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삐악삐악 병아리를 겨우 벗어난 어린 닭이 있었습니다. 소임이 복이라지만 만만하지 않은 부총무 소임을 맡기에는 그 어깨가 작아 보였습니다. 어린 닭은 부딪히고 엎어지며 때로는 정강이가 까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작은 한 걸음, 한 걸음을 멈추지 않아 조금씩 품이 넉넉한 어미 닭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는 중입니다. 경기광주법당 부총무 김명숙 님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인도성지순례▲ 인도성지순례

살기 위해 맺은 인연

처음 잡았던 주제가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아 다른 주제를 찾아야 한다며 우리 법당 희망리포터가 ‘부총무 김명숙 님의 수행담’을 부탁했을 때 당황스러운 마음이었습니다. ‘난 잘하는 게 없는데 왜 나를…….’ 하는 마음에 거부하고 싶었지만, 곧 가볍게 가보자고 마음을 내어보았습니다.

2015년 가을, 그즈음 나는 자신을 살피지 않고 일과의 전쟁을 치르다 아파서 일을 쉬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을 다니던 관성의 법칙으로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았고, 이렇게 쉬어도 되나 싶어 마음이 불안할 때였어요. 불안한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누군가가 보내주는 ‘법륜스님의 희망편지’가 나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불교대학 모집 광고를 보고 스스로 법당을 찾아가 불교대학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들어올 땐 무겁기만 했던 마음이 공부할수록 뭔가가 확 풀리는 기분이었어요. 나를 잘 살피게 되니 내가 가족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안에 분출하지 못한 화가 쌓여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습니다. 내가 나를 모르고 살고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일을 쉬게 만든 나의 병명은 ‘급성 상세 불명 심근경색’이라 했어요. 스트레스가 원인이었습니다. 몸에 찾아온 병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많은 상처를 입었다고 느껴 다시는 회사에 나가고 싶지 않았어요. 동서와 동업을 했던 그때, 우리와 너무 다른 그들을 이해하기도 어려웠고 가족이다 보니 누구에게 얘기도 못 하고 참고만 있었어요. 남편에게 얘기해도 참으라고만 하니 해결이 되지 않았지요. 나를 믿어주지 않고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 남편 때문에 더욱 힘들었습니다.

선배 도반들은 내가 살려고 왔다고 했지만 난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시간을 아껴가며 그야말로 열심히 법당을 드나들었습니다. 불교대학 수업을 듣고 수행법회도 빠지지 않고 불교대학 홍보, JTS 모금활동, 법당에서 행해지는 행사들의 도우미 등 여건이 허락하는 한 봉사도 했습니다. 환경담당자, 수행법회 담당자 소임도 마다하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상대는 나와 다르고 각자 다른 색깔의 안경을 쓰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한반도 평화 운동. 왼쪽이 김명숙 님 ▲ 한반도 평화 운동. 왼쪽이 김명숙 님

나는 울보에 작은 구멍

수행과 깨알 같은 깨달음의 즐거움으로 재미있게 불교대학 공부를 마치고 경전반 6개월을 다니던 중 8차 천일결사를 마무리하면서 일괄적으로 모든 법당의 부총무 소임자들이 소임을 내려놓고 새로운 사람을 뽑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 부총무가 추천한 선배 도반이 있었지만, 이런저런 과정을 거친 끝에 마지막 추천자 명단에 내 이름이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2017년 경기광주법당의 부총무가 되었습니다.

처음 일 년은 너무 몰라서 일을 배우며 여기에서 꽝, 저기에서 꽝 끝없이 부딪혔어요. 수없이 울려대는 SNS메신저 알림 소리에 정신은 반쯤 나가 있는 느낌이었어요. 여기저기 신경 쓰다 보면 이건 빼먹고 저건 잊어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미처 읽지 못한 채 일에 집중하다가 도반들을 서운하게 만들기도 했어요. 익숙하지 않은 일들에 쫓기다 보니 예민해져 감정에 휩쓸릴 때도 많았습니다.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그렇게 나는 자칭 작은 구멍이 되어갔습니다. 앞으로 나서지 않는 내 성격을 조금이라도 바꾸지 않고는 일을 할 수가 없었어요. 여리고 맷집도 없는 내가 무슨 용기로 한다고 했었는지 누가 물어보면 미쳤나 봐 할거에요. 지금이야 소임이 복인 줄 알고 주위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지만요.

스스로 부족함을 알아 부총무 회의는 꼭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경험치가 없다 보니 무슨 말인지 처음에는 반도 이해 못 하고 분당정토회 부총무 님만 괴롭혀야 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법당에 나가던 내가 매일 나가고 시도 때도 없이 서초법당과 분당법당을 오가게 되니 가족들은 나를 이해하기 힘들어했고, 그중에서도 남편의 반대가 제일 심했습니다. 사실 남편은 처음부터 부총무 소임을 반대했던지라 내가 바빠질수록 더욱 나를 힘들게 했고 사실 지금까지도 반대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그것이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데로 마음이 편합니다. 소임을 놓지 않은 덕이라고 생각해요.

주례회의시간. 정면 왼쪽 첫번째가 김명숙 님▲ 주례회의시간. 정면 왼쪽 첫번째가 김명숙 님

한 고개 넘고 두 고개 넘어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첫 번째 고비는 소임을 맡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왔습니다. 법당에서는 모든 것이 서툴러 우왕좌왕하는 내가 부총무 소임에 적임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괴롭고, 집에서는 남편의 반대가 너무 심해 괴롭던 시기였습니다. 법사님과의 상담 시간에 여전히 남 탓만 하는 적나라한 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직 이 길로 가야 할 지도 모르겠고 확신도 없었어요. 부총무를 해야 하냐는 나의 질문에 당신께서도 이 길을 확신하기까지 9년이 걸렸다는 대답을 듣고 마음을 접었습니다.

두 번째 고비는 최근에 있었습니다. 남편이 동생 내외와 동업하던 회사에서 갈등을 빚고 있었어요. 남편의 스트레스로 집안 분위기는 나날이 무거워졌습니다. 이런 상황에 소임을 계속하는 것이 맞는 건지 회의감이 들기도 하고 몸도 마음도 지쳐갔습니다. 소임을 내려놓아야 하나 고민하던 중 정일사를 했어요. 이번에도 법사님께서 나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새물정진이 나를 다독여 주었어요. 모든 것은 나의 인연과보로 이어지는 것임을 법사님 말씀을 통해 알았고 정진이 나를 일으킴을 알았습니다. 내가 마음 내기 어려운 것은 계속하는 수 밖에 없다는 말씀을 받아 계속 연습하다 보니 용기가 생기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다시 한고비를 넘고 감사하게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어요.

가족과 함께.▲ 가족과 함께.

소임은 계속된다

요즈음 우리 법당의 신조는 '신나는 법당'입니다. 저녁 팀장님이 중심이 되어 팀장님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즐거운 법당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9-5차 입재식에서는 팀장님들과 함께 틈틈이 준비한 춤을 추기도 했어요. 또 올해 백중에는 저녁 팀장님과 함께 집전을 맡아 우리 법당에서 천도재를 지냈습니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려웠지만 여덟 번의 연습으로 막재는 여여하게 잘 치를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결론은 도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렵다 싶은 순간에는 항상 나를 든든하게 받쳐 주는 도반님들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예비입재자 환영식 때 앞줄 가운데가 김명숙 님▲ 예비입재자 환영식 때 앞줄 가운데가 김명숙 님

지금도 저는 진행 중입니다. 서툰 미완성이지만 이게 나입니다. 그런 나를 수행으로 잘 다듬어 보려 합니다.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화가 있어요.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만 화를 내고 있음을 참회합니다. 지금은 왜 그런지 조금이나마 알고 있으니 돌이킬 수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 지금은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고요해졌지만, 아직도 수없이 연습이 필요합니다. 저의 모든 인연들께 감사드립니다.

글_김명숙(분당정토회 경기광주법당)
정리_이영선 희망리포터(분당정토회 경기광주법당)
편집_한영옥 (강원경기동부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