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한인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 LA. 이민자로, 유학생으로, 그리고 1.5세로 살아가는 ‘코리안 아메리칸’ 중에서도 오늘은 LA정토회 소속 청년 도반들의 삶과 수행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늘 분주한 LA정토회 소속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LA정토회의 청년 수행자들이 모이기로 한 날은 마침 채재현 님이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변호사 선서식을 하고 온 날이었습니다. 함께한 도반들과 작은 케이크에 초를 켰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달라는 조금은 구식이지만 정감있는 말들로 축하하고 오늘의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앞줄 가운데 채재현 님▲ 앞줄 가운데 채재현 님

"미국땅에서도 이 좋은 법이 널리 전해지길 바랍니다."

채재현 님의 수줍은 듯 환한 미소에서 그 동안의 노력이 배어 나오는 듯해, 보는 이들도 함께 행복했습니다.

채재현 님: 저는 어려서부터 종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무조건 받아들이고 열심이기만 하던 제 신앙생활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즈음, 정토회와 인연을 맺고 계시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불교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지만 스님의 가르침은 귀에 쏙쏙 들어왔고, 종교라기보다 생활 속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마음의 작용을 배우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었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 불교가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도 생겨 불교대학에 등록하게 되었고, 지금은 경전반 학생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불교 공부는 저의 일상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 저의 감정변화를 자각하게 되니 상대방과의 관계가 보다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그러면서 제 성격도 일부분 바뀌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때그때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은 것이 큰 공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얼마 전부터 한가지 원을 세웠습니다. 바로 이 좋은 가르침을 제가 받은 것처럼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그 덕이었는지 작년에 <미주청년불교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전법의 원에 사명감까지 실어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전법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미국이기에 이곳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들에게 불교가 좀 더 쉽게 다가갈 방법이 없을까 고민 중입니다. 한자 사용을 줄이고 좀 더 쉬운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통일이 되면 북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시카고에서 미술을 공부한 김미선 님은 동부의 추운 날씨를 피해 공부를 마치자마자 따듯한 서부 LA로 날아온 도반입니다.

김미선 님: 제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 그랬을까요? 늘 인생에 대한 질문이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참 괴로웠고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혼자서 금강경과 반야심경을 공부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법륜스님의 법문을 듣게 되었는데 스님의 법문은 그 어려운 질문에 숨통이 트이는 답을 주셨습니다. 제가 운이 좋았는지 졸업 후 LA로 오자마자 <깨달음의 장>부터 마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불교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정토회의 가장 큰 장점은 일반인은 물론이고 타 종교인에게까지 활짝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 덕에 저도 새 삶을 선물 받았고요. (웃음) 앞으로도 저는 법륜스님의 가르침을 진정한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수행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괴로움이 없는 삶, 진정 자유로운 삶을 사는 정토행자가 되는 것이 저의 원입니다. 그리고 저는 미래를 바꾸려면 아이들을 교육해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래서 저는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제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답니다.

1월에도 야자수와 함께하는 '따뜻한' LA입니다.(왼쪽부터 김미선 님, 김혜경 님)▲ 1월에도 야자수와 함께하는 '따뜻한' LA입니다.(왼쪽부터 김미선 님, 김혜경 님)

"이민 생활과 결혼생활을 동시에 적응해야 했어요."

김혜경 님은 단정한 외모와 말투에서 단박에 ‘불자구나!’ 느껴지는 분입니다. 취미로 그리는 민화(民畫)로 한국에서 입상할 정도의 재주꾼이기도 하지요.

김혜경 님: 저는 결혼을 하면서 이민 생활을 함께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그때 제 능력으로는 결혼생활과 이민 생활을 동시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 참 어려웠습니다. 불자이신 어머니 덕에 불교가 친숙했기에 평소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찾아 듣곤 했습니다. 어느 날 법륜스님이 LA에서 강연한다는 소식에 혼자 강연장을 찾기도 했습니다. 이후, 불교대학에 다니고 있는 친언니의 권유로 불교대학에 입학한 것이 정토회와 인연이 되었습니다
늘 이유를 모르는 괴로움이 있었는데 불교대학에서 차근차근 공부하니 체계가 잡혀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불교대학 수업 중 ‘괴로움을 연구하라’라는 가르침을 통해 마음을 살피는 지혜를 얻었습니다. 이젠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괴로움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조금 더 나아가 그 괴로움의 원인을 생각해보려 합니다. 다른 사람에 의해서가 아닌, 나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는 것, 제가 생각하는 정토회의 큰 장점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천일결사에도 입재를 했습니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해 준 곳이 이곳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순서이겠지요? (웃음)

한자리에 모인 청년 도반들 (왼쪽부터 안형진, 채재현, 김시형, 김미선, 김혜경 님)▲ 한자리에 모인 청년 도반들 (왼쪽부터 안형진, 채재현, 김시형, 김미선, 김혜경 님)

"성공의 기준이 달라졌어요."

법륜스님의 금강경에 반해서 정토회를 알게 됐다는 안형진 님은 남들이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미국에 오게 된 도반입니다.

안형진 님: 저는 지금은 경전반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중간에 여러 번 쉬었다 오기를 반복한 불성실한(?) 수행자입니다. (웃음) 처음 정토회에 와서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고 입재도 하고 불교대학도 다니면서 방황의 기간, 혹은 종교의 사춘기라고 불리는 시간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언제나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불법에 대한 궁금증에서였습니다. 제 경우는 소나기처럼 어느 순간 흠뻑 젖은 것은 아니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제 속에 스며든 것 같습니다. 삶의 지혜에 대한 깨달음에 감사합니다. 그로 인해 어느 순간 저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서로 상생 되는 순간을 맛보았을 때 그 기쁨이란 어느 성취보다 컸습니다. 많이 갖고 무엇인가 이루어야 한다는 제 가치관이 달라졌고 성공의 기준도 달라졌습니다. 이제 저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경쟁하지 않으며 제 모습 있는 그대로 행복하고 편안합니다.

"제 인생은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기 전과 후로 나뉘어요."

LA법당에는 불교대학보다 <깨달음의 장>을 먼저 다녀오신 "운 좋은 분들"이 많은데요, 오늘 마지막으로 소개해 드릴 김영빈 님도 그런 분 중 한 명입니다.

김영빈 님: 저는 처음 미국에 와서 힘든 시기를 법륜스님의 책과 즉문즉설 동영상의 도움으로 지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불교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불교대학에 등록하려고 LA법당을 방문한 것이 정토회와의 첫 인연이었습니다. 그 당시 불교대학이 개강하지 않아 운 좋게 <깨달음의 장>을 먼저 다녀오게 되었고요.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깨달음의 장>을 다녀왔는데 제 인생은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면서 그동안 무겁게만 느껴지던 제 삶의 문제들이 가볍게 다가왔고, 큰 고민이라 여겼던 일들도 결정 내리는 것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상쾌하고 가벼운 느낌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삶이 가벼워지니 자연히 봉사도 하고, 법회도 나가게 되었습니다. 불교대학을 거쳐 경전반 학생인 지금도 밝고 가볍게 삶을 대하는 자세로 살고 있습니다.

LA정토법당에서 김영빈 님.▲ LA정토법당에서 김영빈 님.

LA정토회에는 오늘 소개한 도반들 외에도 청년 수행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만하면 다음 세대인 이들이 만들어 갈 희망세상에 기대를 해도 좋겠지요? 세계 곳곳에서 불법에 반해 수행 정진하는 행복한 청년 수행자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냅니다.

글_백지연 희망리포터 (LA법당)
편집_박승희 (해외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