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반여법당을 만난 것이 복덩이를 얻은 것 같다는 한 도반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반여법당에선 그녀를 또 보배라고 한다는군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오늘 매일 잘 쓰이고 있는 수행자의 하루를 들려주실 분은 반여법당의 정지혜 님입니다.
인터뷰는 오전 7시 반여법당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밝은 표정 반, 설레는 표정 반으로 기꺼이 법당에 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심전심이라 했던가요. 정지혜 님의 부푼 기대의 표정이 리포터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덩달아 정신이 또렷해지고 알 수 없는 기대감이 부풀러 올랐습니다. 또한 반여법당 저녁책임팀장 원미해 님과 서원행자 이명순 님도 함께 해주셔서 인터뷰 자리를 더욱 따뜻하고 편안하게 해주셨습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정지혜 님. 인터뷰하면서
▲ 왼쪽에서 두 번째 정지혜 님. 인터뷰하면서

정지혜 님은 이번에 가을불교대학 졸업과 가을경전반 입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반여법당은 2016년에 개원한 작은 법당이기에 활동가 외에도 학생 한 분 한 분의 참여가 더욱 절실한 상황입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정지혜 님은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법당의 일들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법당의 커튼, 의자 커버, 목탁 깔개를 손수 만드는가 하면 행사 동영상도 직접 제작하였습니다. 또 최근에는 부처님 오신 날 꽃꽂이와 직접 만든 음식도 보시하며 법당의 다양한 크고 작은 일들에 잘 쓰여서 없어서는 안 되는 분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새벽예불 집전에 차기 가을불교대학 담당으로 이미 부총무님의 눈도장이 꽝 찍힌 명실상부 반여법당의 큰 보배이자 떠오르는 주역입니다. 이제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정토회와의 만남: 어려움 속에서 불교대학을 만나다

4년 전 남편이 반여동에 가게를 열면서 우리 세 식구의 희망을 품고 이사를 왔어요. 하지만 3년이 지나면서 우리 가족 생계를 걸고 알뜰살뜰 꾸렸던 가게가 망하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남편은 힘들어했고 기도 죽고 가정도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빠졌어요. 처음에는 괴로워하는 남편을 달래주며 위로했지만 사실 저도 불안하고 힘들었거든요. 함께 있다 보니 더 우울해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가만있기보다는 뭐라도 하자 결심하고 가계 보탬도 되고자 일을 찾아 나섰어요. 새로운 일을 구했지만 처음이라 손익지 않은 일을 배우는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남편 일, 끊긴 수입, 빚, 어느 하나 잘 되는 것 없는 힘든 시기였지요. 남편은 새로운 직장을 구했지만 그마저도 들어간 회사가 경영난에 처하게 되어 곧 직장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연이은 실패로 방황하며 힘들어하던 남편은 제천의 시댁 형님이 하는 과수원에 갔어요. 형님 일 도와드리면서 여기 일들 잊고 지내며 마음 정리하라고 보냈습니다.

명절 시댁 올라갈 때 제천까지 버스 타고 가서 남편을 만나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늘 가족이 함께 가다가 가게도 망하고 떨어져 살면서 딸과 단둘이 버스 타고 남편을 만나러 가는 상황이 그땐 너무 서러워 아이 몰래 울기도 했었습니다. 가진 돈은 계속 까먹고 빚은 빚대로 있고 수입도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가족도 떨어져 사니 마음고생에 그 당시엔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어느 날 제가 일하던 가게의 사장님이 힘들어하는 것을 느끼셨는지 제 자리에 광고지 하나를 두셨습니다. 가을불교대학 입학 홍보 전단지였습니다. 그땐 정토회도 불교도 잘 몰랐고 그냥 별생각 없이 마음공부 하는 곳이겠구나 하고 한번 가보게 되었습니다.

입학하던 때 남북 관계 긴장이 한참 고조되던 시기였습니다. 전쟁의 기운이 감돌며 11, 12월 서울에서 집회가 열리고, 가져갈 평화피켓도 만들고, 지역집회뿐만 아니라 불교대학에서 하는 프로그램들, JTS 거리모금이나 행사에 참여하다 보니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갔습니다. 또 하나하나가 재미있고 보람도 있었지요. 행사마다 딸과 참여해서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도 좋았습니다.

불교대학은 하나의 탈출구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회피성이 아닌 스님의 법문과 도반들의 나누기로 점점 관점이 분명해지고 갈수록 마음의 중심이 잡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법문을 들을 때면 마치 저에게 ‘괜찮다, 괜찮다’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껴져 위로도 많이 되었어요. 힘든 시기에 어쩜 이렇게 딱 맞춰서 만나게 됐는지 정말 복덩이가 굴러들어 온 듯해 감사한 마음이 컸습니다. 요즘은 남편도 새 직장 얻었고 차츰 좋아지고 있어요. 여기 와서 많이 내려놓을 수 있게 되고 지금 아주 편해졌어요.

당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때의 절박한 심정이 정지혜 님을 우등생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토회 홍보 전단지를 나눠주신 사장님은 반여법당의 김영혜 님으로 과거 <정토행자의하루>에 주인공으로 나오셨던 분입니다. 사장과 직원의 관계에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도반으로 발전한 두 분을 보며 인연에 따라 필요한 분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해 가는 것이 참 묘하게 느껴졌습니다.

9-5차 천일결사 입재식에서 몸풀기를 진행하는 정지혜 님.
▲ 9-5차 천일결사 입재식에서 몸풀기를 진행하는 정지혜 님.

<깨달음의장>: 애증의 엄마, 그 마음을 보다

제 <깨달음의장> 주제는 친정엄마였어요. 늘 엄마의 감시 속에 살았어요. 엄마는 저를 소유물로 여기시는 듯했지요. 성인이 되고 나서도 놔주지 않으셨고 모든 것을 허락받지 않으면 큰일 났어요. 언니도 있었지만, 언니는 성격이 강해서 엄마가 어쩌지는 못하셨던 거 같아요. 아버지와 마찰에서 엄마의 하소연 상대와 화풀이 대상도 저였습니다. 마치 저를 들볶기 위해 사시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 얽매여 사는 것이 싫었지만 엄마가 편안해야 집이 편안하고 나도 편할 테니까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엄마는 화가 나면 잘잘못을 떠나 일단 사과부터 받아야 하는 성격이셨어요. 저는 늘 사과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이런 일상이 자존감을 바닥치게 했습니다.

결혼할 때에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남편은 그저 딸을 뺏어가는 도둑일 뿐이었지요. 남편은 잘못이 없는데도 수시로 불려 나와 혼나고 사과해야 했습니다. 결혼 후에도 저는 들볶이고 혼나고 사과해야 하는 일이 계속되고 이젠 남편까지 덩달아 비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친정 갔다 오면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에 많이 울었어요. 가끔 신랑이 밉거나 서운한 마음이 들 때가 있으면 그때의 남편을 생각해요. 저라면 그렇게까지 해서 결혼하지 않았을 텐데 이 남자는 제가 뭐 그리 좋아서 나랑 살겠다고 그렇게까지 했을까 하고요. 그러다 <깨달음의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엄마한테 말하면 못 가게 할 것을 알기에 큰 결심하고 말하지 않고 그냥 갔습니다. 그곳에 가 있는 사이에 엄마는 연락이 안 되자 언니에게 전화하고 남편은 불려가고 난리가 났던가 봐요. 나중에 <깨달음의장>을 마치고 보니 핸드폰에 첫날 엄마의 부재중 통화만 6통이더라고요. 엄마는 그때 저를 다시는 안 보겠다고 말씀하셨대요. 화도 가라앉히고 생각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 한 달을 안 보다가 엄마를 만났는데 손을 잡으며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언니가 엄마에게 그러라고 시켰다 하더라고요. 그래도 받아들일 엄마가 아니거든요. 그렇게 듣고 싶었던 말을 들었는데 그 순간은 오히려 덤덤했어요. 집에 오니 그제야 펑펑 눈물이 났어요. 자존심 내려놓고 손 내밀기 힘들었을 텐데...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웠다고 말하니 엄마도 펑펑 우셨어요. <깨달음의장>에서 저는 엄마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본인 나름의 방식으로 기대고 의지한 것인데 그걸 제가 밉게 본 거였더라고요.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말씀 정말 공감해요. 모든 것이 제가 지은 거였다는 것을 알게 되니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게 되었어요. 남을 탓하거나 밖에서 원인을 더 찾지 않게 되었어요. 그러니 남을 원망하고 미워할 일도 없게 되었어요.

향기로운 전법: 언니라고 불리는 도반

제게는 언니가 한명 있어요. 모든 일을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표정 하나로 제 마음을 알아주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예요. 불교대학을 다니며 같이 가보자 말도 하기 전부터 언니는 ‘거기 안 갈 거야’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별말 안 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목탁 배울 때 집에서 연습하라고 목탁을 사주고 겨울에 춥다고 누비 법복도 사주고 그랬지요. 너무 고마웠어요. 어느 날 수업 갈 때 교재를 넣고 다닐 작은 파우치를 만들고 있었는데 언니도 자기 걸 만들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다음 불교대학 모집 때 자기 발로 입학하더라고요. (웃음) 제가 불교대학 행사들 참여하고, 평화집회 피켓 만들고 하던 모습이 재밌게 보였나 봐요. 언니와 반여법당에서 좋은 도반으로 함께 공부할 수 있어 좋아요. 한 번은 언니가 동생이지만 참 존경스럽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 제가 많이 달라져 보였나 봐요. 그땐 정말 감동이었어요.

오른쪽 네 번째 정지혜 님, 그 왼쪽 언니 정지호 님, 그 앞 딸 곽채언 님.
▲ 오른쪽 네 번째 정지혜 님, 그 왼쪽 언니 정지호 님, 그 앞 딸 곽채언 님.

정지혜 님의 언니이신 정지호 님은 현재 반여법당 봄불교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사이좋은 자매가 반여법당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잘 쓰이고 있어 여러 도반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반조의 깨달음: 그냥 내가 약 바르면 되는데

저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이런저런 마음속의 이야기를 저에게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면 가끔은 남들의 이야기는 제가 들어주지만 정작 제 이야기는 누가 들어주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그렇다고 좋은 이미지만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굳이 제 이야기를 해서 치부를 들어낼 용기도 없었는데 말이에요. 공부하다 보니 모든 원인이 나에게서 나오니 남에게 위로받을 게 없구나 하는 것을 알았어요. 모든 마음 지음의 원인이 나에게 있는데 누구한테 가서 원인을 해소해 달라 하겠어요. 오직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이는 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니 밖으로 의지하려던 마음이 안으로 돌아봐 졌어요.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라는 말이 이해가 돼요. 그동안 마음의 상처를 누가 약 발라 주기를 원하며 기다리고 살았는데 그냥 내가 바르면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름다운 소망: 20살 되면 정토회 들어올래?

정토회 행사에 가능하면 딸을 데리고 나가요. 두북 울력 가서는 도심을 벗어나 자연과 함께 어우러짐을, JTS 거리모금에서는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마음을 배울 수 있으니 교육적으로도 좋은 것 같아요. 그뿐만 아니라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도 좋아요. 한 번은 딸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어요. “나중에 스무 살이 되면 정토회 들어올 거야?” 하고 물었더니 곧바로 “네!” 하고 대답하는 거예요. 지금은 두북이나 거리모금 정도만 함께하는 초등학생 딸이 나중에 불교대학 입학할 나이가 되어 함께 정토회에 활동할 수 있다면 모녀간의 연결고리이자 큰 행복일 것 같아요.

딸 곽채언 님과 함께 평화집회에서.
▲ 딸 곽채언 님과 함께 평화집회에서.

정지혜 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힘들었던 이야기에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또 소소한 삶의 변화에 대한 부분에는 밝은 웃음과 그윽한 미소로 함께 했습니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어려움을 만나 정토회를 오게 되었지만, 덕분에 지금은 집도 안정되고 고민거리였던 어머니와의 관계도 잘 풀어내고 앞으로 어떻게 행복하게 살 것인가에 대한 방향도 찾게 된 이야기를 들으며 ‘병고로써 양약으로 삼으라’라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본인의 삶의 변화가 자연스레 언니에게 전법으로 이어졌고, 정토회 나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남편이었지만 오히려 <깨달음의장>에 잘 다녀올 수 있도록 무서운 장모님을 말릴 정도로 바꾼 것도 모두 변화된 모습에서 주변 가족들이 감동하여서가 아닐까요.

함께 하신 두 도반은 늘 밝고 활기찼던 모습에서 이렇게 어려운 시절이 있었나 하고 놀랐다고 합니다. 힘든 와중에도 자기에만 빠지지 않고 가정을 일으키려 애쓰는 모습에 짠하고 그 시기를 잘 이겨낸 것이 대견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네” 하고 분별없이 해보겠다고 하는 정지혜 님을 반여법당의 큰 보배라고 입을 모으셨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의미 있게 더 많이 쓰일 것이 기대된다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켜보는 도반들의 마음에 환희심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더 깊어진 수행과 함께 법당에서 더 큰 활약을 기대해 봅니다.

글_노희동 희망리포터(해운대정토회 해운대법당)
편집_김형석 (부산울산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