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10월 마지막 주입니다. 가을이 한층 깊어졌습니다.


스님은 어제 울산에서 애광원 식구들과 나들이를 하고 두북에서 하룻밤 묵었습니다. 차가 막히는 출근 시간을 피해 새벽 3시에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평화재단에서 10시, 11시, 1시에 줄줄이 회의가 있었습니다. 4시까지 회의를 마치고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저녁 강연은 충남대학교에서 열렸습니다. 어둠이 내린 거리에 차들이 계속 밀려왔습니다.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강연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주차장도 만차, 강연장도 만석이었습니다. 8백 명이 더 왔습니다. 좌석이 없는 사람들은 통로 한편에 앉아 강연을 들었습니다. 백여 명은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총 2천6백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중요 무형문화재 제45호 손유택 님의 대금 연주가 있었습니다. 뱃노래, 아리랑 등 익숙한 민요 가락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습니다.

7시 30분이 되자 스님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서울에서 강연을 들으러 온 박병석 국회의원과 박범계 국회의원이 인사를 했습니다.

“저도 즉문즉설 들으러 왔습니다.”(모두 박수)

인사를 나눈 후 바로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저도 준비가 필요 없고, 여러분도 준비가 필요 없습니다. 자기 고뇌를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대화를 하면 됩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총 10명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새어머니 밑에서 힘들게 자라서 50대가 되어서도 새어머니가 원망스럽다는 질문자와 대화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새엄마 밑에서 너무 힘들게 살았습니다

“제가 3살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새엄마 밑에서 어려서부터 눈치를 보고 고생을 많이 하고 자랐습니다. 저한테 언니가 4명 있는데, 초등학교 중학교 나오면 다 내쫓는 형식으로 형제들이 다 너무 어렵게 컸습니다. 모두 도망가다시피 결혼을 했습니다. 원수의 자식도 저렇게는 안 키웠겠다는 원망으로 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결혼하고 나서도 IMF 때 남편의 사업이 망해서 힘든 시간들을 지나왔습니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셨는데 제가 고 3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 연금으로 새엄마가 살고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아파서 열이 펄펄 나고 학교도 못 가고 있을 때 새엄마는 한 번도 제 방에 들어와서 들여다본 적도 없었고 잘 챙겨주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잘 먹지도 못했는데 왜 이렇게 컸나 모르겠습니다. (웃음)

하지만 지금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경제적인 여유를 찾았고, 남편도 잘 만났고, 아이들도 어려움 없이 잘 컸습니다.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분노와 원망이 많지만, 저는 지금 이대로가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새엄마가 아버지 연금으로 혼자 사는데 그쪽에 아들이 4명 있습니다. 새엄마가 지금 92세인데 장애 2급 신장 투석을 하고 안 좋은 상태입니다. 문제는 거기도 자식들이 새엄마를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는 거예요. 큰아들이 병간호를 하고 있지만...”

“이렇게 얘기하면 오늘 밤새도록 얘기하겠네요. 그래서 고민이 뭐예요?”

“새엄마가 지금 저를 보고 싶다고 찾고 있다는 겁니다.”

“내가 만나고 싶으면 가면 되고, 만나기 싫으면 안 가면 돼요.”

“저는 정말 가기 싫습니다.”

“그러면 안 가면 돼요.”

“저도 스님 말씀처럼 ‘보기 싫은 사람을 굳이 볼 거 뭐 있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주변에서 ‘내일모레 돌아가실 분이니 가서 용서를 구해라’ 그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제 실질적인 마음은 가고 싶지 않은데요.”

“그러니 안 가면 된다니까요. (모두 웃음)

가기 싫으면 안 가고, 가고 싶으면 가면 돼요. 그런데 용서는 할 것이 없어요. 왜냐하면 새엄마가 잘못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에요. 내가 아플 때 와서 머리를 안 짚어준 것은 잘못한 것이 아니에요. 그건 잘하지 안 했을 뿐이지요. 잘하지 않은 것을 잘못했다고 얘기하는 건 잘못된 거예요. 길을 가다 거지를 보았을 때 돈을 안 주었다고 해서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안 주면 그만이에요. 그것처럼 새엄마가 학교에 한 번도 안 찾아왔다거나, 머리가 아픈데 안 들여다봤다고 해서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좋은 엄마는 아니지만 나쁜 엄마도 아닙니다.”

“이 자리에서 제 어렸을 때 얘기를 다 할 순 없지만, 아버지와 형제들을 이간질해서 형제들이 너무 심적 고생이 많았습니다.”

“새엄마가 와서 일찍 집에서 쫓아내 주었기 때문에 자식들이 집을 나와서 빨리빨리 결혼도 하고 자립해서 잘 사는 겁니다. 만약 계속 자식을 데리고 있으면 오십이 넘도록 부모한테 의지해서 살게 되는 거예요. 집에서 빨리 내보내는 것은 하나도 나쁜 것이 아니에요. 질문자가 다른 아이들과 자기를 비교하면서 ‘내 부모가 나를 좀 덜 돌봐준다’, ‘새엄마라서 그렇다’ 이렇게 자꾸 핑계를 대면서 만든 병입니다. 친엄마도 그런 사람 많아요. 새엄마의 문제는 전혀 아닙니다.”

“그럼 스님 말씀대로 새엄마의 잘못이 아니라면, 내일모레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 저를 애타게 찾고 있으니 가봐야 할까요?”

“새엄마가 잘못했으니까 안 들여봐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새엄마가 아무 잘못이 없다 하더라도 새엄마를 안 들여다보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이에요. 새엄마를 원망하는 것은 질문자의 잘못이지만, 새엄마를 안 들여다보는 것은 아무 잘못이 아니라는 겁니다.”

“원망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씀은 제 잘못이라는 뜻인가요?”

“질문자의 잘못이지요. 원망할 사람이 아닌데 왜 원망을 해요? 멀쩡한 하늘을 보고 원망하거나, 멀쩡한 남산을 보고 원망하면 자기 잘못인 것과 같아요. 새엄마는 그냥 이 집에 시집와서 그냥 자기 하는 대로 했고, 애들이 크니까 얼른얼른 보내버렸습니다. 자기가 낳은 아이들도 4명을 놔두고 왔는데, 남의 아이들을 뭣 때문에 열심히 키우겠어요? 대충대충 키워서 내보내지요. 너무 당연한 얘기예요. 새엄마가 무슨 악독한 여인도 아니에요. 질문자가 원하는 만큼 새엄마가 안 해줬다는 것은 저도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고 나쁜 여자는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도 새엄마가 밥을 해 먹여 줬으니까 컸지, 안 그랬으면 어떻게 컸겠어요?

질문자가 원하는 만큼 안 해줬다고 해서 원망할 대상은 아닙니다. 그리고 원망을 하고 말고에 관계없이, 새엄마가 나를 보고 싶다는 것은 새엄마의 사정이고, 내가 가느냐 안 가느냐는 내 사정입니다. 내가 안 간다고 해서 죄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물론 찾아뵈러 가면 좋은 사람이죠. 내가 자주 가서 들여다보고 도와주면 훌륭한 딸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내가 안 간다고 해서 나쁜 딸은 아닙니다. 그것처럼 새엄마가 나를 알뜰하게 돌봐줬으면 좋은 엄마이지만, 안 돌봐줬다고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거예요. 질문자는 지금 약간 거꾸로 하고 있어요. 나쁜 사람 아닌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안 가도 되는데 또 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이 얘기하는 것은 들을 필요가 없어요.”

“그럼 제가 좋은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기는 좋은 사람이 될 수준이 안 돼요. (모두 웃음) 자기를 직접 낳은 엄마는 아니지만 그래도 새엄마가 와서 밥 먹여주고 초등학교까지는 보내줬을 거 아니에요. 중학교까지 보내줬으면 더 다행이고요. 친엄마인데도 딸들을 초등학교 이상 안 보내는 사람도 있어요.

새엄마를 원망하는 이유는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입은 상처를 지금까지 붙잡고 있는 거예요. 어릴 때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었다는 것에 상처를 입고 질문자가 그걸 움켜쥐고 있는 것이지 새엄마의 잘못은 아니에요. 용서할 것이 없어요. 자기가 무슨 용서를 해요. 그건 엉뚱한 생각이에요. 가고 싶지 않으면 가지도 말고, 용서도 하지 말고, 원망도 하지 않는 게 제일 낫습니다.

새엄마를 원망하면 질문자가 나쁜 사람입니다. 원망하지 않으면 그냥 보통 사람이고요. 병문안을 가면 좋은 사람이에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으면 병문안을 가면 됩니다. 그러나 병문안을 안 간다고 해서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옛날에 엄마가 나를 이렇게 대했기 때문에 나쁜 사람이다’, ‘나에게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병문안은 안 간다’ 이런 생각은 잘못됐다는 거예요. 새엄마를 미워하지 않으면 질문자가 지금 괴롭지 않고, 새엄마를 원망하지 않으면 새엄마가 돌아가신 뒤에 질문자가 후회를 안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 새엄마를 원망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새엄마가 돌아가시면 질문자는 후회를 하게 됩니다. 새엄마가 살아 있을 때는 미워하고, 새엄마가 죽고 난 뒤에는 후회하고, 이래도 고통 저래도 고통이에요.”

“그동안은 제가 보통 사람은 됐던 것 같아요. 관심 자체가 없었거든요. 돌아가시기 직전에 자꾸 그런 얘기가 들리니까 제 혼자 생각에 병문안을 가봐야 하나 갈등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새엄마를 위해서 병문안을 가는 것이 아니라, 새엄마가 돌아가신 뒤에 내가 후회를 안 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잖아요. 그건 나를 위해서 가는 것이지 새엄마를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에요. 병문안을 가더라도 ‘새엄마를 위해서 간다’ 이런 착각은 하지 마세요. ‘병문안을 안 가고 돌아가시면 내가 후회될 것 같아서 간다’, ‘다른 사람이 손가락질할 것 같아서 간다’ 이렇게 나를 위해서 병문안을 간다고 생각해야 새엄마가 뭐라 그래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어요. 왜냐하면 나를 위해서 갔기 때문입니다. 만약 새엄마를 위해서 갔다고 생각하면 새엄마가 질문자를 원망하거나 무슨 잔소리를 하면 기분이 팍 나빠집니다. 새엄마가 무슨 소리를 해도 ‘아, 이건 나를 위해서 간 것이지 엄마를 위해서 간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분 나쁠 것이 없어져요.”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외에도 가장 많았던 질문은 ‘자식 문제’였습니다. 오늘은 아버지가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 아들이 프로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해서 물심양면 지원해줬는데 담배를 피기 시작했어요. 담배를 피우면 폐활량이 나빠질 텐데 아들이 담배 피우는 사실을 숨기고 변명을 해요. 아버지로서 어떻게 지혜롭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 얼마 전에 대학교 1학년인 막내아들이 스님이 되겠다고 절에 들어갔다가 2주 만에 나왔어요. 아들이 마음을 못 잡는 거 같은데 아버지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곤혹스러워요.
  • 아이 셋을 키우는 오십 중반 회사원입니다. 2년 전에 집을 팔고 전세로 옮겼습니다. 2년 만에 집값이 폭등해서 집을 다시 사기 어려워졌어요. 갑자기 세상이 바뀌어서 괴로울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전 세계가 성장을 향해 달려가는데 과연 누구를 위한 성장일까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믿었는데 실망스럽습니다.
  • 칠십이 넘은 할머니입니다. 아들이 49살인데 직업 없이 무능하게 엄마 밑에서 살고 있어요. 제가 운영하던 모텔을 아들 부부가 일하도록 했는데 아들은 일을 안 하고 착한 며느리가 일을 다 해요. 마음이 불편해요. 아들이 모텔은 돈이 잘 안되니까 팔라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 바람피웠던 남편과 이혼하려고 하는데 미성년자인 아들에게 어디까지 진실을 이야기해줘야 할까요?

20대 질문자들은 성격, 인간관계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 23살 대학생입니다. 중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어요. 그때부터 불면증이 심했고, 많이 우울했어요. 지금도 사람에게 마음을 잘 못 주겠어요.
  • 28살 직장인입니다. 4년 동안 일한 회사가 어려워져서 다음 달에 그만두게 됐어요. 네 곳에 지원을 했는데 떨어졌어요. 자존감이 떨어져요.
  • 주변 사람을 모두 경쟁상대로 보고, 이겨야 할 사람이 없으면 무기력해져요.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한 말씀 부탁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어제 사랑했던 어머니의 49재 일이었습니다. 평소 어머니가 법륜스님을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스님께서 저희 어머니 좋은 데 가시라고 한 말씀만 해주세요. 제가 딸로서 마지막으로 해드릴게 이거밖에 없어요.”

울먹이던 질문자는 마음이 편해졌다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나는 사람, 점점 나이 들고 아픈 부모님이 그려지는 사람. 자식들을 두고 세상을 떠날 생각이 떠오르는 사람 등 가볍게 웃는 사람도 있었지만 울먹이는 질문자를 따라 눈물짓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가볍게 살라는 말로 강연을 마쳤습니다.

괴로워하면서 살기에는 너무 짧은 인생

“삶을 조금 가볍게 사세요. 너무 무겁게 살지 마세요. 삶이란 것이 그렇게 괴로워하면서 살만큼 길지 않습니다. 또 괴로워하면서 살만큼 인생의 가치가 없습니다. 괴로워하면서 살만한 가치가 없으니까 토끼는 괴로워하지 않고 살잖아요. 여러분들이 너무 인생을 길게 생각하고 의미를 너무 많이 부여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인생살이가 피곤하고 힘든 거예요. 나중에 죽을 때가 되어서 자기 삶을 돌아보면 지금 이 시기가 엊그제 같아요. 지금 하루하루는 긴 것 같죠? 80년 지나서 돌아보면 그냥 휙 지나온 것 같아요. 그런데 뭐 그 짧은 인생에 막 괴로워하고 미워하면서 살려고 해요?

새엄마가 와서 밥을 해주었으면 고맙다고 해야 되는데, 아플 때 와서 손 짚어주지 않았다고 원망을 합니다. 그런다고 아픈 것이 낫나요? (모두 웃음)

어릴 때는 그게 섭섭할 수 있는데,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었다면 ‘아, 그거 별 거 아니구나’ 이렇게 깨우침이 있어야 됩니다. 너무 무겁게 살지 말고 가볍게 사세요. 여름 장마철처럼 칙칙하게 사는 게 좋아요? 가을 하늘처럼 맑게 사는 게 좋아요?”

“가을 하늘처럼요.”

“그래요. 그렇게 맑고 밝게 생활하면 돼요.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이나 부모에게 너무 간섭하지 마세요. 간섭하느라 안 돌아가는 머리를 돌리려니까 머리에 열이 나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지 말고 조금 가볍게 사시기 바랍니다.”

가을밤이 깊어갑니다. 곱게 물든 단풍은 미련 없이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말없는 자연의 가르침 속에서 하루가 저뭅니다. 스님은 서울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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