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낫기를 기도하다 병이 나기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욕심을 자각하면서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의지하는 사람에서 자립하는 사람으로, 남을 탓하거나 자신을 자책하는 사람에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조금씩 변화하기를 매일 기도하며 정진해 나가는 일산법당의 박지영 님을 만나보았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준비하는 박지영 님
▲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준비하는 박지영 님

희망이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부서지며...

저의 20대를 생각해보면 의존적이고 무기력하며 다소 우울한 마음이 늘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하고 고민했던 것 같은데, 그 속마음은 ‘무엇을 의지하고 살아야 하나’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성실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이 사람처럼 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로 정말 열심히, 성실히 살았습니다. 그 당시 남편은 증권회사에 다니며 인정받았지만 인정의 크기만큼 스트레스에 찌든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밤이나 낮이나 고민하며 지내던 어느 날 갑자기, 빠른맥 증상으로 응급실을 전전하게 되었습니다. 병가를 내고 휴직을 하다가 끝내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성실하게 열심히만 살면 그에 따른 보상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저의 삶이,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부서지며 다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을 위한 기도가 욕심에서 시작된 것

어린 아들도 있고 전업주부였던 저는 시댁으로 살림을 합쳐 들어가는 결정을 하였습니다. 시부모님은 모두 좋은 분들이었지만 두 분의 사이는 좋지 않았습니다. 사흘이 멀다 하고 부부싸움을 하였습니다. 그것이 남편의 병보다도 더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예전에 책으로 봤던 현각스님의 금강경 강의를 인터넷 TV를 통해 보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듯한 감흥이 있었지만, 제 고민과 괴로운 문제들은 법문을 듣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책으로 법문을 찾아보던 저에게, 친한 친구가 혼자 공부하면 엉뚱한 길에 빠진다며 절에 다녀보라고 권해주었습니다.

절에 다니며 사시예불 기도를 드리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남편의 병이 낫기를 기도했습니다. 예불 말미에 문득 이 모든 기도가 남편이 낫는 것보다 병이 나기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제 욕심에서 시작된 것임을 자각하였습니다. 많은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마쳤습니다. 이제 남편을 무작정 의지할 게 아니라 ‘내가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임진각 기도 기념촬영(첫 번째 줄 왼쪽에서 두 번째)
▲ 임진각 기도 기념촬영(첫 번째 줄 왼쪽에서 두 번째)

책이 전해준 정토회와의 인연

직장에서 인연이 되었던 스님으로부터 받은 법륜스님의 작은 책자를 통해 정토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일산에서는 노숙자 님의 집에서 가정법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정집으로 법회를 가기에는 거부감이 들어 책으로만 인연을 맺고 있었습니다. 일산법당이 생겼고 2012년에 봄불교대학에 입학하면서 정토회에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여러 봉사거리가 많이 있었지만 ‘남편이 아프다, 아이가 어리다, 시부모님이 계셔서 어렵다 등등’의 저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핑계 때문에, 수업 외에는 어떠한 마음도 내지 못하고 다만 일주일에 한 번 듣는 법문만으로도 매주 행복해지고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2013년 경전반에 올라가면서 수업시간 봉사를 경전반 학생들이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절에 다니며 예불할 때의 좋았던 경험이 있었던 저는 집전을 배워 봉사하기로 하고 수업시간의 집전을 시작으로 집전봉사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행복한 대화 홍보 (오른쪽에서 세 번째)
▲ 행복한 대화 홍보 (오른쪽에서 세 번째)

스스로 지었던 한계에 불과한 핑곗거리임을...

일산법당은 드물게 부처님상을 모신 법당으로 새벽예불, 사시예불, 저녁예불의 세 번의 예불을 하고 있었는데, 부처님 오신 날에 집전 소임을 맡아보라는 권유에 겁 없이 소임을 받은 그때부터 사시예불을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부처님을 바라보며 1시간 정도 여법하게 기도드리는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소임을 줄줄이 맡게 되었습니다. 천일결사 담당을 하면서는 천일결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불교대학에 집전소임을 하면서 수업을 여러 번 들을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늘 듣던 소임이 복이라는 말은, 그동안 저를 한계지어왔던 핑곗거리인 가족들이 사실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어린아이도 아픈 남편도 시부모님도 사실은 ‘제가 그들에게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는 상’으로 인해 스스로 지었던 한계에 불과한 것이고, 봉사하면 할수록 제가 숨을 쉬고 자유로워 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남편은 건강을 되찾아 본인이 원했던 음악 관련 직업을 갖게 되었고, 부모님께서는 세월의 탓인지 이젠 예전처럼 다투지 않고 지내고 계십니다.

모자이크 붓다 정진 기념촬영(뒷줄 오른쪽 첫 번째)
▲ 모자이크 붓다 정진 기념촬영(뒷줄 오른쪽 첫 번째)

마음이 아침을 먹은 듯 든든해집니다

지금은 저녁반으로 옮겨와서 자원활동 담당과 예불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새벽예불 소임을 맡게 되면서, 그동안 잠 때문에 5시 기도 시간을 지키는 것이 늘 어려웠는데 자동으로 해결이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새벽에 기도할 때 잠이 깨지 않을 때도 있고 피곤하다는 생각으로 일어나기 싫을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해보니 왜 시간을 지켜서 기도를 하라고 하시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억지로했든 흔쾌히했든 하루의 시작을 기도로 하고 나면 마음이 아침을 먹은 듯 든든합니다.

저는 여전히 그 동안의 업식에 휘둘리고 수행자라고 하기에 부족하고 부끄러움이 더 많지만, 개인적으로 보면 소임의 끈에 매달려서라고 이렇게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참으로 저에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되돌아보면 정토회에 와서 의지처를 찾아 헤매는 저에게 수행자가 되어 나아가라고 하는 면이 처음엔 힘들고 버거웠던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 하시는 법문은 제 식대로 듣고 어리광부리고 돌고 도는 느낌에 좌절할 때도 사실은 더 많아 매년 새해 목표가 '의지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주는 사람이 되자'가 된 것도 몇 해가 지났습니다.

늘 의지하는 사람에서 자립하는 사람으로, 남을 탓하거나 자신을 자책하는 사람에게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하루하루 변화하기를 매일 기도하며 정진해 나갑니다.
끊임없이 이 길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경기인경지부 자활담당교육 기념촬영(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
▲ 경기인경지부 자활담당교육 기념촬영(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

글_박지영(일산법당)
편집_고영훈(인천경기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