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농사일을 하고 저녁에는 진주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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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예불과 108배, 명상으로 내 마음을 살피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침을 먹고 7시부터 비닐하우스에 모여 일을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어제 따 놓은 고추를 씻었습니다.


행자들은 벌레 먹은 고추와 잎을 따고, 스님은 텃밭의 잡초를 매고 고수를 수확해 다듬었습니다.


점심으로 감자와 호박이 듬뿍 든 국수를 먹고 오후에는 얼마 전 태풍 피해를 입은 논을 둘러보았습니다.

물길이 넘쳐 축대가 무너져 흙과 돌무더기가 논을 일부 덮었습니다.

“아이고, 사람 손으로 복구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네.”

흙과 돌에 파묻힌 벼들을 보며 스님은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무너진 축대 아래로 가까이 내려가 보았습니다.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만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다음은 산소로 향했습니다. 태풍이 지나가고 나서 산소에는 피해가 없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다행히 산소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습니다. 산소에 절을 하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산소에는 피해가 없었지만 내려오는 길에는 나무가 여러 개 쓰러져서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넘어진 나무를 넘고 피해 가까스로 산을 내려왔습니다.

오후 네 시에 진주로 출발했습니다. 차창밖으로 가을 햇살이 쏟아졌습니다.

휴게소에 들러 짜장면으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습니다.

저녁 강연은 진주 경상대학교 컨벤션 센터에서 열렸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은 저녁, 삼삼오오 짝을 지은 사람들이 강연장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천명이 가득 자리를 메운 가운데 박수소리와 함께 스님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안녕하세요! 즉문즉설은 살아가면서 겪는 인생의 고뇌나 의문을 드러내 놓고 저와 대화하면서 좋은 길을 찾아가는 시간입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자기가 선택해서 자기가 살아가면 돼요. 그런데 문제는 괴롭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바라는 대로 결과가 안 나오기 때문이에요. 이런 삶의 괴로움에 대해 불평만 하지 말고 저와 함께 ‘왜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을까?’에 대해 원인을 한번 찾아보는 거예요.

신체의 병은 고장 난 부분을 찾아서 고치면 나을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병인 괴로움도 마음작용에 고장이 생긴 거예요. 그 부분을 찾아서 치료하면 됩니다. 마음의 병은 이치를 잘못 아는 데서 옵니다. 착각이라고 할 수도 있죠. 그 부분을 찾아서 바르게 인식하면 괴로움이나 화가 사라집니다. 몸이 아플 때 육체의 병을 치료하듯이 마음의 괴로움도 치료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병이 깊으면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약을 먹고 상담을 받아야 해요. 만약 가벼운 증상이라면 자기가 자기를 치유할 수 있어요. 이때 저는 여러분이 자기 스스로 병을 치유할 수 있게 조금 도와주는 것뿐입니다. 자, 그럼 바로 실습을 해보겠습니다.(웃음) 이론이 아니라 실전이 중요하니까요.”

스님은 짧게 인사말을 건넨 후 참석자들에게 곧바로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대학교에서 즉문즉설이 진행되어서인지 진로, 학업, 연애에 대해 질문하는 대학생이나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오늘은 착했던 아들이 서른이 넘어서부터 욕하고 대드는 바람에 화병이 생겼다는 어머니의 질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저는 아들과 사이가 너무 안 좋습니다. 제가 무슨 말이든 하면 듣기 싫어하고 무조건 대듭니다. 좋게 대화를 하다가도 결국 싸우게 됩니다. 엄마인 저한테 해서는 안 되는 욕을 하며 상처를 줍니다. 그래서 지금은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안 합니다. 참다 보니 몸과 마음이 아프고 울화가 많이 쌓인 것 같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다짐해보아도 잘 안 됩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로 어떤 문제로 아들하고 의견 다툼을 하는 거예요?”

“주로 일을 하다가….”

“아들하고 한 집에 같이 살아요?”

“네.”

“같이 사는 것부터 잘못됐어요.”

“집을 나가라고 해서 나갔는데 다시 또 들어왔어요.”

“질문자가 들어오라고 그랬어요?”

“아니요. 들어오지 말라고 했는데, 돈이 없어서 들어왔어요.”

“그러면 방을 하나 딱 내주고, 이웃집 총각에게 세를 줬다고 생각하고 일절 간섭을 안 하면 돼요.”

질문자는 가슴이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아들이 몇 살이에요?”

“40살입니다.”

“40살이면 한 나라를 경영할 만큼 어른이에요. 어른한테 잔소리를 하면 어떡해요. 잔소리는 하지 말아야죠.”

“너무 착했는데 30대가 되고 나서부터 달라졌어요.”

“착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예요. 착했다는 것은 무슨 뜻이에요? 엄마 말을 잘 들었다는 거잖아요. 사춘기가 되면 벌써 자기 마음대로 연애도 하고,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해야 되는데, 그때 엄마가 시키는 대로 했으니까 결과가 이렇게 되는 건 당연한 거예요. 그러니 어릴 때 착했다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엄마가 보기에 착했다는 말은 엄마가 말하면 다 들었다는 건데 그건 노예와 마찬가지예요. 질문자가 아들을 노예로 키웠기 때문에 아직도 집에 붙어서 사는 거예요. 결국 질문자의 잘못이에요.

만약 4살 때부터 설거지하고 밥하는 것을 가르쳤으면, 커서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할 텐데, 스무 살 때까지 부엌에도 못 들어오게 하고 공부만 하라고 했기 때문에 자립할 기회를 놓친 겁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여자 친구도 사귀고, 남자 친구도 사귀고 해야 연애하는 걸 배우는데, 스무 살 넘어서까지 부모가 통제를 하니까 사람 사귀는 법을 모르는 거예요. 질문자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이 문제는 100% 질문자 탓이에요.”

“저는 간섭을 많이 안 했다고 생각합니다.”

“간섭을 안 했는데 어떻게 아들이 엄마한테 화를 내겠어요?” (모두 웃음)

“아들이 어릴 때 아빠가 항상 애를 야단치기만 해서 제가 좀 두둔했는데, 그게 잘못됐는가 싶습니다.”

“그것도 질문자가 잘못했어요. 엄마가 애를 잘 키우려면 부자끼리 싸우든지 사이좋게 지내든지 신경을 안 써야 돼요. 아빠가 자기 아들에게 뭐라고 하는 건데 그걸 왜 엄마가 간섭해요?”

“아들이 어릴 때부터 아빠의 사랑을 못 받아서요. 아빠가 아들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걸 한 번도 못 봤거든요.”

“또 남편 탓을 하네요. 그래서 인생이 괴로운 거예요. 성당에 다녀요?”

“절에 다닙니다.”

“절에 가서 복이나 빌고 그러지 말고 오늘부터 성당에 다니세요. 성당에 가보면 가슴을 세 번 치면서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로다’ 그럽니다. 아들이 이렇게 된 것은 남편 탓도 아니고, 아들 탓도 아니고, 전적으로 엄마 탓이에요. 갈비뼈가 부러지도록 가슴을 치면서 ‘내 탓이요’라고 해야 돼요. 그리고 오늘부터 집에 가면 딱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아들을 이웃집 총각이라고 생각하세요.”

“지금은 아들과 말을 안 하고 삽니다.”

“질문자가 말을 하고 싶어도, 아들이 질문자 하고는 말을 안 하려고 하니까 말을 못 하고 사는 거겠죠. 자기가 말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거잖아요. 말만 하면 아들이 화를 내니까요.”

“네.”

“앞으로는 아들에게 간섭하고 싶은 생각을 버려야 됩니다. 절에 다니신다고 하니까 기도법을 알려드릴게요. 매일 아침 108배 절을 하면서 이렇게 기도해보세요.

‘저분은 남입니다.’

그리고 마흔 살 남자 한 명이 집에 세 들어 산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질문자도 조심하게 될 거예요. 그렇게 남이라고 생각해야 질문자가 아들을 성인으로 존중하면서 대하게 됩니다. 존중한다는 것은 높이 받들라는 뜻이 아니라, 성인으로 인정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야 이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성인이 된 자식이 결혼을 했든 이혼을 했든, 직장을 가든 안 가든, 밥을 먹든 안 먹든, 일절 관여를 안 해야 됩니다. 만약에 한 집에서 같이 밥을 먹는다면, ‘밥 먹어라’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식사 시간입니다’ 이렇게만 알려주세요. (모두 웃음)

와서 먹으면 다행이고, 안 먹으면 그만이고요. 밥때가 지난 뒤에 ‘밥 주세요’라고 해도 밥을 주면 안 돼요. 그냥 ‘찾아 먹으세요’ 이렇게 말해야 돼요. 그분은 나이가 마흔 살의 어른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오늘부터 ‘저분은 남입니다’ 이렇게 기도해보세요. 가장 먼저 질문자가 아들을 100% 남 같이 대해야 해요. 남 같이 대한다는 것은 외면하라거나 말도 안 하고 미워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남 같이 대한다는 것은 자식의 인생에 일절 간섭하지 않고 한 사람으로서 존중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3년 동안 기도를 해보세요. 그러면 관계가 개선이 될 거예요. 기도문이 뭐라고요?”

“저분은 남입니다.” (질문자 웃음)

“저분은 남이라는 말의 뜻은 ‘저분이 부처님입니다’ 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저분이 남입니다’ 하는 것을 확실히 인정하는 것은 ‘우리 아들이 부처님입니다’라고 깨닫는 것과 같은 의미예요. 그만큼 아들을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존중해줘야 돼요. 질문자는 아들을 아직도 어린애처럼 간섭하고 있어요. 아들이 너무 화를 내니까 지금 겁이 나서 간섭을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아들이 엄마가 말하면 화를 낸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거예요. 어릴 때부터 엄마가 아들에게 너무 잔소리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질문자는 오늘부터 입을 딱 다물어야 돼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내년 2월에 졸업하는데 이렇다 할 경력이 없습니다. 자신이 없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고 현실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제가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요?
  • 저는 옛날부터 스님 말씀을 듣고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했고,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밥벌이를 항상 강조하셨는데, 밥벌이 다음에는 어떤 단계가 있나요? 또 제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안 나올 때가 많은데 그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저는 꽤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주변에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데,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면 그때마다 더 열심히 살라고 해서 속상해요.
  • 성인이 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많이 벌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좋았는데 너무 돈에 매여 사는 것 같아 걱정이 되기도 해요. 자기 계발이나 취미활동을 해보려고 해도 금전적 이득을 자꾸 따지게 돼요.
  • 8개월 된 아기가 확장성 심근병증이라 약물치료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엄마로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어요. 어떤 기도를 하면 좋을까요?
  • 시골에서 작은 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진료를 하다가 치료를 잘 못하면 자책하게 됩니다. 최선을 다해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 괴로워요.
  • 간호사가 되고 싶어서 간호학과에 왔는데 태움 문화가 무서워요. 이제 곧 정식 간호사가 될 텐데 걱정이에요.
  • 저는 질문하고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데 남자 친구가 그런 제 모습을 싫어해요. 이런 남자 친구와 잘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은 신청한 질문을 모두 받았습니다.

“오랜만에 다 했네요. 그럼 질문자들의 소감을 들어보겠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만사가 귀찮다는 대학생이 먼저 소감을 말했습니다.

“저를 돌아보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제일 좋은 소감은 ‘내일 병원에 한번 가보겠습니다’ 하는 거예요.”

“병원도 짬 날 때 가보겠습니다.”

“짬날 때 가면 안 되죠.”

“내일 가보겠습니다.”

“잘했어요. 여러분도 약간 심리가 불안하고 예민할 때 정신과에 가서 확인해보는 걸 두려워하지 마세요. 약간 어지러우면 혈압을 재듯이 확인해보는 거예요.”

아들에게 상처 받는다는 어머니도 소감을 말했습니다.

“내일부터 당장 고치겠습니다.”

“뭘 어떻게요?”(모두 웃음)

“저분은 남입니다.” (모두 박수)

질문자가 웃으며 말하자 청중도 웃으며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모든 질문자의 소감을 듣고 스님은 ‘인생을 가볍게 살자’고 말씀하시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제 말의 요점은 이겁니다.

‘웃으면서 살아도 짧은 인생이다. 웃으면서 살기에도 인생은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인생은 괴로워하면서까지 살 만한 가치가 없다.’

우리가 인간관계를 맺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백 명, 천 명, 만 명, 십만 명, 백만 명과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일 가까이서 관계를 맺고 있는 남편이나 아내, 자식, 부모와 원수로 지내지 마세요. 부모니까 존경해라, 남편이니까 존경해라, 그런 말이 아닙니다. 배우자는 그래도 이 세상에서 제일 괜찮다고 생각해서 내가 고른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하고 원수로 지낸다면 자기 인생이 실패한 거라고 봐야 돼요. 그러니 도저히 서로 안 맞으면 빨리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정리를 하든지, 아니면 사람 바꿔봐야 별 사람 없다 생각하고 어지간하면 맞추고 살든지 하세요.

살아보면 별 거 없어요. 잘났고 못났고 그런 게 있는 것 같지만,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면 다 비슷합니다. 우리가 개미나 벌을 보면 다 비슷하잖아요. 변소에 가서 구더기를 보면 다 비슷해요. 그러나 구더기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각 주름살 개수도 다르고, 길이도 다르고, 무게도 다릅니다. 그래도 전체 눈으로 보면 다 비슷하듯이, 나이가 적니 많니, 잘났니 못났니 하지만, 조금 위에서 내려다보면 다 같습니다. 개미가 개미집에 들어가고, 벌이 벌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어떻게 길을 찾을까 신기하죠? 하늘 위에서 보면 사람들이 아파트에 있는 자기 집 구멍을 찾아서 들어가는 것도 신기할 거예요. 어떻게 자기 집이라고 찾아가며, 저 수많은 사람 중에 어떻게 자기 아내라고 찾을까, 이상하지 않아요? (모두 웃음)

인생을 살고 난 뒤에 돌아보면 사실은 별 거 아니에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인생을 너무 과대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인생은 길 옆에 난 한 포기 풀과 같다. 한 마리 개미나 다람쥐와 별 차이가 없다.’

이렇게 가볍게 생각할수록 인생이 위대해지는 거예요. 인생이 위대하다고 생각할수록 인생이 괴로워지고 개미처럼 작아집니다. 인생을 조금 가볍게 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자녀에게 장애가 있으면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남은 못 돌보더라도 저는 돌보겠습니다. 나하고 인연이 된 자식인데 힘들어해서 되겠습니까.’

이러면서 탁 내 일로 받아 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별것도 아니에요. 수녀님이나 봉사시설에서 일하는 분들은 자기 자식이 아닌데도 장애아를 돌보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은 기독교적으로 생각하면 하나님 오른편에 빨리 가는 사람이잖아요.

자꾸 두려워하지 말고, 정면으로 대응해보세요. 상대가 진짜 나쁜 짓을 한다면 신고를 해서 개선을 해야 돼요. 그런데 ‘뭐 이 정도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는 문화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가뿐하게 극복해나가야 됩니다. 그래야 삶이 좀 더 가볍지 않을까요? 이 말을 명심하시고 여러분들 모두 날마다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강연을 마치고 스님은 강연을 준비해준 봉사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 후 서둘러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서울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내일 출장 갈 준비까지 모두 마치고 스님은 잠깐 눈을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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