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반 담당을 맡은 임경수 법우님! 불교대학생 시절 새벽 법당에 빠지지 않고 나와서 수행하셨다는 말씀을 전해 들었습니다. 천일결사 모둠장 소임과 그 외 소임이 주어졌을 때 낯설고 서툴러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여여하게 “예 하고 합니다” 하며 기꺼이 그 일을 성심껏 해나가는 모습이 감동이었습니다. 또 모둠원들을 잘 이해해주고 늘 따뜻한 마음이 드러나 보여 모둠원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하네요. 김밥가게를 운영하며 바쁜 와중에도 쉬는 날이면 지리산 수련장에서 바라지도 하며, 법사님과 새벽 수행도 하는 분입니다. 젊은 분이 어쩜 이렇게 수처작주하신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했는데 다 이유가 있더군요. 법우님의 수행담 들어보겠습니다.

정토회에 들어오기 5년 전만 해도 하기 싫은 작은 김밥집을 하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부모님의 강요로 시작한 일이어서 그랬을까요? 돈은 들어오는데, 원하던 일이 아니니 재미가 나지 않았습니다. 술에 의지해서 시간 낭비를 많이 했죠. 그러다 TV에서 힐링캠프 법륜스님 편을 봤는데 '이 스님은 뭔가 다르다' 는 걸 느꼈죠. 전국을 돌며 강의를 하신다는 걸 알고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 뒤 5년 동안 부러워하고 원하던 대형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을 하게 되었습니다.(동업자가 어머니 친구였는데, 가게운영은 제가 하고 수입은 반반 나누고 회계는 알려주는 식이었습니다.)
너무 재미있었죠. 돈도 잘 벌고, 주위의 부러워하는 시선, 대우 등이 기분 좋더군요. 김밥집과 커피전문점 둘 다 하는데, 쉬는 날이 없어도 돈 버는 재미에, 주위의 시선에 구름 위를 떠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재미도 잠깐, 주위에 비슷비슷한 프랜차이즈들이 우후죽순으로 늘기 시작했습니다. 매출이 점점 떨어지자 고민이 커졌죠. 할 수 없이 동업자에게 가게를 정리하자고 말했더니 그분이 글쎄 커피 전문점 건물을 사버리고, 달세를 올리고 자기 아들과 일하기를 종용했습니다. 그 아들이 회계에 간섭을 하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싸움이 났죠. 저보다 나이도 어린데 제게 욕을 하면서 멱살 잡고, 가게에서 손님들이 보고 있는데 창피를 당했습니다. 동업자는 한술 더 떠 회계장부를 보고는 횡령했다고 우기기 시작하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바보였습니다. 이 모자는 벌써 작전 다 짜서 가게 뺏을 생각으로 덤빈 건데, 전 당연히 시설비 받고 나올 거라고 믿었던 거였죠. 그렇게 싸우는 와중에 예전에 구상하던 브런치카페도 열게 되었습니다. 김밥집, 커피전문점, 브런치카페. 가게 3개를 하면 사회적으로 성공도 하고 돈도 많이 벌고 다 잘될 거라 생각했는데, 커피전문점에서 싸움이 시작되고 브런치카페는 주방장들과 의견이 안 맞아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습니다. 매일 매일 술이었고, 공황장애, 우울증 진단까지 받았습니다. 죽으면 다 해결될 거라는 생각도 자주했습니다.

근데 살고 싶은 본능이 꿈틀댔는지 힐링캠프 법륜스님 편을 다시 보고, 진주에서 즉문즉설이 열린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강연장에 찾아갔죠.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남들의 고민만 듣고 왔는데, 그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근데 나오자마자 또 고민 시작이죠. 가게가 해결이 안 되어있으니 계속 괴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마산에서 즉문즉설 하길래 또 갔죠.
질문하리라 마음먹고요. 근데 질문자석에 앉질 못해서 그냥 듣고만 왔습니다. 창원에서 하길래 또 갔는데, 질문시간이 남아서 추가질문자가 되었는데, 다른 분이 너무 급하게 손을 들길래 양보를 했습니다. 그렇게 강의 듣고 문 열고 나오는데 정말 후회가 되더군요.

그러곤 또 괴로움 시작. 술로 매일을 보냈죠. 건강도 계속 안 좋아지고 있었지만 술 아니면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커피전문점은 손해보고 넘겨버리고, 브런치카페는 정리가 안 되고 팔리지도 않고 주방장들은 하나 둘씩 나가고, 되지도 않는 장사는 억지로 하면서 하루 하루를 술로 보냈습니다. 그런 중에도 정토회 홈페이지에 가서 스님의 즉문즉설 동영상으로 마음을 위로하면서 보냈습니다. 보고 나면 좋은데, 안 보고 있으면 또 괴로웠어요. 그러다가 ‘깨달음의 장’이라는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가고싶은 생각이 들어 방법을 알아보니 한 달에 한 번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신청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 질문에 답변하고 신청을 클릭하면 벌써 마감! 그렇게 6개월을 시도했는데, 실패~! 대기자명단에 올렸는데, 4박5일을 가게 비우고 가야하는 걱정에 취소.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매일 술로 지새다가, 술 취한 어느 날 밤 ‘불교대학’ 신청을 보게 되었고, 술김에 클릭! 신청서 작성! 그러고 잠들었습니다. 며칠 뒤 불교대학 입학금 넣어야 한다는 문자! 뭐 돈 안 보내면 안 가는 거지 하고 또 술! 밤에 술 취하니 또 술김에 입학금 이체 완료! 뭐 그래도 입학식에 가기 싫으면 안 가면 되지 하고 시간을 보냈죠.

그러다가 정말 입학식 날이 되어 죽을상을 하고 법당에 갔는데, 거기 계시는 분들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저를 맞이하는 겁니다. 이거 뭐지 싶었죠. 나는 죽을 거 같은데, 이 사람들은 어떻게 웃지 하면서. 모든 게 낯설었습니다. 많은 낯선 사람들, 진행순서 (노래 부르고, 반야심경 외우고, 절하고 등등) 낯선 환경, 그리고 나누기! 아, 이거 힘들더군요. 많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느낌을 말하라는데,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괴로움을 좀 해결해 볼까 하는 심정으로 간단히 말하고 첫날을 마쳤죠. 둘째 날은 가기 싫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기왕 시작한 거 며칠만 더 나가보자 해서 나가다보니 사람들도 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매불망 그리던 ‘깨달음의 장’을 갈 수 있다더군요.

그렇게 ‘깨달음의 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동업을 하면서 당한 수모와 억울한 것들, 손해 본 돈으로 너무 화가 나고, 분해서 죽을 것 같았습니다. 내가 만일 병이라도 걸리면 나한테 못된 짓한 저 놈을 죽이고 나도 죽겠다 마음도 먹었죠. 근데 ‘깨달음의 장’에서 왜 화가 나는지에 대한 깊은 질문에 나도 모르게 내 머리를 치면서 깨달음이 왔습니다. 깨장은 한마디로 제 새로운 삶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수련이 있다니... 제가 생각했던 당연한 것들이 이틀 만에 무너졌습니다. 그때의 그 기쁨이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당연히 여기고 있던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내려놓게 되었답니다.

아... 이런 수련을 왜 이제야 하게 된 것인가. 가게에 집착해서 정작 중요한 인생을 허비하며 살았던 것에 대해 반성도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모든 것은 변해간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소극적이고 남의 눈치 많이 보고, 착하고, 열등감이 심하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에 대한 생각도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인생을 왜 이렇게 살았나 싶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의 그 깨달음으로 모든 현상이 이해되고 설명이 가능해졌습니다. 주위에도 적극 권유하는데, 저도 그랬던 것처럼 처음부터 덜컥 가는 사람은 없네요. 충분히 괴로워하고 마지막에 가게 되는 심정을 이해합니다. 지금도 제 주위에는 괴로운 사람이 많은데, ‘불교대학’도 ‘깨달음의 장’도 적극 권유합니다. 상대가 싫어하면 안 하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면 버릇처럼 또 권유하게 됩니다. 좋은 것은 가족, 친구, 주위사람들에게 권유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지라 전법이 생활화 되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이란 특별한 경험으로 지리산이 제2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쉬는 날만 되면 지리산에 가서 봉사합니다. 베어놓은 풀 정리도 하고 농사도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지리산에 갑니다. 갔다 오면 확실히 마음이 더 평안합니다.

얼마전에 인도에 다녀왔습니다. 인도는 다녀온 분들 얘기를 들으면서 언젠간 가봐야지 했는데, 혼자서는 가기가 힘든 나라로 생각하며 지내오다가 불교대학에서도 성지순례를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바로 신청했습니다. 부처님이 나고 자라고 활동하신 인도를 꼭 가보고 싶었고,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올해 1월. 드디어 인도에 가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전 졸업식 전날까지 인도성지 순례 후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인도에서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 표며 준비물이며 정보 등을 준비하느라 너무 바빴어요.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일도 하고 여행준비도 해야 했으니까요. 델리에서 시작해서 공항노숙, 바라나시까지 이동 후 성지순례 시작. 모든 게 불편한 여행이었습니다. 성지순례는 여행이 아니라 부처님 뵈러 가는 길이자, 공부하러 가는 길이란 걸 알게 해주는 과정이었습니다. 불편함은 방해가 안 되었습니다. 해먹는 밥도 불편할 수 있지만, 싸가지고 간 반찬을 십시일반 꺼내서 같이 먹는 재미도 있었고, 호텔이 아닌 절에서 자는 불편함도 배우고 느끼는 과정으로 좋았습니다. 성지순례를 하며 만나는 인도의 현실에 마음이 아리기도 했고, 돈 달라고 30분 넘게 따라다니는 아이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하고, 참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분별심을 내는구나 하는 걸 제대로 느끼고 왔습니다. 실제로 인도 계급사회를 보고 있자니 순간 순간 화가 올라오더군요. 보살의 마음이 아니었다면 불가촉천민들의 삶을 보는 것이 정말 피폐하고 힘들었을 겁니다. 근데 애들은 그런 환경에도 밝더군요. 참 신기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밝지? 한국 아이들은 훨씬 좋은 환경에도 다들 죽을 상인데. 정말 비교되었습니다. 부처님의 성지들이 생각보다 잘 유지 관리가 안 되는 현실을 보니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아직 인도에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씀에, 이 한몸 잘 쓰일 생각도 해봤습니다.

인도 기원정사에서 법륜스님과
▲ 인도 기원정사에서 법륜스님과
인도 나란다대학에서 조원들과. 왼쪽첫번째가 임경수님
▲ 인도 나란다대학에서 조원들과. 왼쪽첫번째가 임경수님
사르나트 대탑을 배경으로
▲ 사르나트 대탑을 배경으로

사르나트대탑 탑돌이중
▲ 사르나트대탑 탑돌이중

그리고 인도에서 바로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유럽 여행 중에도 법륜스님 홍보와 부처님 법 알리는 전법활동을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만나는 한국 사람들마다 고민이 있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고민이 있어서, 유튜브의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권해주었습니다. 카톡에 저장된 민박집 사장님 몇 분에게는 ‘스님의 하루’를 전달했습니다. 여행을 하다 보니 여행목적이 달라졌습니다. 이전까진 내가 괴로워서 내 앞가림도 못했는데, 이젠 남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법륜스님 홍보 봉사를 행하고 있더군요. 졸업식 참가를 위해 한국에 돌아와 졸업식을 하고, 경전반에 등록해서 소임까지 맡았습니다. 앞으로의 삶을 그려봅니다. 천일결사 입재, 회향식에 꾸준히 참석하며, 정회원이 된 다음 , 통일의병도 수료할 생각입니다. 정토회의 회원으로 활동가능한 모든 것을 순서대로 차근차근 밟아 나가리라 다짐합니다.

불교대학 졸업식. 왼쪽 첫번째가 임경수님
▲ 불교대학 졸업식. 왼쪽 첫번째가 임경수님

1년간 불교대학을 다니며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40년의 습관이 하루아침, 1년 만에 바뀌겠습니까마는, 적어도 생각의 틀은 바뀌었고, 지혜의 맛을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깨장 이후엔 매일 새벽기도를 진주법당에서 하기도 했습니다. 천일결사도 그즈음에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변화가 많네요. 새벽 4시50분이면 일어나서 기도하고, 가게를 하면서 불평불만과 짜증만 내던 내가 바뀌어서 긍정적이고 인내와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행복도 느낍니다. 아침마다 살아서 다행이고, 건강은 그리 좋지 않지만 사지 멀쩡하고, 입고 먹고 자고 돈 벌어 여행갈 수 있는 내 처지가 행복합니다. 물론 순간순간 짜증은 올라옵니다. 불평불만도 합니다. 그때마다 스님 말씀처럼 지켜봅니다. 지혜를 알고 어리석음을 알기에 화, 짜증이 일어나도 깊이 빠지진 않습니다. 매일 매일의 수행이 있어서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일어난 일은 잘 된 일이란 말씀을 매일 생각하며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보냅니다.

글_임경수(진주정토회 진주법당)
정리_하상선 희망리포터(진주정토회 진주법당)
편집_목인숙(경남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