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정토 수련원에는 20~30년째 사는 법사님들부터 10년 이상 된 실무자들, 3년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행자대학원 행자들, 이제 막 교육생으로 들어온 백일 출가 행자들까지 다양한 분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이런 곳에 터줏대감처럼 자리잡고, 상주 대중의 마음에 안식처가 되는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계십니다. 바로 자행 스님과 이상순 님, 김순기 님입니다. 오늘은 이분들을 소개합니다.

2018년 겨울 문경 대중들 김장 때 (왼쪽부터 김순기 님, 자행 스님, 이상순 님)
▲ 2018년 겨울 문경 대중들 김장 때 (왼쪽부터 김순기 님, 자행 스님, 이상순 님)

살아있는 교육의 장을 열어주다

자행 스님은 지도 법사님의 고향마을에 계셨던 스님으로 정토회와 인연이 있고, 이상순 님과 김순기 님은 정토회 초기 멤버로 문경 수련원과의 인연이 닿았습니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을 곁에 모시고 함께 산다는 것은 수행자에게 더할 나위 없는 좋은 환경입니다. 어르신들을 대하면서 자연스럽게 예의범절을 배웁니다. 예의를 갖추는 그 마음속에 어른에 대한 공경심, 어른을 살피는 배려심, 어른들로부터 배우는 깊은 자비심까지 일상에서 살아있는 교육을 받고 깨달음을 스스로 증득하기도 합니다.

수련원에는 크고 작은 행사들이 많습니다. 백일 출가 행자들의 회향 수련이나 행자 대학원 행자들이 학기 마다 발표하는 학기 보고회, 해외활동가들의 보고회에도 어르신들의 자리를 항상 먼저 챙깁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발우공양을 할 때면 상석에서 자리를 지켜주시고, 대웅전까지는 올라오지 못하지만 예불 시간에도 항상 자리를 지키는 부지런함을 보여주십니다.

설날이나 추석 명절 때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에는 전 대중들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도량에 핀 꽃으로 꽃다발을 만들어 드리기도 합니다. 노스님과 노도반님의 공양을 챙기는 것을 시봉이라고 하는데 대중들은 매일 1명씩 돌아가면서 시봉을 합니다.

어버이날 대중들에게 받은 꽃다발을 가슴에 꽂고 기념 사진
▲ 어버이날 대중들에게 받은 꽃다발을 가슴에 꽂고 기념 사진

구십 평생 남은 건 미워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

자행 스님은 올해 90세로 구순을 맞이하셨고 대중들은 스님께 조촐한 축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동안 저희와 함께 지내며 살아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늘 대중과 함께한 스님의 흔적들을 한편의 영상과 노래에 담아 그 마음을 표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의 소임 중 하나가 노스님과 노도반님의 시봉담당인데, 구순 생신을 맞아 준비한 편지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스님 안녕하세요. 지혜장 이승민입니다.^^
스님의 구순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좋은 날 제가 스님께 편지를 쓰게 되어 매우 기쁘고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도 되고 쑥스럽기도 합니다. 처음 스님 시봉을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했던 것처럼 말이죠. 제가 병가를 마치고 스님 시봉담당을 시작한 것이 2017년 1월이었으니 벌써 2년 반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한 10년은 함께 지내온 사이처럼 가깝게 느껴집니다.
 
시봉이라 함은 어른을 모시고 받드는 것이라고 하는데 저는 얼마나 스님을 잘 모시고 받들었는지 한번 생각해보니 좀 부끄럽습니다. 시봉을 한 게 아니라 시봉을 받은 것 같아서요. 몸이 안 좋아 보이거나 기운이 없어 보이면 어떻게든 거둬 먹이려고 스님께서 손수 밥도 지어주기도 하고 살뜰히 챙겨 주신 것이 더 많았습니다.

어른을 옆에서 모시는 게 처음이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동작은 느리고... 첫날 스님께 시봉 갔을 때 상 차리는데 걸린 시간이 30분도 넘었던 것 같습니다.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온 바닥에 다 꺼내놓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차리는 것에는 성공 했지만, 어찌나 긴장했던지... 어른들을 자주 접하지 못해서 부담이 있었나 봅니다. 온종일 하는 것도 아니고 끼니때 잠깐 챙겨 드리는 것이고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전 대중이 돌아가면서 하는데도 말입니다.

자행 스님 구순 생신 때 축하 화면
▲ 자행 스님 구순 생신 때 축하 화면

치우치지 말라

이렇게 스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스님을 모시게 된 건 저에게 큰 복이었습니다. 법사님들을 뵐 때와는 또 다른 점이 있었고 스님을 시봉 하는게 복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터라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시봉을 해야지 했는데 사실은 한 게 아니라 시봉 받았고 가르침을 많이 받았습니다.

좋은 경이 있으면 읽어보라고 하셨고 알려주려고 하셨습니다. 법륜스님 문하에 든 것이 얼마나 귀한 배움의 기회인가 늘 격려해주시고, 스님 당신께서도 법문 듣기와 법륜스님 책을 사경하는 등 연세가 지극한데도 배움에 있어 물러나지 않으셨습니다.

저에게 처음으로 해준 말씀은 ‘치우치지 말라’입니다. 저에게 딱 맞는 법문이었습니다. 뭐든 하면 그쪽으로만 집중하는 편이다 보니, 스님께 너무 집중하는 저를 보고 ‘어느 쪽이든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된다’고요. 그 말씀을 듣고, 사람이든 일이든 매사 모든 것을 대할 때 치우치지 않는지 점검하며 살폈습니다. 물론 잘 안되긴 했지만요. 이렇게 스님의 시봉을 하는 것은 또 다른 수행의 기회였고 저에게는 배움의 기회였습니다. 힘들 때면 스님께 이것저것 물어보고 다시 발심하고, 쳐진 마음을 다시 추스르기도 했습니다.
 
어느 해인가 스님께서 다리가 몹시 아픈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스님께서는 너무 아파서 한숨도 못 주무셨는데 다음 날 아침을 손수 지어주셨습니다. 사실 빨리 병원으로 모시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먹는 건 뒷전이었던 저는 대충 먹을 생각이었는데 밭에 가서 고추도 따와라 가지도 따와라 할 때마다 예하고는 갔지만, 마음은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스님께서 직접 끓여주신 영양 가득한 따뜻한 국을 먹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손수 지은 농작물을 직접 따서 그 자리에서 바로 해 먹는 그 맛이 정말 좋았고 밤새 아프셨던 스님께는 그 아침상이 약이었는데 철딱서니 없는 제가 몰랐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더 부끄러워지네요.

36기 백일 출가 행자들 목탁바라지하고 있는 자행 스님
▲ 36기 백일 출가 행자들 목탁바라지하고 있는 자행 스님

그렇게 하는 건 내게 아무런 이득이 없잖아요

지붕이 부서질 듯이 폭우가 내리던 어느 날, 스님을 지켜드리려고 명상원으로 가서 잔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스님께서는 안 주무시고 염불을 외우며 오히려 저를 지켜주셨습니다. 저는 스님께 죽 끓이는 방법도 배웠습니다. 조금만 끓으면 냄비뚜껑을 열어버리는 저에게 죽은 약한 불로 은근하게 오래 끓여야 하며, 절대 숟가락으로 저으면 안 되고 그대로 두어야 깊은 맛이 우러나 고소하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때 제대로 배운 덕분에 이후 환자가 발생하거나 제가 아파도 죽 끓이는 것은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한 생각에 사로잡혀 힘들 때, 저의 상태를 이야기하면 제가 괴로움과 무지에서 벗어나도록 그저 환하게 웃어주시면서 “그랬나~” 하셨습니다. 때론 “그렇게 하는 건 나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잖아요” 하며 따끔하게 일침도 가해주시고 “그러면 내가 괴롭잖아요.”라고 위로도 해주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무거운 마음은 가벼워졌고 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마음이 되어 명상원에서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2019년 신축 요사채(생활관) 준공식 때 모습 (왼쪽부터 이상순 님, 자행 스님, 김순기 님)
▲ 2019년 신축 요사채(생활관) 준공식 때 모습 (왼쪽부터 이상순 님, 자행 스님, 김순기 님)

모든 것이 항상 기쁘고 즐거워요

저녁 시봉이 늦어져 명상원 사방이 어두워져 올라갈 때면 항상 방문을 활짝 열어두시고 반야심경을 외워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도록 살펴주셨습니다. 만 배하는 백일 출가 행자들에게 손수 목탁을 치시며 한 명 한 명 응원하셨습니다. 혹여나 수행에 지쳐 포기할라치면 스님만의 법력으로 저희의 무지를 깨쳐주셨습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어린아이 같은 해맑은 표정으로 저희 곁을 지켜주셨습니다. 저희는 스님 한 분을 돌아가면서 시봉했지만 스님은 전 대중들의 시봉을 받으면서 오히려 저희를 더 챙겨주셨습니다.

시봉 받는 게 대중들에게 빚이라며 가급적이면 손수 하려는 스님의 모습에서도 저희는 배웁니다. 어른을 모실 기회가 있다는 게 엄청난 복이고 생활 속 수행이라는 걸 스님을 모시면서 알게 됐습니다. 늘 저희 곁에 계시면서 살아있는 가르침을 앞으로도 많이 주시기 바랍니다. 또 한 분의 스승님이 계셔서 저희는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90까지 살면서 남은 건 미워하는 사람도 없고 좋아하는 사람도 없다는 거예요”라고 하셨습니다. 좋고 싫음을 떠난 그것이 진정한 도라고 배웠는데 지금 스님께서 그 모습을 보여주고 계시니 그 모습 닮아 살겠습니다.
“모든 것이 항상 기쁘고 즐겁잖아요.”라고 하시는 말씀을 늘 새기며 저희도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겠습니다. 스님 사랑합니다. 저희 곁에 있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승민 올림

2017년 신축 요사채(생활관) 산신제 때 기도 후 대중들에게 축원하는 모습
▲ 2017년 신축 요사채(생활관) 산신제 때 기도 후 대중들에게 축원하는 모습


오늘도 우리는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우리가 모두 행복해지는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넘어지고 주저앉기도 하지만 그럴 때 평생 이 길을 걸었기에 지금 행복하고 늘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는 노스님과 노도반님을 보며 우리는 또 부지런히 정진합니다. 함께 가는 길이라 더없이 든든합니다.

 

글_이승민 희망리포터(문경공동체)
편집_강현아 (대구경북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