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법당에는 아픔을 겪고도 환한 미소로 법당을 밝혀주는 도반이 있습니다. 북한 옥수수 보내기 JTS모금이 장마로 취소되자, 혼자 모금함을 들고 시장으로 나가 10명 몫을 하며 모금을 진행했습니다. 현재 새벽예불과 JTS 거리모금 담당을 맡고 있는 이위선 님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북한 어린이 돕기 모금 후 주인공
▲ 북한 어린이 돕기 모금 후 주인공

한 번이 두 번, 두 번이 세 번

제가 정토회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7년이었습니다. 시장에서 이불 가게를 하는 도반의 권유로 경주법당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경주법당은 개원하는 시기였고 법륜스님이 직접 법문을 하셨습니다. 얼떨결에 따라나섰던 터라 아무런 감흥도 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두 번째 법회 날 어깨와 목에 담이 와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현) 두북 화광 법사님이 법륜스님을 뵈면 담 붙은 것도 낫는다며 권유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은 법당으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이 세 번이 되고 네 번이 되어 계속 법당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때 화광 법사님의 권유가 없었다면 아마 중도에 포기하고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반과의 인연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JTS 거리모금 (왼쪽에서 두 번째)
▲ JTS 거리모금 (왼쪽에서 두 번째)

천상천하 유아독종!

저는 성격이 강한 편입니다. 무슨 일이든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땅바닥에 누워서 구를 정도로 아집이 강합니다. 그런데 시어머니와 남편은 나를 무척 위해주는 다정한 성격입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나는 가족들에게 고마운 줄도 모르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난 줄 알았습니다. 내 주장만 내세우며 모두 내 말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첫째 아이가 보며 자랐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울면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엄마가 바로 살지 않으면 어떡해요. 그러면 우리 아빠가 힘든데... 엄마는 왜 아빠를 힘들게 하세요?” 이런 아이의 이야기에도 저는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버럭 화를 냈습니다. “나도 내 맘대로 안 되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오로지 내 중심적인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새벽예불을 하게 되었는데, 기도하면서 마음을 많이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아집이 강하던 나. 신랑을 내 소유물로 여기며 강하게 집착했던 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08배 수행 3년 차, 새벽예불을 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내 남편이 나 때문에 무척 괴로웠겠구나... 나 같은 여자 데리고 산다고 힘들었겠다.’ 하는 마음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남편에게 감사와 참회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이들에게도 미안했습니다. 그 후로는 내 생일을 챙기지 않아도 화가 나거나 짜증이 생기지 않았고,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며 쉽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내가 마음이 편해지니 남편도 편안해지고 가정도 편안해졌습니다. 이렇게 집착을 내려놓으니 모든 것이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로는 혼자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내 마음에 중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법당에서 매일 하는 수행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단비와 가피가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새벽기도 후 도반들과 (앞줄 왼쪽)
▲ 새벽기도 후 도반들과 (앞줄 왼쪽)

암 선고와 새벽예불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내 삶은 편안했습니다. 그런 평온함이 깨진 것은 3년 전 유방암 선고를 받고 나서였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수술하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슴 하나 없는 것 괜찮다며 자신을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저는 변해갔습니다. 정신적으로 너무나도 두렵고 불안했습니다. 모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친구가 만나서 점심을 먹자고 해도 피해 다니기 바빴습니다. 운동을 나가고 싶어도 사람들이 나를 알아볼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나갔습니다. 치료가 거듭되면서 저는 살이 많이 빠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저를 잘 알아보지 못했고, 대인기피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남편은 늘 제가 걱정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불국사에 바람이라도 쐬러 가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불안해서 화장실을 5-6번 계속 가야 하니 나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시어머니가 많이 우셨습니다. 남편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새벽예불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새벽에 늘 기도하며 기도문을 외웠습니다. 고요한 시각 저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남편과 어머니를 내 의지처로 삼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혼자 일어설 수 없는 상황을 계속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 스스로 일어나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일으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인생은 내 것인데... 기도문에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로 돌아온다고 하였는데...’ 매일같이 예불하며 수행문을 읽으면서도 정말 그것을 저는 놓치고 있었습니다. 깨어있지 못하였다는 생각이 들면서 모든 것은 나로부터 비롯됨을 알았습니다. 결국 내 문제였습니다.

매월 마지막 금요일 저녁, 천배 정진 후 도반들과 (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 매월 마지막 금요일 저녁, 천배 정진 후 도반들과 (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알아차림으로 다시 일어나다

그런 알아차림으로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법당으로 다시 나갈 힘이 생겼습니다. 스님의 수요 법회 수행법문을 들으면서 힘든 시간을 극복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가게 장사도 나가며 다시 재기할 수 있었습니다.

‘정토회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총무님의 JTS담당 권유를 받으며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봉사하며 또 다른 행복을 느낍니다. <정토를 일구는 사람들>을 하면서 누군가는 6개월마다 봉급을 받는 날이라고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다른 도반의 나누기를 들으며 나를 돌이켜 보게 되고 깨닫는 바가 큽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저는 정토회를 다니며 새벽 예불에 탑승한 공덕으로 지금은 날마다 행복하고 감사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총무님과 도반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 쓰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부처님의 가피임을 압니다.

저에게 주어진 소임은 ‘예’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합니다. 앞으로 어떤 시련이 오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힘든 상황을 겪어 보았기 때문에 생긴 여유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마음이 들기까지 옆에서 한결같이 지켜봐준 남편에게 감사합니다. 남편은 제가 아프고 힘들 때 죽을 끓여 주며 다정한 말로 힘이 되어 준 사람입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 남편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저 자신도 정토행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습니다. 다시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는 행복한 정토행자가 되고 싶습니다.

어린이날 JTS 거리모금 (오른쪽에서 여섯 번째 파란조끼 착용)
▲ 어린이날 JTS 거리모금 (오른쪽에서 여섯 번째 파란조끼 착용)


이위선 님을 인터뷰하며 가슴이 찡해짐을 느꼈습니다. 수행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아프고, 힘든 이야기 함께 나누어 주어서 감사합니다.

글_송민정 희망리포터 (경주정토회 경주법당)
편집_강현아 (대구경북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