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여법당에는 도반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청춘 커플이 있습니다.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정토회 활동과 법당 행사에서 뛰어난 재주를 선보이며 도반들의 이목을 끄는 한규석, 강미정 부부입니다. 젊은 부부 도반의 수행 이야기, 함께 들어볼까요?

아내, 정토불교대학 가다

강미정 님 : 저는 학원에서 강사로 일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성공해야 한다,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매일 자정 넘어 퇴근하며 ‘나는 할 수 있다’고 저를 계속 밀어붙이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땐 힘들어도 열정적으로 그렇게 사는 게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친구가 저에게 “고등학교 때부터 너는 너무 애쓰며 사는 것 같아, 늘 힘들어 보여”라며 조심스레 정토회에 나가보라고 권했습니다. 제가 무척 힘겹게 살고 있다는 걸 그 친구가 알려주려 한 거죠. 그런데 저는 그 말이 ‘그렇게 사는 게 좋은 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서 기분이 나빴습니다. 멋지다, 잘한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뜻밖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문득 제가 힘든 순간마다 그 말이 떠올랐습니다. 후에 친구가 추천해준 법륜스님의 책을 읽으며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고 좀 더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2015년 방어법당에서 불교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불교대학에 다니며 정말 새로운 세상을 만난듯했습니다. 생활이 너무 편안해졌고 남편도 저에게 많이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수업을 들으면서 제 가치관들도 많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법당에서 공양 중인 한규석, 강미정 부부
▲ 법당에서 공양 중인 한규석, 강미정 부부

남편, 정토회에 간 아내를 말하다

한규석 님 : 저는 그 당시 직장에 들어간 지 초반이었습니다. 긴장한 상태에서 일하니까 더 힘들고 야근이 많아 피곤했습니다. 아내는 거의 밤 12시, 1시에 일을 마쳤고 학원과 집이 멀어 제가 항상 태우러 가야 했습니다. 둘 다 저녁을 제때 못 먹고 늦게 야식을 먹으면 새벽 2시, 3시가 되었고 얼마 못 자고 오전 7시까지 출근하는 그런 생활이 계속되니 제 삶은 엉망이 되고 스트레스도 쌓이고 지쳐갔습니다. 아내가 저와 엄청 잘 맞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살다 보니까 진짜 안 맞다 하는 점들도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쌓이고 저는 저대로 감정이 쌓이다 보니 많이 싸우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장난스럽게 말해도 아내가 그때 불교대학을 안 다녔으면 우린 벌써 이혼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서로 합니다. 아내는 정토회에 가면서 진짜 180도 바뀌었습니다. 불교대학은 아내가 다녔는데 제가 살만해졌어요. 제가 최대 수혜자입니다. 그래서 아내가 불교대학 수업에 빠질까 봐 제가 더 챙겼습니다.

부부, 인생의 브레이크를 당기다

강미정 님 : 불교대학에 다니며 여유로워지고 생각이 바뀐 것 때문인지, 남편이 이직을 위해 퇴사를 고민할 때 “하고 싶은 일 있으면 그만둬, 내가 먹여 살려줄게” 라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퇴직금으로 당분간은 살겠다는 생각도 들고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같이 쉬겠나 하는 생각에 저도 같이 사표를 내고 부부 백수로 6개월을 살았습니다. 서로 힘든 게 정점에 달했을 때 “같이 그만두자” 하게 된 거죠.

퇴직금으로 여행도 가고 행복한 백수 생활을 했습니다. 많이 내려놓게 되고 그동안 못했던 시간도 함께 많이 보내고 여유도 많이 생겼습니다. 6개월 후, 되기로 했던 남편 이직이 무산되는 바람에 애초보다 더 길게 쉬게 되었지만, 백수로 지내면서 얻은 게 많았습니다. 돈은 없지만, 삶의 여유와 부부 사이의 대화를 얻었지요. 수입이 제로가 되면 큰일이라도 날 줄 알았는데 돈 돈 거리며 살 필요가 없다는 걸 배웠습니다. 욕심도 많이 내려놓은 상태에서 불교대학 수업까지 들으니 머리에도 마음에도 가르침이 쏙쏙 들어왔습니다.

영남권 통일축전에서 장기자랑 하는 한규석, 강미정 부부
▲ 영남권 통일축전에서 장기자랑 하는 한규석, 강미정 부부

남편이 정토회에 온 이야기

한규석 님 : 저는 기독교 모태신앙으로 세례도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독실하셨어요. 저도 고등학교 때까지 열심히 교회에 다녔습니다. 마음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도박과 의처증으로 부모님의 불화가 심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울기도 하고 매달렸었는데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신이라는 건 없다’며 신앙을 버렸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변하는 모습을 보며 정토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울산에서 직장을 다니다 외국계 기업에 가기로 했던 게 틀어져 다른 직장을 구해 부산으로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대우도 돈도 나쁘지 않았지만 일하는 보람과 재미를 못 느꼈고 비전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내와 이야기하다 아내가 그만두고 공부방을 같이하자고 해서 함께 일하게 되었고 여유 시간이 생겨서 2018년에 반여법당에서 불교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남편, 깊은 마음속의 상처인 아버지를 꺼내다

한규석 님 : 불교대학에 갈 때 제 마음속엔 해결하고 싶었던 게 있었습니다. 늘 묻어두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었습니다. 생각하면 너무 괴로우니까 마음속 깊이 외면하고 단단한 벽을 쳐놓고 살았습니다.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온갖 나쁜 감정들이 내 몸을 지배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제게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못하게 했어요. 저는 아버지로부터 파생되는 제 성격적 결함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부정적인 성격의 씨앗이라 할까, 나쁜 감정들이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변하는 모습을 보고 아내가 해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계속 덮고 갈 게 아니라 해소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불교대학 입학식에서 한규석 님
▲ 불교대학 입학식에서 한규석 님

원망이 용서를 넘어 감사가 되기까지

한규석 님 : 부모님은 제가 대학교 때 별거를 하셨고 저는 어머니랑 살았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부모님은 이혼하셨습니다. 이후 가정환경은 좋아져서 이제는 걱정도 없고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이라도 어린 시절 기억이 나면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습니다. 울고 격양되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근본적으로 해소가 안 됐던 것입니다.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저에 대해 돌아보게 되고 결정적으로 <깨달음의 장>을 통해 저를 괴롭히던 실체를 제대로 알 수 있었습니다. 생각하기 싫었던 그때 기억을 정면으로 마주하는데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그러다 제일 괴로웠던 한 시점이 떠올랐습니다.

어렸을 적 제 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새벽에 소리가 나서 잠을 깨게 되었습니다. 안방에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소리였습니다. 너무 무섭고 피하고 싶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시 잠들려 했습니다. 당장 달려가서 아버지를 막아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보다도 엄마를 못 지켰다는 죄책감으로 더 괴로웠습니다. 그 아이를 향해 ‘말렸어야지! 왜 못 막았어! 바보 같은 놈!’ 이렇게 자책하고 있었던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자책이 상처의 근원이었던 것입니다. 그걸 인정하기 싫어서 아버지 때문에 괴로운 거라 아버지를 탓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사실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무서움에 떨고 있는 아이가 무슨 힘이 있었을까', '아이의 잘못이 아니야', '아이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과거 어린 저에 대해 연민을 느끼며 맺힌 마음이 풀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그때의 저를 떠올리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이제 괜찮아’, ‘많이 무서웠지’ 하며 참회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버지에 대해서도 참회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때를 떠올려도 감정의 찌꺼기들이 생기지 않습니다.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고 가족들에게도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제가 평소에 표현 못 했던 말, ‘정말 어려운 시기였는데 어머니가 저를 안 버리고 키워주셔서 제가 지금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다’고 어머니께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들고 부정적인 감정도 많이 줄면서 삶에 좋은 변화들이 생겼습니다.

아내도 깊은 마음속의 상처, 아버지를 꺼내다

강미정 님 : 저도 어렸을 때 남편과 마찬가지로 아버지 때문에 온 가족이 힘들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괴로워하는 엄마를 봐야 했습니다. 남편이 아버지에 대한 원망만 있었다면 저는 엄마에게도 화가 났었습니다. 이혼할 용기가 없어 저와 동생 때문에 이렇게 산다고 책임 전가하는 모습이 싫었습니다.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지 않는 엄마가 한심해 보였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 엄마에 대한 원망, 가족 전체가 미웠습니다.

9-7차 백일기도 입재식에서 한규석 님, 강미정 님(앞줄 우측 두 분)
▲ 9-7차 백일기도 입재식에서 한규석 님, 강미정 님(앞줄 우측 두 분)

샤르르 샤르르 얼었던 마음이 녹는 소리

강미정 님 : 엄마와 동생에 대한 마음은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내가 엄마를 불쌍하게 보니 엄마가 나에게 불쌍한 사람이 되는구나. 그런 아빠였지만 그래도 엄마는 같이 사는 게 나으니까 같이 살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생과 저는 나이 터울이 5살이고 그때도 아빠는 그런 분이셨는데 동생이 태어났잖아요. 저도 결혼생활을 해보니 자식 때문에 산다고 하지만 엄마가 가정을 지켰던 건 아빠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거나 그 삶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빠한테 가지는 원망은 절대 해결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깨달음의 장>에 갔다 와서 아버지한테 연락을 해야겠다고 해서 처음에 매우 놀랐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상처는 둘 다 있었어도 저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했었는데 남편은 전혀 꺼내놓질 못하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런 남편이 아버지에 대한 말을 꺼낸다는 건 놀랄 일이었습니다. 남편이 변하는 걸 보고 <깨달음의 장>에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입소하는 날까지 과연 아버지 문제가 해결될까 하는 의문을 가지며 갔습니다.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은 바뀔 수 없는 거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는 이상 바뀔 수 없는 문제라 생각했습니다.

내 상처밖에 몰랐는데 아빠도 엄마도 힘들었구나

강미정 님 : <깨달음의 장>을 통해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형제들과 헤어져 홀로 어머니를 따라 새아버지 집에서 이복형제들 눈치 보고 겉돌며 힘들게 살았던 아빠의 어린 시절을 보았습니다. ‘아빠니까 당연히 우리를 책임져야지, 아빠니까 그러지 말았어야지!’라고 생각할 땐 전혀 못 봤던 부분들이 보였습니다. 아빠를 한 사람으로 보니 집 밖으로 겉돈 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엄마와 우리가 싫어서 밖을 나다닌 게 아니라 새아버지가 주축이 되는 집에 있기 싫으셨던 것이었습니다. 아빠 입장에서도 힘들었겠구나. 지금의 저보다도 어린 그때의 방황하는 아빠에겐 그게 최선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도 그때는 20대 초반이니까 뭘 알았을까요. 의지가 되기는커녕 힘들게 하는 남편과 시집살이로 힘든 상황에서 엄마는 저 낳고 기르느라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이렇게 생각하니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할머니가 아빠를 버리지 않고 키워줘서, 그래도 아빠가 엄마와 결혼해서 나를 낳아주고 동생을 낳아줘서, 엄마가 도망가거나 아빠와 헤어지지 않고 우리 자매를 키워줘서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전에는 답답하게 느껴졌던 친정 식구들을 이해하고 나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감사한 많은 것들이 보였습니다. 가족을 이해하지 않고 미워만 했다는 것을 돌이켜보게 되었고 가족에 대한 이해와 사랑하는 마음을 찾게 되었습니다. 가족에 대한 원망이 없어지고 비로소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란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JTS 거리모금 중인 강미정 님
▲ JTS 거리모금 중인 강미정 님

봉사 이야기

강미정 님 : 그동안 수행법회 사회소임을 하다가 올해 불교대학 담당을 맡게 되었습니다. 요즘 남편과 열심히 불교대학 홍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법당 봉사하면서 노동의 가치가 돈으로 환산될 때 보다 그렇지 않을 때 훨씬 더 가치 있다는 걸 배웁니다. 강사를 할 땐 몸값을 올린다는 게 참 중요했습니다. 돈을 많이 받을수록 저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했거든요. 봉사하며 돈 하나 받지 않는데 오히려 그때보다 제가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듭니다. 안 받으면 ‘0’인 줄 알았는데 셀 수 없기 때문에 안 받는 것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돈을 받고 일하면 종이 되지만 돈을 안 받으면 내가 주인이 된다는 스님 말씀을 들은 적 있는데 직접 체험하고 있습니다.

한규석 님 : 저는 이번에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경전반에 올라갑니다. 불교대학 학생으로 사회, 영상, 책상 펴기, 거리모금, 불교대학 홍보 봉사를 해봤습니다. 처음에는 할까 말까 머뭇거리는 게 있었는데 하면 할수록 마음이 쉽게 내지는 걸 느낍니다.

수행자로서 목표

한규석 님 : 수행자로서 정토회를 놓지 않고 꾸준히 수행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수행하며 어려운 건 자꾸 제 업식에 진다는 것입니다. 하기 싫은 마음이 들 때가 있잖아요. 특히 새벽에 일어나서 108배 하는 건 지금도 했다 안 했다 하는데 천일결사기도가 일상의 시작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에 수행을 하면서 참회를 하고 기도문을 읽으면 하루가 잘 깨어있게 되더라고요. 화내거나 감정이 일어나는 순간에 돌아오기 쉬워집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할 수 있는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개인수행에 그치는 것 아니라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행동하는 수행자가 되고 싶습니다.

강미정 님 : 그동안 법문만 딱 듣고 가고 봉사도 책임져서 하기보단 옆에서 돕는 정도였는데 올해부터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활동해보는 게 목표입니다. 그래서 불교대학 담당소임도 맡았습니다. 약간 부담도 되긴 하지만 이왕 마음먹은 것 팍 던져서 해보자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새벽수행을 계속 해나가고 싶습니다.

인터뷰 마친 마음 나누기

한규석 님 :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정토회 오게 됐을 때부터 앞으로의 목표까지 이야기하다 보니 처음 마음도 새록새록 기억나고 <깨달음의 장> 감동도 떠올라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앞으로 수행 진짜 열심히 해봐야지 하는 마음도 듭니다.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강미정 님 : 남편과 정토회에 함께 나오고 이렇게 회고해볼 수 있는 자리를 가져서 좋았습니다. 말에는 힘이 있잖아요. 말의 선언적 기능이 동작해서 ‘앞으로 이렇게 해야지’ 말한 것들이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고 의욕도 팍팍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때까지 수행을 많이 놓쳤는데 앞으로 더 잘할 거란 확신이 듭니다.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JTS 거리모금 중인 한규석, 강미정 부부
▲ JTS 거리모금 중인 한규석, 강미정 부부


취재하면서 어린 시절 아픔을 상처가 아니라 인생의 자산으로 승화시킨 두 분 이야기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그런 힘든 상황 속에서 성장했기에 일찍부터 진지하게 삶을 고민할 수 있었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힘을 기를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겨울 가면 봄이 오듯 힘들었던 시간들이 지나고 따뜻한 봄날을 맞은 두 부부의 얼굴에도 환한 벚꽃이 피었습니다. 수행도 봉사도 열심히 하고 싶다는 한규석, 강미정 부부. 반여법당에서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됩니다.

싱그러운 부부도반을 닮은 벚꽃(촬영: 희망리포터)
▲ 싱그러운 부부도반을 닮은 벚꽃(촬영: 희망리포터)

글_노희동 희망리포터(해운대정토회 반여법당)
편집_방현주(부산울산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