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정토회의 유일한 대의원인 임연희 님에게 처음 기사 부탁을 드렸을 때 “나보다 훌륭한 분 많으니, 안 하겠다"며 거절했습니다.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보니, 소중한 이야깃거리가 많아 고민이라는 임연희 님. 은혜로운 마음을 지닌 임연희 님의 세월에 묻어나는 수행담을 소개합니다.

법당에선 친정엄마처럼 만능일꾼으로 언제나 가볍게 행하는 임연희 님
▲ 법당에선 친정엄마처럼 만능일꾼으로 언제나 가볍게 행하는 임연희 님

정토회와의 만남

우리 법당 차례라며 수행담을 써 보라는데 제가 자격이 없어 미루고 사양하다 ‘그래, 이런 늦된 도반도 있어야지.’ 하고 받았습니다.

남편은 오랜동안 친구로 지내온 사이였습니다. 시할머니와 아버지가 점잖은 분들이니 잘 지낼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고 자청해서 모시게 됐습니다. 맏며느리인 친정엄마가 대가족 속에서 마음고생하며 사는 걸 봐 왔지만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25년이란 세월을 까다로운 아버님에 맞추는 착한 며느리라는 말에 갇혀 살았습니다. 외출도 자유롭지 못하고 그땐 하루 세끼 반찬이 제일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불만은 몽땅 남편에게 향했습니다. 착하지만 무심한 남편에 대한 불평, 아이들에 대한 기대와 집착은 제 속에 많은 분노와 우울을 키웠습니다.

2006년 친구가 꼭 가보라고 권한 진주의 가정법회를 가게 되었는데, 처음 들은 스님의 즉문즉설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발상의 전환,' 세상을 이런 마음으로 살면 되는 거구나!' 너무 좋고 살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법회 밖의 현실로 돌아오면 또 꼼짝없이 사로잡혀 그 관성을 뛰어넘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 현실이 그때 저의 선택이었고 법문 듣기는 저의 취미생활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살만했는지 간절함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법당에서 월례회의를 하며 큰일도 작은일도 해결해 갑니다.(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임연희 님)
▲ 법당에서 월례회의를 하며 큰일도 작은일도 해결해 갑니다.(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임연희 님)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

2012년 진주법당이 생기면서 제 생활이 조금씩 바빠지고, 이사 온 사천에 새로운 법당을 만들면서 매일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버님도 돌아가시고 이제부터 봉사를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자 남편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호랑이가 없어지니 토끼가 대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남편은 제가 부어터져 있어도 늘 옆에서 챙겨주는 게 편하니 주말까지 나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래 함께 살아온 익숙함이 있기에 저는 법당에 나가는 시간이 당당하지 못하고 죄책감이 컸습니다.

그러나 정토회가 어떤 곳인가요!
소임이 주어지니 그 소임 덕에 어쩔 수 없이 숙이고 빌며 그렇게 법당을 나갔습니다. 어떨 땐 정토회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시집살이 그만큼 했으니 큰소리 땅땅 치며 살 것을 정토회 때문에 남편 비위 맞추며 살아야 하는 게 억울했습니다. 답답해서 <나눔의 장>에 갔습니다. 거기엔 엄청난 수행거리 앞에 용감하게 앞으로 나가는 수행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제 문제는 참 하찮아 보였습니다.

어느 날, 답답한 마음으로 설거지를 하는데 문득 남편을 늘 못마땅해하며 고집스럽게 제 의견만 주장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옆엔 어쩌지 못하는 남편과 말없이 지켜보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밥하다 말고 눈물을 한 바가지는 쏟았을 겁니다. '언제나 내가 옳고 내 방식으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게 아니구나.' ‘진정한 사랑과 배려는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구나! 하고 싶고, 해야 할 일을 마음 편하게 할 수 있게 봐 주는 것이구나.’ 매일 듣는 법문이 이제야 가슴을 치다니 참 오래도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맞춰주는 척만 했던 많은 것들이 진심으로 맞춰지고 곰같은 남편은 귀여워 보였습니다. 그 후로 저는 웃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좋아하는 술과 안주와 담배가 무한 제공되었습니다. 옆집 남편과 비교하지 않고, 마당의 잡초도 뽑다가 지치면 그대로 둡니다. 수도가 고장나고 차가 고장나도 알아서 고칩니다. 뭘 바라지 않습니다.
남편에겐 눈치 안 보고 내 집에서 편하게 살 권리를 주며, 잔소리 안 하고 요구사항 잘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많은 자유를 얻었습니다.

법당에 오지 못하는 일반 대중과 가볍게 만나는 '행복학교' 모습(가운데가 임연희 님)
▲ 법당에 오지 못하는 일반 대중과 가볍게 만나는 '행복학교' 모습(가운데가 임연희 님)

남편은 지금도 스님을 라이벌로 생각하지만 매일 바쁜 저를 많이 봐줍니다. 애들도 압니다. 법륜스님 덕분에 자기들이 자유로워졌다는 걸. 그래서 엄마 스케줄에 맞춰 집에 오고, 가끔 서울에 회의 갈 때면 남편의 방패막이가 되어 줍니다.

예전 온갖 당위와 상식을 앞세우고 남 탓만 하던 제가 기도하고 정진하며 법에 귀의하고 감사할 줄 알게 해준 스님, 그리고 오랜 세월 늘 곁에서 붙잡아준 도반들에게 감사합니다.
‘나는 왜 안 변할까?’ 고민하는 분들에게 머리 나쁘고 말귀 못 알아들어도 오랜 세월 가랑비에 옷 젖듯 이렇게 조금씩 변해가는 도반도 있다는 걸 얘기해 주고 싶습니다.
 
 

언제나 열심히 하는 'JTS 거리 모금' 중 한 컷(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임연희 님)
▲ 언제나 열심히 하는 'JTS 거리 모금' 중 한 컷(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임연희 님)

사천법당과 우리 도반들

2014년 경전반 학생 3명과 사천법당을 시작했습니다. 진주정토회엔 대의원이 한 명밖에 없어 대의원 소임 때문에 총무는 창원에서 이사 온 정영순 님이 하게 되었습니다. 어째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는지 얌전한 집순이었는데 그래도 함께라서 참 열심히 돌아다닌 것 같습니다. 삼천포까지 전단지 붙이러 갔다가 한여름에 지쳐서 길에 주저앉아 버렸던 일은 지금도 미안한 일입니다. '내가 괜찮다고 남 생각 못 하는 그 배려 없음'은 늘 참회 거리입니다.

벌써 4년이 지났고 그때 졸업한 1기 불교대학 학생들이 지금은 총무, 저녁팀장이 되어 법당을 잘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시어른 모시고 살며 일 많은 우리 김희연 총무. 제가 살아봤으니 그 고단함에 늘 애잔합니다. 그래도 능력 있고 똑똑할 뿐만 아니라 언제나 기도 정진하는 모범이 되어 주어 감사합니다. 몸도 약한데 저녁팀장이 되어 요즘 일복이 쏟아지는 황진희 님. 우리 법당에 보살님 같은 꼼꼼한 원칙주의자가 있어 늘 바로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서 감사합니다.
새벽기도. 통일기도. JTS. 때론 힘들었지만 늘 앞장서 주는 분들이 있어 한 발 한 발 해나가며 일이 수행이 되어 제가 단단해짐을 봅니다.

 

9-8차 천일결사 입재식 때 도반들과 즐거운 시간(맨 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임연희 님)
▲ 9-8차 천일결사 입재식 때 도반들과 즐거운 시간(맨 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임연희 님)

한 달에 휴지 한 개도 안 쓴다는 에코보살 노상순 님.
정토회 오기 전 혼자서도 능히 천일 정진을 해온 정진왕 오경희 님.
삼천포에서 일주일에 서너 번씩 법당을 챙기는 문미양 님. 이갑수 님.
한 시간 걸리는 남해에서 3년째 오는 부부 도반.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단단히 이끌어 가는 담당자님들.
늘 모범을 보여주는 최덕희 님.

이분들 덕분에 우리 사천법당은 나날이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함께 '나도 행복하고 세상도 구하는 이 불법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수행처'로 만들어 갑니다. 그런데 올해도 불교대학생이 많이 없어 걱정입니다만 잘 될 거란 믿음으로 오늘도 전단지 들고 손잡고 나갑니다.
사천법당 파이팅!
 

불대홍보도 수업의 연장! 열심히 해주는 모든 도반님들 고맙습니다.(왼쪽부터 오경희,노상순,임연희 님)
▲ 불대홍보도 수업의 연장! 열심히 해주는 모든 도반님들 고맙습니다.(왼쪽부터 오경희,노상순,임연희 님)


리포터로서 기사를 정리하며 그동안 법당에 다니며 4년 공부한 것보다 제대로 인생 공부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한 에너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스님 뒤꿈치는 안 되니 임연희 님 뒤꿈치라도 쳐다보며 좇아가야겠습니다.
 

글_임연희 님(진주정토회 사천법당)
사진_박선영 희망리포터(진주정토회 사천법당)
편집_조미경(경남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