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분방한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의 절절한 사랑과 불법에 귀의하기까지의 과정을 전합니다. 김은영 님은 2018년 가을불교대학 담당을 맡고 현재는 백일출가를 준비중입니다. 일이든 봉사활동이든 놀이 삼아 즐겁고 가볍게 척척 해 나가는 김은영 님의 이야기를 함께 하겠습니다.

일본 여행중 바닷가에서 활짝 웃고 있는 김은영 님
▲ 일본 여행중 바닷가에서 활짝 웃고 있는 김은영 님

사랑 끝자락에서 만난 불법(佛法)

8년 전까지 저는 수원에 있었습니다. 15년간 학원 강사를 하면서 부족한 것 없이 벌고 쓰고 즐기며, 걸릴 게 없이 살았습니다. 도시 생활은 개인적이면서도 화려한 저에게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독립적이고 자유분방하기에 연애 또한 쉴 틈 없이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운명처럼 만난 한 남자와의 인연은 내 삶을 바꿨습니다. 그 사람과 네 번 만나고 네 번 헤어지는 동안에 천국도 지옥도 경험했습니다. 이별 통보를 받고 두 번째 헤어진 후, 걷잡을 수 없는 절망감에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심장이 타들어 가는 고통, 존재의 의미가 사라진 상실감, 그리고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으로 밥 먹다가도, 세수하다가도, 말하다가도 울었습니다.
결국 책에라도 의지해 볼까 싶어 찾아간 서점에서 기적처럼 그 자리에서 불법에 귀의를 했습니다. 《법구경》을 펼쳐 본 순간 심장에 전율이, 영혼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정말이지 그 한순간은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신의 은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반야심경》《금강경》 각종 종교 서적들! 그렇게 미친 듯이 안으로 빠져들수록 진정한 사랑과 행복과 자유가 흘러넘쳤습니다. 관점의 본질이 달라지자 돈도, 남자도, 일도 시시해졌습니다.

주장자가 되어준 법륜스님의 법문

그러다가 2009년, 일하던 도중에 쓰러졌고,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그때 병원 침대에 누워서 중대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직장을 때려치우자고. 그렇게 막무가내로 1년을 놀다가 2011년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름 불법과의 인연이 깊고 강렬했던 터라, 용감하게 가던 인생에 급브레이크를 걸고 무작정 뛰어내렸습니다. 하지만 책 속의 스승은 너무 멀고 막연했는지, 또다시 일상에 찌들자 수행은커녕, 떠나온 이유조차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쯤 듣게 된 법륜스님의 영상 법문은 후려치는 주장자처럼 정신을 번쩍 들게 했습니다. 그렇게 입학한 정토불교대학! 애타게 찾던 수행자들의 메카일 뿐만 아니라, 역사도 깊음을 알고는 이제라도 만난 인연에 다행이다 싶어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책을 스승 삼아 혼자 가다 서고, 가다 서고 한 것이 무려 10년이었으니 내 안의 갈망은 나름 절실했습니다. 영월에서 제천법당까지 차로 왕복 1시간 거리를 오가면서도 곁눈질 한 번 하지 않은 건, 바른 스승에 대한 확신과 불법을 향한 믿음 덕분이었습니다.

모둠원들과 행복학교 홍보를 함께하며(왼쪽이 김은영님)
▲ 모둠원들과 행복학교 홍보를 함께하며(왼쪽이 김은영님)

조금씩 물들어가다

하지만 처음부터 “예” 하고 합니다 하는 정토회 수행자는 아니었습니다. 일과 수행의 일치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정말 고집 센 학생이지 싶습니다. 잡다한 역할 봉사는 척척 하면서도, 막상 소임은 맡을 수 없다고, 절대 정회원도 통일의병도 하지 않겠다며 완강하게 버티었습니다. 분별심에 팔딱팔딱 뛰는 청개구리처럼 저항하던 저는 어쩌면 ‘수행의 상’을 깨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주제도 모르고 처음부터 고요함에 집착하고 명상에 욕심을 냈으니, 당연히 정토회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적한 삶으로부터 자신을 끌어내려 굳이 관계 속으로 몰아넣고 시비분별을 내려놓으라 하니, 사회로부터 도망쳐온 저로서는 짜증이 올라왔습니다. 게다가 좋아하는 일은 멈추고 싫어하는 일을 하라며 권하는 소임은 그냥 일꾼이 필요한 것처럼만 보였습니다. 어떤 일들은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수행이라는 말로 밀어붙이니 사실, 신심이 없었다면 벌써 떨어져 나갔겠다 싶은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불법은 이미 정해진 길이었고 아직 내가 모르는 이유와 의미가 있겠지 하는 스승에 대한 무한 신뢰와 정토회를 떠나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도반들과의 동지애가 버티게 해주었습니다. 가까운 듯 멀고, 먼듯하지만 각별한 사이, 가슴 안쪽 주머니에 몇 개 챙겨 넣고 다니는 보석처럼 반짝반짝 든든한 그런 느낌, 알면 알수록 묘한 것이 도반으로 만난 인연인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한 발만 걸치고 활동가들을 쫓아다니며 조금씩 알게 된 봉사자들의 세상은 또 그것대로 놀라웠습니다. 어떤 단계이면 저렇게까지 마음을 낼 수 있을까? 하는 의아함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대단들 하시다’만 연발하다가, 어느 순간 ‘아, 할 수밖에 없겠구나!’로 알게 되기까지 딱 1년이 걸렸습니다.

깨우침의 퍼즐을 맞추다

경전반 입학을 한 후에야, 그간의 의심과 혼란이 해소되었습니다. 군데군데 비어있던 퍼즐들이 끼워 맞춰질 때마다 쏟아지는 깨우침은 그대로가 다 축복이었습니다. 매 순간 뭉클함으로 듣는 법문은 기쁨으로 흘러넘쳤고, 그런 법비에 흠뻑 취해서야 정토회의 큰 그림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도 갚아야지 하는 마음이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왔습니다. 결국 저는 2018년 가을불교대학 담당을 맡았습니다.

부랴부랴 <깨달음의장>도 다녀오고 하면서 대단히 큰 변형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절간 같은 집에서 깊은 명상으로 들어간다고 한들, 그것은 반쪽짜리 보살일 뿐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정적만이 고요함인 줄 알았던 착각도 버렸고, 명상만이 최고의 방편이라는 편견도 내려놓았습니다. 그렇게 바라던 수행의 장은 바로 부대끼는 삶 속에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만 가지 마음 가운데 편안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고요이고 삼매로 가는 지름길임을 본 것입니다. 한 생각 돌이키면 깊은 산중보다 고요한 게 마음이고, 또 한 생각 뒤집으면 저잣거리보다도 시끄러운 게 마음인데, 이 마음을 떠나 어디에서 수행을 하겠다던 것인지? 예전에는 남자와 직장에 갇혀 살았고, 귀향 후에는 고요한 삶에 갇히고자 했고, 지금은 정토회에 갇히려는 분별을 내고 있습니다. 경계 속에서 일어나는 마음을 잘 살피고 깨어있는 것이 ‘일과 수행의 통일’ 임을, 그리고 이 수행의 핵심이 체득 될 때야, 비로소 소임은 자신을 내려놓는 연습의 장이자 기회로 받아들여지게 됨을 이제는 알겠습니다.

가을불교대학생들과 문경특강수련(맨왼쪽이 김은영님)
▲ 가을불교대학생들과 문경특강수련(맨왼쪽이 김은영님)

백일출가 준비 중

이처럼 정토회의 정체성에 대한 바른 이해는 저를 크게 끌어 올렸습니다. 모든 게 제자리에서 온전한 의미로 받아들여질 때, 수행자에게도 그리고 세상을 향해서도, 정토회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깨달음의장>을 다녀온 후에, 차일피일 미루던 백일출가를 결심했습니다. 돈이 아쉬워 매여 있던 직장까지 접을 계획으로 오는 2019년 9월 백일출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비 마련도 했고, 불교대학 담당도 마쳐야 하고, 무릎도 삐거덕거리니,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매일 삼백 배 절을 하며, 만 배 통과를 위한 근력 만들기도 준비하는 중입니다. 이제는 뭐든 재미있게 하고 가볍게 바라볼 힘도 생겼습니다. 사실 무거울 게 없음을 알고 나면 그냥 놀아지게 됩니다. 흘러가는 대로 뒹구는데 무슨 노력이 필요할까?
다만 불교대학 담당자로서 조심스러울 때가 있을 뿐입니다. 그것 또한 복이 많아, 이미 새끼부처들을 받았으니 걱정은 하나도 없습니다. 얼마 전에는 이 새끼부처님들께 공양 한 번 올려야지 하며 손수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이것저것 준비하며 불법과 맺은 귀한 인연마다 통찰의 꽃이 피기를, 정토를 일구는 보살로 거듭나기를, 항상 여법한 도반이기를 기원했습니다. 즐거운 공양을 마치고 수다에 빠진 그들을 보며, 언제쯤 이런 내 마음을 알게 될까? 나처럼 1년이 걸릴까? 아니면 반년? 하다가 혼자 빙긋이 웃습니다.

글_김은영 님(청주정토회 제천법당)
정리_장영근 희망리포터(청주정토회 제천법당)
편집_하은이(대전충청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