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함께 행복해지는 길에 서서ㅡ손윤희 님의 총무소임 회향 이야기

손윤희 님은 포항정토회 양덕법당 총무였습니다. 얼마 전 3년간의 총무소임을 마치고 회향했습니다. 포항정토회 도반들은 너무나 아쉬웠지만, 양산으로 이사해야 하기에 보내드릴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동안 손윤희 님이 포항정토회에서 해 온 일은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닥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벅차 보이는 일들을 손윤희 님은 어떻게 해왔는지, 아쉽고 고마운 마음으로 돌아보았습니다.

서원행자 대회. 앞에서 두번째▲ 서원행자 대회. 앞에서 두번째

손윤희 님은 포항 분은 아닙니다. 구미에서 살았는데 남편의 직장 때문에 포항에 와서 살게 되었는데 그때는 법당 없이 가정법회가 열렸다고 합니다. 구미에 살 때부터 시이모님의 권유로 ‘깨달음의 장’을 다녀왔고, 스님 법문도 꾸준히 들었다고 합니다.
"포항에 오니 시이모님이 가정법회를 열고 있었어요. 그러니 뭐 자연스럽게 나가게 된 거죠. 가정법회에서 법문 들으면서 이모님과 몇 안 되는 도반들과 포교를 했어요. 아파트 통로마다 전단지도 붙이고 사람들 만나면 안내도 하구요. 작은 규모였지만 참 열정적인 하루하루였어요. 그러다가 포항에 법당을 냈고요. 아마 가정법회로 시작해서 법당개원을 한 건 포항이 최초일 걸요?"

첫 행복학교 진행 때. 왼쪽▲ 첫 행복학교 진행 때. 왼쪽

손윤희 님의 추억 실린 목소리를 들으니 앞서간 많은 이들의 노고로 오늘 내가 이 행복한 법을 만났구나 싶었습니다.
"법당이라고 생기기는 했지만 초보죠. 일은 자꾸 늘어나는데 어설프고... 그래도 할 수 있었던 것은 법문 듣고 활동하는 시간이 행복했기 때문이에요. 물론 힘들 때도 많았어요. 특히 일찍 퇴근하는 남편이 제가 조금만 늦어도 버럭 소리를 지르니 첨엔 어찌나 간이 콩닥콩닥거리는지......"
손윤희 님은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긴장하여 말하는데 듣는 저는 참 재미있었답니다. 어느 집이나 참 비슷하게 일어나는 일들. 그러면서 이분은 또 어떻게 극복했나 궁금해졌답니다.
"저는 사실 이 법을 만나고 처음에는 두려웠어요. 내가 그동안 너무 편안하게 내 위주의 삶을 살았다고나 할까요? 한마디로 중생의 삶이었던 거죠. 천지 만물의 은혜는커녕 주변 분들의 고마움조차도 잘 몰랐다고나 할까요. 법문 들으면서 내가 살아온 방식이 잘못되어도 너무나 잘못된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지 남편이 버럭 고함질러도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어느 날은 교육 갔다가 늦어져 집으로 가는 차에 타자마자 가슴이 답답해지고 남편에게 뭐라고 할지 걱정이 막 되는거에요.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인지 한 생각이 탁 놓이데요? 하이고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남편이 이해를 못 해 버럭대면 잘못했습니다, 하지 뭐. 한 대 때리면 맞아버리지 뭐, 이렇게요"
말하면서 손윤희 님은 하하하 웃는데 그 웃음이 참 청량했습니다. 저는 그래서 혹시 맞았나요? 짓궂게 또 물어봤네요.
"그게 참 신기한 게 딱 각오를 하고 나니 오히려 남편에게 팍 숙여지는 거에요. 무조건 숙이고 “예예 잘못했어요.”라고 하는데 어떻게 때리겠어요? 자존심에 그냥 고함만 좀 치다가 말더라구요 하하하"
손윤희 님 말씀을 듣다 보니 우리 마음의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고 또 그 마음에 따라 하는 행동이 상대방의 마음을 어떻게 바꾸는지가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내가 옳다는 고집을 부릴 때는 어디 상대방의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나요? 어디서 생겼는지 말 속에 굵은 뼈 하나가 탁 박혀서 빼지도 못한 채 속만 부글부글 끓잖아요? 나라고 하는 것 내려놓기가 어렵지 그 한마음 돌이키면 참 평화로워지는 것을요.

불교대 남산순례에서 ▲ 불교대 남산순례에서

그러나 손윤희 님은 불법이 좋고 봉사하는 의미를 깨달았지만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총무소임을 맡으라고 할 때였다는데요.
"거리모금이며 좋은 벗들이며 여러 봉사를 거쳤지만 총무는 좀 달랐어요. 전체를 관리하는 거잖아요. 좀 무서웠다고 할까요? 정말 나한테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하기가 싫었어요. 몇 번을 고사했지만 결국엔 그야말로 억지 춘향으로 맡게 되었죠"
말하면서 손윤희 님은 웃었지만 당시의 고민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소임 하나 맡는 것도 다들 참 부담스러워하니까요.
총무로 있으면서 특별히 기억나는 것을 물어보았습니다.
"포항에 법당을 하나 더 만들었어요. 지금 다니고 있는 양덕법당이죠. 총무 1년 차였는데, 법당불사는 너무 무거운 짐이었어요. 그러나 마음을 내고 일을 시작하니 고마움이 컸어요. 함께 한 도반들, 십시일반 마음을 내주는 많은 분 덕분에 행복한 공간이 생긴 거죠. 잊지 못할 거에요"

거리모금. 왼쪽▲ 거리모금. 왼쪽

손윤희 님의 목소리가 촉촉하게 추억에 젖습니다. 어려운 점은 없었을까요?
"건물 계약할 때 주인의 성격을 잘 몰랐어요. 그런데 막상 입주를 끝내고 보니 전기사용 문제며 수도요금 문제 등에서 문제가 생기더라구요. 그리고 태풍이 왔을 때 천정이 뚫리는 사고가 있었는데 법당이 온통 물바다였어요. 정말 어이없더라구요. 완전 부실공사인데도 수리를 안 해주려고 해서 참 애먹었어요. 다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아찔하네요"
어디 가나 사람 사는 데는 비슷한지 법당에도 크고 작은 문제가 늘 일어나나 봅니다. 그러나 많은 사건?사고를 겪고 해결을 한 손윤희 님은 아무것도 겪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강해져 있겠지요.

세월호 사고 천만인 서명받기 때▲ 세월호 사고 천만인 서명받기 때

손윤희 님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봤습니다.
"포항에 정이 참 많이 들었는데 남편이 양산으로 직장변동이 생겨서 이사를 하게 되었어요. 이제 양산 법당으로 가야겠죠? 특별한 계획은 없어요.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봉사하는 삶을 이어가면 되니까요.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죠. 이 법 아니었으면 이렇게 편안하고 행복할 수가 있겠어요? 아무것도 아닌 일에 아웅다웅거리며 옹졸하게 살았겠죠. 법당은 바뀌지만 제 생활에 변화는 없을 거예요. 장소만 바뀔 뿐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겠지요."

초파일행사끝나고. 앞줄 가운데▲ 초파일행사끝나고. 앞줄 가운데

과장되지 않은 담담한 말소리가 참 믿음직스러웠습니다. 길이 앞에 쭉 펼쳐져 있어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 같았습니다. 길이 있는데 그 길을 보고 가는 사람과 가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된 만남이었습니다.
손윤희 님은 양덕법당의 다이아몬드였습니다. 이제 양산법당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겠지요. 어디서나 잘 쓰이는 사람. 정토행자로요.
양덕법당의 문을 열면 이제 손윤희 님의 낭랑한 목소리와 웃음소리, 엉덩이를 툭툭 두드리며 언니같이 격려해주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정도를 걸어가는 도반의 훌륭한 모습은 언제나 기억할 것입니다. 양덕법당 도반이 함께 인사 전합니다.

통일의병대회.▲ 통일의병대회.

세자재 손윤희 님~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늘 기억할 거에요. 너무너무 고맙고 사랑합니다~ 어디서건 행복하세요~^^

글_하상의(포항양덕법닻)
편집_도경화(대경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