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김천 법당에는 도반들이 잘 화합할 수 있도록 접착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분이 있습니다. 조용하게 미소 짓는 모습만으로도 주변이 환하게 빛나는 김상희 님. 저녁 책임팀장 소임을 맡고 있는 김상희 님의 수행 이야기를 만나 보겠습니다.

어린이날 거리모금 하는 주인공
▲ 어린이날 거리모금 하는 주인공

아버지의 의처증으로 힘들었던 시절

생활력 강하고 부지런한 엄마에 비해 생활력이 많이 부족한 아버지는 마음 둘 곳이 없어서인지 화투만 치러 다녔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힘든 식당일로 지쳐있는 엄마를 의심하며 폭언과 폭력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우리 삼남매는 싸우는 소리를 듣고 두려움에 떨며 지내는 날이 많았습니다. 의처증이 심해지는 아버지 밑에서 엄마는 우리를 버리지 않고 지켜주셨습니다. 함께 안 살기로 결정하고 나서도, 다시 살림을 부수며 쳐들어온 아버지. 엄마는 '자식 결혼할 때 아버지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아버지와 싸우고 살고를 반복했고, 저는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고등학교 때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밤늦게 나오면 엄마가 데리러 왔습니다. 제 눈에 엄마의 차림새가 너무 초라하여 막 짜증을 냈습니다. 야간자습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추운 겨울날도 마다하지 않고 추위에 떨며 저를 기다리던 엄마의 모습, 목욕가자고 하면 저는 아무 것도 챙기지 않고 문 밖에 서 있던 모습들이 떠오릅니다. 이렇게 받는 것이 당연한 줄로 여겨 엄마의 보살핌에 감사함이 없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심하게 간섭한다고 그만 챙기라며 가시 돋친 말로 상처를 주어 엄마가 울면서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습니다. 엄마는 '다시는 안 온다' 하면서도 며칠 뒤에 또 오곤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직을 하였고 어려운 가정형편에 제 벌이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아이가 생기며 엄마집 근처에 살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제가 잘 때까지 우리집에 있으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간섭하였습니다. 저는 사무실에서는 순한 양이었다가 집에 와서는 엄마에게 늘 불평하고 집에 빨리 가라고 말로 상처주는 늑대로 돌변해갔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가 되지 못했고, 친정엄마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직장 다니는 기계처럼 살았습니다.

도반들과 선유동 활동가 나들이 중에 (왼쪽 첫 번째)
▲ 도반들과 선유동 활동가 나들이 중에 (왼쪽 첫 번째)

끝나지 않는 시련

큰아이가 중1이 되고 사춘기를 맞으면서 괴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딸은 갑자기 학교에 가기 싫다하고 해서 아들은 학교에서 잦은 말썽을 일으켜 저는 괴로움의 수렁으로 깊이 빠져들어 갔습니다. 딸이 이름을 바꾸고 싶다고 해서 작명소에 갔다가 제 이름이 더 안 좋다고 해서 같이 바꿔보기도 하고, 밤새 아이와 끝나지 않는 말싸움을 하며 서로 힘들었습니다. 마음이 무거워 성당 앞에 가서 두리번거리나 우두커니 서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같은 직장에 다니는 반듯한 동료가 정토회를 다니는 것을 보고, '저 동료가 다니는 곳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 싶어서 저도 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큰 아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정토회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대구에서 정토법당을 다니며 많이 편안해졌고 김천으로 이사를 하며 법당을 옮기었습니다.

토요일 새벽 정진 후 도반들과(오른쪽 첫 번째)
▲ 토요일 새벽 정진 후 도반들과(오른쪽 첫 번째)

부처님 법 만나 가벼워지다

김천 법당에 와서 1년 동안은 수행 법회를 들쭉날쭉 다니다가 정회원 정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저녁 팀장 소임을 하던 분이 휴직하게 되어, 저녁에 담당들이 못 나올 때 땜빵만 하면 된다는 가벼운 제안에 얼떨결에 저녁 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저녁 팀장 소임 1년 차에는 별생각 없이 다니면서도 큰 책임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총무님의 수행 후 나누기를 읽어 볼 때, '나한테 하는 이야기인가' 하며 괜히 혼자 눈치 보는 마음도 생기곤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부총무님의 나누기는 남편에 대한 것이 대부분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이 사실을 말해도 늘 의심하며 폭력을 행사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저는 소통하는 법을 몰랐습니다. 그제서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저도 아버지처럼 의심하며 속상해 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불교대학 수업 후 나누기 하는 모습 (중간의 법복 입은 주인공)
▲ 불교대학 수업 후 나누기 하는 모습 (중간의 법복 입은 주인공)

2년 차가 되니 조금 더 편안해져 관심이 밖으로 향했습니다. 법당을 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법회에 늦게 가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그래도 소임 덕분에 어쩔 수 없이라도 나오면서 가랑비에 옷 젖듯이 마음이 안정되어 갔습니다. 법문 시간에 졸면서 집중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누기 시간에도 깊은 나누기는 어려워 주눅이 들곤 합니다. 그러나 저녁 팀장으로 법문을 같이 또 듣다 보니 조금씩 귀에 들어오고, 도반들과 나누기로 다시 정리가 되는 축복의 시간입니다. 많이 부족한 내 모습이지만 돌아보면 조금씩 성장해온 감사한 시간입니다.

3년 차가 되어 ‘운동은 꼭 돈 주고 안 해도 되겠구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법당에 오기 싫은 마음이 들더라도 일단 와서 도반과 나누기 하다 보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행복해집니다. '행복한 회의'가 진행되는 우리 김천 법당.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도반들 사이에서 감사함을 많이 느낍니다.

'행복한 주례 회의' 중인 주인공
▲ '행복한 주례 회의' 중인 주인공

미움은 녹고 그리움만 남다

아버지의 밥 먹는 뒷모습을 보면 죽이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미워한 아버지였지만 지금 아버지는 안 계십니다. 올해 인도 성지순례 가기 전 중환자실에 입원해 순례를 가야 할지 고민도 했지만, 제가 순례를 다녀 와서 이틀 만에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니 아버지를 그렇게 미워하던 제 마음도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리움만 남았습니다. 아버지... 의처증이라는 병이 있어서 그랬지 완벽을 추구하는 엄마와 함께 살며 아버지도 힘들었겠습니다. 끝까지 아버지를 버리지 않고, 투덜거렸지만 살갑게 챙기신 우리 엄마. 그랬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에도 편안하게 따뜻함을 주고 가셨구나 싶습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저는 무한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를 탓하기도 많이 하지만 감사함을 챙기는 시간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어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오는 엄마를 가실 때 꼭 안아드렸습니다. 엄마 감사드려요. 그리고 아이들아 고맙다. 엄마 어른 되게 하려고 너희들이 아주 힘들었구나.

여러 시련을 주신 부처님 고맙습니다.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이만하길 다행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불법 만나, 스승님 만나, 도반 만나, 나는 정말 행복한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글_김상희 (김천법당), 이미란 희망리포터 (김천법당)
편집_강현아 (대구경북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