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법당에는 자랑하고 싶은 도반이 참 많습니다. 특히, 저와 3년째 함께 하는 우리 경전반 식구들인데요, 함께한 시간은 2년이지만, 마치 20년을 함께 한 것처럼 끈끈함을 자랑합니다. 어떤 행사에서든 경전반 식구들이 모였다 하면 시끌벅적, 이렇게 소란스러운 틈에서 언제나 차분한 미소로 함께 하는 큰 언니 허보심 님이 있습니다. 철없는 어린 도반들의 짓궂은 장난도 항상 웃음으로 받아주는 우리의 든든한 버팀목이지요. 그렇게 여려 보이는 분이 어떻게 불교대학 팀장, 경전반 담당까지 맡게 되었는지 그 사연을 들어볼까 합니다.

수행병에 걸린 것 같아 행복하다는 허보심 님
▲ 수행병에 걸린 것 같아 행복하다는 허보심 님

20년 시집살이, 마음의 병을 얻다

결혼생활을 시댁에서 시작했습니다. 남편과 아이들, 시부모님, 시누이, 시동생. 이렇게 밖에서 보기에는 좋아 보였을지 모르지만, 나는 힘이 들었습니다. 옛날 중앙정보부 출신인 시아버님은 권위적이었고, 그런 아버님을 어려워하는 시어머님과 까다로운 시누이, 철없어 보이는 시동생까지 여덟 식구가 다 같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도 친구를 좋아해서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보면서 나를 무시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내가 자기 식구들을 위해 희생하며 힘들게 살고 있는데, 저럴 수가 있을까? 미웠습니다. 이 미운 감정이 시댁 식구 탓인 것만 같았습니다. 마음이 미움으로 가득 차 있으니, 알레르기로 비염, 천식, 두드러기, 약물에 의한 호흡곤란으로 응급실도 여러 번 갔습니다. 그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남편은 힘이 되어주지 못했고, 심각한 비염에 시달리면서 눈이 붓고 자고 일어나면 베개가 젖을 정도로 콧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원형탈모가 시작되었고 몸무게도 45키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마음에서 오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병간호와 투병의 시간

시댁 식구들과 같이 살지 않으면 바뀔 것이라 생각하여 남편을 설득해 분가하였는데, 남편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친구와 술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던 중, 자판기 임대 및 판매 사업을 하던 남편이 대기업과의 싸움에서 가격 경쟁력에 밀리면서 사업이 어려워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남편의 건강도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사업이 어려워지니 신경을 쓰던 남편이 패혈증으로 쓰러져 수술하고 중환자실에서 깨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복부의 3분의 2에 농이 가득차서 호흡마저 곤란한 상황이었습니다. 거의 가망이 없다던 남편은 많은 사람의 기원과 격려 덕에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건강을 회복한 후에 남편은 사업을 정리하고 보험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대학생인 아이들과 함께 분식집을 차렸습니다. 처음엔 장사가 꽤 잘 됐습니다. 하지만 주변에 경쟁업종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가게가 어려워지면서 아파트를 팔고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아 작은 빌라로 이사를 했습니다. 왜 이럴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일까를 생각하며 진짜 이절 저절 이사람 저사람을 찾아다니던 중에 나에게도 유방암이라는 병이 찾아왔습니다. 마음은 담담한 것 같은데,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 났습니다. 그렇게 암 수술을 하고 5개월에 걸쳐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머리는 하나도 없이 다 빠지고 손발톱까지 새까맣게 변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특유의 외유내강 기질로 암을 씩씩하게 이겨내고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2018 가을불교대학 도반들과 함께(오른쪽 두번째 허보심 님)
▲ 2018 가을불교대학 도반들과 함께(오른쪽 두번째 허보심 님)

불교대학 개근으로 그만 두는 업식을 바꾸다

2015년 유방암 치료를 마친 후에 아들의 권유로 서산에 이사와 요양하면서 무료하게 지내고 있을 때, 우리 집 현관 앞에 붙어진 정토불교대학 홍보 전단지가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불교대학 입학 후 처음 나누기를 하는데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는 하얘지고, 말도 떨리고,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보는 게 부담스럽고 싫었습니다. 그만둘까 하고 고민하다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나의 삶을 바꾸는 공부를 놓치기가 아까웠습니다. 이전에 내가 끝까지 한 것이 없었습니다. 내가 아니면 주위 사람이라도 아프거나 일이 있어 항상 중간에 그만두었습니다. 그래서 이왕 시작한 거 여기에서 하라는 대로 결석하지 않고 끝까지 해 중간에 그만두는 업식을 끊으리라고 나 자신과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불교대학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아버님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법당에 가기 위해 남편과 부모님께 그냥 숙였습니다. 병원에 있다가도 수업 시간이 되면 꼭 가야 한다고 하고 나와 수업에 참석했습니다. 이번을 계기로 적어도 내가 만들어 놓은 가족과 시댁의 틀에서 자유로워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1년은 무슨 일이 있어도 불교대학 수업을 첫 번째 우선순위에 두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모든 약속은 불교대학 수업이 없는 날로 잡고, 갑자기 일이 생겨도 불교대학부터 갔습니다.

마음속에 유혹도 많았습니다. 그냥 하던 대로 살라고. 종교에 빠졌다는 걱정과 곱지 않은 시선 속에서도 빠지지 않고 출석해 개근하고 법륜스님과 악수도 했습니다. 악수 한 것도 좋았지만, 내가 만들어 놓은 감옥 속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은 처음으로 내 삶의 주인이 나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2018 가을경전반 졸업식에서 (맨 왼쪽 허보심 님)
▲ 2018 가을경전반 졸업식에서 (맨 왼쪽 허보심 님)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준 불교대학과 <깨달음의 장>

불교대학에서 진행한 수행맛보기 시간에 처음으로 알게 된 기도문은 내 마음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기도문을 읽으면서 시야가 나와 가족을 벗어나 사회, 세계, 우주로 넓어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아! 이거구나, 내가 그동안 너무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살았구나, 지금처럼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행을 하면서 내가 바로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집 밖을 벗어나서 자본적도 없었는데, 정토회에 와서 <깨달음의 장>과 각종 수련 프로그램을 다녀오면서 나의 삶이 훨씬 자유로워졌습니다. 지금까지는 가족의 틀에서 벗어나질 못했었는데 이제는 어떤 일이든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남편에게 서운했던 것들도 남편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였고 욕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수행에도 욕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저녁에도 수행하면 나를 돌아볼 수 있어 좋을 것 같은데, 시간이 없어 저녁에는 하지 못하니까 아쉬운 마음이 들면서 수행병에 걸렸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가을불교대학 담당과 팀장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처음 봉사소임이 맡겨졌을 때는 법당을 위해 애쓰는 총무님의 권유를 거절할 수 없어 어쩔 수없이 받아들였지만, 그 소임이 나를 성장하게 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내 아이, 내 남편, 내 가정만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내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봉사할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주변의 도움을 참 많이 받으면서 살았었는데, 그동안 그걸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길에 있는 가로등 하나까지 나에게 도움을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의 공덕으로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받은 것을 갚아가며 살고 싶습니다.
사실 이렇게 수행할 수 있는 것은 도반들의 공덕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알림으로 서로 깨워 주고 하며, 못해도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고, 힘들 때 위로하며 용기를 주고, 때론 따뜻하게 웃어주고 만나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처음에 법당에 살지 왜 왔냐며 반대를 심하게 했습니다. 순간순간 미운 마음과 화도 올라오지만, 이제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는지 남편을 조금씩 설득해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법당에 태워다 주면서 봉사 잘하고 오라고 인사가지 해주었습니다. 수행 덕분에 나도 남편도 참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밝은 대낮에 눈을 감고서 깜깜하다고 아우성 치던 나였는데, 정토회를 만나 조금씩 아주 조금씩 눈뜨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감동을 주는 통일의병학교 9기 도반들 (뒷줄 맨 왼쪽 허보심 님)
▲ 감동을 주는 통일의병학교 9기 도반들 (뒷줄 맨 왼쪽 허보심 님)

유방암을 극복하고 최근엔 수행병에 걸려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허보심 님. “네! 하고 합니다”를 가장 잘 실천한 덕인지 법당에서 주어지는 어떤 일도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내는 허보심 님.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궁금했는데, 이야기를 듣다보니 수행의 공덕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평 남짓한 공양간에서 1미터도 채 안되는 간격으로 마주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두 시간이 저에게도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글_허지혜 희망리포터(천안정토회 서산법당)
편집_하은이(대전충청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