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법당에는 늘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도반들을 맞이하고, “예~ 하고 합니다”를 몸소 실천하는 분이 있습니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밀양법당 부총무 양미순 님입니다. 부총무 소임을 하노라면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들, 챙겨야 할 일들 또한 많습니다. 그 많은 일을 늘 웃으며,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양미순 님의 이런 긍정의 마음과 에너지의 근원은 어디에서 오는지 들어 보겠습니다.

2018년 봉림사지 통일정진(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양미순 님)
▲ 2018년 봉림사지 통일정진(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양미순 님)

원망

결혼과 동시에 두메산골 청송에서 6년을 살다가 남편의 직장 이동으로 서울살이가 시작되었습니다. 1년 남짓 꿈에 부푼 서울살이에 적응할 무렵 갑작스럽게 남편의 뇌출혈로 몇 개월을 중환자실을 오가며 병원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요양차 밀양으로 내려왔습니다. 밀양에 오자마자 그동안 의지해왔던 남편의 자리가 불안해 바로 직장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오랫동안 해왔던 일의 경력으로 직장은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적응을 하면서 살았지만, 마음속으론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두려움 그리고 그동안 믿었던 부처님에 대한 원망이 올라왔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기복신앙으로 불교를 접해 살아온 오래된 습으로, 이사를 가면 부처님께 문안을 하듯 절을 먼저 찾아 12달 인등을 달았습니다. 당연히 재앙을 막아주고 복을 가져다주리라 믿었으니, 부처님에 대한 원망이 당연했습니다. 나날이 남편의 건강은 회복 되어갔고, 직장생활과 가정을 오가며 낯선 곳에서 적응해 갔습니다.

선유동 봉사 중 찰칵~(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양미순 님)
▲ 선유동 봉사 중 찰칵~(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양미순 님)

인연

제게는 결혼 7년 만에 낳은 귀한 딸이 있습니다. 귀하고 소중한 딸인 만큼 아이에게는 사교육의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고 자유롭게 키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불안한 업식으로는 아이를 가만히 두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밀양지역의 시민활동가의 모임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품앗이 교육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그렇게라도 해야만 아이에게 올라오는 욕심, 불안함을 멈출 수 있었기에 오히려 그 속에 저를 가두어 두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또래 아이들과 비교하며 아이에게 짜증을 내는 엄마가 되어갔습니다. 이즈음에 정토회와 인연이 되었습니다. 품앗이 교육을 함께 하던 딸아이의 친구 엄마로부터 정토회 법륜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2012년 3월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아이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기

유치원 선생을 오래 한 탓에 집이 유치원이고 엄마는 유치원 선생과 마찬가지지, 편안한 엄마가 아니었습니다. 아이의 방을 청소할 때 그렇게 싫어했던 엄마의 모습으로 아이에게 정리하라고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면서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법문을 듣다가 “청소를 하면서 화를 낼 거면 차라리 하지 말지!”라는 말을 듣고는, ‘어! 난데, 딱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네.’라고 생각했습니다. 법문을 듣고 오면 아이에게만큼은 욕심과 바라는 마음 내려놓기를 수행의 과제로 삼아 꾸준하게 가니, 더디 갔지만 점점 알아차림이 되어갔습니다.

수행의 기적

매일 새벽에 일어나 108배로 정진하는 엄마를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는 딸은 엄마가 정토회 자원활동가를 하는데 든든한 지지자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인도성지순례, 동북아역사기행과 매년 수련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올해 고1인 딸은 자기가 좋아하는 뮤지컬배우가 되고자 예고를 갔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뿐인 딸과 고등학교까지는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집착인 줄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새벽정진에서 문득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연극을 할 때 무대 위에 오르는 딸을 대견해하고 자랑스러워했던 저를 떠올리며 '내가 이미 지은 인연의 과보구나'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딸은 독립하게 되었고, 저는 딸을 집착에서 놓아 가볍게 보내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늘 믿음으로 응원해주는 엄마가 감사하다고 하는 딸을 보면 ‘수행의 기적이다!’라고 생각합니다.

2018년 봄불교대학 홍보를 마치고(왼쪽에서 두 번째가 양미순 님)
▲ 2018년 봄불교대학 홍보를 마치고(왼쪽에서 두 번째가 양미순 님)

나에게 준 선물 <깨달음의 장>

불교대학 첫 수업에서 “두려움은 무지에서 생긴다”라는 말씀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전도몽상, 거꾸로 쓰고 있는 양동이, 색안경을 끼고 있다’는 법문이 ‘불교가 이런 것이구나!’라는 불법에 대한 감탄을 하게 하였습니다. 불교대학 수업이 목마른 제게 콸콸 쏟아지는 시원한 물을 마시듯 좋았습니다.

그러다 <깨달음의 장>을 가서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알게 되었고,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온 과보'를 알지 못하고 남편 탓으로 내내 원망하며 ‘당신 때문에 힘들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칭찬받으려고, 인정받으려고 스스로 감옥을 만들어 제가 저 자신을 힘들게 하고 있었습니다. 4박 5일 수련에서 한 번도 가족과 떨어져 본 적이 없다고 한 걸 큰 벼슬처럼 얘기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아이와 남편은 둘만의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결국 제가 가족에게 얽매였고 저의 집착이었습니다. 그것이 처음으로 제가 제게 준 선물, <깨달음의 장>이 제게 준 깨침이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저는 그냥 법을 만난 인연이 감사했습니다. 수행맛보기에 이어 7-5차부터 입재하여 천일결사자가 되었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수행을 하는 것은 문제없었지만, ‘이보다 더 재미있는 일은 없을 거다, 평생을 가지고 가야지’하며 좋아했던 새벽반 배드민턴 동호회에 대한 욕구를 내려놓기가 힘들었습니다. 몇 번의 천일결사 회향식과 입재식을 참석하고 새롭게 발심하면서, 기도하는 날들이 못하는 날들보다 점점 많아져 갔습니다. 좋아했던 운동은 백팔배 수행으로 대신하고 사람들과의 만남은 단순해졌고, 1년에 한두 번 만나도 사람들과의 관계는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내 삶은 정토회, 직장생활 그리고 집이 전부가 되었습니다.

9-9차 천일결사 입재식(맨 앞줄 가운데가 양미순 님)
▲ 9-9차 천일결사 입재식(맨 앞줄 가운데가 양미순 님)

올라오는 업식, 알아차리는 연습

그러던 중 수행, 보시, 봉사의 행으로 실천해 나가고자 담당을 맡으면서 제 업식이 그대로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데 잘하고 싶고, 좋은 소리 듣고 싶고, 좋은 결과를 내고 싶은 마음이 올라와 늘 긴장되었습니다. 그래서 종종거리면서 오전에는 법당에서 불교대학 담당, 오후에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정신없이 다녔습니다. 점점 가벼운 게 아니라 무거움이 올라왔습니다. 직장생활에서도 수업 준비에 미숙함이 보일 때는 자책하는 마음이 올라왔고, 욕 얻어먹기는 더더욱 싫었습니다.

그러다 정일사 때 ‘엄마가 짜증이 많았지요?’ 라고 들었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정말로 엄마는 짜증이 많고 화를 잘 냈습니다. 자식이 6명인데다 농사일에 장사에 거기다가 깔끔하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래서 늘 일을 마치고 오면 저는 한다고 하는데도 엄마 눈에는 차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긴장감과 짜증이라는 업식이 올라오면 엄마의 탓으로 여겼습니다.

이대로 괜찮음을 알게 되었고, 감사함으로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9차년 법당 부총무 소임을 맡았습니다. 여전히 짓누르는 긴장감이 올라왔고 뭔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을 때, 새벽정진에서 어린 시절 엄마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습니다. 자식 6명에 농사일 그리고 장사까지 하면서 살아온 약한 엄마의 체구에 ‘힘들었겠다. 살고자 엄마가 그랬구나!’ 하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저는 엄마처럼 아이에게 짜증을 내지 않겠다고 애쓰며 살아왔지만, 어느새 엄마의 딸로 엄마와 그대로 닮아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외면했습니다. 외면할수록 엄마와는 멀게 느껴진 것을 머리를 숙이고 하루하루 '나'를 알고 인정하며 받아들이니 부모님께는 다만 감사한 마음이 그대로 올라왔습니다. 아직도 힘이 들면 그 업식은 그대로 올라옵니다. 다만 ‘그렇구나!’ 올라옴을 알아차리고 연습하면 됨을 이제는 압니다. 지금은 부정이 긍정으로 바뀌어 나는 행복한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남편, 전법한 지인과 함께(가운데가 양미순 님)
▲ 부처님 오신 날. 남편, 전법한 지인과 함께(가운데가 양미순 님)

남편은 산 부처님 

남편과 주말부부로 지낸 지 올해 7년째, 직장과 법당을 오가며 딸을 소홀히 한다고 불만이 많았던 남편은 오히려 직장동료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정토불교대학을 소개하고, 본인도 경전반까지 졸업하고 <깨달음의 장>도 다녀왔습니다. 남편은 든든한 보디사트바가 되었다가, 가끔은 주말에 없는 부인의 빈자리는 이해가 안 된다고 짜증을 내는 중생이 되기도 합니다.

얼마 전 남편에게 분별심을 내는 저를 집중해서 돌이켜보니 ‘내가 남편과 살기가 싫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좋은 것만 취하고 싫은 것은 딱 보기 싫어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보였습니다. 남편의 취미활동으로 인해 집이 정리가 안 되고 가는 곳마다 짐이라고, 20년을 넘게 살면서 마음 안에 분별심이 가득했습니다. ‘당신 때문에!’ 그러면서 수행자의 삶이 단순하고 검소하고 정리가 잘 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고 탓했습니다. 자각이 되니 제가 그 짐을 정리해보자 하고 집안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동안 내 꼬락서니가 그대로 보이고 ‘내가 이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도 물어보았습니다.

“내가 참 정리를 할 줄 모르네”
“결혼하고 보니 당신이 정리를 잘 못 하는구나 생각했어”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잔소리하는 나를 봐줬어”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보냈어”

세상에! 정말 살아있는 부처님을 늘 가까이 두고 있었는데도 어리석은 중생이기에 알지 못하고 보지 못했음을 참회했습니다. 지금은 “나, 당신하고 살고 싶다” 이 한마디를 가볍게 할 수 있고, 지금이라도 알아차려 다행이다 싶습니다.

소임이 복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부처님 법을 만나 감사하고 고맙습니다.“소임이 복이다”라는 말이 이제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법의 인연 놓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함께하는 도반들 덕분입니다. 업식을 툭 건드리면 여지없이 올라와서는 요동을 치고 그 덕분으로 연습이 되어 돌아보기를 반복하면서, 이제는 그 농도가 옅어져 알아차림으로 편안합니다.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숙일 수 있는 것 또한 소임 덕분입니다.“나는 길가에 핀 들풀입니다. 예~ 하고 합니다.“ 정토건설의 나아가는 일에 희망이 됨이 뿌듯합니다.

글_양미순(김해정토회 밀양법당)
정리_손춘현 희망리포터(김해정토회 밀양법당)
편집_조미경(경남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