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법당에는 무슨 일이 생겼다 하면 언제든지 달려와 함께 하는 든든한 도반이 있습니다. 두북 봉사, 사천왕사지 기도, 수행법회 사회, 연등 달기 등 힘이 필요한 곳에는 힘, 마음이 필요한 곳에는 깊은 마음 나누기로 도반들의 수행에 버팀목이 되는 조윤상 님의 수행담을 들어봅니다.

싱그러운 차밭에서 조윤상 님
▲ 싱그러운 차밭에서 조윤상 님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불법의 인연

초등학교 4학년 때인 것 같습니다. 혼자 생각에 잠겼는데 문득 ‘이러다가 늙으면 죽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저는 불교 재단 중·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불교 학생회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불교 청년회에서 활동하면서 명상에 심취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100일 기도를 시작했는데 《기도》라는 책을 읽고 나서 불교를 좀 더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부모님의 영향인지 불교가 낯설지 않았고 절에 가면 어른에게 인사하듯이 예의를 갖추어 정성을 다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 덕분인지 불교 방송에서 법륜스님의 ‘100일 법문’을 우연히 듣게 되면서 정토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스님께서 무유정법을 설명하실 때 ‘동산, 서산’에 비유하는 것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아,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법문을 계속 찾아서 듣다가 동래법당에 찾아가게 된 것이 1989년이었습니다. 그때 동래법당에서는 스님이 직접 강의를 하셨습니다. 울산에서 일을 끝내고 수업 시간에 맞추어 바삐 도착할 때가 많았는데, 법당이 좁아서 스님 앞에서 법문을 듣지 못하고 대중 방에서 영상으로만 보기도 했습니다. 학생 때나 청년회 때는 설법 듣는 것이 지루해서 법문을 빠지기도 했는데 스님 설법을 들을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도반들이 법문을 집중해서 들으며 좋아하는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실무자들이 뒷얘기를 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도 저에게 낯선 일로 다가왔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어디서나 있을 법한 비난이나 질투도 없고, 스님의 법문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를 보면서 그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나누기 후 환한 표정의 도반들과 함께 조윤상 님(가운데)
▲ 나누기 후 환한 표정의 도반들과 함께 조윤상 님(가운데)

정진의 힘으로 나아가다

그 후 주 2회 스님이 직접 법문하시는 부산 법회에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월요일 저녁에는 스님과 나누기를 하면서 걸림이 있는 문제들을 내놓으며 많이 배웠습니다. 그때 나누며 해결한 문제들이 지금 제 삶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천일 결사 3-2차 때 처음 입재 하고 서초법당에서 1000일 기도 할 때 집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같이 기도하고 가끔은 서울에 가서 동참하기도 했습니다. 스님이 전해주신 바른 법을 믿고 ‘그냥 해보자’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따라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불법을 공부한다고 현실적인 어려움이 오지 않거나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기 공사를 하는 직업 특성상 현장 일이 끝나고 다음 공사를 시작할 때까지 경기가 안 좋을 때는 공백이 길어져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불평을 하거나 불안해하기보다 수행을 하고 관음정진을 하면 해낼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렇게 정진하는 가운데 다음 일이 생기기도 하며 기도의 힘으로 이겨내게 되었습니다.

경주 사천왕사지 새벽기도에서 도반들과 힘차게 평화를 외치는 조윤상 님(맨 오른쪽)
▲ 경주 사천왕사지 새벽기도에서 도반들과 힘차게 평화를 외치는 조윤상 님(맨 오른쪽)

결혼, 그리고 불법의 인연으로 태어난 아이

결혼 후 IMF 때 일이 끊겨 7개월 동안 집에 월급을 갖다주지 못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생활비가 없다고 투덜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경기가 좋아지고 수입이 많아져서 월급을 넉넉히 가져다주었을 때도 아내는 한결같았습니다.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 무심한 아내의 반응에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때 각해보살님이 ‘당신이 제일 좋은 사람입니다’라는 기도문을 주셨습니다. ‘좋다고 생각하면 좋을 거다’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했는데 몇 년 동안 기도하다 보니 ‘진짜로 좋은 것이어서 좋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변덕 없이 저를 믿어주는 아내의 마음이 귀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스님 법문을 들으며 기도 정진하면서 계획을 가지고 아이를 가졌고, 아내와 아이에게 정성을 다하는 속에서 첫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계획에 없이 둘째가 왔을 때도 망설임 없이 생명에 대한 인연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쁘게 맞이했습니다. 두 아이는 우리 부부에게 온 귀한 인연이고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정토회 행사에도 같이 참석하며 불법의 인연을 키우고 있습니다.

지금 경전반을 다니고 있는 오랜 친구이자 도반이며 동반자인 아내와 함께
▲ 지금 경전반을 다니고 있는 오랜 친구이자 도반이며 동반자인 아내와 함께

진심을 알아주지 않아도

해운대법당 불사 때 구내전화 설치 공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퇴근 후에 공사를 하였는데 그때는 그 공사가 ‘내 일’이라는 생각으로 자재비만 받고 일을 해도 뿌듯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연법당 불사 때는 저희 회사 직원이 공사를 했습니다. 공사비를 최저로 견적을 냈는데도 공사비용이 더 많이 낮게 결재된 것을 보고 일을 해준 직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불사이기에 진심을 다해 공사가 이루어지도록 도우며 ‘정토행자로서 내 일을 하는 것’인데 ‘전기 공사업자’로 대해진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습니다. 또 부르는 곳마다 달려가서 인터넷을 깔고, 연등을 달고, 전기 공사가 있는 사소한 일들을 했지만 정작 봉사점수가 모자라서 서원행자가 되지 못했을 때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을 겪으며 일어난 일을 바라보면서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진지하며 깊고 넓은 나누기, 도반들과 함께 조윤상 님(오른쪽에서 두 번째)
▲ 진지하며 깊고 넓은 나누기, 도반들과 함께 조윤상 님(오른쪽에서 두 번째)

나를 고집하지 않고 그냥 해 본다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처음 할 때 멀미를 심하게 했었습니다. 바다에 들어가는 게 두려워 의심하고 망설였는데 머리가 물에 닿는 순간 멀미가 거짓말같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때 스님 법문에 ‘이거라 할 것이 없다’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 내 처지에 빗대지 않고 그냥 해보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에 그때 내 고집대로 물에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나'를 내려놓지 못했다면 저는 아직도 물을 두려워하고 스킨스쿠버 다이빙은 무섭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 후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금방 돌이켜 마음에 새기고 삶의 지침으로 삼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국은 나누는 삶

해운대에서 기장으로 이사를 오면서 기장법당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법당에서 정토행자로서 역할이 주어지면 크든 작든 기꺼이 임하고 있습니다. 정토행자 중에 법사가 많아져서 대중을 이끌고, 전 국민의 3%가 정토행자가 되면 정토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앞으로 주어지는 일을 하면서 주위 사람들과 공부하고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섭섭한 마음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마음을 보고, 사라지는 것도 보고, 인연되는 대로 그렇게 쓰이고 싶습니다.

천일결사 만남의 날에 참석한 청일점 조윤상 님(뒷줄 맨 오른쪽)
▲ 천일결사 만남의 날에 참석한 청일점 조윤상 님(뒷줄 맨 오른쪽)


조윤상 님이 오랜 수행을 통해 경험한 것들을 모두 내어놓기에는 부족한 인터뷰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평소 장난기 있는 표정이 사라지고 담담하게 수행담을 나누는 모습에서 정토회를 넘어서 세상을 향한 조윤상 님의 나눔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글_조영희 희망리포터(해운대정토회 기장법당)
편집_방현주(부산울산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