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남녀 차별. 시아버지를 모시면서 일어난 남편에 대한 원망과 미움. 지적을 받으면 움츠러들고 서러워하는 업식. 그러나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기적을 만났다는 김명주 님. 우울증과 무기력증에서 여러 도반님과 함께 웃고 떠들며 소임을 해나가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는 그 행복한 수행담을 소개합니다.

가장 힘든 시기에 만난 정토회

정토회를 알기전에 무척 우울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떻게 죽을까 고민했으니까요. 그때는 故 최진실 씨를 비롯하여 몇몇 연예인들의 자살이 연거푸 일어났던 때였기도 했습니다.

다시금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늘 우울했습니다. 1남 3녀 중에 둘째였던 저는 노골적으로 남녀 차별을 받아왔던 것도 원인 중 하나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7살이 되자 딱히 결혼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홉수를 운운하시는 엄마의 강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결혼했습니다. 부모님께 혼나지 않으려고요. 지금의 남편이 돈은 넉넉하지 않아도 처자식은 잘 돌볼 거라는 말씀 하나 믿고 결혼을 했습니다. 사실 지금 남편이 제게 어떠한 약속 같은 건 하지 않았어요. 그저 엄마 말만 믿었던 거였지요.

그렇게 한 결혼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시아버지와 같이 살면서 우울증약을 먹었는데 그 기간이 17년 정도였습니다. 나중에는 무기력증까지 왔습니다. 대인기피도 있어 은행이나 시장 봐야 할 때만 겨우 외출했지요. 혼자 집에 있을 때면 정말 살고 싶지 않았어요. 아이들 때문에 억지로 살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남편과 좋아질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맏아들이었고 항상 해주는 것을 받기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챙겨주는 것을 잘하지 못했죠. 입덧 때도 남편이 챙겨주지 않아서 많이 원망했습니다. 게다가 시아버지를 모셨지만, 남편은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하지 않았습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사이가 좋아질 것으로 생각했었지요. 외식이나 여행 같은 것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었어요. 그러나 오히려 신랑은 동창을 만나거나 밖으로 더 나돌았습니다. 시아버님이 안 계시니 생판 남으로 대했습니다. 그때부터 미움의 골이 더 깊어졌습니다.

아이들도 스무 살이 넘었고 남편도 더욱 멀어지니 '이제는 나 죽어도 되겠다'라고 생각 할 무렵이었습니다. 우연히 버스 정류장 전봇대에서 붙어있는 불교대학 홍보지를 발견하였지요. 그렇게 운명처럼 우연히 정토회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을 불교대학 입학식 사회봉사중인 김명주 님(왼쪽)▲ 가을 불교대학 입학식 사회봉사중인 김명주 님(왼쪽)

내가 살고 봐야겠다.

시댁은 기독교 집안이라 결혼 주례도 목사님이 해주셨고 결혼 후에도 새벽 기도를 다니며 저는 집사 직분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남편과 이혼하고 싶은 생각은 계속 들고 마음도 우울했습니다. 이혼하더라도 제가 잘 지낼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아이를 하나 더 나으면 이혼 생각이 없어지거나 남편과 잘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둘째 딸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낳은 딸이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정토회에 다닐 때 이러한 사실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부처님께 삼배하는 것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딸한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요. 기독교 교리 중에 ‘나 외에 다른 신을 위하지 말라.’라는 내용이나 ‘질투의 하느님’이라는 내용이 있거든요. 혹시나 하는 마음, 걱정되는 마음이 있었지만 '우선 내가 살고 봐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후 3월 말에 <깨달음에 장>에 다녀왔어요. 그리고 '스승께 절한다'는 마음으로 삼배를 했습니다. 5월에는 천일결사 입재식에도 참여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108배를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정토회에 들어온 계기는 ‘나 살려고요’ 이게 대답입니다.

‘나에게도 정말 행복이란 게 있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지요. 어차피 죽는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1년 한번 미루어 보자’라는 마음으로 정토회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지금 불교대학 다니는 학생들을 보면 '나 같은 마음일까' 하는 생각도 들어 짠한 마음이 듭니다. 혼자 먹먹할 때도 있습니다.

지금은 저 자신을 보면 놀랍습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거든요. 이렇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사람 만나고 웃고 그런 것들이 참 싫었습니다. 학부모들끼리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 하고 그럴 때면 제가 가면을 쓰는 것 같았습니다. 정토회에서 불교대학 다니는 것도 사실 처음에는 굉장히 불편했습니다. 친정엄마가 절에 다니셨지만 저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혼해서 가진 종교가 기독교니 불교대학 다니면서 모든 상황이 참 불편했습니다. 실천적 불교사상이나 부처님의 일생 이런 것을 배우는 것도 참 싫었습니다. 나중에는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내가 살려고 이 짓까지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운 겨울 따뜻한 마음, JTS 거리모금 (왼쪽 김명주 님)▲ 추운 겨울 따뜻한 마음, JTS 거리모금 (왼쪽 김명주 님)

300배가 가져온 변화

제가 몸이 심각하게 아팠습니다. 병원에 다녀봤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10월 초 선광법사님과의 간담회가 있었는데 법사님이 삼백 배를 권하셨지요. 삼백배를 하면서 몸이 아픈 게 완전히 좋아졌습니다. 어느 도반님은 제가 절하는 것에 집착하는게 아니냐고 했지만 몸으로 직접 좋아지는 걸 느끼니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뒤에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스스로 웃는 모습을 보며 낯설기도 했지요. 법당에서 말도 많아졌고요. 그전에는 많이 웃는 사람을 보면 뭐가 저리 웃기느냐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별거 아닌 것에 낄낄거리고 웃고 있는 거예요.

정말 무엇보다 절하는 것이 제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신랑에 대한 미움도 많이 가라앉았습니다. 그전에는 신랑이 밥을 맛있게 먹으면 얄미워서 빼앗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거든요. 어디 가야 할 때면 새벽에라도 일어나서 절을 꼭 하고 출발합니다. <깨달음의 장>에 갔을 때도 <나눔의 장>에 갔을 때도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졌어요. 탈의실에서도 하고 밖에서도 하였습니다. 기적이 다른 게 아니에요. 바로 이런 제 모습이 기적인 거죠.

귀한 인연. 예비 입재자 환영회 (아래 왼쪽 두 번째 김명주 님)▲ 귀한 인연. 예비 입재자 환영회 (아래 왼쪽 두 번째 김명주 님)

소임을 통한 수행, 행복

아직도 누가 지적을 하면 서운한 마음이 훅하고 올라옵니다. 그럴 때는 ’왜 그러지? 왜 불편하지?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면서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가다가 풀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절하면서 풀립니다.

불교대학 수업이나 수행법회가 끝나고 나면 주례회의를 하는데, 그때마다 다들 힘들다고 하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는 '담당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경전반을 졸업하고 불교대학 담당을 하고 있고, 불교대학 팀장을 맡은 지 한 달이 되어갑니다. 오히려 담당이 내공부가 많이 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지적을 받으면 매우 불편합니다. 또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것도 불편했습니다. ‘무언가 좀 해주실래요?’라는 말이 어려웠습니다. 혼자 하는 것은 잘하는데 같이 하는 것은 못 합니다. 그래서 불교대학 홍보나 갈무리가 염려됩니다. 하지만 이것도 수행삼아 하면 잘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봄불교대학 학생들이 수행과 나누기를 하면서 많이 편안해진 모습을 보면 뿌듯하고 편안해집니다. 이래서 담당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을 합니다. 내년에도 담당하고 싶은 욕심은 있는데 과연 팀장과 병행할 수 있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2019년을 맞이하면서 바램은 지금처럼만 이렇게 봉사하고 싶습니다. '어차피 봉사하는 거 정토회에서 하면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정토회에서 봉사하다가 하기 싫으면 법사님이 잡아주고 교육해주니 좋습니다. 봉사를 일로 생각하지 말자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바꾸니 몸이 피곤하다는 생각이 덜 들더라고요. 생각의 차이가 이렇게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가을 불대 홍보하러 가지전 법당에서 (아래 오른쪽 첫 번째 김명주 님)▲ 가을 불대 홍보하러 가지전 법당에서 (아래 오른쪽 첫 번째 김명주 님)

김명주 님과 인터뷰를 하면서 희망리포터로서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충분히 공감하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애잔해지기도 했습니다. 수행하면서 자신의 업식을 바라보며 마음을 숙이고 돋친 가시와 상처받은 마음에서 새살이 돋는 과정이 바로 치유의 기적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글_방민영 희망리포터 (인천 정토회 인천법당)
편집_고영훈 (인천경기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