, '이 길은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길이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18`하반기 관악 강연 행복학교 참가자분들과 함께 봉사하며
▲ 18`하반기 관악 강연 행복학교 참가자분들과 함께 봉사하며

지금 여기 나부터 행복하기

제가 멋모르고 정토회를 들어왔을 때 여러 불교대학과 절에 다닌 경험이 있는 도반들이 제대로 왔다고 격려해주신 것이 생각납니다.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왔지만 스님의 바람대로 집 가까이에서 누구나 법문을 들을 수 있게 한다는 뜻에 제가 혜택을 받게 된 것입니다.

법화경을 권했던 분이 이 경을 쓰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했던 것이 제가 정토회를 만나는 것의 계기가 되었고, 그것이 좋은 일이 되었습니다. 실패를 경험으로 좀 더 단단해진 남편과 나, 그리고 더욱 돈독해진 가족의 끈끈한 힘도 생겼습니다. 이런 것이 곧 재앙이 복임을 알겠습니다.

예전에는 더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그것을 몰랐습니다. 마음이 빈곤했던 지난 날을 돌아보면 불평불만이 나쁜 일을 부르는 주문이었음을 알겠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스님의 법문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편안하게 아무 일 없이 살았다면 또 다른 세계를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러면 이래서 좋고 저러면 저래서 좋은 줄 아는 것만으로도 참 다행입니다. 더 넓은 세상을 이해하게 되었고 좋은 스승님과 함께하는 도반들의 힘으로 이 길을 가는 나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가락시민학교 1기 참가자님들과 함께(맨 왼쪽이 권선옥 님)
▲ 가락시민학교 1기 참가자님들과 함께(맨 왼쪽이 권선옥 님)

글_이선희 희망리포터(송파정토회 송파법당)
편집_권지연(서울제주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