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미국 서부지역에서 즉문즉설 강연과 행자대회를 마치고, 미국 동부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동부지역에서도 2주간 머물며 즉문즉설 강연과 행자대회를 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뉴욕 플러싱에서 뉴욕 정토회 창립 25주년 기념식과 더불어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스님은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어둠 속에서 108배와 명상을 하고 조용히 짐을 챙겼습니다. 오늘부터 내일까지 이틀 동안 북미 서부지구 팀장들과 각 법당의 총무들은 선주 법사님과 수련을 합니다. 비행기 출발 시간에 맞추기 위해 스님과 수행팀은 활동가들이 깨기 전에 미리 기도를 마쳤습니다. 그래도 5시에 법당에서 활동가들과 함께 예불을 한 후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활동가들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삼배를 드렸습니다. 스님은 활동가들에게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격려하며 내년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수속을 밟은 후 게이트 앞에서 주먹밥으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미국 동부는 서부보다 세 시간 늦습니다.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5시간 30분을 이동해 뉴욕에 도착하니 오후 4시였습니다. 퇴근길 교통체증을 뚫고 숙소에 도착해 이른 저녁 식사를 한 후 오늘 강연이 열리는 플러싱 대동연회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입구에서 뉴욕 정토회 회원들이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뉴저지에 살고 있는 스님의 속가 형님이 강연장을 찾아와 스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뉴욕 정토회 25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특별 강연입니다. 그동안 뉴욕 정토회와 이런저런 인연이 있었던 많은 분들이 모였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서로 반가워하며 안부를 물었습니다.

먼저 축하공연으로 신재아 양의 첼로 연주가 있었습니다. 이어서 미국JTS 창립 이사이자 뉴욕 정토회의 산증인인 최경숙 님의 환영인사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유지나 님이 한국춤 공연을 보여주었습니다. 유지나 님은 1990년대 초 뉴저지에서 가정법회를 시작할 때 집을 제공하는 등 초창기에 큰 공헌을 하신 분입니다. 공연을 마친 후 감동적인 소감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저는 법륜 스님을 만나서 행복해진 사람입니다. 25년 전 한국에서 스님 한 분이 오셔서 법문을 하셨는데 그날 스님의 법문을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구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 바라는 마음을 바꿔라. 남편이 바뀌지 않아도, 어떤 경우에도, 나는 행복할 수 있다.’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말이었습니다. 딱 제 스타일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이렇게 전화기만 들면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때부터 스님께서 매년 오셔서 가정법회에서 법문을 했습니다. 그것이 세계 포교의 시작이라고 들었습니다. 뉴저지에서 스님은 4일 동안 오전에 경전을 강의하고, 오후에는 질문받고, 밤에는 거사회 모임도 했습니다. 스님의 가르침을 등불 삼아 지금까지 행복하게 신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이들과 주변과도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고 행복해졌습니다. 제가 변한 모습을 보고 딸아이도 스님 법문을 듣고 있습니다. 법회라는 단어를 몰라 ‘뷔페 먹고 왔어?’라고 했던 아이였어요. (모두 웃음)

스님의 가르침으로 제가 행복해졌고, 또 주변이 행복해지는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지난 25주년의 발자취를 동영상으로 보았습니다. 해외교민들을 위한 포교를 시작한 역사를 보니 많은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뉴욕 정토회 회원들과 함께 25주년을 축하하며 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불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무대 위로 올라가자 모두 큰 박수로 스님을 환영하였습니다. 스님은 먼저 어떻게 뉴욕 정토회가 생기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알려주었습니다.

“올해는 뉴욕 정토회가 설립된 지 25주년입니다. 제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가 횟수로는 올해로 40년이 됩니다. 1980년 9월에 처음 미국에 왔어요. 미국으로 온 이유는 1980년 5.18 광주 항쟁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때 저는 한국 사회에 굉장히 실망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시 한국으로 들어온 이유 역시 5.18 광주 항쟁의 영향이 컸어요. 미국에서 5.18 광주 항쟁에 대한 여러 가지 비디오와 자료들을 보고 나서 ‘다시 내 나라로 돌아가야겠다’ 하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후 한국에서 여러 가지 사회 운동을 했고, 다시 미국에 온 것은 1992년이었습니다. 그때 보스턴에서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라는 모임이 열렸는데, 모임의 주제가 지구환경의 파괴, 인류 공동체의 붕괴, 인간성 상실, 이 세 가지였어요. 우리나라에 훌륭한 스님들이 많이 계시지만, 환경 문제, 빈곤 퇴치, 수행에 대해 종합적으로 설명할 사람을 찾기 어려웠나 봐요. 그래서 여러 사람을 찾아다니다가 행사가 있기 3주 전에 그 발표 요청이 저한테까지 오게 된 거였습니다. 그때 저는 서울 변두리에 비닐하우스 쳐놓고 정진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발표 주제가 마음에 들어서 제가 미국을 방문하기로 했었습니다. 당시에 보스턴을 방문하면서 뉴욕도 함께 들르게 되었어요. 뉴욕에서 반야심경 강의를 3일 간 했고 그때 뉴욕 근교의 어떤 모텔을 빌려서 깨달음의장도 미국에서 처음으로 진행했어요. 그때 참여했던 멤버들이 중심이 되어서 뉴욕 정토회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올해로 창립 25주년이라고 한 걸 보니까 아마 1994년에 뉴저지에 처음으로 법당을 낸 것을 기준으로 한 것 같네요.

처음에는 아주 활성화되어서 잘 운영이 되었는데, 1995년부터 북한에 식량난으로 300만 명이 굶어 죽는 엄청난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제가 북한동포돕기를 하면서 법회도 다 취소해버리고, 미국에 와도 워싱턴 DC에 가서 북한 인도적 지원을 촉구하는 활동만 하고 다녔기 때문에 몇 년간 법회를 하지 못했어요. 그 과정에서 활동이 조금 주춤해졌는데, 몇 년 후에 다시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겁니다. 이렇게 25주년 기념행사를 하니까 저도 감회가 새롭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뉴욕 정토회와 인연 있는 200명이 초대를 받아 모였습니다. 지난 25년의 세월 한 귀퉁이를 스쳤던 분들입니다. 스님도, 청중도 감회가 새로운 듯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세계 70억 인구가 미국에 한 번이라도 가보는 게 꿈이에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런 미국에 지금 살고 있잖아요. 그것만 해도 행복해야 하는데, 행복은 온 데 간데없고 미국에 살면서도 얼굴을 찡그리고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미국에 사는 분들에게 강의할 때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러분들이 미국에 살면서 얼굴을 찡그리고 있으면, 전 세계 인류에게 희망이 없어집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살다가 힘들면 '미국에 가서 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는데, 정작 미국에 살고 있는 여러분들이 찡그리고 살면 인류는 도대체 무슨 희망을 가질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인류를 위해서라도 미국에 사는 여러분들은 웃으면서 살 의무가 있다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네.”

“오늘처럼 창립 25주년을 기념하는 날이면 여러분들은 춤추고 노래하고, 저는 뒤에 앉아서 구경하고 이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저만 보면 물을 게 있나 봐요. 그래도 물을 게 있다고 하니 한 번 대화를 시작해 봅시다.” (모두 웃음)

이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7명이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오늘은 그중 회사에 자신의 연구 성과를 제공하기가 아깝다는 분의 고민과 지금 한일 무역 전쟁에 대한 정부의 대처가 적절한지에 대해 묻고 대화한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내가 연구한 성과를 회사에 주기가 아까워요

“저는 제약회사에서 신약을 개발하면 가격을 책정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사람을 굉장히 많이 필요로 하는 일이고, 반복적인 일입니다. 작게는 2000개, 많게는 5000개의 논문을 수시로 다 점검해야 하는 일이에요. 약대를 다닐 때 이런 일을 자동화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차근차근 준비를 해왔는데요. 처음 회사에 취직했을 때는 소프트웨어와 관련이 없는 일을 했는데, 입사 후 사장님이 저한테 그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를 맡기게 되었어요. 저도 대학 때부터 비슷한 구상을 했기 때문에 이 소프트웨어를 만들 생각은 있는데, 막상 제가 연구했던 것을 풀어놓으려니까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열심히 안 하려니까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고요.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처신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하는 게 지혜로운 걸까요?”

“내가 연구한 것을 회사에 다 내어놓는 것이 아깝다는 것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연구한 것을 안 내어놓는 것으로 인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는 것은 좀 문제예요. 연구한 것을 내어놓을지 안 내어놓을지에 대해서는 자기가 결정하면 되지 양심의 가책을 느낄 이유는 없잖아요.

연구한 것을 안 내어놓으면 성과가 안 날 것이고, 성과가 안 나오면 사장이 자기를 회사에서 자르겠죠. 회사에서 안 잘리려면 자기도 연구 결과를 좀 내어놓아야 하고요. (모두 웃음)

물건을 팔 때 비싸게 팔면 나는 좋지만 손님은 안 사갈 것이고, 싸게 팔면 손님이 많이 사가지만 나에게 이익이 별로 안 남는 겁니다. 이것은 질문자가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이지 양심하고는 관계가 없어요.

질문자가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다 내어놓아서 성과를 내고, 그로 인해 사장이 이익을 봐야 질문자도 승진이 될 것 아닙니까. 예를 들어, 내가 100의 성과를 냈는데, 승진해서 월급으로 보상받는 것은 10밖에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이 회사에 취직을 했기 때문에 100의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100의 성과 중에 10밖에 안 돌아왔으니까 아쉽긴 하지만, 그렇다고 연구 결과를 안 내어놓으면 그 10도 얻지 못하잖아요.

내가 돈이 많거나, 나의 아이디어를 상용화시켜줄 투자자를 만나서 내가 100의 성과를 다 가질 수 있다면, 굳이 이 회사에 아이디어를 제공해줄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누가 질문자를 믿고 투자를 해주겠어요? 그래서 질문자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질문자를 취직시킨 이유는 질문자의 재능을 이용해 먹으려고 취직을 시켰을까요? 이용해 먹지 않으려고 취직을 시켰을까요?”

“이용을 하려고 취직을 시켜준 거겠죠.”

“질문자의 재능을 이용해 먹으려고 취직을 시켜준 것이기 때문에 질문자가 그 재능을 계속 내어놓아야 승진을 시켜주거나 고용을 유지할 겁니다. 재능을 안 내어놓으면 월급만 나가지 별로 도움이 안 되니까 잘라 버리든지 하겠죠. 그러나 재능을 안 내어놓았다고 해서 질문자가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질문자의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실래요? 지금 자신이 가진 아이디어가 굉장히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지금 아이디어를 제공해주고 나서도 나중에 계속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거예요? 한 번 아이디어를 써버리면 그걸로 끝이에요?”

“아이디어는 계속 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디어를 좀 제공해서 회사에 이익을 좀 주는 게 좋아요. 여러분들은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무료 강의로 알고 오는데, 무료가 아니에요. 후불제입니다. 나중에 필요할 때 한꺼번에 다 받을 거예요. 그것처럼 질문자가 먼저 좀 베풀어야 해요. 회사가 질문자의 덕을 좀 봐야 질문자를 좀 승진시켜 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질문자가 중요한 직책에 있어야 다른 회사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고, 다른 회사에서 질문자에 대해 주목을 해야 나중에 독특한 아이디어를 내면 투자처도 생길 것 아닙니까. 질문자가 먼저 좀 세상에 알려져야 투자처를 만날 수 있지, 질문자를 아는 사람이 없는데 누가 투자를 하겠어요?

물론 아무리 무명 인사라 하더라도 질문자가 독특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팔지 말고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기회를 봐서 투자를 받고, 그때 창업을 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것은 양심의 문제는 아니라는 겁니다. 선택의 문제입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자가 환한 웃음을 보이자 청중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어서 한일 무역 전쟁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처가 적절한지에 대해 묻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일본의 수출 규제, 한국 정부는 올바른 대응을 하고 있는 걸까요

“일본의 수출 규제에 맞대응한 대한민국 정부의 지소미아(GSOMIA,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 같은 여러 가지 정책이 과연 대한민국의 미래와 우리 후손들의 장래를 위한 올바른 대응인지에 대한 법륜 스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저는 올바른 대응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일 관계 문제는 우리가 먼저 도발을 했다면, 그게 과연 ‘국가 이익에 부합하느냐, 부합하지 않느냐’를 두고 얼마든지 논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우리가 도발을 한 게 아니라 일본이 도발을 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비굴하게 굴복을 하느냐, 아니면 맞대응을 하느냐’를 두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대응은 다를 수가 있어요. 과거사 문제만 놓고 보면 토론의 여지가 있습니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풀려고 한국 정부에 요청했을 때 한국 정부가 제대로 대응을 안 했다는 주장이 있잖아요. 다시 말해 ‘일본의 이번 수출 규제 조치 이전에 한국 정부가 제대로 했느냐, 안 했느냐’ 하는 문제는 토론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과 한국이 과거사 문제로 티격태격한 건 하루 이틀이 아니에요. 지난 50년간 내내 티격태격해 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한일 관계에서 정치적인 문제는 티격태격하더라도 경제 문제만큼은 서로 손을 대지 않고 협력 관계를 유지하기로 해왔다는 점입니다. 이번엔 바로 그 부분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일본이 정치적인 갈등으로 빚어진 문제를 두고 경제 규제를 내세웠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일본이 선제공격을 했다고 보는 거예요.

일본은 ‘징용 문제에 대한 대법원 판결 내용을 보면 한국이 선제공격을 한 거 아니냐’라고 합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그건 선제공격으로 볼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징용 문제 관련 판결은 늘 정치적으로 있던 갈등 중 한 요소예요. 위안부나 징용 문제를 둘러싼 갈등도 있고, 독도를 둘러싼 갈등도 있고, 갈등이야 늘 있어 왔어요. 지금까지 이런 문제는 그것대로 그냥 갈등을 하면서도 경제 문제는 한국과 일본이 이웃집처럼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일본이 경제 문제에다 손을 댔습니다. 그래서 선제공격이라고 보는 겁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경제 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어려움을 중심에 놓고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 문제는 경제적 손실을 각오하고라도 민족적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이건 양보할 수 없다’라는 입장을 갖고 대응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국민의 다수는 정치적 견해가 어떻든 관계없이 이번 일본의 부당한 경제적 규제에 대해서는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습니다. 진보, 보수와 관계없이 이게 국민 다수의 의견이에요.

다만 여기서 우리나라 보수 정치인들이 부족했던 점은 현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서 마치 일본을 두둔하는 것처럼 말이나 행동을 취하는 실책을 범했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국가 이익에 관계되는 문제에 있어서는 정부가 아무리 밉더라도 정부와 같은 입장을 취해주면서 비판을 하더라도 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고 현 정부가 너무 미운 나머지 ‘이 모든 책임이 다 현 정부한테 있다’ 이렇게 나가버려서 민심하고 좀 안 맞았어요. 그래서 거꾸로 현 정부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현상을 초래했습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까, 결과만 놓고 보면 현 정부가 정치적 지지율도 높이기 위해서 이런 한일 관계 갈등을 오히려 조장하고 증폭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과를 갖고 이렇게 평가하는 것은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 같아요. 결과가 그렇게 된 것은 맞지만, 정부가 그런 의도로 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의도로 대응을 할 수는 있겠지만, 저는 현재의 정부 관계자들이 그런 의도를 갖고 했다는 의심이 들지는 않습니다. 정부가 지지율을 올리려고 갈등을 증폭시켰다는 논란은 보수 정치인들의 대응이 국민들의 반감을 샀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봐요.

그러나 저는 더 이상 확전은 하지 말라고 관계자들에게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확전을 하게 되면 경제적으로 한일 양측이 모두 손해를 입어요. 굴복을 해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확전을 해도 안 됩니다. 이기는 게임으로 가기보다는 그냥 무승부로 가는 게 좋아요. 지지만 않으면 된다는 거예요. 본때를 보여주려고 하면 자꾸 싸움이 커지고, 싸움이 커지면 분업 체계를 이루고 있던 한일 양쪽의 경제가 다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정치적으로는 ‘노 재팬! 타도 일본!’ 이런 주장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과 일본의 경제는 국제 분업 체계를 이루어서 협력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의 모든 부분이 일본과의 분업을 떠나서 독립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하더라도 경제성이 없습니다.

다만, 이번 일이 우리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교훈을 주었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싸우더라도 경제 문제는 서로 손을 안 댄다는 한일 관계의 불문율이 이번에 깨졌어요. 다시 말해, 앞으로도 일본이 정치적으로 곤란하면 경제에 손을 댈 수 있겠다는 위험을 우리가 알게 된 거예요. 그동안 우리는 수입을 너무 일본에 편중해 온 경향이 컸습니다. 이제는 이런 점을 좀 극복해야 해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첫째, 수입 다변화를 이루어서 일본이 또 경제 규제를 하더라도 우리 경제가 가급적 타격을 안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90퍼센트에 이를 만큼 수입 의존도가 큰 몇 가지는 수입 다변화를 통해 좀 분산시킬 필요가 있어요. 자체적으로 개발하든지, 유럽이나 다른 쪽 국가들로 수입처를 좀 분산하든지 해야 합니다.

둘째, 이와 동시에 우리는 수입뿐 아니라 수출에 대해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수출은 중국에 너무 편중돼 있습니다. 정치적 이유로 중국이 자기들 입장에서 수입 규제를 한다면 이것도 우리에게는 엄청난 피해가 될 테니까 앞으로 수출도 좀 다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장 중국에 수출하는 게 이익이라 하더라도 너무 편중되면 앞으로 굉장한 위험이 될 수 있어요.

셋째, 우리는 안보도 너무 미국에 편중돼 있어요. 이것도 국가의 안정성에서 보면 굉장히 위험한 문제입니다. 이번에 주한미군 주둔비를 600퍼센트를 올려서 내놓으라고 했던 것처럼 미국이 안보 문제를 볼모 삼아 갑자기 치고 들어오면 굉장히 난감해지거든요. 그렇다고 달라는 대로 돈을 다 줄 수도 없으니 굉장한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이런 안보 편중 문제도 생각해봐야 해요.

‘그동안 우리가 수입은 일본에 너무 편중돼 있었고, 수출은 중국에 너무 편중돼 있었고, 안보는 미국에 너무 편중돼 있었다. 이것이 어느 순간에 우리에게 굉장한 위험으로 다가오겠구나.’

이런 교훈을 이번에 얻었기 때문에 저는 이번 사태가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국민들이 경각심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요.

오늘날에는 국제 정세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동맹이나 경제 협력 등 과거에 안전하게 생각했던 것에 안주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될 수도 있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도 있어요. 이처럼 국제 정세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는 다자 안보, 수출 다변화, 수입 다변화 등을 통해서 국가의 안정성을 높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는 국가의 정책 방향이 성장률을 높이는 데 더 초점을 맞추어 왔다면, 이번 일을 계기로 삼아 이제는 안정성을 더 높이는 쪽으로 나아가게 되길 바랍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한일 경제 갈등을 보고, 더 이상 확전 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면 좋겠습니다. ‘본때를 보여준다!’ 이렇게만 접근하지 말았으면 해요. 서로 성질부릴 만큼 부렸으니 이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좀 안정을 되찾아가는 쪽으로 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연애를 잘하다가도 어느 시점부터 남자 친구에게 못되게 굴고 이별하게 돼요.
  •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 육조단경을 읽고 있는데 날파리가 불빛에 날아와 죽어서 떨어졌습니다. 날파리에게 불빛이 진리였을 텐데, 진리란 무엇일까요?
  • 미국에 총기사고가 많습니다. 총기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신경을 쓰지 않으면 될까요?
  • 해외동포 중에 현 정부의 통일정책에 무조건 반대하는 입장에서 만들어진 악의적인 가짜 뉴스를 퍼나르는 데에 혈안이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현실이 답답한데,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면서 통일을 위한 활동을 할 수 있을까요?

한 분은 질문하려고 했으나 답변을 듣고 해결되었다고 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또 다른 분은 뉴욕 정토회 25주년을 기념하며 아름다운 시를 낭송해 주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2시간 30분이 지났습니다.

“오늘은 축하하는 자리라서 함께 노래도 하고 얘기도 해야 하는데 제가 질문을 받다 보니 시간이 다 지났네요. 아쉽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쉬움을 달래며 다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스님은 강연을 준비해준 뉴욕 정토회 회원들에게 수고 많았다고 격려를 하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스님은 늦게까지 업무를 보았습니다. 미국 동부에서의 첫날이 조용히 저물어 갑니다.

내일은 오전에는 뉴욕 법당에서 북미 동부지구 불교대학 졸업생을 위해 수계식을 한 후 비행기를 타고 미국 중부로 이동하여 저녁에는 달라스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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