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면 맞벌이 아내가 차려주는 밥 먹고 출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도반이 있었습니다. 술 마시고 식구들에게 잔소리하며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인양, 하고 싶은 대로 살아온 도반이 있었습니다. 정토 세상으로 들어와 우여곡절 겪으며 내 고집도 꺾고 봉사도 하면서 나를 내려놓는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는 오늘의 주인공, 대구 법당 현외철 님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불교대 졸업식 공연준비 하며 머리에 꽃도 달고
▲ 불교대 졸업식 공연준비 하며 머리에 꽃도 달고

2년이라는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갑니다. 불교대를 졸업하고 새로운 1년이 흘러 지난 7월에 경전반을 졸업했습니다. 앞으로 정회원으로서 소임을 맡아 계속해서 수행 정진하겠지만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니 많은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수행이 뭔지 몰랐을 때 나의 일상

아침에 눈 뜨면 맞벌이하는 아내는 분주하게 아침상을 차리고 출근준비로 바빴습니다. 반면 저는 느긋하게 일어나 차려준 밥을 먹고 회사에 출근했습니다. 회식이 있거나 모임이 있는 날에는 만취가 되도록 술을 마시고, 흥이 최고조에 이르면 흥청망청 노래방에서 여흥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번번이 몸은 흐트러져 흐느적거리고 눈동자는 흐리멍덩해져 초점을 잃은 채 귀가했습니다. 그런 저를 보는 아내는 질릴 만도 한데 변함없이 잔소리를 했습니다. 평소에는 새색시 같이 입 다물고 살다가도, 술을 마시면 술 힘으로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을 아내에게 쏟아내고 딸들에게도 잔소리를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일상은 흘러갔고 아내에게 갱년기가 찾아왔습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자 저에 대한 불만과 잔소리가 극에 달해 아내와 갈등은 점점 더 깊어 갔습니다.

정토회와 만남 그리고 생소한 마음 나누기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소개로 정토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산세가 좋고 가람 분위기가 좋아 가끔 전국의 사찰을 찾아 돌아다녔을 뿐 불교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토회와 인연 맺어 불교대학에도 입학하고 생소하던 법륜스님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제게 정토회는 정말 낯선 분위기였습니다. 수업 후 나누기 시간은 법당을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으나 알코올 섭취도 없이 맑은 정신으로 남들 앞에서 말한다는 것, 더군다나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많은 모둠원 앞에서 나누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내 마음속 진심을 꺼낼 때는 더듬거리기까지 하며 진땀을 뺐습니다. 정말이지 과묵하고 내성적인 제 성격에는 전혀 맞지 않는,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남산 순례시 도반들과 함께 댄스 공연
▲ 남산 순례시 도반들과 함께 댄스 공연

한 주 두 주가 지나고 조금씩 법당에 적응해 갈 무렵 남산 순례와 두북 봉사, JTS 거리모금 참가는 도반들과 친목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경주 남산 순례에서 문화관광해설사보다 더 재미있는 법사님의 불상, 불탑, 절터 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신라 불교의 위대한 역사를 다시금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 땅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진정한 삶의 전환, 봉사

그동안 입으로만 "봉사! 봉사!" 했을 뿐 진심 어린 마음으로 봉사해 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두 번 경험이 자산이 되어 이제는 길거리에서도 목청껏 외칩니다. "1000원이면 굶주리는 아이 두 명이 밥을 먹습니다!"
뚜렷이 하는 일 없이 휴일 귀한 시간을 집에서 TV나 시청하며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남을 위하는 것이 결국은 나를 위하는 것이라는 것을 인연법을 배워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하여 어려운 이웃과 나라를 생각하며 직접 현장에 나가 봉사하는 것은 또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그것은 내마음을 알아차리는 큰 공부였습니다.

모둠원과 함께 JTS 거리모금 후(맨 오른쪽 현외철 님)
▲ 모둠원과 함께 JTS 거리모금 후(맨 오른쪽 현외철 님)

목에 칼이 들어와도 꺾지 못할 고집을 꺾은 <깨달음의장>

불교의 근본 가르침에 약간 흥미를 느낄 때 <깨달음의장>을 갔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사람이라면 특히 남자라면 고집이 있어야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내 고집은 꺾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한 저의 신념은 <깨달음의장>에서 송두리째 뽑혔습니다. <깨달음의장>을 다녀온 후로 관점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넓어졌고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도 마음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렇다고 당장 가까운 식구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도 아니요, 바른 사회를 위해 봉사한 것도 아니요, 나라를 위한 일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동안 자신이 화내고 짜증 낸 것이 술 때문도 아니고 아내나 자식 때문도 아닌 내 안의 분별심으로 인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깨달음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아내와 술로 인해 갈등을 빚고, 술로부터 자유롭지도 못합니다. 그래도 많이 줄이며 절제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업무상 술자리를 피할 수는 없는 터라 차라리 즐기는 방법을 택하면 되는데 그 또한 쉽지 않습니다. 제가 안고 풀어가야 할 영원한 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바람 나고 보람찬 두북봉사후 도반과 함께(맨왼쪽 현외철 님)
▲ 신바람 나고 보람찬 두북봉사후 도반과 함께(맨왼쪽 현외철 님)

수행은 이제 나의 일상

제가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다니면서 수행하고 나서 크게 달라진 점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대중 앞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성격이었는데 지금은 쭈뼛거리지 않고, 부탁이 오면 “예!”하고 그냥 하게 되었습니다. 대중 앞에 서서 이야기도 꺼내고 어쭙잖게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콩트까지 합니다. 술 마시고 노래방에서나 할 수 있는 행동을 맨 정신에 거리낌없이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상할 만큼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전에는 회사 상사나 선배들과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오고 혈압이 극도로 올라 흥분되어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까지 더듬거리며 싸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흥분이 올라오는 것을 알면서도 화가 나지 않습니다. 내가 이렇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을 보고 오히려 상대가 더 화를 내곤 합니다.

평상시나 특히 음주 후 변함없는 아내의 잔소리에도 개의치 않습니다. 가끔 화가 살짝 올라오기도 하나 바로 알아차리고 내려놓을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스스로 장족의 발전이라 여깁니다. 이 또한 부처님 법 듣고 배워 익히며 실천한 덕분인 게 분명합니다.

특강 수련 후 재미있는 인증샷(액자 왼쪽이 현외철 님)
▲ 특강 수련 후 재미있는 인증샷(액자 왼쪽이 현외철 님)

수행자로 거듭나기를 기대하며

여전히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나를 내려놓는 연습이 잘 안 됩니다. 욕심을 버리고 나를, 내 것을, 내 고집을 과감히 던져 버리는 게 쉽지 않습니다.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고 수고해 온 아내에게 맑은 정신으로 고맙다는 표현하고 싶은데 아직도 어렵습니다. 진심이 부족한 탓일까요? 마음만큼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매일 삼백배를 빼먹지 말고 해보라는 어느 선배님의 수행담을 듣고 ‘해답이 거기에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실천 시점을 잡다가 새물정진을 계기로 삼백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늦게나마 새로운 삶을 맛보며 경전반을 졸업 하고 난 지금,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이고 앞길은 험난 할 것입니다.

부처님 법 만나고 훌륭한 스승님을 만나고 거울로 삼을 수 있는 도반님들 덕분에 탐내며 어리석고 무지에서 벗어나려 하는 저는 참 행운아입니다.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힘과 용기가 아름다운 도전이 되어서 무척 다행입니다. 가마솥더위를 식히며 내리는 소낙비가 법비가 되어 시원하게 흠뻑 맞을 것이라 기대해봅니다. 이제부터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든 잘 쓰이는 수행자 되는 것으로 보살행을 닦으려 합니다.

한반도 평화 기원 천배 정진도 거뜬하게
▲ 한반도 평화 기원 천배 정진도 거뜬하게

“그동안 잘 이끌어 주시며 수고해주신 여러 선배 도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마무리 인사를 하는 현외철 님의 모습은 무더위 속에서도 100일 동안 3600송이의 꽃을 피워낸다는 무궁화를 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

글_현외철(대구법당)
정리_김순분 희망리포터(대구법당)
편집_박정미(대구경북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