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미국 시애틀(Seattle)에서 정토불교대학 졸업생들을 위한 수계식을 한 후 저녁에는 시애틀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어젯밤 늦게 시애틀 북쪽에 위치한 숙소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머물렀습니다. 오늘 새벽에도 어김없이 4시 30분에 일어나 108배 기도와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신선한 공기가 참 좋습니다. 아침식사를 한 후 서둘러 시애틀 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법당에 도착하니 수계식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오전 9시부터 북미 서북부 지역 합동 수계식을 시작했습니다. 북미 서북부 지역 불교대학에서 1년 동안 공부한 학생들이 한 자리에서 모였습니다. 시애틀에서 8명, 밴쿠버에서 22명, 나나이모에서 2명, 하와이에서 1명, 총 33명이 수계를 받았습니다. 스님은 수계 법문에서 수행자와 신자의 차이, 삼귀의와 오계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주었습니다.

“종교가 성립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내가 소원을 빌면 내 소원을 들어주는 무한한 힘을 가진 존재가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입니다. 둘째, 내가 그분께 빌 때는 내 소원을 그분께 전달하고 그분의 뜻을 나에게 전달해주는 중간자를 믿어야 합니다. 그가 바로 제사장입니다. 셋째, 그를 따라서 복을 비는 신자가 있어야 합니다. 신과 제사장, 신자가 바로 종교가 구성되는 세 가지 요소입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무한한 능력을 가진 신을 믿는 게 아니라 괴로움이 없이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신 붓다를 내 삶의 궁극적인 모델로 삼는 사람입니다.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제사장에게 부탁을 할 게 아니고 항상 진실에 기초해야 합니다. 나의 복을 비는 자가 아니라 나의 어리석음을 닦아나가는 자가 수행자입니다. 이 관점을 분명히 가져야 재가자들도 이 수행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수행자는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다행이지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괴롭지 않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떤 일도 겪게 되는데, 그 어떤 일을 겪어도 내가 괴롭지 않은 경지에 이르는 것이 수행자의 목표입니다.

그리고 수행자는 인생을 살면서 나를 도와달라고 껄떡거리는 구걸은 하지 않겠다는 관점을 분명하게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사실 구걸하는 자입니다.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이렇게 남의 도움을 받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저기 날아가는 새도, 여기 기어가는 짐승도, 자기 삶은 자기가 사는데, 왜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남의 도움을 받으려고 합니까. 장사를 잘하고 싶으면 내가 노력하면 되고, 취직을 하고 싶으면 내가 노력하면 되고, 결혼하고 싶으면 내가 하면 되지, 왜 결혼할 사람을 남에게 구해달라고 빕니까. 왜 내가 장사해야 할 것을 남에게 도와달라고 빕니까. 이것은 새보다도, 짐승보다도 못한 행위입니다.

이렇게 종교와 수행은 얼핏 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완전히 정반대의 길입니다. 수행은 자기 인생을 자립하는 것이고, 종교는 끊임없이 구걸하는 것입니다. 오늘 수계를 받는 순간, 이제 남에게 구걸하는 인생은 끝내야 합니다. 남을 도울 수 있으면 제일 좋지만, 그게 안 되면 도움을 못 줄망정 구걸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고,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수행자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새삼 감사합니다. 이어서 수계 대중이 참회 진언을 하는 동안 스님은 연비를 하였습니다.

“백 겁으로 지은 업장, 한 생각에 없어져라. 죄도 없고 마음 없어 그 자리가 비었으니, 빈 마음 그 자리가 진정한 참회일세”

수계를 받은 대중들은 오계를 지킬 것을 서원했습니다. 스님으로부터 불명을 받고 수계증을 받았습니다. 오늘 또 이렇게 33명의 수행자가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오늘 수계식 도중에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분은 어지러움이 심해서 앉아 있기도 힘들어 했지만 끝까지 함께하여 마지막으로 스님에게 수계를 받았습니다. 스님이 불명을 설명을 해주고 수계증을 주자 대중은 큰 박수로 격려해주었습니다. 스님도 격려해주면서 또 아프더라도 부처님이 되는 길이니 정신을 차리라고, 부처가 되겠다고 계를 받는 중이니 몸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큰마음을 가지라고 진심으로 격려해주었습니다. 스님의 격려말씀 속에 이 자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한 자리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수계를 받고 불명을 받는 것은 부처님을 내 삶의 모델로 삼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부처 클럽의 회원이 된 것입니다. 중간 탈퇴하지 말고 성불하시기 바랍니다.”

수계식을 마치고 수계자들은 스님과 함께 단체사진을 찍고 개별로도 촬영하였습니다.

수계식을 모두 마치고 법당 밖으로 나오니 공양 간에서 열무냉면을 준비해 놓고 있었습니다. 각자 냉면을 한 그릇씩 들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맛있게 공양을 하였습니다. 공양을 준비해준 분들 덕분에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난 후 스님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시애틀 법당에는 야생 블랙베리가 지천으로 있는데 철이 다 지나 그대로 말라 있었습니다. 스님은 땅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등을 얘기하면서 법당 주변을 한 바퀴 산책 겸 둘러보았습니다. 오후에는 시간이 있어 각자 업무와 휴식을 취하기도 하였습니다. 스님은 오늘 강연이 열리는 벨뷰 지역으로 이동하기 전에 1시간 정도 법사님, 해외지부 사무국장, 국제국장, 해외지부 팀장들과 모여 회의를 하였습니다. 내년 10차 때 해외지부와 국제국 등을 어떻게 개편하면 좋을지, 현재 천일준비위원회에서 준비하고 있는 10차 조직구조개편, 내년 상반기 해외 방문 일정 등에 대해서 의견을 청취하고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저녁 강연은 시애틀 동부 벨뷰 지역에 위치한 벨뷰바하이센터에서 열렸습니다. 벨뷰 지역은 서울로 치면 강남에 해당하는 곳으로 마이크로소프트 본사가 있습니다. 퇴근길 교통 체증을 우려하여 약 1시간 30분간의 회의가 끝나자마자 바로 강연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강연장 근처로 가니 바깥에서 주차안내를 하고 있는 남자분들의 수고가 느껴졌습니다.

반갑게 손을 흔들면서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리니 산호세 강연장에서처럼 이곳에서도 꼬마 아이가 ‘어, 스님이 일찍 오시네요’ 하면서 스님께 다가와 인사합니다. 스님도 반갑고 귀여워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 만난 아이는 강연 사회자님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엄마, 아빠가 동영상으로 스님을 만나니 ‘TV에서 보는 스님’이라고 하면서 아이들이 스님을 보면 친근하게 할아버지한테 달려가서 반갑게 안기고 인사합니다. 스님도 흐뭇한가 봅니다.

강연장을 둘러보기 위해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벨뷰 바하이센터는 바하이 신앙을 믿는 분들이 운영하는 곳입니다. 바하이 신앙은 19세기 페르시아에서 바흐 올라가 창시한 종교입니다. 바하이는 모든 종교의 일체성을 강조하여 7대 종교를 합친 것으로 종교와 과학의 조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 확고한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이란에서 공고화되었는데, 전 세계적으로 200여 개국에서 약 5백만 명의 바하이가 있다고 합니다.

스님은 강연장 근처 공원에 가서 약 1시간 동안 산책하였습니다. 침엽수가 쭉쭉 뻗어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포틀랜드, 시애틀, 캐나다 밴쿠버 등 북미 서북부 지역은 하늘로 쭉쭉 뻗는 침엽수림이 아주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목재가 유명합니다.

산책 후 강연장으로 들어서니 이미 주차는 만차가 되어 인근 공원 주차장에 주차하고 사람들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멀리서부터 주차안내를 하고 있는 분들의 수고가 느껴졌습니다. 실내로 들어오니 로비에서는 불교대학, 깨달음의 장 등 각종 홍보부스가 마련되어 이미 한바탕 신나는 장마당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강연이 시작되면 스님과 함께하는 야단법석이 벌어지는데, 이미 강연장은 야단법석이 벌어져 즐겁고 신나 하는 모습만 봐도 흐뭇하고 즐거웠습니다.

사회자의 스님 소개에 이어 큰 박수와 환호성이 터지면서 스님이 무대에 등장하였습니다.

“시애틀은 비가 많이 오는 곳이라고 하던데, 오늘은 날씨가 참 좋네요.”

“스님이 오신 덕분입니다.”

“그 얘기는 저한테 별로 좋은 얘기가 아니에요. 무슨 뜻인지 모르겠죠? 제가 몇 년 전에 해외 순회강연을 하고 귀국을 했어요. 정토회 회원 한 분이 차를 갖고 마중을 나왔어요. 차를 타고 가면서 이렇게 얘기를 해요.

‘스님, 감사합니다. 스님 덕분에 올해 좋은 일이 많이 생겼어요. 우리 딸이 작년에 입시에 떨어졌는데, 올해는 재수하는 딸도 좋은 대학에 합격하고, 고3 수험생 아들도 좋은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그게 왜 제 덕분입니까?’
‘스님께서 축원을 해주셔서 합격을 한 겁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을 제가 사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 딸이 좋은 대학에 합격한 게 내 덕분이면, 그럼 정토회 회원들 중에 자녀가 대학에 떨어진 것도 다 제 탓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제가 밥 한 끼 얻어먹고 대학에 떨어진 모든 책임을 다 져야 하잖아요. 그런 식사는 안 먹겠습니다.’

그러니 오늘 날씨가 좋은 게 제 덕분이면, 다음에 날씨가 나쁘면 그것도 제 탓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얘기는 저한테 별로 좋은 얘기가 아니에요.”(모두 웃음)

스님의 재치 있는 이야기에 가벼운 웃음과 함께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솔직한 대화를 해보자고 하여 그런지 사전 질문자도 13명인 데다 질문들이 다 솔직하고 좋아 스님의 하루에 소개하고 싶은 질문들이 많지만 오늘은 그중에서 다음의 질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어떻게 하면 남편에게 존중받는 아내가 될 수 있을까요?

“15년 전에 미국으로 건너와서 살고 있습니다. 그때 남편도 한국에서의 학업을 뒤로하고 저를 따라 미국에 같이 왔어요. 그 용기가 고마워서 지금까지 남편에게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습니다. 3년 전에 첫 아이를 낳았고, 1년 전에 둘째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는 저도 직장을 그만두고 24시간 아이들을 돌보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남편이 예전 같지가 않고 짜증을 많이 내거나 무심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남편도 누군가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엄마의 마음이 되어서 화나는 마음을 억누르곤 합니다.

그런데 제 친구들은 남편을 소외시킨 건 바로 저라고 조언을 해줍니다. 또 한 친구는 남편은 고쳐 쓰는 것이지 바꿔 쓰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또 한 친구는 남편에게 공을 들여 밥상을 차려주지 말고 대충 차려주라고 말합니다. 어떤 분은 남편에게 너무 잘해주면 남편이 애기가 된다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남편을 엄마의 마음으로 대해주려고 하다 보니 제 감정을 억누르게 되고, 그게 점점 악순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남편에게 존중받는 아내가 될 수 있을까요? 남편이 저를 너그럽게 봐주기를 바라는 건 저의 욕심일까요?”

“질문자가 내가 할 말을 다 해서 제가 별로 할 말이 없어요. (모두 웃음) 주위 사람들이 한 말이 다 맞는 소리예요. 그 조언들을 적절히 섞어가면서 적용하면 돼요. 때론 엄마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가, 때론 아빠처럼 존중해 주었다가, 때론 이웃집 아저씨처럼 대충 대했다가, 이렇게 적절히 섞어가면서 대응을 하면 돼요.”

“그런데 한 친구는 남편에게 화를 내면서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욕을 한번 해보라고 하거든요. 자기는 그 방법이 잘 먹혔다고 하면서요.” (모두 웃음)

“그 방법도 한번 사용해 볼 만해요. 진짜 화가 나서 물건을 집어던지는 것이 아니고, 화난 척하면서 물건을 한 번 집어던져 보는 겁니다. 그리고 반응이 어떤지 한번 보세요. 연기를 한 번 해보는 거죠. 그렇게 해보면 ‘아이고, 우리 마누라 성질이 정말 더럽구나’ 하면서 정이 더 떨어져 버릴 수도 있고, ‘아이고, 우리 마누라한테 잘못했다가는 쫓겨나겠다’ 하면서 오히려 딱 달라붙을 수도 있어요. 그건 해봐야 알지, 지금은 몰라요. 저도 질문자의 남편과 같이 안 살아봐서 모르겠어요.(모두 웃음)

시험삼아 한번 해보는 거예요. 만약 부작용이 생기면 사과를 하면 돼요.

‘누가 조언을 해줘서 이 방법을 한번 써봤더니 당신한테는 안 먹히네. 미안하다.’

왜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적절히 섞어서 써보라고 이야기하느냐면, 그 모든 조언이 다 맞는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는 한 가지 측면으로만 접근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남편도 한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에 질문자의 남편으로서 존중받고 싶어 할 때도 있고, 또한 아직 중생에 불과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부인을 엄마처럼 생각하고 어리광부리고 싶어 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감정은 한 가지 감정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어요.

아무리 덩치가 커도 술을 먹고 취하면, 어린 시절의 감정으로 돌아가서 어리광부리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때는 남편으로 보지 말고 어린아이 대하듯이 등을 두드려주고 달래줘야 합니다. 남자라고 폼을 딱 잡을 때는 약간 순종도 해주고, 약간 망나니 같은 행동을 할 때는 야단도 좀 쳐주고, 상황을 봐서 적절하게 섞어가며 대응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바로 ‘밀당’이라고 해요.(모두 웃음)

저도 여러분과 대화할 때 이렇게 합니다. 어떤 때는 굉장히 그 심정을 이해해주다가, 어떤 때는 날카롭게 지적을 팍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적절하게 섞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경험이 많아야 해요. 이 방법도 써보고, 저 방법도 써보고, 부작용도 경험해 보고, 자꾸 해보면서 터득해 가는 겁니다. ‘이 방법을 쓰니까 부작용이 생기네’, ‘이렇게 대해주니까 어리광을 피우네’ 이렇게 몇 년 경험해보면 저절로 습득이 돼요. 반응이 나오는 순간 ‘아, 이렇게 대응하면 되겠다’ 하고 판단이 섭니다. 이렇게 되려면 시행착오를 하면서 학습비를 많이 투자해야 해요. 교과서에 나와 있는 대로 방법을 쓴다고 해서 딱 맞지 않습니다.”

“저는 벌써 15년을 같이 살았는데요.”

“15년 같이 살아서는 아직 남편을 제대로 알기 어려워요. 연세가 80이 된 분에게 물어봐도 아직 남편을 잘 모른다고 하는 분이 많습니다. 남편을 완전히 아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런데 저는 아빠한테 어리광을 부리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남편은 저한테 어리광을 부려요. 이것은 성격의 차이라고 보고 그냥 넘어가야 하나요?”

“성격의 차이와는 별개예요. 질문자도 가끔 어리광을 피워주면 남편이 오히려 좋아할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남자들에게는 여자가 불쌍해 보일 때 자기가 가서 도와주면 마치 자기가 굉장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보호 본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약간 불쌍한 척하면서 ‘아이고, 여보. 요즘 힘들어 죽겠어’라고 말하면 남편의 보호 본능을 이끌어낼 수 있어요. 그런데 아내가 ‘너 없어도 난 잘 살아’ 이렇게 나오면, 남자들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요.”

“그 부분이 저의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자든 남자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한 가지 요구만 있는 게 아니에요. 여러 가지 요구가 뒤섞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에게는 이렇게 하면 된다’, ‘부모에게는 이렇게 하면 된다’ 이렇게 단정 지어서 생각하시면 안 돼요. 여러 가지 요구가 있기 때문에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맞춰주어야 합니다.

남편에게 엄마를 그리워하는 애정 결핍이 있을 때는 엄마 같은 역할을 좀 해줘야 하고, 자기도 남자라고 폼을 잡을 때는 여성의 역할을 좀 해줘야 하고, 일을 도와달라고 하면 일을 좀 도와주는 역할도 좀 해줘야 합니다.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남편이 무거운 짐을 잘 들어주는 역할을 기대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남편이 도와주지 않고 뺀질거리고 있으면 기분이 나쁘잖아요. 아무리 얼굴이 잘 생겨도 그때는 소용없어요. 짐 들어주는 게 필요한 상황일 때는 짐을 탁 들어줘야 상대의 기분이 좋은 겁니다.

그때 그때 필요에 응해야 하는 것이지 ‘이러면 된다’라고 정해진 방법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요구가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뭔가 부족하거나 잘못을 저질러서 갈등이 생기는 게 아니라 상대가 필요로 하는 그때 그때의 요구에 맞지 않는 딴짓을 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배고파서 밥을 달라고 할 때는 아무리 비싼 가방을 사와 봤자 별로 환영을 못 받아요. 새 옷을 달라고 할 때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아도 환영을 못 받습니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나의 정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가 한 일이 상대의 요구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잘 맞추지 못하면 인생이 피곤해지는 거예요. 노력은 많이 했는데 효과는 안 나요.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응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못하죠. 왜냐하면 자기 생각을 갖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질문들이 계속되었습니다.

  • 한국에서 군인 생활을 하다가 3년 전 미국으로 왔습니다. 회사에서 회장이 일을 너무 많이 시켜서 고민입니다.
  • NGO에서 일하고 있는데, 부하직원의 나이가 저보다 많습니다. 잘못을 지적하면 속상해하니까 관계가 불편합니다.
  • 개인의 행복과 가정의 행복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요?
  • 지금 여기에 존재하라는 말씀이 어떤 뜻인가요? 금강경에 ‘과거심 불가경, 현재심 불가경, 미래심 불가경’이라는 구절은 어떤 뜻인가요? 두 말씀은 서로 모순이 아닌가요?
  • 한국의 공기가 나빠져 답답합니다. 어릴 때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습니다. 산 위에 풍력 발전기를 설치하고 싶은데 주민들이 반대합니다.
  • 시애틀에 있는 보잉사에서 일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입니다. 결혼을 하면 부모님과 두 집 살림을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부모님이 섭섭해하지 않을까요?
  • 남편이 형이 사망한 후 한 살 차이 나는 형수를 너무 챙겨서 불편합니다. 5년 전 남편은 외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 연기를 보는 자는 나를 본다는 부처님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답변을 모두 마치고 나니 벌써 2시간 10분이 경과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세 명의 질문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쉽지만 세 분에게는 간략하게만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그중 한 개의 질문인 한국의 복잡한 정치 상황을 묻는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우리나라의 복잡한 정치 상황으로 인해 해외에 있는 많은 애국자들이 밤잠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복잡한 정치 상황이란 것은 없습니다. 이 세상은 너무 복잡하다고 말하는데, 이 세상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복잡하다는 말은 ‘내가 이해가 안 된다’라는 뜻입니다. (모두 웃음)

내가 사회주의 철학을 갖고 19세기 말엽을 보면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어떤 모순이 생길지 다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20세기 말엽 동유럽이 붕괴되는 모습을 보면 세상이 혼란스러워요. 이때 세상이 정말 혼란스러운 걸까요, 자신의 인식 틀로 봤을 때 이해가 안 되는 걸까요?”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우리 아이가 복잡한 걸까요, 내가 아이를 이해하지 못한 걸까요?”

“내가 이해를 못 하는 겁니다.”

“잘했다 잘못했다가 아니라 여러분들이 지금 갖고 있는 고정된 인식의 틀에서 봤을 때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기독교의 인식 틀에서는 절에 가서 절을 하는 것이 이해가 안 가는 겁니다. 이때 불교 신자들이 복잡한 게 아니에요. 붓다는 고정된 인식 틀을 갖고 세상을 보지 말라고 하셨어요. 고정된 인식 틀을 내려놓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인식 틀을 갖고 북한을 보면 이해가 안 되지만, 그냥 북한의 실상을 그대로 인식하면 전혀 복잡하지 않아요. 트럼프 대통령도 민주당의 인식 틀을 갖고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그러나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인식의 틀로 보면 이해가 잘 돼요.

고정된 인식의 틀로 보면 세상이 망할 것 같아요. 그러나 세상은 끝없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공부입니다.”

이렇게 세분의 질문은 스님이 질문을 읽고 간략하게 답변을 해주고 닫는 인사 없이 강연을 마쳤습니다. 이렇게 마치는 것도 신선하고 질문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간략하게 핵심만 짚어 설명을 하니 머리에 더 쏙쏙 들어오는 듯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에서는 봉사자 45명을 포함하여 총 275명이 참가하여 집중되고 진지하고 즐겁고 정말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스님과 셀피를 찍고 싶다고 하여 마지막까지 우리를 즐겁게 하였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스님은 로비에서 북사인회를 하였습니다. 중중첩첩으로 줄을 서서 스님께 사인을 받고 인사하고 셀피도 찍으면서 참가자들은 한바탕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인회를 하는 동안 오늘 질문한 두 분께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특히 오늘 스님의 하루에 소개된 질문자는 스님의 답변으로 끙끙대던 문제가 너무나 확연하고 시원하게 풀려버려 고민이 한방에 사라졌다고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형님이 돌아가시자 1살 많은 형수를 너무 많이 챙기는 남편 때문에 속상해하던 질문자도 스님의 답변으로 마음이 너무 가벼워져 불교대학을 다녀야겠다고 소감 나누기를 해주었습니다.

스님 강연이 좋다는 분에게 왜 스님 강연이 좋은지 질문을 해보니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번뇌하고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스님이 너무나 쉽고 분명하게 해결책을 제시해 주니 너무 좋다고 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너무 즐거워하고 고뇌하고 고민하던 문제를 해결한 후 얼굴이 밝아지고 가벼워지는 모습을 보니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고 뿌듯하였습니다.

이어 자원봉사자들과 다 함께 시애틀 강연을 성공리에 마친 것을 기념하여 단체사진 촬영을 하였습니다. 스님은 오늘 수고한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하고 하주홍 님과 함께 시애틀 법당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묘덕 법사님, 선주 법사님과 함께 나누기를 하였는데 다들 강연장에서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감동의 도가니였다고 합니다. 특히 오늘 자원봉사자 중에서는 국제국 외국인 수행자로서 크리스토퍼 님이 함께 했는데,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님 말씀은 10%도 못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기뻤다고 합니다. 크리스토퍼 님은 워싱턴에서 있을 한국어 강연과 외국어 강연에 참가하기 위해서 일주일 휴가를 내고 15일 워싱턴으로 올 예정입니다. 이렇게 외국인 수행자가 생겨나니 뿌듯하기도 하고 외국인 전법을 위한 준비를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스님은 법당에 돌아오시자마자 한국과 긴급 업무를 보시고 원고 교정도 하면서 하루를 마감합니다. 거의 1시가 다 되어갑니다.

이렇게 북미 서부지역 해외 강연 4번째 시애틀 강연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제6차 해외 정토행자 대회 북미 서부지구 대회를 이곳 시애틀 법당에서 일요일까지 진행합니다. 내일은 북미 서부지구 해외 행자 대회 입재식 소식과 즉문즉설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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