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아침 일찍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한 후 저녁에는 안양에서 시민들을 만나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아침 7시가 되자 신부님, 목사님, 교무님, 주교님, 교령님이 한 분씩 평화재단에 속속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주제로 종교인들이 모이는 날입니다.

목사님이 식사기도를 하자 모두 ‘아멘’하고 나서 다 함께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동성애에 대해 천주교, 기독교, 불교는 각각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대해 한참 동안 대화가 오가다가 자연스럽게 남북문제로 이야기가 옮겨 갔습니다.

지난 10월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국론이 점점 더 분열되고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것에 대해 모두 우려를 표했습니다. 지난달에 국민 통합을 위해 사회 원로들이 성명서라도 발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오갔는데, 최종적으로 어떻게 할지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먼저 스님이 현재 시국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촛불 혁명 때만 해도 진보적인 사람들이 다수이고, 보수적인 사람들이 적었어요. 물론 중도적인 사람들이 가장 많긴 하지만, 지금은 현 정권에 대한 실망이 커져서 보수가 오히려 점점 많아지고 있고, 진보가 가장 적어지고 있어요.

보통은 사회 전체적으로 어느 한 두 가지가 잘못되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어렵습니다. 외교도 어렵고, 경제도 심각하고, 정치권도 분열되어 있고, 중재자도 없고, 거기다가 국민까지 완전히 분열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과거에는 여당과 야당이 분열되어 있었다고 해도 국민은 통일이 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국민도 두 개로 나눠져서 양쪽 집회에 참가한 사람 수를 비교해보면 그 수가 비슷해졌거든요. 나라가 당장 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가 참 어려운 위기에 처한 것 같아요. “

종교인 분들은 현재 국론 분열에 대해 성명서를 발표할지 여부에 대해 각자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습니다.

“다양한 의견이 있는 그대로 다 표출될 때까지 조금 더 상황을 지켜봅시다. 분열이 표출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시국이 이러한데 우리들이라도 바른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요?”

성명서를 내자는 의견과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다는 의견이 나와서 조금 더 고민해보고 다음 달 모임 때 결론을 내기로 하고 모임을 마쳤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한 분 한 분에게 스님은 두북 수련원에서 직접 농사지은 고춧가루와 내년도 새 달력, 그리고 지난주에 새로 나온 스님의 신간 ‘지금 이대로 좋다’를 사인해서 종교인 분들에게 선물했습니다.

“맨날 받기만 해서 어떡합니까. 감사합니다.”

이어서 스님은 평화재단 실무자들과 함께 하루 종일 회의를 했습니다. 장시간 회의를 마치고 오후 5시 40분에 저녁 강연이 열리는 안양시청으로 출발했습니다.

942석은 이미 만석이었습니다. 강연장 밖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길었습니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7시가 되자 어김없이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시청강당이 꽤 큰 편인데도 아직 들어오지 못한 분들이 아주 많아요. 죄송합니다. 들어와서 계단에 앉거나 앞쪽에 앉으시기 바랍니다.”

강연을 시작하고 한 동안 사람들이 계속 입장했습니다. 3백 여명이 더 들어오고, 2백 여명은 돌아가야 했습니다. 안양시 시장, 국회의원, 시의원도 참석했습니다.

“즉문즉설 어떻게 하는지 아시죠? 우리의 일상을 주제로 대화하는 것이 즉문즉설입니다. 책에 있는 이야기, 남의 이야기를 하지 말고, ‘아야!’하고 앓는 소리를 하더라도 내 이야기를 해봅시다.”

어린아이, 취업을 앞둔 청년, 직장인 남성, 출산을 앞둔 여성, 자식이 걱정인 할머니 등 다양한 사람이 질문을 했습니다. 말하는 사람뿐 아니라, 듣는 사람도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시간이었는데요. 그중 올케에게 샘이 난다는 여성의 질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기만 하는 올케가 미워요

“친정어머니는 올케한테 부족함 없이 잘해 주시고, 손주도 봐주시고, 직장 다니도록 뒷바라지도 해주시고, 그래서 올케 내외는 사회에서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잘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올케는 친정어머니에게 그다지 잘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올케에게는 저희 친정어머니가 시어머니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처한 입장도 남편이 효자이다 보니까 시어머니한테 계속 잘해야 되는 상황입니다. 남편은 계속 저한테 시어머니한테 잘하라고 강요를 하거든요.

저희 친정어머니는 올케한테 엄청나게 잘해 주는데, 저희 시어머니는 이와 달리 전혀 저한테 잘해주지 않으세요. 그냥 당신이 받을 것만 챙기시고, 저는 늘 뭔가를 해 드려야 하는 입장입니다. 저도 나이를 먹고 시어머니가 될 텐데요. 친정어머니처럼 저도 며느리에게 잘해 주어야 할지, 아니면 우리 시어머니처럼 그냥 챙김을 받기만 해야 할지 제가 혼란스러워요.”

“질문자는 친정어머니처럼 해야 해요. 자기 며느리한테는 친정어머니처럼 잘해 주고, 지금 시어머니는 받들어 모시고 살면 돼요. 둘이나 받들어 모시니까 좋잖아요. 보통 사람들은 하나만 받들어 모시는데, 질문자는 둘이나 받들어 모시니까 복을 엄청나게 많이 짓는 거예요.”

“좀 억울한데요.”

“그게 억울한가요? 그게 왜 억울해요. 좋은 일이죠.”

“왜 좋은지 조금 더 설명을 부탁드릴게요.” (모두 웃음)

“복이 되니까요. 시어머니를 받들어 모시는 것은 남을 도와주는 것이기 때문에 복을 짓는 행위입니다. 시어머니 도와주고 복 짓고, 며느리 보살펴주고 복 짓고, 복을 아래위로 다 짓잖아요.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어요?”

“네.”

“그런데 질문자는 복 짓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네요. 복 까먹는 것을 좋아하나 봐요. 질문자의 어머니는 복 짓는 것을 좋아하잖아요. 자기도 그 어머니의 딸인데, 어머니를 닮아서 복 짓는 행위를 해야 할까요, 복 까먹는 행위를 해야 할까요?”

“복을 짓는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그러세요?”

“그런데 제가 혼란스러운 것은 저희 올케는 시어머니에게 상당히 못 하거든요. 그런데 잘 살아요. 그게 되게 샘이 납니다. 세상 이치는 왜 이럴까요. 그게 저한테 맨날 혼란스럽습니다.”

“키가 큰 지, 작은지 여부와 돈 버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키가 크면 돈이 잘 벌리고, 키가 작으면 돈이 안 벌린다는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없죠.”

“남자면 돈이 잘 벌리고, 여자면 돈이 안 벌린다는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없죠.”

“그것처럼 착한 사람은 돈이 잘 벌리고, 악한 사람은 돈이 안 벌린다는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없죠.”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시어머니에게 잘하는 것과 돈을 잘 버는 것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어요. 예를 들어 저기 과녁이 있다고 합시다. 제가 화살을 던져서 저기를 맞추려고 할 때, 명중률은 맞추는 실력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좌우되지 착한 사람이 던지면 잘 맞고, 악한 사람이 던지면 안 맞는 것이 아니에요.

지금 질문자가 ‘저 나쁜 놈들은 왜 돈을 잘 버느냐, 나는 착한데 왜 돈을 못 버느냐’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것을 연관시켜서 그래요. 돈 버는 것과 착하고 나쁜 것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 상관관계가 있다면 질문자가 악해지면 돈이 잘 벌려야 하잖아요. 그러나 질문자가 착하든 악하든 상관없이 돈이 안 벌려요. (모두 웃음)

악한 것과 착한 것, 돈 버는 것은 서로 관계가 없지만, 착한 사람은 남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악한 사람은 남으로부터 비난을 받아요. 돈은 잘 벌지만 비난을 받게 되고, 돈은 없지만 칭찬을 받게 됩니다. 또 착한 사람이 반드시 돈을 못 버는 것도 아니에요. 착한 사람 중에도 돈을 잘 버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돈도 잘 벌고 칭찬도 받는 겁니다. 또 악한 사람 중에도 돈을 못 버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돈도 못 벌고 비난도 받는 겁니다.

돈은 잘 버는데 욕을 얻어먹는 사람이 있고, 돈을 못 버는데 칭찬을 받는 사람이 있고, 돈도 잘 벌고 칭찬도 받는 사람이 있는 겁니다. 지금 질문자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질문자가 본 사람은 돈은 잘 버는데 욕을 얻어먹는 사람이고, 질문자는 돈은 못 버는데 착한 사람이라는 얘기네요. 그런데 막상 대화를 나눠보니까 별로 착해 보이지도 않네요.” (모두 웃음)

“저는 착하지는 않지만...”

“화살을 과녁에 맞추는 것은 던지는 기술과 관계가 있고, 돈 버는 것은 돈 버는 기술과 관계가 있지, 착하고 악하고 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왜 자꾸 관계가 없는 것을 연관시켜서 생각을 하나요? 악한 사람도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착한 사람도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착한데도 수영을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겁니다. 착한 것과 수영을 잘하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질문자가 서로 연결을 시켜서 억울해하는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말하는 것을 보니 사람은 멀쩡하게 생겼는데,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어요.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런 상관관계를 얘기해요? (모두 웃음)

예를 들어, 여기에 컵, 텀블러, 뚜껑, 이렇게 세 가지가 놓여 있어요. 그러면 이 컵과 텀블러를 비교하면 이 컵은 커요, 작아요?

“작습니다.”

“그런데 이 컵을 이 뚜껑과 비교하면 어때요?”

“큽니다.”

“그러니까 이 컵 자체는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고, 그냥 존재할 뿐이에요. 존재 자체에 크고 작은 것은 없어요. 지금 여러분들이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이 존재가 어떤 조건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서 나한테 작다고 인식이 될 때도 있고, 크다고 인식이 될 때도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작다는 것은 존재에 있는 거예요, 인식 상에 있는 거예요?”

“인식 상에 있는 겁니다.”

“뚜껑과 비교하는 조건에서는 이 컵이 나한테 크다고 인식이 되는 거예요. 컵이 텀블러와 함께 놓인 조건에서 사는 사람은 컵을 작다고 인식하고, 컵이 뚜껑과 함께 놓인 조건에서 사는 사람 컵을 크다고 인식합니다. 똑같은 컵을 두고 한 사람은 크다고 하고, 한 사람은 작다고 하니까 서로 미친놈이라고 비난하게 됩니다.

‘어떻게 작은 것을 크다고 하느냐’
‘어떻게 큰 것을 작다고 하느냐’

이게 지금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인간 사이의 갈등입니다.

그러나 이 컵은 본래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고, 더러운 것도 아니고, 무거운 것도 아니고, 가벼운 것도 아니고, 이건 그냥 그것일 뿐이에요. 그것이 어떤 조건에 있느냐에 따라서 ‘크다’라고 인식되기도 하고, ‘작다’라고 인식되기도 하는 겁니다.

‘무겁다’, ‘가볍다’, ‘새 것이다’, ‘헌 것이다’ 이렇게 인식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늙었다는 것도 ‘나이가 70이면 늙었다’ 이런 것은 없습니다. 노인정에 한번 가보세요. 90세 노인이 있으면 80세 노인이 커피 심부름을 해야 해요. 나이가 80이 넘어도 ‘아이고, 젊은 네가 가서 커피를 끓여 오너라’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해요.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이 같이 앉아 있으면, 고3 아이가 고2 아이에게 ‘아이고, 우리는 늙어서 허리 아프니까 젊은 너희가 가져오너라’ 이렇게 말합니다. (모두 웃음)

존재는 그냥 존재일 뿐이지 ‘늙었다’, ’ 젊었다’ 하는 것은 없습니다. 무엇과 비교해서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용어를 다르게 표현할 뿐입니다.

질문자는 지금 친정에서 보고 들은 인식을 기준으로 시댁과 친정을 자꾸 비교하기 때문에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거예요. 옆집에 한번 가 보세요. 질문자의 시어머니보다 더 독한 경우와 한 번 비교해 보세요. 질문자의 남편보다 더 마마보이 같은 남자와 한 번 비교해 보세요. 올케보다 더 못된 올케와 한 번 비교해 보세요. 지금 그 정도면 아주 우수한 집안이에요. 그런데도 자기 유리한 대로 자꾸 생각하는 거예요.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 부부갈등이 심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자는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돈 버는 것에 대해서는 한국식으로 남자가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권리에 대해서는 미국식으로 남녀의 권리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왔으니 남녀가 평등해야지!’ vs ‘돈 버는 것은 그래도 남자가 벌어야지!’

그런데 남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돈 버는 것에 대해서는 ‘미국에 왔는데, 미국식으로 부부가 같이 돈을 벌어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권리에 대해서는 ‘우리가 한국 사람인데 빨래하고 밥하는 것은 한국식으로 여자가 해야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서로 유리한 대로 해석하기 때문에 싸우게 되는 겁니다. 그것처럼 질문자도 지금 자기 유리한 대로 비교해서 불평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본인만 괴롭습니다. 이게 어리석음이라는 겁니다. 자기 딴에는 유리한 것만 골라서 머리를 굴리는데, 그래 봤자 괴롭기는 자기만 괴로운 거예요.

하나만 물어볼게요. 세상 사람으로부터 손가락질받는 불효자와 같이 사는 게 나아요, 세상 사람이 칭찬하는 효자와 같이 사는 게 나아요?”

“효자하고 사는 게 낫죠.”

“지금 효자하고 살고 있잖아요.” (모두 웃음)

“그 생각을 저도 많이 하는데요. 그런데 저희 올케를 볼 때마다 미움이 생기거든요. 그 미움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움이 생기는 이유는 인식 상의 오류입니다. 올케는 올케의 인생이고, 시어머니는 시어머니의 인생이에요. 시어머니가 뭔가 해달라고 하면, 내 형편이 되면 해 주면 되고, 안 되면 안 해주면 되는 거예요.”

“안 해주면 남편이 삐져요.”

“그렇다면 질문자는 시어머니를 위해 시어머니한테 잘해 주는 게 아니라 나한테 손해가 날 것 같으니까 잘해주는 거네요. 남편이 삐져도 시어머니 안 해주는 게 나은지, 아니면 시어머니한테 잘해주고 남편이 덜 삐지는 게 나은지를 계산해 봤더니, 시어머니한테 잘해주고 남편이 덜 삐지는 게 낫겠다고 판단이 된 거잖아요. 질문자는 헌신성이 없네요. 요리조리 머리로 계산해서 ‘남편이 삐져서 손해가 크니까 시어머니한테 잘하는 게 낫겠다’ 이런 거네요. 지금 잘하고 있어요. 계산을 약삭빠르게 잘하고 있네요.” (모두 웃음)

“네. 그리고 올케에게 자꾸 미움이 생기는데, 이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그건 길가는 사람을 다 미워하는 것과 같아요. 저 사람은 빨간 옷 입었다고 미워하고, 저 사람은 머리 길다고 미워하는 겁니다. 올케에게 신경 쓸게 뭐가 있어요? 제가 법문에서 수도 없이 자기 아들도 스무 살이 넘었으면 장가를 가든 말든 신경을 끊으라고 했잖아요.”

“올케가 우리 엄마에게 잘해주지 않으니까요.”

“저것을 경상도 사투리고 ‘디비 쫀다’라고 해요. (모두 웃음) 친정에서는 자기 엄마 편을 들어서 올케가 친정어머니한테 못 한다고 올케를 욕하고, 시댁에서는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해서 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못 한다고 시어머니를 욕하고, 자기 유리한 대로만 생각하고 있어요. 속보여요.”

“네, 알겠습니다.”

“장모가 딸네 집에 갔을 때는, 딸이 자고 있고 사위가 일찍 일어나 밥해서 딸을 깨우는 모습을 보면 좋아 보이잖아요. 딸에게 ‘너 이러면 안 된다’라고 해도 속으로는 흐뭇해요. ‘아이고, 우리 영감도 저랬으면 얼마나 좋겠나’ 이럽니다.

그런데 아들네 집에 갔을 때는 똑같은 상황인데도 정반대의 마음이 듭니다. 며느리는 자고 있고 아들이 일찍 일어나 밥해서 아이들 가방 챙겨서 학교에 보내는 모습을 보면 속이 탑니다. 질문자 심보가 지금 그런 심보예요.”

“네, 그래서 저도 정신 차리려고 이렇게 질문을 드렸습니다.”

“시어머니가 되었다면, 아들이 그렇게 해도 눈 뒤집어지지 말고 ‘아이고, 그래도 우리 아들이 사람 됐네, 그래 역시 내 아들이다’ 이렇게 얘기를 해야 합니다. 딸네 집에 갔을 때 딸이 아침에 누워 자고 있으면, 딸을 일으켜 세워서 ‘네가 그렇게 살아서 되겠니!’ 이렇게 야단쳐야 합니다. 그래야 고부 갈등이 없어집니다. 전부 질문자와 같은 심보를 내기 때문에 간단한 문제가 안 풀리는 거예요.

어릴 때는 어머니가 자기를 차별하고 오빠한테만 잘해주었다고 원망했으면서, 또 막상 결혼해서 자기가 아이를 낳으면 자기도 아들만 좋아하고 딸을 차별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이것은 잘못된 거예요. 그렇게 올케를 미워하면 안 돼요.”

한 질문자는 스님을 맹신해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맹신하면 안 된다고 하며 ‘자각’을 강조했습니다.

스님 말을 맹신해도 되나요?

“제가 스님 즉문즉설 유튜브를 매일 보는데요. 자꾸 스님 말씀을 듣다 보니, 스님 말씀을 맹신하게 돼요. 맹신해도 될까요?”

“안됩니다. 법륜스님은 맹신하라고 하나요, 깨달으라고 하나요? 깨달으라고 하는데 맹신하면 어떡해요?

우리 정신 작용 중에 가장 수준이 높은 정신작용은 ‘자각’, 스스로 깨닫는 것입니다. 감정은 자동적으로 올라옵니다. 자기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자기를 알아차려야 해요.

‘아, 내가 이렇게 습관적으로 반응하는구나’
‘이렇게 하면 내 손해구나’

이렇게 알아차리면 앞으로 반응을 안 하게 됩니다. 가만히 두면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을 사람도 자기가 가는 길을 알아차리면 발걸음을 돌릴 수 있어요. 운명도 바꿀 수 있습니다. 운명을 바꾸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자각입니다. 자각을 하면 변화가 오기 시작합니다. '내가 화가 많네', '욕심이 많네', '고집이 세네' 이렇게 자기가 자기를 알아차리면 변화가 옵니다. 미래에 가장 필요한 것은 자각입니다."

기억을 잊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마지막 질문자는 일어나자마자 객석에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어린이가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요즘에 트라우마가 생겼습니다.” (모두 웃음)

“무슨 트라우마예요?”

“친구랑 좀 크게 싸웠어요.”

“얼마나 크게 싸웠어요? 코가 부러졌어요, 팔다리가 부러졌어요?”

“얼굴이 좀 많이 다쳤어요.”

“어떻게 다쳤어요, 몇 바늘 꿰매었어요?”

“얼굴이 많이 긁혔어요.”

“긁힌 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무튼 그런데 그게 잘 때도 막 생각나고 지울 수 없어요. 기억을 지우는 방법을 좀 알고 싶어요.” (모두 웃음)

아이가 심각하게 질문하자 청중은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 박수를 치며 웃었습니다.

“아직 기억을 지우는 약은 없어요. 좀 있으면 약이 나올 거예요. 기다려 봐요.(모두 웃음) 어릴 때는 싸우다가 얼굴도 긁히고, 머리도 좀 깨지고, 붕대를 싸매기도 해요. 그러다 며칠 지나면 나아요. 앞으로 약이 나오면 약으로 기억을 지우면 되는데 스님한테 물었으니까 방법을 알려줄게요. 기억을 지우는 방법은 ‘별거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뭐라고요?”

“별거 아니다”

“흉터는 길어봐야 일주일이나 열흘 있으면 나아요. 흉터는 다 나았죠?”

“네”

“별거예요, 별거 아니에요?”

“별거예요.” (모두 웃음)

솔직한 대답에 청중은 자지러졌습니다.

“지우려면 어떻게 생각하라고 했어요?”

“편안하게 하라고요.”

“아니 그건 아까 어른들한테 한 얘기예요. 친구하고 싸운 일을 지우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한다고요?”

“음… 별거 아니다.”

“그래요. 별일 아니에요. ‘살다 보면 넘어지고, 긁히고, 다칠 수도 있다. 부러지면 깁스하면 된다. 별거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뭐라고요?”

“별거 아니다.”

“그래요. 또 해보세요. 뭐라고요?”

“별거 아니다.” (모두 박수)

망설이던 아이가 점점 크게 대답을 하자 청중은 박수로 응원했습니다.

“그래, 별일 아니에요. ‘별거 아니야, 괜찮아’ 이러면 지워집니다!”

“네.”

스님은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어린 시절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지금은 한 대 때린 놈, 얼굴 긁은 놈을 확! 때리고 복수를 해주고 싶지만, 네가 내 나이가 돼서 돌아보면 별일일까요, 별일 아닐까요? 마이크 대고 한번 얘기해 보세요. 한 50년 지나서 돌아보면 친구한테 맞은 게 별일일까요, 별일 아닐까요?”

“별일인 거 같아요.” (모두 웃음)

“그래 이해는 돼요. 저도 선생님한테 두들겨 맞고 일기에다 이렇게 써 놨어요. ‘내 절대로 이일을 잊지 않을 거다’(모두 웃음) 거기다 ‘나이 들어서 이 일을 별 일 아니라고 하면 절대 안 된다!’ 이런 단서까지 붙여놨어요. 심정은 이해가 돼요. 그래도 앞으로 10년, 20년 지나고 돌아보면 별 일 아니에요. 나쁜 기억을 잊는 방법 뭐라고요?”

“별일 아니다.”(모두 박수)

“내일부터는 싸운 친구하고 잘 놀아야 해요.”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늙어서 돈 없어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있나요?
  • 둘째 아이를 계획 중입니다. 아이를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키우는 방법이 궁금해요.
  • 2-3년 전부터 직장 상사와 갈등이 생기면서 자존감이 떨어졌어요. 결국 이직을 했는데, 이직하고 나서도 힘들어요. 죽고 싶은 마음도 들었어요.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요?
  • 원래는 기독교인이었다가 법륜스님을 알고 불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해외에서 불교대학을 다니기 위해 귀국했습니다. 저는 사람을 구조하는 일을 했는데 제가 살리지 못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끔찍한 광경도 많이 보았습니다. 10년이 지난 일도 가끔씩 꿈에 나타나요.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 41살, 40살 아들 둘이 있는데 결혼을 안 해요. 아들들이 나이를 먹어가는 게 무서워요.
  •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인덕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구설수도 많고, 배신도 많이 당했어요. 아이도 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 3개월 후에 출산을 앞두고 있습니다. 임신을 한 후 육아에 대한 스님 동영상을 다 봤어요. 그래서 아이가 3살까지는 제가 꼭 키워야겠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그런데 20대부터 열심히 쌓아 온 제 경력이 단절되는 게 걱정돼요. 아이 키우면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일을 해도 될까요?
  • 이십 대 초반에는 해외에서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면서 행복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십 대 중반이 되고 한국에 돌아와서 안정적인 길을 가기 위해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갑갑해요.

마지막으로 질문자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스님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감사인사를 하는 분도 있었고, 질문을 하고 나서 오히려 더 착잡해졌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친구와 싸운 어린이는 시원하게 외쳤습니다.

“별 거 아니다!”

가장 큰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습니다.

“어른 보다 낫네요.”(모두 웃음, 박수)

두 시간이 훌쩍 넘었습니다. 다른 때 보다 마치는 시간이 늦었습니다. 스님은 “너무 늦었네요. 여러분,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라고 인사한 후 강연을 마쳤습니다.

낙엽에 달빛이 내립니다. 밤공기는 조금 더 차가워졌지만 상쾌합니다. 강연장을 나서는 사람들에게도 맑은 가을이 물들었습니다.

스님은 서초 정토법당에 도착해 원고 교정을 본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경기도 성남시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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