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43번째 강연이 뉴욕플러싱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

뉴욕시는 맨하탄, 퀸즈, 부르클린, 브롱스, 스테튼아일랜드의 5개 보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플러싱은 퀸즈 보로에 속하며, 138개의 언어가 통용되는 세계에서 민족 구성이 가장 다양한 도시로 총인구 226만명 중 48%가 외국 태생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또한 퀸즈는 부르클린에 이어 뉴욕에서 두번째로 인구수가 많은 지역이며, 독립된 도시로 간주할 경우 LA, 시카고, 부르클린에 이어 미국에서 4번째로 인구수가 많은 지역입니다. 또한 맨하탄에 이어 뉴욕시에서 두번째로 큰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특정 산업에 치우치지 않고 의료, 소매, 제조, 건설, 운송, 영상제작 등 다양한 산업이 골고루 발달하였습니다. JFK 및 라과디아 공항이 있어 국제 및 state 간의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플러싱은 뉴욕에서 한인 교민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초기 이민자들이 주로 정착하였던 곳입니다. 최근에는 중국 상권에 밀려서 노던블로바드 동쪽으로 상권이 이동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현재 뉴욕정토회 법당도 플러싱에 있으며, 스님께서 뉴욕에서 강연을 해도 매년 플러싱은 빼놓지 않고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한국식당, 한인대형마켓 등이 밀집해 있어 뉴욕 한인사회의 중심지입니다.    

오늘은 오전 9시부터 1년 동안 뉴욕정토회와 워싱턴정토회에서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반을 공부한 분들의 졸업식과 수계식이 열리는 날이라 바쁩니다. 스님께서도 새벽부터 원고교정 및 업무를 보셨습니다. 오전 7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업무를 보시다가 숙소와 뉴욕플러싱법당이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8시 50분경에 뉴욕플러싱 법당으로 출발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법당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지난 5일 동안 숙소와 음식을 대접한 김명호, 유정희 부부에게 “5일 동안 잘 쉬어서 건강이 회복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시면서 감사한 마음을 담아 사인한 책을 선물하였습니다. 특히 김명호님은 스님께서 보스톤에 도착한 이후 오늘밤 워싱턴 미주정토회관에 도착할 때까지 네비케이터에 28개 Point를 찍어가며 총 2,600마일(4,160km)을 운전하였다고 합니다. 특별히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차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5일 동안 스님 일행에게 숙소와 음식, 운전을 제공해준 김명호, 유정희 부부> 

또한 5일 동안 유정희님과 함께 스님 일행의 식사 준비를 해주신 김숙현님께도 감사의 표시로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리고 감사의 인사를 하였습니다. 


<식사 준비를 해주신 김숙현님> 

스님 일행은 5일 동안 한곳에서 머무를 수 있었기에 강연을 다니면서도 휴식 시간을 갖고 개인 업무도 볼 수 있었습니다. 
 
뉴욕플러싱법당에 도착하자마자 수계식과 졸업식을 위해 기다리고 있던 신도님들이 반갑게 스님께 인사를 합니다. 곧이어 바로 수계식을 진행하였습니다. 



워싱턴정토회에서 10명, 뉴욕정토회에서 8명이 참가하여 총 18명이 수계를 하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수계의 의미에 대해 자세히 일러주시며 한 분 한 분에게 수계와 함께 불명을 주셨습니다. 



“부처님의 계를 받는다는 것은 불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불자가 된다는 것은 나도 부처의 길을 가겠다고 원을 세우고 한 발 내딛는 것을 말합니다. 계를 받을 때는 불명을 받게 됩니다. 지금은 아직 내가 중생이지만 오늘부터 시작해서 부처의 길로 한발 한발 가다 보면 나도 미래세에 부처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그 부처의 이름을 미리 받습니다. 내가 만약 부처를 이룬다면 그때 부처의 이름은 이러이러 하리라. 이것을 수기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과거에 연등불전에서 “너는 미래세에 부처를 이루리라. 그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리라.”라고 수기를 받았어요. 그래서 불명은 별명처럼 그냥 하나 지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가 되겠다고 원을 세우고 서약을 하게 되면 그 때 불명이 주어지게 됩니다. 

이 수계식은 부처님 당시로부터 시작해서 긴 역사를 두고 2600년이 지나도록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수계식도 그 전래를 따라 시행합니다. 부처님의 정법을 71대로 계승한 수계 법사 지광 법륜이 부처님을 대신하여 여러분들이 삼보에 귀의하고 5계 받기를 청하기에 오늘 이렇게 수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법을 잘 받아 지녀서 수평적으로는 이 법을 널리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하고, 수직적으로는 미래의 후세들에게 대를 이어서 전해서 다음 부처님인 미륵 부처님이 오실 때까지 이 바른 법을 계승해 나가야 합니다. 오늘은 그런 소중한 자리입니다." 


<오계를 지킬 것을 서원하며 호궤 합장을 하고 참회 진언을 외우는 정토불교대학 졸업생들>
 
오계를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 자세히 듣고 나서 오계를 반드시 지킬 것을 서원하는 의식까지 마치고 나니 모두들 청정해진 마음이 됩니다. 오계만 잘 지켜도 뉴스에서 보는 사건 사고들은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니 오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가슴에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수계를 받은 졸업생들은 스님께 직접 불명을 받았습니다>

수계식에 이어 지난 1년 동안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반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수료한 분들의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앞서 수계를 받은 18명과 함께 워싱턴정토회와 뉴욕정토회에서 경전반을 수료한 14명까지 포함해 총 32명이 졸업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졸업생들에게 "그동안 졸업하기 위해 수업 듣고, 봉사활동 하고, 특강수련 하고, 마음나누기 하느라 고생이 많았다"며 격려를 해주시면서 졸업 법문을 통해 졸업 이후에는 어떻게 살면 좋을지 방향을 제시해주셨습니다.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졸업한다고 수고들 많이 하셨어요. 일반 절에서는 참선하는 것만 수행이라고 하는데, 정토회에서는 실제로 세상 속에서 보시하고 봉사하는 실천을 통해서 자기를 닦아갑니다. 정토회 나오면서 봉사활동도 안 하고 보시도 안 하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정토회는 실천활동을 수행의 한 부분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렇게 수행을 계속 해나가서 더 나은 인격을 만들어야 합니다. 옛날보다 화가 좀 줄어야 하고, 욕심도 좀 줄어야 하고, 슬픔도 줄어야 하고, 밝음은 늘어야 하고, 행복도 늘어야 하고, 봉사시간도 늘어야 하고, 보시도 늘어야 하고, 이렇게 삶이 변해야 합니다. 그래서 같이 사는 남편이 볼 때도 ‘어, 사람이 변했네’ 아이들이 볼 때도, 아내가 볼 때도 ‘어, 변했다!’ 이렇게 변화가 와야 합니다. 이것이 사실은 가장 큰 전법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삶이 변하려면 꾸준히 정진을 해나가야 합니다. 졸업이 끝이 아니라 이제 남은 과제는 직접 수행하는 것입니다. 수행 보시 봉사하는 삶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스님께서는 졸업생들에게 아침에 일어나서 정해진 시간에 정진을 할 것과, 거리모금이나 환경운동 등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12시경에 모든 행사가 끝나자 각 정토회 모임별로 수료를 기념하여 스님과 함께 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또한 수계자들은 한 명씩 단독으로 스님과 기념촬영을 하였는데 모두가 기뻐하였습니다. 


<뉴욕정토회 정토불교대학 졸업생들> 


<워싱턴정토회 정토불교대학 졸업생들> 

기념촬영 후에는 뉴욕정토회에서 마련한 음식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바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내일 낮부터 국무부에서 미팅 일정이 있기 때문에 스님께서는 숙소에서 업무 및 원고 교정 등을 보셨습니다. 오후 플러싱 강연이 끝나면 뉴욕 지역에서의 7개 강연을 모두 마치게 됩니다. 오늘 밤에는 4시간을 운전을 하여 워싱턴 미주정토회관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워싱턴으로 가지고 갈 모든 짐을 차에 싣고 4시 10분에 뉴욕 플러싱 강연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뉴욕 강연의 마지막 피날레는 노던블로바드 선상에 있는 플러싱 고등학교(high school) 강당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어제 비가 온 뒤라 그런지 기온이 뚝 떨어져 쌀쌀했지만 청명한 가을 하늘이 높고 맑았습니다. 고등학교에서 강연이 이루어지니 꼭 가을 운동회에 하는 것처럼 신나는 것 같고, ‘내가 희망입니다’ 라는 글자가 새겨진 오렌지색 티셔츠가 행사장 곳곳을 장엄해 밝고 즐거운 기운을 느끼게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북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가서 행사 전에 잠시 북사인회를 가졌습니다. 



이어서 5시부터 43번째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이 플러싱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플러싱 강연에는 총 400명이 참석하여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자 하는 높은 관심과 열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매주 일요일은 오후 5시에 강연을 잡고 있는데, 이것은 일요일에는 성당과 교회, 절에 나가는 분들을 배려해서입니다.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에는 종교를 떠나서 모든 분들이 참석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덕분에 성당에 다니거나 교회에 다니시는 많은 분들이 이번 미주 강연에 일요일마다 참석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아침에 성당, 교회, 절에는 잘 다녀오셨어요? 다 제각기 잘 다녀오시라고 이렇게 오후에 강연을 잡았습니다. 종교가 있던 없던, 고향이 어떻든, 남자든 여자든, 젊은이든 나이 드신 분이든, 이 모든 것에는 ‘사람이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이런 저런 고뇌가 있고 인생의 의문점이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겪는 고뇌를 어떻게 하면 좀 해결할 수 있을까? 괴로움은 줄고 행복은 늘어날 수 있을까? 인생의 이런 저런 의문들을 대화를 통해서 같이 한번 풀어 나가보자는 뜻입니다. 친구가 친구를 만나서 얘기하듯이 편안하게 얘기를 서로 나누었으면 합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나와서 얘기하세요. 자, 시작하시죠.”

이렇게 말씀하시며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총 9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열흘 후에 결혼식을 하게 될 예비신부인데 결혼하고 아이들이 생기면 커다란 위기가 한두 번쯤은 올 것 같은데 그때 어떤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면 좋을지 묻는 분, 타향에서 친적도 없이 가족과 10년째 살고 있는데 내가 잘해야 가족도 잘 될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 불안감이 커진다는 분, 어렸을 때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서 두려움이 일었는데 죽음을 대하는 관점에 대해 묻는 분, 어떤 사람이 길 가다가 죽기도 하고 골프 치다가 번개 맞아 죽기도 하는데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지 묻는 분, 어떻게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 생사해탈을 할 수 있는지 묻는 분, 유명한 사람의 주위에는 인의 장벽이라는 것이 있는데 스님께서는 인의 장벽을 어떻게 넘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분, 딸이 우울증으로 사망한지 7년이 되었는데 그 이후 언제나 마음이 편치 않고 불안하다는 분, 얼마 전에 억울한 일을 당해서 상대방에게 원망심이 깊었는데 계속 안보고 살 사람도 아니니 혼자서 그냥 마음 편하게 있어야 할지 앞으로는 그러지 않도록 요구해야 할지 고민인 분, 금식을 하면서 일주일에 세끼를 먹고 있는데 음식에 대한 고마움도 많이 느끼고 스님의 법문을 일주일에 한 번씩 꼭 듣고 있는데 머리에 쏙쏙 들어와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자상하게 답변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미국 사회에 점차 중국인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한국인들이 밀리게 된 것을 염려하는 남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퀸즈 노던블러버드에 10년 전에 왔습니다. 그 때는 노던블러버드와 퀸즈의 경제를 한국인이 잡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중국 사람들이 다 자리를 차지하고 한국인들은 밀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어떻게 하면 해외에서 중국 사람들보다 더 멋있게 살 수 있을지 가르쳐주시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사람들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은 중국 사람들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보다 뛰어난 편입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이 중국 사람들에 비해서는 집단성이나 공동체성이 좀 약한 편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단기간에 이익을 보려는 생각이 우리보다 적어요. 조금 더 인내심이 있고 더 길게 보고 또 집단적으로 대응을 해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대응을 하고 조금 조급한 편이고 빨리 결과를 보려고 합니다. 

이런 성격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한국 사람이 갖는 장점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조급하고 도전적인 이것이 한국 경제를 빠르게 성장시킨 요인이 되었습니다. 또 한국 사회가 굉장히 혼란스러운 것 같지만 굉장히 다이나믹합니다. 외국 기자들은 한국에 파견 와서 일하다가 다른 나라에 가면 재미가 없고 지루하다고 그런답니다. 한국은 아침에 일어나면 세상이 이렇게 저렇게 바뀌어 있거든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부터 뭐든지 빨리 빨리 하잖아요. 외국 사람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한국말이 ”빨리 빨리“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이 장점이 될 때도 있지만 단점이 될 때도 있습니다. 이번에 세월호 사고가 이런 것의 단점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죠. 돈만 되면 뭐든지 빨리 빨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했던 것의 부작용이 나타난 하나의 사건이라고 볼 수 있죠. 



첫째, 이런 것 때문에 집단적으로 대응하는 중국 사람에 비해서 한국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대응을 하니까 개인이 아무리 돈이 많다 하더라도 중국 사람 10명보다는 돈이 적기 때문에 사업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우리가 미국에서 자리를 잡은 것은 개인의 노력도 있지만 여러분들이 이민 와서 사는 지난 30년 기간 동안에 한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물건을 가져오는 등 그 기반 위에서 사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계의 공장이 모두 중국으로 갔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중국으로 가서 물건을 가져와서 파는 것과 중국사람들이 자기 나라에서 물건 가져와서 파는 것과는 경쟁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 경제가 지금 커지고 있는 것이 이곳에서 중국 세력이 커지는 것의 뒷받침이 되고 있어요. 그래서 여기에 맞경쟁을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싼 물건을 팔아야하는 이민자들의 경쟁력이 한국 사람보다는 중국 사람에게 유리해져 있습니다. 예전에는 일본 사람이 유리하다가 한국 사람들에게 밀렸는데, 일본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과 경쟁을 하지 않고 자기들 나름대로 고급화를 해서 아예 경쟁이 안 되게 따로 갔습니다. 그러듯이 우리도 그동안 먼저 축적한 자본을 가지고 그것과는 다른 각도로 가야 되는데, 똑같은 상태를 유지하다보니까 밀리게 되는 겁니다. 이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심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환경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닦아놓은 기반 위에서 중국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아이템으로 업종 전환을 해나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집단적으로는 한국 사람들도 조금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한데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 사람 세 사람이 동업을 해서 빌딩을 하나 사면, 한국 사람들은 세 사람 다 사장 명함을 갖고 돌아다닙니다. 다 자기가 사장이라고 하다가 3년이 못 가서 분열이 되고 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은 열 명이 모여서 빌딩을 하나 사는데 누구도 사장을 안 합니다. 전문경영인에게 맡겨 버리고 주주로 딱 남습니다. 한국 사람은 조급한 것도 있지만 실용적이지 못하고 공명심이 강한 편입니다. 이 명예욕이 강한 것이 중국 사람들과 경쟁하는데 있어서 부족한 면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잘하는 신속하게 대응하는 그런 쪽으로 업종을 바꿔 옮겨 가면서 새로운 아이템으로 가는 길이 하나 있고, 그렇지 않고 과거의 아이템으로 중국 사람들과 경쟁하려면 한국 사람들도 집단 대응을 하는 자세가 필요한데 이런 기질을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 그래서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밀려났다고 볼 수도 있는데 꼭 밀려났다고 이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또 더 좋은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니까요. 백인들이 시내 중심에 있다가 변두리로 밀려났어요? 좋은 데로 옮겨갔어요? 좋은 데로 옮겨간 것이죠. 그러듯이 “복잡한 것은 너희들이 해라” 하고는 우리는 더 좋은 주변부로 가면 됩니다. 중심이 좋은 게 아니라 변두리가 좋은 거예요. 이렇게 생각을 긍정적으로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민 30년 역사가 되었는데도 옛날 직종을 그대로 하니까 이제 앞으로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 사람들도 와서 배우잖아요. 예를 들어 내가 내일 가게를 열면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종업원으로 들어오지만 이 사람들도 20년이 지나면 다 배우잖아요. 배우고 자본 축적이 되니까 자기도 가게를 열게 됩니다. 지금 유럽에 가면 한국 사람들이 하는 숙박업소와 식당업이 다 조선족한테 밀리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 인건비가 비싸니까 중국 조선족을 데려와서 종업원으로 썼거든요. 그런데 조선족이 한국말을 잘하니까 한 3년만 하면 다 파악을 하죠. 그런데 한국 사람은 자기 레벨이 있으니까 이익이 작으면 못하잖아요. 그래서 한국식당, 한국숙박업소를 조선족이 점점 빠르게 인수를 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업원을 데려오는 것은 일단 일정한 기간 동안에는 이익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술 유출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중국 시장에 장기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것은 어떤 걸까요? 전자산업이 아니라 오히려 식품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식품이 아직 안정성이 떨어집니다. 가짜가 많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부자들이 자꾸 늘어나면 중국 식품을 못 믿으니까 안전한 외국 식품을 먹으려고 합니다. 한국에서 오히려 고급 식품을 마련해서 중국에 팔면 시장이 엄청나게 커질 수 있습니다. 일반 농산물은 중국 것이 값싸니까 많이 수입하지만 고급 식품을 수출하면 중국 시장이 엄청나게 커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만 보면 안 됩니다. 이 주기를 봐서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면 어떻게 바뀔 것인지 예측을 해야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냥 내내 하던 것만 하고 있으면 저절로 가라앉을 수 밖에 없습니다. 

종교로 얘기하면 지금 수요가 많은 것은 입시 기도와 승진 기도 이런 것들이 절이며 교회에서 잘 되잖아요. 앞으로도 수요는 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수요는 점점 줄어듭니다. 그런데 이렇게 물질로 해결 못하는 인생을 상담하고 법을 깨치게 하는 이것은 수요가 점점 늘어납니다. 그래서 저는 이미 이렇게 비전 있는 사업을 하고 있는 겁니다.(웃음) 


 
한국 안에서도 제가 30년 전에 부처님의 정법으로 가야 한다고 했는데 당시에 아무도 안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청년들까지도 많이 오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고 그것을 예측하면서 해야 합니다. 그런데 너무 앞서면 고생만 많이 하게 됩니다. 앞서가는 사람은 위험이 있습니다. 비난도 감수해야 되고 왕따도 당해야 합니다. 사업이 실패할 가능성도 매우 높습니다. 그것을 알고 시작해야지 너무 쉽게 기대하면 안 됩니다. 멀리 보고 꾸준히 해나가야 합니다. 제가 만약에 30년 전에 시작해서 10년 해보고 안 된다고 그만두었으면 지금 이런 일을 할 수 없겠지요. 지금 제가 하는 일은 앞으로 10년 후에 더 커질 거예요. 그것은 제가 잘 나서 그런 게 아니에요. 이것은 성장 사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일은 수요가 계속 늘어나서 한국 사람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양 사람들의 수요도 늘어납니다. 

지금 인류 문명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여기에 어떻게 대안을 낼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첫째, 방향을 잘 잡아야 되는 것이고, 둘째,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의 문제는 지금까지 따라 배우기만 잘해오다가 서양 수준과 비슷해지니까 지금 어디로 갈지를 몰라 정체가 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모방하는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지금은 거의 서양 수준에 근접했는데 문제는 창조력이 없는 것입니다. 창조를 하려면 사유체계가 아주 자유로워야 합니다. 기독교인이면서도 기독교에 대해 항상 의문을 제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여기 와서 서양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고 금방 배워서 자리를 잡았는데 더 이상은 안 됩니다. 더 나아가려면 이 사람들이 못하는 것을 해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갖되 배타적 민족주의를 하면 안 됩니다. 열린 민족주의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는 모든 장벽을 허물고 ‘무엇이 진실인가’, ‘무엇이 정말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이런 관점에서 접근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여기서 사업을 하면서도 너무 한국 사람끼리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그러나 우리가 모두 한국 출신들이니까 공통성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공동 대응하는 것은 필요해요. 중국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사는데 우리는 한국 사람이 가까이 오면 겁나잖아요. 외국인을 겁내는 것이 아니고 한국 사람을 겁내잖아요. 그러다 보니 중국 사람이 다 차지하잖아요. 이제는 생각을 좀 바꾸어야 합니다. 옛날에는 왜 한국 사람들을 겁낼 수밖에 없었느냐? 우리가 미국에서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이 굉장히 한정적이었어요. 누가 세탁소를 냈다고 하면 거기 가서 보고 종업원을 좀 하다가 자기도 세탁소를 낼 수밖에 없었어요. 다른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으니까요. 그러니 이것을 나쁘게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러니까 나한테 찾아와서 종업원을 한 3년 하면 몰래 새로 가게 차려서 손님을 뺏어가기 전에 오히려 내가 먼저 “자, 이 정도 배웠으면 너도 하나 새로 가게를 차려라. 내가 도와줄게. 내 분점을 너한테 하나 줄게.” 이렇게 얘기해서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 이 사업이 훨씬 커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못하잖아요. 



우리나라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벌기업이 중소기업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면 우리나라 산업이 탄탄할텐데 착취를 합니다. 뽑아만 먹으니까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중소기업이 몰락하는 현상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제는 중국기업에 하청을 주니까 기술이 다 유출되어서 금방 중국 기업이 성장해 오게 됩니다. 그래서 이익을 너무 단기적으로 보지 마세요. 조금 길게 보세요. 

저도 이번에 세계 100강을 하면서 성당에서 하는 경우가 열 곳이 넘습니다. 마음공부를 하는 것이 중요하지 무슨 종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제가 불교의 아이덴티티(정체성)가 없는 것일까요? 불교의 아이텐티티(정체성)는 바로 이런 열린 자세입니다. 예수님도 원래 열린 자세를 가지셨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랬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조금 열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에 이민을 와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면 좋은지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가며 이야기해 주셔서 청중들도 큰 힘을 얻어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청중들도 스님의 지혜로운 말씀을 경청하고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스님께서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마치시고 청중석을 다시 둘러보시더니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이 온 것을 확인하시고 그분들을 위해 한 번 더 애정을 담아서 격려의 말씀을 덧붙여 주셨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행복을 얻어가기를 바라는 스님의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지금까지는 젊은이들이 많았는데 오늘은 연세 드신 분들이 많네요. 나이가 육십이 넘었는데도 악착같이 사는 것은 이제 좀 포기를 하세요. 그렇게 살려고 미국까지 온 것은 아니잖아요. 그렇게 살려면 한국에서 살아도 다 밥 먹고 살았어요. 미국 사람들은 씀씀이가 굉장히 헤픕니다. 인색하라는 것이 아니라 소비수준을 조금 줄이고 시간적 여유를 가지시고 이 넓은 나라 좋은 나라에 왔으니 조금 자연도 즐기고 여유도 좀 가지시고 사는 것이 좋아요. 이렇게 악착같이 살다가 죽으면 좀 억울하지 않을까요? 애들이 크면 돈 모아서 주겠다 하는 생각도 그만 두시고 스무살이 넘으면 집에서 쫓아내 버리고 사세요. 

캐나다에서는 자식이 효자다 라고 하지 않고 국가가 효자다 라고 합니다. 거기는 노후 보장이 됩니다. 대신에 세금을 많이 내야 합니다. 북유럽은 세금이 많은 데는 자기 월급의 60퍼센트가 됩니다. 그런데도 불평이 없어요. 나중에 보장이 다 되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렇게 움켜쥐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여유를 가지시고 사회에 환원할 것이 있으면 기부하고 살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은 별거 아닙니다. 그냥 길거리에 풀한포기 나서 죽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인생에 너무 의미 부여를 많이 하지 마세요. 인생을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면 지금도 얼마든지 웃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뉴욕에 있으면서 조금 회복되었던 목소리가 2시간을 넘어서니 탁해졌지만 스님께서는 끝까지 질문에 답해주셨고, 스님의 정리말씀이 끝나자 청중들은 큰 박수로 스님께 감사의 인사를 보냈습니다. 마지막 정리말씀까지 모두 마치니 어느덧 2시간 30분이 훌쩍 넘었습니다. 환하게 밝아진 청중들의 얼굴과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니 잔잔한 기쁨이 생깁니다.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분들을 위해 스님께서는 북사인회 장소로 가서 한분 한분에게 웃음을 띠며 사인을 하고 기념촬영을 해주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반가운 분들도 만나게 되고, 오늘이 일요일이라 1시간 이상 떨어져 있는 타주에서도 오신 분들도 만나고, 다른지역 정토회에 있다가 이곳으로 이사온 분들도 만나고, 스님의 강연이 한바탕 축제가 되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이전에 스님께서 뉴욕을 방문할 때 늘 숙소도 제공해주고 스님이 아프면 검진도 해주고 치료도 해주던 정치량 박사님도 와서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하고, 유니온 신학대학교의 정현경 교수님도 스님의 강연을 듣고 난 후에 "강연이 너무 좋았다"며 "점점 멋져간다"고 하여 저희를 웃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왁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이번 행사를 위해 자원봉사를 한 모든 분들과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뉴욕지역 7개 강연을 잘 준비한 뉴욕정토회 차효순 대표님, 이정인 총무님, 그리고 미주동북부/캐나다동부의 임금이 지구장님께 스님의 사인을 한 ‘인생수업’을 모두 선물로 드리고 그동안의 수고를 격려하였습니다.  


<왼쪽이 뉴욕정토회 이정인 총무님, 오른쪽이 차효순 대표님>

오늘은 묘덕법사님과 함께하는 마음나누기 없이 행사를 마무리했습니다. 묘덕법사님은 스님께서 12일 천일결사 백일입재식을 위해 한국에 다니러 가실 때 유니온 신학대학을 포함한 7개 강연을 준비한 뉴욕지역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하는 나누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뉴욕으로 가셨습니다. 그래서 촬영장비를 챙기고 나서 뉴욕정토회 회원들의 환송과 배웅을 받으며 스님 일행은 8시에 바로 워싱턴 미주정토회관으로 출발하였습니다. 화려한 맨하튼의 야경을 뒤로 하고 5일 간의 뉴욕 인근 지역의 강연 일정을 모두 마무리합니다. 

워싱턴을 향해 부지런히 달려 미주정토회관에 도착하니 밤 12시 10분이 되었습니다. 늦은 시간 스님 일행의 도착을 기다리는 민덕홍님과 김지현님이 회관에서 불을 환히 밝히고 기다리고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보스턴부터 워싱턴까지 2,600마일을 운전 봉사하신 김명호님께 모두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민덕홍님과 김지현님은 회관에 도착하신 스님께 삼배로 인사드렸습니다. 이후 저는 스님께 내일 워싱턴DC 일정 및 국무부 방문 일정 등을 말씀드리고 제 숙소로 돌아와서 스님의 하루를 작성하고 업무를 보았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43번째 뉴욕 플러싱 강연을 잔칫날처럼 잘 마쳤습니다. 내일은 메릴랜드 엘리컷시티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44번째 강연이 열립니다. 내일은 메릴랜드 엘리컷시티에서 소식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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