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여간 행복학교를 거쳐서 불교대학으로, 불교대학 입학과 함께 <깨달음의 장> 수련까지. 단기 속성으로 행복을 배우고 바로 실천하는 윤복순 님의 울고 웃는 이야기입니다. 말수가 없던 남편이 아내 앞에서 수다쟁이가 되고, 엄마를 마귀라 하던 아이들은 엄마를 보고 웃습니다.

도피처로 생각한 결혼, 부딪히다

성실하신 친정아버지 덕분에 저희 4남매는 어려움 없이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보수적이고 강압적으로 식구들을 대하는 모습은 싫었습니다. 시어머니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고, 남편은 제 의견을 모두 따라 주는 착한 사람이라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위암 수술을 받은 시아버지가 결혼을 권유하였고, 친정아버지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으로 결혼을 결정했습니다.

결혼 두 달 만에 시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바로 아이가 생겼습니다. 남편은 3남매 중 막내로 형, 누나로부터 귀여움을 받고 자라서인지 남편도 저도 서로 받으려고만 하다 보니 매사 부딪히기 시작했습니다.

도반들과 봄불대 홍보 활동 (왼쪽에서 2번째 윤복순님)
▲ 도반들과 봄불대 홍보 활동 (왼쪽에서 2번째 윤복순님)

아기 분유값을 벌기 위한 악착이 커질수록 남편에 대한 원망도 커지다

큰 딸이 태어나기 한 달 전 남편이 일을 그만두자, 저는 아기 분유값이 걱정이었습니다. 갓난 아이를 굶길 수 없었는데 남편은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새로 들어간 직장을 몇 달 못 채우고 그만두기가 반복되었습니다. 새 직장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집에서 있는 시간이 잦아지고 기간도 길어졌습니다. 남편은 밤에는 컴퓨터 하며 놀고 낮에는 자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남편이 경제적 문제에서 멀어진다고 느끼면 저는 더욱더 악착같이 아끼며 돈을 벌려고 애를 썼습니다. 갓난아이를 재우고 새벽에 신문배달하고, 집에서 전화 받아주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나중에는 신문에 광고지 넣는 작업까지 하며 악착을 떨었습니다. 나는 애 키우면서도 하는 일을 왜 남편은 안 하는지 미웠고 무능해 보였습니다.

조금만 도와주면 훨씬 더 빨리 자리잡고 아이들 풍요롭게 키울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에 원망과 미움도 점점 커졌습니다. 한편으론 내가 열심히 하면 알아주겠지 저 사람도 자극받아서 함께 해주겠지 하는 기대를 키웠는데 제 기대와는 달리 남편은 점점 더 집안일에서 멀어졌습니다.

남편이 없다면 나는 더 잘 살 수 있겠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니 남편이 저의 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 사람이 없다면 아이들과 나는 더 잘 살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들어서 시댁 식구들에게 이혼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하고 이혼 준비까지도 다 마쳤습니다. 마지막으로 판사 앞에 한 번만 더 출석하면 되는데 남편이 안 한다고 버티었습니다. ‘미안해, 이제는 열심히 살게’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혼 못한다는 겁니다. 저를 괴롭히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만 느껴지고 얼마나 미웠는지 모릅니다.

부부 상담도 받았지만 저희는 그대로였습니다. 한 집에서 서로를 투명인간 취급하면서 제가 활동하는 시간에 남편은 본인 방에서 꼼짝 안 하고, 제가 방에 들어가는 시간이 되면 남편은 방에서 나와 생활하며 그렇게 따로 엇갈리며 살았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겉으로는 티 안내고 살았지만 속으로는 매일매일 저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행복도 배울 수 있나요?

남편을 너무 미워하여 힘들 때 우연히 인터넷에서 행복학교 광고를 봤습니다. 행복을 배울 수 있다는 말에 행복을 어떻게 배우는 건가 싶은 호기심에 신청했습니다.

행복학교를 거쳐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남편을 원망하고 미워만 하던 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꿈꾸던 모습을 이루기 위해 하던 노력들이 얼마나 허황되고 어리석은 것인지를 알게 되었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강요한 것을 참회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미안함에 잘 웁니다.

타인에게 아쉬운 모습 안 보이고 좋은 모습, 착한 모습으로만 보이고 싶은 자존심 하나로 완전 무장을 하고 살아오던 저였는데 행복학교에서는 처음부터 그냥 저절로 되는 것 같습니다. 울며 불며 하면서도 속 얘기를 하나 둘 풀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 더는 버틸 힘이 없었거나 이렇게 내어놓는 것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무의식 중에 알지 않았나 싶습니다.

잘 깨지고 오라!

행복학교 윤태임 교장선생님(현 향음법사님)이 이제는 <깨달음의 장> 에 가봐도 좋을 거 같다고 하셨습니다. 불교대학 입학하고 바로 신청을 했고 11월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선배 도반은 '인생은 <깨달음의 장> 가기 전과 후로 나뉜다. 잘 깨지고 오라!’ 고 말해주었습니다. <깨달음의 장> 수련을 통해 저는 제 삶의 방향을 바꿨습니다. 다시는 예전처럼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으리라는 다짐도 했습니다.

알고보니 수다쟁이 남편

저와 남편과의 관계에서 가장 큰 변화는 웃으며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남편의 말에 부정적으로만 반응하던 제가 편안해지니 남편은 수다쟁이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남편과 둘이 있는 것이 어색해 아이들을 꼭 데리고 다녔지만 이제는 남편과 잘 다닙니다. 무뚝뚝하고 말 없던 남편이 어떻게 참고 살았나 싶을 정도입니다.

또 다른 변화는 서로를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어느 날부터 남편이 저에게 존댓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시작은 농담처럼이었지만 제게 존댓말을 하는 남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고, 참 감사했습니다.

 이젠 남편과 이렇게 셀카도 찍는 사이가 되었답니다 ^^
▲ 이젠 남편과 이렇게 셀카도 찍는 사이가 되었답니다 ^^

언제나 고마운 나의 도반

제겐 많은 고마운 도반들이 있습니다. <깨달음의 장> 동기들, <인도성지순례>를 함께한 순선 님, 현주 님, 행복학교의 황영희 선생님, 윤태임 교장선생님, 묘향 법사님, 불교대학 담당이셨던 봉금례 님, 너무나 많은 분들이 제게 새로운 삶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깨달음의 장> 동기들은 각별합니다. 지금도 분기별로 만남을 이어가고 있고, 함께 수행한 지 500일이 되어 갑니다. 1784차 <깨달음의장> 동기들에게 고맙고 감사하다는 인사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게 가장 큰 울림을 주신 분은 행복학교 윤태임 교장선생님입니다. 행복학교 첫날 수업을 마치고는 ‘한번 안아줄게’라고 하시며 안아주셨는데 그때의 표정과 그 품이 너무나 따뜻하고 좋아서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 당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스르르 녹아들고 평온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 온화한 미소와 넓은 마음을 흉내라도 낼 수 있길 바래봅니다.

 봉사자들과 함께 환한 웃음짓는 윤복순님~ 지금처럼 꽃길만 걸어요 ^^
▲ 봉사자들과 함께 환한 웃음짓는 윤복순님~ 지금처럼 꽃길만 걸어요 ^^

나도 좋고, 가족도 좋고

변한 저의 모습을 보고 남편, 아이들, 친정 식구들, 친구 등등 주변 사람들이 모두 좋아합니다. 얼마전 아들이 ’엄마 예전에는 마귀 같았던 거 알지요? 지금처럼만 살자‘라고 합니다. 남편은 제가 매일 법당 다니느라 바쁘다고 가끔 투정 부리다가도, 어서 다녀오라며 법당까지 태워다 주기도 합니다. 여동생도 제가 달라진 것을 보고 행복학교를 거쳐 지난 가을에 불교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좋아졌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제 스스로가 기특하기도 합니다.

받은 사랑을 나누기 위해

행복학교와 불교대학을 만난 지 21개월. 혼자 잘나서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많은 이들의 배려와 나눔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기에 조금이나마 제가 받은 사랑을 나누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행복을 알게 되어 삶이 자유롭고 괴롭지 않기를 바랍니다.

 JTS 모금 활동중인 윤복순님 ( 오른쪽 )
▲ JTS 모금 활동중인 윤복순님 ( 오른쪽 )

예전에는 무엇을 하든 순서 정하고 따지고 이리저리 계획을 세우며 저를 많이 힘들게 했는데 정토회를 만나고부터는 ‘그냥 물 흐르듯이 하자’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수행목표도 없습니다. 다만 죽을 때까지 수행만은 놓지 않겠다는 큰 원 하나를 가슴에 새겼습니다.

인도 성지순례에서 지도 법사님과 함께~
▲ 인도 성지순례에서 지도 법사님과 함께~

글_윤복순 (양천정토회 구로법당)
정리_김은주 희망리포터 (양천정토회 구로법당)
편집_권지연 (서울제주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