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 속에서 온갖 소리가 들려왔던 만배 정진

2016년 12월 30일 새벽 6시 45분 임진각 망배단의 하늘은 아직도 어두웠다. 차에서 내리자 영하 12도의 서늘한 냉기가 느껴진다. 미리 도착한 도반들은 입재식을 위해 북녘 땅을 바라보며 자리를 깔고 있었다. 순간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지?’라는 무거운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이번 행사를 담당한 정토회 인천경기서부 지부의 이영실 보살님의 자리정돈을 부탁하는 정겨운 사투리와 여러 도반들의 편안한 움직임은 만배를 시작하기도 전에 얼어버린 나의 무거운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첫날 입재식에 참여한 인원은 안양정토회 10명,인천정토회 9명,일산정토회 10명,대구정토회 1명 울산정토회 1명 제주정토회 1명 총31명이였다. 인경지부의 도반들뿐만 아니라 대구, 울산, 진주, 상주, 그리고 제주까지 전국에서 모인 열정적인 도반들과 함께하는 자리였다. 간단한 입재식을 마치고 드디어 만배를 향한 통일 기도의 일배를 시작했다. 새벽을 일깨우는 목탁소리와 여러 도반들의 관세음보살을 외치는 소리는 통일에 대한 간절함과 엄숙함을 표현하며 임진각 주변 너른 벌판에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입재식
▲ 입재식

괜히 만 배 한다고 했나?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니 자연스런 질문 하나가 던져졌다.

나는 왜 이곳에 왔는가?

엄숙한 마음의 시작에도 불구하고 ‘과연 내가 3일간 진행되는 만 배 정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라는 걱정스런 마음이 한 배 한 배 절을 하는 사이로 문득 일어나곤 했다. 공교롭게도, 이 날이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울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나름 단단한 대비를 하여 양말 3개, 내복에 솜바지, 여러 겹의 상의와 오리털 패딩으로 온몸을 감싸고 절을 하여야 했다. 중무장한 옷의 무게와 부피감에 절을 한다는 것이 꽤나 부자연스러웠다.
절을 시작한지 두어 시간이 지나가자 몸과 마음에서 힘들다는 아우성이 올라왔다. 이천 배 이상을 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당연한 결과이다. 한 번 내려간 몸을 중력을 거스르며 다시 올린다는 것이 이만저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의 순간들이 상대적으로 행복이란 것을 실감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점점 고단해져 가는 육체의 피로만은 아니었다. ‘하루만 참석할 걸, 괜히 만 배 한다고 했나?’ 후회하는 마음이 일어나자 피로감은 더욱 극대화 되었고 절은 더더욱 힘들어 졌다.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자 나 스스로에게 자연스런 질문 하나가 던져졌다, 나는 왜 이 곳에 왔는가?

만배-심신의 아우성. 나는 왜 이곳에 왔는가?
▲ 만배-심신의 아우성. 나는 왜 이곳에 왔는가?

지난 8월15일 임진각 통일 기도에 참석했다. 불대와 경전반 모임을 통하여 나와 내 가족의 일에만 충실하며 시대의 고통에 둔감했던 지난날이 잘못된 것임을 반성하는 마음이 일었다. 주변과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지부에서 모인 사람들과 300배 정진을 하고 우리의 소원 노래도 부르고 태극기도 흔들었다. 이 날 기도가 의미 있고 뜻깊은 모임이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일회성 행사에 그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들었다.
이런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해 매주 토요일 새벽 5시에 시작하는 임진각 기도에 동참하기로 마음먹었다. 월광법사님의 뜻을 이어 인경지부 주관으로 일산, 부천, 광명, 파주, 안양, 안산 법당이 한주씩 돌아가며 기도에 동참하였다. 나는 매주 참여하는 것은 부담스러워서 우선 일산 법당이 주관하는 매월 첫 주에만 참석하였다.
9월, 10월, 11월 새벽 기도에 참여하며 무언가 의미 있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만족스러웠다. 또한 매주 토요일 차량 봉사자를 모으고 기도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는 주정희, 유영옥 보살님등 선배 도반님들이 통일기도를 몇 년씩 꾸준히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감동과 신뢰의 마음이 생겨났다. 또한 분단된 남북한의 상징적인 장소인 임진각이 나에게도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다가왔고, 통일에 대한 간절한 바람으로,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도반들과의 동참 속에서 나에게도 조금씩 스님이 말씀하시는 ‘역사의식’이 생겨나는 것 같았다. 그랬다. 그때의 그 기쁨들이 나를 지금 이곳에 오게 한 것이다.

힘든 오전 시간을 보내고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이렇게 힘든 절을 3일이나 계속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의 답답한 마음을 위로라도 하듯이 첫날 일산법당 노숙자 보살님과 윤진숙 보살님께서 미역국을 끓여오셨다. 순간 밥을 먹고 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찬 바닥일지라도 한동안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고맙게 느껴졌다. 게다가 뜨거운 들깨 미역국이라니. 평소 어머니보다 더욱 어머니 같은 모습에서 편안함이 느껴졌던 노숙자 보살님과 윤진숙 보살님께서 관세음보살님처럼 보였다. 따듯한 물을 계속 끓여 제공해주신 인경지부 이동림 법우님도 감사했다. 도저히 다시 시작할 수 없게 느껴졌던 나의 심신은 뜨거운 미역국 덕에 끝까지 첫날 수행을 마무리 하게 되었다.

몸과 마음을 위로해준 고맙디 고마웠던 공양
▲ 몸과 마음을 위로해준 고맙디 고마웠던 공양

봉사라는 것이 내게 남아도는 무언가를 타인에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남과 나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 일어나니 몸 여기저기가 쑤셔댔다. 싫은 소리를 들을게 뻔해서 가족들에게는 아프다는 소리도 못하고 집을 나섰다. 지방에서 오신 11명 도반님을 태우고 임진각으로 가기 위해서 파주에 있는 이영실 보살님 댁으로 가면서, 여러 도반들에게 자신의 집을 통째로 개방하여 잠자리를 제공하신 이영실 보살님이 참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봉사라는 것이 내게 남아도는 무언가를 타인에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남과 나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속에서 오만가지 소리가 들려왔다

예불과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참회기도 발원문을 마치고 또 다시 절 수행이 시작되었다. 마음속에서 오만가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이고 절은 시작도 안했는데 왜 이리 무겁지?’, ‘몸이 무거운 거야?, 마음이 무거운 거야?’. ‘앞으로 이틀이나 더해야 된다는 사실이 두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네’. 이런 마음의 번뇌의 소리들은 타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맨 앞줄에서 힘차게 정진하는 거사님을 보니 더욱 힘이 빠지며 ‘저분은 절을 왜 저리 빨리 하는 거야. 한 배 한 배 정성껏 해야지. 음 너무 횟수에 집착 하는군’ 등등의 괜한 질투와 분별이 올라왔다. 또한 한편에선 앞의 보살님이 일어서고 앉고 하는 동작에서 많이 불편해 보여 걱정스런 마음도 올라왔다. 허리와 다리의 고통이 너무 심해서 중간 중간 가만히 서서 아픈 부위를 어루만지며 고통을 속으로 감내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안 힘든 사람이 있을까?’

기꺼이 힘든 과정 속에 자신을 던져놓고 아픔과 고통을 놓아 버리고 묵묵히 이겨나가는 것, 그것이 만 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 배의 의미가 다가왔다. 기꺼이 힘든 과정 속에 자신을 던져놓고 아픔과 고통을 놓아 버리고 묵묵히 이겨나가는 것, 그것이 만 배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정진하는 도반의 모습이 나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함께하는 도반들이 없었다면 결코 둘째 날을 마무리 짓지 못했을 것이다. 두 번째날에도 노숙자보살님께서 점심공양을 준비해주셨다. 강화법당 황정자보살님과 일산법당 이미령보살님 부부께서 함께 도와주셨다.새벽에 함께하신 덕양법당을 비롯하여, 부분참석하신 도반님들을 모두합해 둘째날도 32분이 참석하였다.
그 고마움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기꺼이 힘든 과정 속에 자신을 던져놓고
▲ 기꺼이 힘든 과정 속에 자신을 던져놓고

드디어 마지막 날이 되었다. 이제 망배단에서 맞이하는 새벽이 익숙하고 편안하였다. 어제보다 한결 가벼워진 몸이 느껴졌다. 다른 도반들의 몸놀림도 한결 수월하게 보였다.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이 확실히 몸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하늘의 여명을 맞이하며 북녘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무사히 만 배 정진을 마치고 천도재를 올렸다. 천도재에는 인경지역의 60여명의 도반님들께서 참석하셔서 든든히 자리를 채워주셨다.

천도재-- 우리의 수행이 억울한 원혼들을 달래는 자그마한 위로가 되기를
▲ 천도재-- 우리의 수행이 억울한 원혼들을 달래는 자그마한 위로가 되기를

마음 나누기
▲ 마음 나누기

지난 3일 도반님들과 함께한 수행의 공덕이 이 땅에서 분단으로 인해 억울하게 산화해 가신 원혼들의 원망을 달래는 자그마한 위로가 되기를 빌었다.

또한 한 명의 수행자의 발원에서 시작된 임진각 통일기도가 이렇게 전국적인 행사로 자리 잡은 것처럼 온 겨레가 통일을 염원하는 한 마음으로 들불처럼 번져가기를 기원하였다.

| 안홍근(일산법당 만배 정진자)
편집
| 한명수 (인천경기서부 편집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