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법당에는 매일 새벽 법당에서 함께 정진하는 4명의 도반이 있습니다. 조민경 님, 안봉진 님, 이강환 님, 문병식 님의 가슴 뭉클한 새벽 정진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새벽 정진을 준비중인 평택법당
▲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새벽 정진을 준비중인 평택법당

매일의 도전! 매일의 기쁨!

<조미경 님의 이야기>

불교대학과 경전반 과정을 거치며 예전보다는 많이 편안해지고 조금은 변화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법당의 봉사 소임을 맡으며 경계에 부딪히니 예전 업식이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더욱이 수면시간이 줄어들면서 정진 시간도 10분, 30분, 한 시간 씩 늦어지고, 그런 나를 합리화했습니다.

변화하고 싶다는 나의 원과 지금 나의 행이 맞는가? 의문이 들었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법당에서 100일 동안 300배 정진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막상 시작하려니 여러 핑계로 또 물러서고 싶었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자 제가 담당하고 있는 가을 불교대학 도반들과 가까운 도반들에게 소문을 내었습니다.

집에서 하던 정진을 법당으로 옮겼을 뿐인데 쉽지 않았습니다. 한 두 시간을 자고 일어나 법당으로 향하는 어느 날은 혼자 투덜거리기도 하고, 몸이 힘드니 짜증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꾸준히 하면 될 것을 왜 일을 만들어서 이러고 사나? 법당에서 100일 한다고 뭐 그리 달라질까?' 이런 생각을 하며 법당으로 향하는 내가 마음에 안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좋아 시작한 일에도 이렇게 마음이 달라지는구나, 이런 마음 지켜보는 것이 수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배 한 배 절을 하며 이해가 안 되던 상대의 마음이 이해되고, 꼴도 보기 싫던 도반이 고맙게 느껴져 내 꼬락서니를 지켜봐 주는 도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일상에서도 작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매일 3시 30분에 일어나니 오전 일정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졌고,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 하니 조급함이 줄어들었습니다.

지난 100일을 돌아보니 하루하루가 도전이었습니다. 살이 빠지고, 무릎이 아파 무릎이 절 방석에 닿을 때마다 온몸이 떨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빠지지 않고 했다는 생각에 매일이 기쁨이었던 것 같습니다. 과연 도반들 없이 혼자 했다면 가능했을까 싶습니다.

다시 100일을 시작합니다. 여전히 새벽 3시30분 법당으로 향하는 길은 힘듭니다. 그러나 알람이 되어주고, 스승이 되어주는 도반들이 함께하는 그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그리고 ‘100일 한다고 뭐 그리 달리지겠어?’ 했던 나의 질문에 이제 답합니다. 100일 하면 변화가 시작된다고!

새벽 정진행을 마치고 평택 법당 가득 들어오는 아침 햇살.
▲ 새벽 정진행을 마치고 평택 법당 가득 들어오는 아침 햇살.

컴퓨터 배우러 갔다가 시작한 새벽 정진

<안봉진 님 이야기>

처음에는 법당에서 새벽 정진을 한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3월 6일 정회원 보고대회를 준비하면서 컴퓨터 사용이 서툴러 새벽 정진하는 조민경 법우에게 사용법을 배우려 새벽에 법당에 나갔다가 저도 정진에 참여하면서 새벽 정진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문서 여는 방법만 배우고 가려고 했던 것이 같이 정진을 시작하고 보니 기왕 시작했으니 3일은 해야지 하다가 지금까지 꾸준히 하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정진을 할 때에는 나 혼자 하니 마음의 경건함도 없이, 졸고 하품하고 내 식대로 경전을 독송하며 시간만 보냈습니다. 법당에 나오니 마음가짐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도 보이고, 형식에 매이는 내 모습도 보이며 정진을 소홀히 하는 것은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불부터 마음을 담아 정성스럽게 하니 조금씩 달라지는 내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새벽에 나와 정진을 할 수 있는 상황도 고맙고 함께하는 도반과 가족에게도 감사했습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파도가 점점 잔잔해지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크게 흔들리는 일도 줄어들며 순간에 깨어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갔습니다.

내 생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내 고집에 어긋나면 바꾸려고 주장했으나, 지금은 '그럴 수도 있구나, 저렇게 할 수도 있구나' 하고 나와 다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확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분별이 많이 사라지고 다만 내가 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크게 실망하거나 들뜨지 않습니다. 내가 좀 수고해서 도반들이 행복하다면 기꺼이 할 수 있는 마음도 생겨 행복합니다.

명상하는 도반들. 왼쪽 앞줄 조민경님 , 뒷줄 안봉진님, 오른쪽 앞줄 이강환님, 뒷줄 문병식님
▲ 명상하는 도반들. 왼쪽 앞줄 조민경님 , 뒷줄 안봉진님, 오른쪽 앞줄 이강환님, 뒷줄 문병식님

내 밑마음을 보다

<이강환 님 이야기>

저는 법사님의 권유로 지난해 4월부터 300배 정진을 3년 동안 하기로 했습니다. 집에서 300배 정진할때는 꾸물거리고, 미루고, 마지못해 하는 경우가 있어서 법당에 나가서 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도반들이 법당에서 정진한다는 얘기를 듣고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예 하고 합니다' 하고 시작하긴 했지만 감기로 몸이 많이 아팠던 명절 연휴 때 한 달은 절이 아닌 명상으로 바꿔볼까 핑계를 대다 결국 못 했습니다. 몸이 아프니까 욕심부리지 말자고 합리화했는데, 나중에서야 밑마음은 하기 싫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반이 함께 하니 법당에서 하는 정진은 집에서 하는 것보다 쉽습니다. 알람을 3개 맞춰두고 잠들어 일어나면 자연스럽게 법당으로 향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할 수 있어 바쁜 일상 속에서 내 마음을 살피는 공부에 도움이 됩니다. 새벽 정진을 마친 뒤 정돈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 좋습니다.

새벽 정진후 나누는 마음 나누기. 누룽지탕을 끓여 먹으며 도반들과 나누는 이야기에서 정진을 더욱더 굳건하게 하고 법당의 여러 가지 일들도 해결해 갑니다.
▲ 새벽 정진후 나누는 마음 나누기. 누룽지탕을 끓여 먹으며 도반들과 나누는 이야기에서 정진을 더욱더 굳건하게 하고 법당의 여러 가지 일들도 해결해 갑니다.

'함께'라는 행복

<문병식 님 이야기>

도반 셋이 매일 법당에서 새벽 수행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함께 하는 마음이 알고 싶었습니다. 과연 함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때 그 때 순서에 맞게 목소리를 맞추고 절할 때 동작을 같이 따라 하면 함께 하는 것일까?

함께 기도하면서 여전히 함께 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합니다. 일상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진정 함께한다는 경험을 하며 살기보다는 매일매일 치열한 경쟁 속에서 비교하고 비교당하며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애쓰며 살아온 지난 날이 생각나며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데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 지난 날의 어리석음에 참회의 눈물이 났습니다. 사실 아직도 '함께' 의 의미를 잘 모릅니다. 말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매일 함께 수행하고 마음 나누기를 하며 '오늘은 또 무엇을 얘기할까'하는 부담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얘기하기가 점점 편해지는 마음을 봅니다. 시시콜콜한 얘기를 할 때도 있고, 어떤 일로 인해 괴로웠던 얘기를 꺼내기도 합니다. 그런 얘기를 한다고 따지는 사람도 없고 위로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냥 서로 아무 말 없이 들어줄 뿐입니다. 그냥 얘기를 하다 보면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특별히 얘기할 것도 없고, 얘기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하고 싶으면 길게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짧게 끝냅니다. 혼자 눈을 감고 얘기하기도 하고 도반님의 눈을 보고 호응을 받으며 얘기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듣습니다. 그냥 듣기만 하면 됩니다. 뭐라고 조언할 필요도 없고 그냥 아무 말 없이 듣다 보면 느껴지게 됩니다. '나랑 똑같구나. 우리는 같은 것을 고민하며 살고 있구나.' 그렇게 살고 싶어 했나 봅니다. 내 마음을 얘기하고 상대의 마음을 들어주고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으며 살고 싶었나 봅니다.

예전에는 마음 나누기 할 때 내 차례가 가까워지면 무척 긴장되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다가 도반님의 얘기를 듣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준비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할 말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간단하게 마칩니다. 내 얘기를 하는 것 보다는 상대의 얘기를 듣는 게 더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내 차례가 가까이 와도 특별히 무슨 얘기를 할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불문으로 시작해서 반야심경, 해탈주, 108배, 관음 정근, 명상, 오늘의 경전을 읽고 정토 행자의서원과 천일 결사 기도문, 보왕삼매론을 거쳐 사홍서원까지 자신있게 읽습니다. 귀는 도반님의 목소리에 집중해 있습니다. 템포가 약간 차이가 나지만 맞추려고 하다 보면 어느덧 함께 맞추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함께한다'는 것은 결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쉽지 않은 행위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함께 같이하면 됩니다. 오늘도 나는 함께 하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법당으로 발길을 향합니다. 함께하는 수행만이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함께라서 행복해요! 왼쪽부터 문병식님, 이강환님, 조민경님 ,안봉진님
▲ 함께라서 행복해요! 왼쪽부터 문병식님, 이강환님, 조민경님 ,안봉진님

글_장수정(수원정토회 평택법당)
편집_신정아(강원경기동부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