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도 없이 파란 하늘, 가지런히 쭉 뻗은 나무들로 빽빽한 숲, 그들을 넉넉히 품어내고 있는 평화로운 호수 번전레이크((Buntzen Lake). 그리고 호수 옆에서 김밥 70줄을 싸고 있는 밴쿠버법당 도반들이 있습니다. 김밥말기 대회가 있었느냐구요? 그 속사정을 알기 위해 하이킹 대회 날로 다 함께 가 보실까요?

안개가 피어오르는 이른 아침, 번전레이크 입구에서
▲ 안개가 피어오르는 이른 아침, 번전레이크 입구에서

2월의 첫 월요일, 인도 성지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다수의 밴쿠버법당 활동가들은 월례회의를 했습니다. 성지 순례에서 다진 단단한 마음으로 시작한 월례회의에서 이번 2월의 JTS 기금마련 행사로 겨울 산행을 계획했습니다. 김밥과 라면을 점심으로 제공하고 참가비는 자율보시 형식으로 받아 기금을 마련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밴쿠버법당은 매달 JTS기금마련을 위한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거리모금 캠페인'뿐 아니라 '재능 기부 요리 교실'과 '사과 유피크(따기)'부터 '배추김치, 열무김치, 야채만두, 녹두전, 유기농 생강 청 등 정성 가득 건강한 음식'과 '코코넛 오일, 올리브오일, 폐유 등으로 만든 수제 미용비누와 빨랫비누', '비닐 랩 대체품 친환경 비 왁스 만들기' 등 지구도 살리고 배고픈 아이들도 함께 살릴 수 있는 다양한 아이템을 찾기 위해 활동가들은 매달 머리를 맞대고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밴쿠버법당의 JTS 기금마련 활동들
▲ 밴쿠버법당의 JTS 기금마련 활동들

사실 밴쿠버의 2월은 비 오는 날이 대부분인데, 올 2월은 전에 없이 화창하고 포근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시도하는 'JTS기금마련 하이킹'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음이 잔뜩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러나 웬일입니까, 하이킹을 며칠 앞두고 밴쿠버 전역에 눈 폭탄이 떨어졌습니다.

"눈이 오면 어떠냐", "눈이 오니 위험하다" 등 의견이 분분했지만 일단 벤쿠버 전역의 폭설로 눈물을 머금고 법당 밴드에 취소 공지를 올렸습니다.

온 세상이 하얀 2월의 광역 밴쿠버, 희망리포터 동네 입구
▲ 온 세상이 하얀 2월의 광역 밴쿠버, 희망리포터 동네 입구

어느덧 시간이 흘러 4월, 월례회의에서 다시 JTS기금마련 안건으로 하이킹이 올라왔고 '4월에는 날씨가 좋을 것이다' 예상하며 캐나다 연휴의 첫날인 4월 18일로 날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비 소식! 이미 여러 도반의 지원으로 아침 일찍 모여 김밥을 싸기로 결정, 버너, 가스, 라면, 쌀, 참기름, 김밥 속 재료에 게임까지 일사불란하게 역할분담이 되었건만, 이쯤에서 나올법한 문구가 하나 있지요,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러나 우리가 누굽니까? 부처님의 제자, 보살을 꿈꾸는 수행자인 우리들이 아무런 연관이 없는 하늘을 탓할 필요가 없지요! 또다시 "비 예보가 없는 다음 날로 바꾸자", "바꾸지 말자" 등 의견이 분분했지만 어린 참가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이튿날인 토요일로 일정을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비만 오지 않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건만 산 넘어 산! 토요일엔 하이킹 장소에 사람이 붐벼 주차장이 순식간에 가득 차고 게다가 게이트를 닫아버린다는 사실! 이 때문에 애초 하이킹 시작 예정 시간보다 2시간을 앞당겨야 했기에 새벽에 모여 김밥 만들 공간과 일손이 부족했습니다. 더군다나 집집마다 어린아이들도 참가 신청을 했기에 더욱 애로 사항이 있었습니다.

“가서 싸요!”
“하이킹 중에요? “
“그 많은 김밥을 어떻게…”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던 우리들은 그 많은 버너와 냄비들을 들고 갈 수는 없어, 라면은 포기하고 등산 중간에 말 그대로 즉석 김밥을 제공하기로 하고 하이킹을 시작했습니다. 김밥 속 재료; 단무지, 유부, 시금치, 오이, 당근, 우엉과 70인분 밥, 김밥 발, 도마, 칼 등을 등에 짊어졌지만 어느 누구 하나 무겁다 힘들다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넉넉하고 편안한 표정의 도반들은 이야기 꽃을 피우며 밴쿠버의 아름다운 자연 속으로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씩 하나가 되어갔습니다.

새들의 쉴 새 없는 지저귐, 도반들의 쉴 새 없는 이야기
▲ 새들의 쉴 새 없는 지저귐, 도반들의 쉴 새 없는 이야기

우리가 일등! 한적한 번전 레이크
▲ 우리가 일등! 한적한 번전 레이크

이윽고 도착한 호숫가 북쪽, 아직 사람이 많지 않아 고요하고 평화로운 호수 옆에 자리를 잡으니 바로 그곳이 명당이었습니다. 한적한 호숫가에서 느긋한 명상은 못 했지만 '김밥싸기 수행'을 하며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사이, 우리의 소중한 부처님들께 공양할 70인분, 꿀맛 김밥이 완성되었습니다.

숲속의 김밥말이 요정들, 아니 정토행자들
▲ 숲속의 김밥말이 요정들, 아니 정토행자들

정성 가득한 김밥으로 배를 채우고 호수를 바라보며 마시는 따끈한 커피 한 잔에 세상의 온갖 시름이 사라집니다. 따뜻한 봄, 나른한 햇살에 눈이 스르르 감기는 오후, 오늘의 오락부장 도반의 낭랑한 목소리가 감긴 눈을 반짝이게 합니다. 두 팀으로 나누어 진행된 '2인 삼각경기', '신발 멀리 던지기 게임', 여러 팀으로 나누어 '다리 숫자 맞추기 게임', '빼빼로 물고 양파링 건네기 게임', '속담을 몸으로 말해요' 등 다양한 게임들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비장하다, 빼빼로로 양파링 넘기기
▲ 비장하다, 빼빼로로 양파링 넘기기

또한 깜짝 코너로 시상식이 있었는데요, 수고한 도반들에게 'JTS참여상', 'JTS새내기상', '레이싱 상' 등 기발한 상장과 상품으로 5달러 상당의 'JTS보시금 상품권', '밴쿠버법당 반나절 명상 수련권', '거리모금 참여권', '친환경 비 왁스 랩' 등을 수여했습니다. 톡톡튀는 아이디어로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와, 이름도 다양한 상장들, 저도 하나 탔어요!
▲ 와, 이름도 다양한 상장들, 저도 하나 탔어요!

날짜를 하루 미루는 바람에 몇몇 도반들이 참석을 못 하게 되어 미안하고 안타까웠지만, 그 빈자리를 아홉 명의 아이들이 채워주어 어느 때 보다도 북적거리고 사람 냄새 나는 흥겨운 잔칫날 같았습니다. 밴쿠버 법당이 협소하다 보니 평소, 아이들이 있을 공간이 없어 아이들과 함께 법회에 참석하기가 힘이 들었는데,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들이 탁 트인 자연 속에서 서로 어울려 뛰노는 모습을 보니 밴쿠버법당의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밴쿠버 법당의 작은 부처님들… 든든합니다.
▲ 밴쿠버 법당의 작은 부처님들… 든든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율보시로 정한 오늘의 참가비를, 준비해 간 기부금 주머니에 하나, 둘 모았습니다. 아이들은 넣은 동전들까지 모금함에 넣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지구촌의 배고픈 아이들에게 밥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뿌듯한 마음과 참여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날씨에 따른 날짜변경 문제들로 여러가지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이견을 좁히고 타협해가는 과정에서, 그리고 행사를 준비하고 완성해 가는 데 함께한 수많은 역할들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가는 모습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진정한 모자이크 붓다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하고 또 확신하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HIKING FOR JTS!!!! (JTS를 위한 하이킹!) 아쉬운 마지막 기념사진
▲ HIKING FOR JTS!!!! (JTS를 위한 하이킹!) 아쉬운 마지막 기념사진

파란 하늘, 따스한 햇볕, 하늘을 닮은 호수, 그 곁의 아이들 웃음소리… 이것이 우리가 기억하는 그날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해맑게 웃는 우리 아이들의 얼굴에 지구 건너편 배고픈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법륜스님이 집으려던 옥수수 떡 하나에 눈물을 글썽였다던 북한의 어린아이, 초코릿을 외치며 한참을 따라오던 맨발의 인도 아이들. 그 배고픈 아이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가 누리는 이 행복은 언제나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겠습니다.

누군가를 위한 길이 결국은 나 자신을 위한 길임을 가슴 깊이 느끼게 해 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던 밴쿠버법당의 번전 레이크(Buntzen Lake) 하이킹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JTS기금마련 이야기는 앞으로도 쭉 계속됩니다.

글_김보경 희망리포터 (밴쿠버법당)
편집_박승희 (해외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