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미스터 스마일'이라고 소개하는 김종일 님은 도반들과 함께 수행하며 내면의 아픔을 극복하고 지금은 괴로움이 없는 행복한 존재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매 순간이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며 망설임 없이 실천해 나갈 것을 강조하는 김종일 님에게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 들어봅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절에 다니다

저는 6년 전 어머니의 49재를 모신 절에서 운영하는 불교대학과 봉사활동에 1년 동안 참여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어머니의 명복은 빌어 드릴 수 있어도 저의 힘든 마음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법륜스님의 희망편지를 통해 정토 불교대학을 알게 되고, 2015년 가을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2015년 가을, 2016년 봄 두 차례 입학했지만 수업 일수 부족으로 졸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 도전인 2018년 봄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드디어 경전반 학생이 되었습니다.

9차 백일기도 입재식에서 도반들과 함께. 첫 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김종일님
▲ 9차 백일기도 입재식에서 도반들과 함께. 첫 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김종일님

어머니 간호하며 병원에서 출퇴근했던 시간

10년 전 형님이 집안의 재산을 탕진하고 잠적해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당시 형은 제가 7년 동안 직장 생활로 모은 돈도 몰래 가져다 주식, 선물에 투자하다 통장도, 집도 다 날려버렸습니다. 꿈에 부풀어 있던 시기에 한 방 맞은 심정이었고, 그때부터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충격으로 심장병을 얻어서 쓰러져 병석에 눕게 되었습니다. 삼형제가 있었지만 어머니의 병수발은 오로지 저의 몫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병석에 계신 4년 동안 혼자 병원비를 감당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어머니의 병수발을 들며 병원에서 자고 출퇴근 하는 일상은 힘들고 억울했습니다. 돌아가시기 1년 전에는 퇴원하였지만 아침마다 병원에 모시고 다녔고 한 달 주기로 응급실에 갔습니다. 집에 혼자 계시면 걱정되어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와서 정성껏 어머니를 돌보았습니다. 이런 극진한 병간호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합병증으로 퇴원 1년 만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니를 여읜 슬픔과 그리움으로 제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장이 터지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피곤이 가시지 않아 시골에서 한 달 동안 요양을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심적으로 의지할 데가 없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며 끊임없이 문을 두드려

저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마치 살아 계신 때와 마찬가지로 4시간 자고 새벽 4시에 일어났습니다. 한동안 위축되었고 자존감은 떨어졌습니다. 억눌려 살았던 습관이 벗겨지지 않았고, 사람이 싫었습니다. 사진 찍을 때도 가장자리에 서고, 눈에 띄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혼자서 왜 이렇게 힘들게 살지?’ 의문이 들면서 ‘내 인생의 주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문을 두드렸습니다. 정토회 불교대학을 입학하고 스피치 학원도 다녔습니다. 외모에도 신경 쓰게 되었고, 영어회화와 캘리그래피도 배웠습니다. 스피치 학원에 다니면서 사람을 배우고 자신감을 회복했습니다.

지금은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한 수행자가 된 김종일 님
▲ 지금은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한 수행자가 된 김종일 님

<깨달음의 장>에서 크게 울다

불교대학에 입학하고 겨울 즈음에 <깨달음의 장> 수련에 참여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일 말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그곳에서 느낀 것은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남들도 그렇구나! 내가 제일 죽을 것 같았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이 울었고, 많이 편해졌습니다.

그때부터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108배, 300배를 왜 하는지 몰랐지만 몸을 힘들게 하면 고통을 잊으니까 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나누기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하며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습니다. 그때는 누군가가 제 나누기에 응원의 댓글을 달아 준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새벽 5시에 일어나 108배, 20분 명상, 마음 나누기를 일주일에 5일은 꾸준히 합니다. 명상으로 호흡에 집중하게되어 매 순간 들뜸과 가라앉은 기분을 잘 알아차리게 됩니다. 불교대학에서 들은 법문 중에 좋은 것이나 나쁜 것에 집착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씀을 늘 마음에 새깁니다.

집을 샀을 때 기분이 하늘을 찌르고, 회사일도 잘 풀렸고, 기분이 한껏 고조되면서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좋은 일에 집착하는 것은 또한 나쁜 일에 빠져 있을 때 헤어 나오지 못함과 같습니다. 좋은 일에도, 나쁜 일에도 끄달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온 집안 화초를 정리하고 좋은 글귀가 있으면 외쳐봅니다.

앞으로 수행은 꾸준히 평생 할 일이라고 여깁니다. 중요한 것은 '나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수행 후 나누기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일기 쓰듯이 나누기할 때 왠지 모르게 기분 좋습니다. 아침마다 나누기를 꾸준히 올리니, 한 친구가 제가 올리는 글을 보고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나누기할 때마다 똑같은 다짐을 합니다. “나는 오늘도 수행, 마음 챙김, 경청, 긍정, 고운 말, 감사의 표현, 칭찬, 사랑을 꾸준히 행하겠습니다.“ 또한 삶의 하나하나가 과정이므로 하나하나 실천할 때마다 늘려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망설임 없이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세 번의 도전 끝에 불교대학 졸업, 주위의 축하를 받는 김종일님
▲ 세 번의 도전 끝에 불교대학 졸업, 주위의 축하를 받는 김종일님

불교대학에서 만난 도반들, 멘토가 되어 나의 변화를 이끌어

불교대학 입학 동기 13명 중 10명이 함께 경전반으로 올라갔습니다. 경전반 공부를 함께 하니 서로 챙기고 의지가 됩니다. 도반들은 제가 제일 많이 변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불교대학에서 나누기할 때 돌아가신 어머니를 못 잊어 많이 울었고, 회사 동료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 제일 힘들어 보였다고 합니다. 당시 체중은 지금보다 10kg 정도 더 나갔고 외모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추석 때 즈음 한 도반님과 우연히 살아온 얘기 하면서 변하고 싶은데 동기를 못 찾겠다고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그 분의 조언이 도움이 되어 체중도 감량했고, 말하는 것도 바뀌고, 외모도 바뀌었습니다. 간절함이 변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유일한 방법이 수행이었고, 외적인 부분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시도하니 시너지가 일어났습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잠적해 버린 형님으로 인해 저는 빈털터리에 은행 잔고는 마이너스 상태였습니다. 그 후 10년 동안 치열하게 살아 지금은 집도 장만했습니다.

저는 철도업계 차량 설계를 하는 직종에 있습니다. 예전 직장은 중소기업이라 수주하면 월급이 나오고, 수주 못하면 월급이 안 나왔습니다. 3년 전 중견 기업으로 이직하여 급여도 오르고, 월급도 안정적으로 지급되어 여건이 좋아졌습니다.

내 일처럼 많이 도와준 주변 사람들 덕분입니다. 어려워서 전화했을 때 돈을 빌려준 예전 직장 동료, 집 구하는 데 도움을 준 지인, 수행에 도움을 준 도반들에게 감사합니다. 지금은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고 이것만으로 행복합니다.

변화된 나, 당당하고 주체적인 나

철도 및 건설업계 일을 하다 보니 업종 특성상 예전에는 말이 거칠었습니다. 고운 말을 사용하려 노력하니 욕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떤 상황이든 “잘했어, 너 최고야!” 이렇게 하나씩 자신감을 불어넣는 것을 잊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깨달음의 장> 수련을 통해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실천하는 것은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하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무슨 일을 할 때 그 일에는 결과가 따른다는 것도 배웁니다. 하지만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고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어떤 일을 할 때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마음내는 것을 정토회에서 배우고 스피치 학원에서 배웠습니다. 이 배움이 서로 시너지 효과가 있었습니다.

거리모금, 자신을 단련시키는 또 하나의 방법

저는 현재 JTS에서 거리모금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한 달마다 거리모금을 준비하면서 미리 공지하고 사람들을 챙기고 마무리를 합니다. 대흥역 사거리에서 “1,000원이면 인도 어린이 5명에게 한 끼 식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지금 도와주고 가세요! 감사합니다!”라고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쩌렁쩌렁 외치니 같이 모금하는 사람들이 창피해서 멀찌감치 피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런 저도 첫 번째, 두 번째 거리모금에서는 긴장하여 떨었습니다. ‘모금액이 적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하니 아무것도 못하겠고, 뭘 해야 할지도 다 잊어버리고, 물품 준비도 잊어버렸습니다. 세 번째부터는 '내려놓자! 어느 누구도 나보고 책임지라 하지 않으니 즐겁게 해보자. 평가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라고 생각하니 편해졌습니다.

마포 법당의 거리모금을 하고 있는 김종일님. 대흥역이 떠나갈 정도로 목청을 높여 모금합니다.
▲ 마포 법당의 거리모금을 하고 있는 김종일님. 대흥역이 떠나갈 정도로 목청을 높여 모금합니다.

끊임없이 두드리고, 망설임 없이 실천한다.

저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 미스터 스마일 김종일>이라고 소개합니다. 좋아하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은퇴작 《미스터 스마일》 영화 제목에서 따온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하고 싶은 일을 망설임 없이 시도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과정에서 행복함을 느끼고, 뚜렷한 방식과 목표가 명확히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찾기 위해 시도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남자 나이 마흔이 되면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얼굴에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땀 흘려 노력하며 인생을 열심히 살라는 말씀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중요하지만,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바로 지금의 내 얼굴이라고요. 지금 미소 짓고 있는 내 얼굴, 지나온 삶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에 집중하는 내 모습이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도 저는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나는 오늘도 망설임 없이 행동하겠습니다!”를 세 번 외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오늘도 망설임 없이 행동했습니다.”며 자신을 돌아봅니다.

글_최문영 희망리포터 (서대문정토회 마포법당)
편집_권지연 (서울제주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