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언니의 권유와 정토회

1999년 결혼 후 나와 남편은 크고 작은 일로 서로에게 마음에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았다. 첫째와 둘째 출산때까지는 힘겨운 기 싸움을 하면서도 그럭저럭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2005년 즈음 셋째 출산한 후 남편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또한, 마음의 병이 몸으로 표출되어 큰 수술도 하게 되었다. 연이은 큰일을 겪으면서 나의 삶은 더욱 피폐해져 가고 남편 및 가족과의 관계는 더욱 힘들어졌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내 힘든 상황을 호소하고 위로받고자 이 사람 저 사람, 이 종교 저 종교 등을 정신없이 찾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친언니에게 나의 상황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언니는 나에게 '정토회'라는 곳이 있는데 딱 너 같은 사람에게 필요한 곳 같더라는 권유를 듣게 되었다. 사실 언니 가정은 이미 조계종 계열의 절을 아주 오랫동안 다니고 있는 신심이 깊은 불교 집안 이었다. 추천을 받으면서도 “자기는 경험해 보지도 않은 곳을 왜 내게 추천해 주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이전부터 언니는 내 인생의 멘토와 같은 존재였기에 나는 언니를 믿고 정토회라는 곳을 알아보게 되었고, 2015년 지금의 양천 정토회 불교대학을 입학하면서 연을 맺게 되었다.

불교대학 입학 전 남편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리치료, 부부 상담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다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루 이틀은 괜찮다가도 며칠 지나면 원상태로 돌아가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불교대학을 입학한 후 뭔가 근본적인 것이 변화하기 위해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불교대학 프로그램의 하나인 수행, 보시, 봉사가 바로 그러한 변화로 나를 이끈 것이다.

깨달음의 장 후-왼쪽 두 번째 줄 끝에 서 계신 최은희 님
▲ 깨달음의 장 후-왼쪽 두 번째 줄 끝에 서 계신 최은희 님

결국은 나를 위한 봉사 활동

아직 소임을 맡아 하는 봉사는 없다. 그러나 다른 소임자의 요청으로 새터민 봉사, JTS 모금 활동을 경험해 봤다. 특히 2015년 새터민 산타 봉사는 우리 가족이 함께했고 이후 남편을 정토회와 인연 맺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2016년 새터민 공주 야유회 봉사는 내게 색다른 깨달음을 얻게 했다. 솔직히 행사 참여 전에는 ‘내가 새터민을 위해 뭔가를 해주는 거다’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내가 새터민에게 베풀었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에게 뭔가를 가득 선물 받은 풍요로움이 내 마음을 꽉 채웠다.

 가족과 함께한 새터민 산타봉사- 오른쪽 끝에 서 계신 최은희 님
▲ 가족과 함께한 새터민 산타봉사- 오른쪽 끝에 서 계신 최은희 님

과거의 나, 정토회 그리고 지금의 나

정토회를 알기 전 나는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았고, 나만 괴롭고, 억울하고, 내가 왜?’라는 식의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불교대학 수업, 남산순례, 일상에서 깨어있기장 후 조금씩 변화했고, 그런 내 모습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바로 나의 남편이었다. 특히, 깨달음의장 이후 참석했던 ’일상에서 깨어있기장‘에서 법사님께 들었던 “입으로만 도를 말하지 말고 행동으로 변해야 한다.”는 말씀은 내게 큰 울림이 되었다. 이런 울림은 나를 조금씩 변화시켰으며 자연스레 내 행동의 변화를 보고 남편과 또 다른 언니가 정토회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가장 자연스러우면서도 가장 바람직한 전법이 된 셈이었다.

또한, 정토회에서 진행하는 여러 가지 수련 프로그램을 통해 이제까지 숨겨져 있던 나의 잠재된 긍정적인 면을 보게 되었다. 이를 통해 자존감이 회복된 나는 가정이라는 작은 울타리를 넘어 직장이라는 더 넓은 세상의 맛을 경험하게 되었다.

   나눔의 장 후- 앞줄 오른쪽 끝에 앉아 계신 최은희 님
▲ 나눔의 장 후- 앞줄 오른쪽 끝에 앉아 계신 최은희 님

희미했던 기도문이 확연하게 다가 온 날

전국의 도반들, 그리고 지도 법사님과 함께할 수 있는 천일결사 입재식은 느슨했던 수행자인 나에게 비타민과 같은 날이다. 마음이 산란하여 기도문도 많고 뭔가 희미했던 나의 수행은 8-9차 천일결사에 참여하면서 막혔던 뭔가가 뻥 뚫리는 수행의 길을 찾았다. 절하는 법을 안내해 주시는 부스에서 “가장 먼저 남편에게만 참회하라”는 법사님의 말씀을 듣고 ‘이제까지 복잡했던 기도문을 다 접고 딱 100일 동안만 해보자’라는 결심을 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고 또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꾸준히 기도하니 나도 모르게 참회의 뜨거운 눈물이 내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6월 나는 많이 망설였던 ‘나눔의 장’을 다녀왔고 남편에게 참회의 3배를 하였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이제까지 행했던 나의 어리석은 행동들이 원망스럽고 창피하기도 하고 자책도 하고. 하지만 수행은 거기서 나를 멈추게 하지 않았다. 마음이 열리고 나니 이제까지 잔소리로만 들렸던 남편의 말이 경전 말씀처럼 들렸다. 지금은 ‘나와 아들에게 참회합니다.’란 기도문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수행자의 생활을 하고 있다.

위로 해탈의 경지를 바라보면 까마득히 멀기만 합니다. 하지만 뒤돌아 수행하며 걸어온 길을 보니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걸어왔습니다. 꾸준한 수행을 하는 최은희 보살님의 수행담을 통해 다시 한 번 맑은 마음, 좋은 벗, 깨끗한 땅의 정토를 기원합니다.

글_이경혜 희망리포터
편집_권지연 (서울제주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