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장>을 정토회 보다 먼저 만난 도반이 있습니다. 나이 오십에 무작정 백일출가를 한 도반이 있습니다. 구미법당 신강희 님인데요, 3일안에 만배를 해야하는데도 문경으로 간 까닭이 궁금합니다. 나목으로 추위를 견디며 뿌리를 더 깊게 내리는 겨울나무같은 신강희 님의 백일출가 수행이야기 들어볼까요?

정토회 이전에 만난 <깨달음의 장>

2006년 8월! 뜨거운 여름 태양 볕 아래 나의 알몸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이던 때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어떻게 하다 보니 두 아이의 엄마, 종갓집 맏며느리,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1인 3역을 하며 매일 끙끙대며 사는 내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때 8남매의 맏이인 큰언니가 아이들을 돌보아 줄 테니 4박 5일 <깨달음의 장>을 갔다 오라는 말에 눈물이 날 만큼 좋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을 마치고 너무 좋아서 “이런 걸 누가 만들었나요?”라고 물었더니 “법륜스님 이라는 분이 계십니다.”라는 말에 이듬해 2007년 1월 스님과 함께하는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그해 3월 불교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졸업 후 바로 경전반을 다니며 불교대학 담당, 경전반 담당으로 봉사 하였습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가슴 뜨거워지는 뭔가를 느끼며 나 좋아서 다녔지만 인생문제를 스스로 풀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2007년 인도성지순례 (왼쪽 첫 번째 신강희 님)▲ 2007년 인도성지순례 (왼쪽 첫 번째 신강희 님)

무작정 백일출가

법당 장판 때만 묻히며 세월만 보내다 올해 여름 풀리지 않는 인생 문제를 가지고 무작정 백일출가 신청을 했습니다. 나이 오십에 아직도 친정엄마를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성질 잘 내고 우유부단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고 지난 날을 후회하는, 수행자의 생활과는 먼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가 나에게 괜찮은 아빠를 흉본 것처럼 나 또한 좋은 남편을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내 안에 잠재한 이해 못 할 부정적인 사고를 엄마로부터 물려받았다고 생각하며 엄마를 미워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런 엄마를 이해하자고 머리로는 생각하는데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원인불명의 불안과 만성피로 증후군으로 휴식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28년 직장생활로 지칠 대로 지친 내 몸과 마음을 쉬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100일을 살아보고 싶어 출가를 신청했습니다. 그때 남편은 그동안 본인이 너무 무심한 결과로 내가 더 힘들었다며 지지해 주었고, 딸은 면접장까지 동행해 주었으며, 아들은 백일 말고 천일출가는 없냐고 나를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불교대학 담당시절 도반들과 함께 (뒷줄 왼쪽 첫번째 신강희 님)▲ 불교대학 담당시절 도반들과 함께 (뒷줄 왼쪽 첫번째 신강희 님)

나를 깨워준 만배

100일 후에는 지친 내 몸과 마음이 회복되고 괴로운 인생 문제도 풀리겠지 하는 바람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3일 동안 만배를 해야만 통과되는 제일 힘든 관문이 남아 있었습니다. 절을 시작한 첫날은 무난하게 넘어갔으나 이틀째 되는 날은 어지러움으로 절을 할 수 없었습니다. “눈을 감지 말고 하세요. 뒤에 매실엑기스가 준비되어 있습니다.”라는 말에 하라는 대로 했더니 어지럼증이 감쪽같이 없어졌습니다. 이대로라면 만배가 끄떡없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다음부터는 무릎 통증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만배를 통과해야 여기서 100일을 살 수 있고 그래야 내 인생 문제를 풀 수 있기에 입술을 깨물며 절 하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발 다칠세라 손을 짚어가며 조심히 다니며 견뎠습니다. 하지만 팔천배가 넘어가자 도저히 더는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죽지 않았거든 일어나고 일어났으면 또 절하라는 말씀에도 불구하고 무릎이 내려가 지지 않고 발등엔 이상한 통증이 나를 괴롭히고 한 시간이 지나도 염주는 반 바퀴 겨우 돌아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내 업식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타협! 이제 집으로 가면 착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여기서 멈춰도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마음을 정리하며 일어나 돌아서는데 우리를 위해 바라지 해주시는 분들이 정성껏 절을 하고 관세음보살을 목청껏 불러주는데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감동의 눈물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한참 울었습니다. ‘나 어떡하라고! 나 여기서 그만두고 갈려는데 당신들이 그렇게 하면 나 못 그만두지 않냐고, 부처님은 뭐하시는지? 이때 좀 도와주면 안 되는지, 몸을 가볍게 해주든지 염주를 잘 돌아가게 해주시든지...’
그때 뭔가 내 뒤통수를 ‘탁’ 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평화집회에서 친정 부모님과 함께▲ 평화집회에서 친정 부모님과 함께

늘 징징대던 어른이 참어른으로

내가 이렇게 살았구나.! 힘들 때마다 누군가 해결해 주기를 바라며 내 삶의 주인으로 살지 못했구나.! 그래서 내 인생이 괴로웠구나! 몸만 어른이지 늘 어린애 같은 마음으로 누가 도와주기를, 누가 해 주기를 바라며 살았구나.!
만배!! 이제 내가 합니다.! 부처님께 의지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내가 합니다.!

엎드렸다가 죽지 않았으면 일어나고 일어나면 다시 엎드리고 “영차, 영차” 나에게 응원을 보내며 절했습니다. 이 세상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원 없이 관세음보살을 목청껏 불러가며 절했습니다. 그렇게 원망했던 엄마를 몇 번이나 눈물 속에 부르며, 나로 인해 힘들었을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나로 인해 상처받은 모든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한 배 한 배 참회의 절을 했습니다. 눈물과 땀이 범벅이 되어 밤 9시쯤 만배를 마쳤습니다. 3일 동안 씻지 않은 나를 보며 멍하니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일과 수행의 통일, 백일 회향을 하며

일과 수행이 하나 되는 공부를 100일간 하면서, 그동안 참 편하게 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며 살았고, 지혜롭지 못한 선택으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옴을 몸소 알게 되었고 괴로움의 원인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만배를 나 혼자 한 것이 아니라 바라지분들의 응원과 바램, 천지 만물이 보이지 않게 도와준 기운으로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지금껏 이만큼이라도 살아온 것이 나 혼자 힘으로 살아온 것이 아니었음을 알고 나니 새삼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감사합니다!”란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습니다.

백일출가를 마치고(왼쪽아래 세번째 신강희 님)▲ 백일출가를 마치고(왼쪽아래 세번째 신강희 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이해하다

회향 7일 전부터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려니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50년 동안 살아오면서 나의 선택이 지혜롭지 못했기에 앞으로 나를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다가왔습니다. “법사님, 저 어떡하면 좋아요?” 두려움에 가득 찬 질문에,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기보다 우선 나를 먼저 시비분별하지 말고 이해하라는 말씀을 듣고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동안 힘들 때마다 남이 해주기를 바랐던 업식이 100일만에 다 소멸하기를 바랐던 것은 나의 욕심이었습니다.

집에 오니 몸과 마음이 지친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향에 돌아온 듯한 편안함, 각자의 위치에서 묵묵히 잘살고 있는 가족. ‘그래! 나 하나 잘살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웠구나. 내가 가족한테 무엇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힘들고 무겁게 느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몸은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두 발로 당당하게 서기를 두려워하는 나를 인정하고 새롭게 출발해 보렵니다. 아직도 불안한 마음과 괴로운 마음들이 남아 있지만 앞으로 수행하면서 그동안 쌓인 업식을 녹이려 합니다.

JTS거리모금도 수행 (왼쪽 첫번째 신강희 님) ▲ JTS거리모금도 수행 (왼쪽 첫번째 신강희 님)

이런 나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힘이 이제 조금은 생겼고, 이끌어주시는 스승님과 같이하는 도반들이 있기에 이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족함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나를 응원하고 인정해주는 따뜻한 가족이 있기에 나는 행복합니다.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저는 모든 사람들에게 회향하러 왔습니다.

글_신강희(구미법당)
정리_전현숙 희망리포터(구미법당)
편집_박정미(대구경북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