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샌프란시스코 산호세(San Jose)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 LA정토법당에서 북미 서남부 지역 정토불교대학 수계식을 한 후 비행기를 타고 산호세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시차로 인해 잠을 거의 자지 않고 새벽 2시에 일어나 한국과 전화로 소통하면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렌지카운티에서 LA로 가는 길은 교통체증이 심해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아침 6시에 출발했습니다. 교통체증이 없으면 30분 만에 이동하는 거리이지만 1시간 10분이 걸려 LA정토법당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수계식에는 LA 법당 17명, 오렌지카운티 법당 19명, 샌디에이고 법당 1명, 샌프란시스코 법당 1명, 라스베이거스 법회 2명, 총 40명이 참석했습니다. 삼배와 청법가로 스님에게 법을 청했고, 스님은 수계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수행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수행자는 왜 삼귀의 오계를 수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후 마지막으로 붓다 클럽의 회원이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난 1년 동안 실천적 불교사상과 부처님의 일생, 그리고 불교의 근본 가르침과 불교의 역사를 배웠습니다. 불교의 역사를 배우면서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이 세월이 흐르면서 종교화 되거나 철학화되는 과정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승불교가 일어났다가 또 시간이 흐르면서 종교화되고 철학화되었다가, 다시 본래 가르침으로 돌아가기 위해 선불교가 일어났지만 또 종교화되고 철학화되는 과정이 지난 불교의 역사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모든 과정을 알았으니 이제 이렇게 입장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은 종교로서의 불교도 아니고, 철학으로서의 불교도 아니다. 나는 오늘부터 괴로움이 없는 삶 자유로운 삶을 향해서 나아가는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하고자 한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살 뿐만 아니라 나와 관계 맺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 어떤 손해도 끼치지 않으며 괴롭히지도 않겠다.’

이렇게 분명한 입장을 갖고 계를 받는 것입니다. 이 계를 받는 순간 이제 여러분들은 수행자의 길로 접어든 것입니다. 부처의 길로 가는 수행자 그룹인 승가 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붓다 클럽의 회원 가입을 한 겁니다. ‘붓다 클럽의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것은 지켜야 한다’ 하고 약속하는 것이 바로 수계 의식입니다.

수계를 받으면 더 이상 위축되거나 비굴하게 살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돈이 좀 없다고 해서, 남편이 죽었다고 해서, 아이가 시험에 떨어졌다고 해서, 그런 걸로 기가 죽어 살면 수행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고, 부처님 법 만난 것에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수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어서 오계를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첫째,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 적어도 남을 죽이거나 때리지 않겠습니다.
둘째, 도둑질을 하지 말라. 적어도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지 않겠습니다.
셋째, 사음 하지 말라. 저어도 성추행이나 성폭행은 하지 않겠습니다.
넷째, 거짓말을 하지 말라. 적어도 거짓말이나 욕설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섯째, 술을 먹지 말라. 적어도 술을 먹고 취하지는 않겠습니다.”

스님은 자세히 계율에 대해서 설명한 다음 수계자들에게 연비 의식을 했습니다. 다 함께 참회 진언을 하면서 스님에게 연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축원해주고 불명을 주는 스님을 보면서 우리 모두 한 사람의 오롯한 수행자로 서기를 기원하는 스님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계식을 다 마친 후에는 단체사진과 개별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다들 1년 동안 불교대학 과정을 마친 서로에게 축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수계식을 마치고 바로 이어 LA정토회 법인 관련 회의를 했습니다. 이사로 되어있지만 이미 돌아가신 분, 더 이상 활동하지 않는 분들이 많았고, 또 1999년에 만들어진 정관이 현재 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 어떻게 바로 잡으면 좋을지 함께 의논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과 캐나다 지역에 있는 법인들을 어떤 식으로 정비할지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했습니다.

회의 후에는 LA정토회 초대 총무를 역임한 박명귀 님이 스님을 점심 식사에 초대해 함께 식사를 하면서 초창기 활동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산호세로 이동하기 위해 LA공항에 도착하니 약간 여유가 있었습니다. 게이트로 이동하여 기다리는 동안 스님은 원고를 교정했습니다.

LA에서 산호세까지 약 1시간 정도 이동하는 비행기에 올라타고 나서야 잠시 휴식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니 캘리포니아의 사막 위에 세워진 도시 산호세를 볼 수 있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샌프란시스코 정토회 회원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곧장 강연이 열리는 Episcopal Church(성공회 교회)에 도착해서 회원들이 준비한 도시락으로 간단히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Episcopal Church(성공회 교회)는 매년 스님의 강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장소를 대여해 주고 있습니다.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의 미국인 남편들도 함께 와서 강연을 준비하는 풍경이 참 흐뭇했습니다.

식사를 하고 나서 스님이 잠시 야외 벤치에 앉아 있는데, 3살 남자아이가 스님에게 반갑게 달려들면서 안겼습니다. 아주 친근한 할아버지에게 말을 건네듯 풀잎 하나를 따서 선물로 주었습니다. 엄마가 매일 유튜브로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스님을 ‘혼내는 할아버지’라고 표현해서 한참 웃기도 했습니다.

저녁 7시,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에 이어 스님이 강연장에 들어서자 모두들 큰 박수로 열렬히 환영하였습니다.

“잘들 지내고 계세요?”

“예!”

“강연 전에 어떤 애가 저에게 달려와서 안겼어요. ‘넌 누구니?’ 하고 물어보니까 이름을 얘기하고 자기가 세 살이래요. 그런데 옆에서 애 아빠가 ‘이분 누구시지?’ 하니까 애가 이래요.

‘혼내는 할아버지!’ (모두 웃음)

어쩌다 제 이미지가 그렇게 됐을까요? (모두 웃음) 오늘은 혼 안 낼 테니까 편안하게 물어보세요.”

곧바로 질문을 받았는데요. 11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산호세에는 실리콘 밸리가 위치해 있는 특성 때문인지 젊은 남자분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특히 아이들의 교육 문제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참석자들도 대부분 젊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5번째 질문자와 스님의 대화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1학년, 12학년인 딸과 아들을 둔 아빠입니다. 아이들에게 인생이나 학업에 대해서 동기를 주고 싶습니다. 제 생각이지만 저는 그 나이 때 욕심도 있고, 의식도 좀 있었던 것 같은데, 아이들을 보면 성적은 곧잘 받아오지만 깊은 생각을 잘 못합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

“그냥 함께 놀아주세요. 딱히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미래에 대해서 모르기는 매 한 가지인데요.

예를 들어 조선 말엽인 1870년대를 생각해봅시다. 우리나라에 서양문물이 막 들어오던 시대죠. 이런 시대에 부모라면, 아이에게 어떤 길이 최고라고 생각했을까요? 공부를 하려면 서당에 가야 하고, 출세를 하려면 과거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고 여겼겠죠. 그런데 아이가 서양 선교사가 만들었다는 학교에 다니겠다고 하면 부모가 볼 때는 걱정이죠. 그래서 양반은 아이들이 그런 데 못 가게 했어요. 아무도 돌보지 않는 아이들이나 상민의 아이들이 과자 얻어먹는 재미로 그런 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배웠고요. 부모 세대가 생각하기에 전자가 월등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후자가 근대 학문을 접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때 과거에 급제해봐야 곧 조선왕조가 망하고 당시의 과거 제도가 다 폐지되잖아요. 그럴 때는 부모 세대의 관점이 바르지 않은 거예요.

어쩌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도 그 시대 못지않습니다. 앞으로 사회는 더욱 빠르게 변할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는 머리를 안 굴리는 게 낫겠어요.(모두 웃음) 질문자가 앞으로 100년을 내다볼 능력이 있다면 괜찮지만, 앞으로 올 사회는 특히 더 급변할 것이기 때문에 예측이 어려워요.

옛날에는 그나마 예측이 쉬웠습니다. 제가 30~40년 전에 미국에 와서 관찰해보면 ‘앞으로 우리 사회가 30년 후에는 이러저러하게 되겠다’ 하고 짐작할 수 있었고, 일본에 가서 관찰해보면 ‘우리 사회가 10년 후에는 이러저러하게 되겠다’ 하고 짐작할 수 있었어요. 모델이 있고 그 모델을 따라갔으니까요. 그런 경우에는 예측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미래 사회는 어디에도 모델이 없기 때문에 누구도 예측하기가 어려워요.

그러니까 어떤 공부를 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장담하기 힘들어요. 지식을 쌓는 공부는 미래에는 실제로 크게 필요가 없을 거예요. 우리는 지금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까지 전부 지식을 쌓는 공부를 하고 있어요. 박사학위라는 것도 남이 해놓은 연구 성과를 짜깁기하고 주를 달아서 제출하는 수준이 태반입니다. 그런데 미래에도 그게 필요할까요? 제가 볼 때는 그렇지 않을 것 같아요.

여기서도 나이 드신 분들은 아실 텐데, 제가 어릴 때 암산이라는 게 있었어요. 초등학교 때 암산 대회를 나가면 상을 받았어요.(모두 웃음) 주산도 했어요. 이런 셈본을 잘하면 중학교 들어가서 수학 공부할 때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셈본과 수학이 아무 관계가 없어요. 지금은 전자계산기를 터치만 할 줄 알면 돼요. 1, 2, 3, 4 같은 숫자와 곱하기, 나누기 같은 연산기호를 누를 줄만 알면 돼요.

그런 것처럼, 지금 우리가 십 년이 넘게 배운 지식도 지금은 검색만 할 줄 알면 됩니다. 그걸 굳이 외워야 할 이유가 없어요. 우리가 어릴 때는 수학 공부를 하거나 시험을 치를 때 계산기를 갖다 놓으면 안 돼요. 그런데 지금은 시험을 칠 때 계산기 갖다 놓는 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어떤 문제를 풀 때 구글 검색이든 네이버 검색이든 검색해서 쓰는 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잡다한 지식을 굳이 머릿속에 넣어둘 필요가 없습니다. 문자가 발명되기 전에는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넣어서 기억을 했지만, 문자가 발명된 이후로는 책에 써놨다가 필요하면 찾아보게 됐잖아요. 그래서 도서관이 필요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책을 찾으러 도서관에 갈 필요가 없어요. 앉아서 검색해서 찾아 쓰면 되니까요. 그러니까 ‘뭘 얼마나 아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과제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해결할 능력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날 종교도 마찬가지예요. 지금처럼 아이 때문에 괴롭다고 할 때 경전을 읽어도 해결이 안 되고, 기도를 해도 해결이 안 되고, 염불해도 해결이 안 돼요. 과거에는 염불을 잘하고 기도를 잘하고 경전을 해박하게 아는 게 스님들의 굉장한 능력에 속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거기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그게 별로 도움이 안 되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절에도 안 가고 교회에도 안 가는 거예요.

지금 같은 학교 교육은 다녀봐야 사실은 별로 도움이 안 돼요. 다만 인간관계를 맺는 데는 도움이 되죠. 또 지금은 마땅히 다른 할 일이 없으니까 가는 것도 있어요. 지금 다른 길이 없으니까 학교를 가지, 다른 길이 있다면 학교 가서 뭐하겠어요?

그러니까 그냥 놔두는 게 제일이에요.(모두 웃음) 모델이 분명히 있어서 그쪽을 향해 갈 때는 부모나 선생님이 도와주면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미래에 대한 모델이 딱 정해져 있는 게 아닐 때는 부모 세대가 살아온 경험을 아이들에게 너무 강요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어요. 요즘은 공부는 할 줄 모르고 땅에 머리 처박고 뺑뺑뺑뺑 돌기만 하는 애들이 훨씬 더 인기가 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내내 보지 말라는 영상이나 보고 안 그러면 게임이나 맨날 했던 애가 게임회사에 얼마나 필요한 인재인지 알아요?(모두 웃음) 지금은 몰라요. 그게 공부에 굉장히 방해되는 일인 줄 알았지만 그게 또 어떻게 도움이 될지 지금은 모른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모델이 있고 그걸 모방해나가는 기간은 어느 정도 기성세대가 앞에서 이끌어주는 게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급변하는 시대에는 그런 게 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럼 미래사회에서 젊은이들이 뭘 준비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어떤 일이 일어나든 능히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게 제일 낫다 싶어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으니까, 세상이 이리되면 여기에 적응할 수 있고 저리 되면 저기에 적응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죠.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상관이 없어요. 저 같은 사람은 살기 아주 좋아요.(모두 웃음) 농사짓는 사회가 되면 농사지으면 되고, 장사하는 사회가 되면 장사하면 되고, 이렇게 되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되면 저렇게 하면 돼요.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도 법문 하라면 법문 하고, 강연하라면 강연하고, 농사지으라면 농사짓고, 이렇게 부딪히는 대로 하면 됩니다. 제가 볼 때는 이런 기본적인 적응능력을 키우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그러니 애들 데리고 놀러도 다니고, 여행도 다니고, 청소도 하고, 이렇게 좀 자유롭게 해 주세요.

그리고 아이들이 항상 탐구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는 게 필요해요. 정답을 주지 말고요. ‘이거 어떻게 하지?’라는 물음에 ‘이렇게 하면 어때요’라고 했을 때 ‘틀렸어!’ 이런 말은 하면 안 돼요. 옳고 그름이 정해져 있으면 창의력이 안 생깁니다.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 되는 거예요. ‘그것도 좋은 생각이구나. 아빠는 그런 생각은 못해봤네. 야, 그렇게 할 수도 있겠네’ 이렇게 받아주세요.

‘목사님, 하나님이 진짜 있을까요?’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없는 것 같아요.’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모두 웃음) 확인해보려면 교회 한 번 다녀봐라.’

창의력을 키워주려면 이렇게 말해야 해요. ‘무슨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이렇게 얘기하면 안 돼요.

저는 초등학교 다닐 때 교회를 열심히 다녔는데, 전도사님이 계속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고 했어요. 처녀가 애를 낳았다는 거예요. 잘은 모르지만 어린 제 마음에도 그게 좀 이상해서 두세 번을 물었더니 ‘불신지옥’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모두 웃음)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그러면 사람들이 왜 굳이 결혼을 하지?’ 이런 의문이 들었기 때문에 물어본 건데, 그러면 지옥 간다는 거예요. ‘이건 아니다. 사람이 몰라서 물어보는데 그게 무슨 죄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전에는 교회에 열심히 다녔는데, 그때부터 좀 시들해졌어요.

그러다가 중학교를 가니까 친구가 절에 가자는 거예요. ‘애들이 무슨 절에 가냐? 할머니들이나 가지(모두 웃음)’ 이랬더니 ‘불교학생회라는 게 있는데 애들도 가도 된다’ 이래요. 따라갔더니 스님이 법문을 하는데,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섰다는 거예요. (모두 웃음) 그래서 제가 스님한테 물어봤어요.

‘어떻게 사람이 태어나자마자 설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부처지!’ (모두 웃음)

부처니까 태어날 때 설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그러면 저는 불교 공부 안 할래요. 부처가 되려면 태어날 때부터 서야 하는데, 저는 태어날 때 못 섰으니까 불교를 공부해봤자 부처가 되겠어요? 그런데 아까 스님이 누구든지 다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잖아요. 그래 놓고 지금은 태어날 때 서야 부처된다고 하면 그건 말이 안 된다는 소리 아니에요?’

이 스님은 대답은 못했지만 지옥 간다는 소리는 안 했어요. (모두 웃음) 그래서 절도 다니는 둥 마는 둥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소가 새끼를 낳는다고 해서 가봤더니 송아지가 어미 엉덩이에서 나와서 땅에 툭 떨어지자마자 덜덜 떨면서도 일어서는 거예요. 얼마나 신기했던지 ‘어, 섰다!’ 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모두 웃음) 그런데 왜 설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니까, 어미가 서서 새끼를 낳는 거예요. 개든 사람이든 우리는 대부분 누워서 새끼를 낳잖아요. 소를 보고 ‘아, 어미가 서니까 새끼도 서네’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부처님 어머니는 서서 아기를 낳았대요. (모두 웃음) 경전에 마야 부인이 아소카 나뭇가지를 잡고 서서 낳았다고 하거든요. 그러자 ‘아, 그런 상황이라면 태어나자마자 설 수도 있겠다’ 이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제가 여자였다면 아기가 설 수 있는지 못 서는지 족히 다섯 번은 실험을 해봤을 거예요. (모두 웃음)

태어나자마자 서고 안 서고, 아버지가 있고 없고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은 물론 나중에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됐지만, 이처럼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용인해줘야 해요. 그런데 저는 어릴 때 쓸데없는 거 묻는다고 늘 야단만 맞았어요.

제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제일 궁금했던 건 점치는 할머니였어요. 매년 정초마다 와서 동네 사람들 점을 쳐줬는데, 동전을 다섯 개 탁 던져가지고 그 모양을 보고 운세가 어떻다는 얘기를 쭉 해주니까 신기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다음으로는 무당이 굿하는 게 신기했어요. 작두날에 올라가서 펄쩍펄쩍 뛰는데 발도 안 다치잖아요. 그리고 내림대라는 대나무가 있어요. 예를 들어 어느 집에서 소를 잃어버려서 도둑을 잡으려 할 때 동네 사람들더러 다들 그 내림대를 한 번씩 쥐라고 해요. 저는 잡아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떤 사람은 쥐었을 때 내림대가 덜덜 떨려요. 실제로도 그 사람이 범인이에요. (모두 웃음) 그게 어릴 때 얼마나 신기했는지 몰라요. 요즘 말로 하면 그게 일종의 거짓말 탐지기예요. 작용하는 심리가 거짓말 탐지기와 똑같습니다. 이런 걸 자꾸 묻는다고 야단을 치지만, 이런 게 궁금한 것도 당연하잖아요.

나하고 20년 산 남편이 갑자기 바람을 피웠다고 합시다. 그러면 화를 내야 할까요, 궁금할까요? 저는 진짜로 궁금할 것 같아요. (모두 웃음) ‘나하고 20년이나 같이 살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하면서 저는 상대 여자를 찾아가서 인터뷰까지 해볼 것 같아요. ‘무슨 일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인간의 어떤 심리현상이 이런 걸 가져왔을까?’ 이런 게 궁금하니까요.

아이들이 주는 밥 잘 먹고 학교 잘 다니다가 사춘기 때 마약을 하거나 사고를 쳤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아이들이 어떤 이유로 이런 행동이 나올 수 있을까?’ 하고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미래에는 이런 것이 필요합니다. 지식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그런 탐구를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지식을 검색해보고 도움을 얻을 수는 있어요. 그래서 오히려 부모가 도와준다면 뭘 가르치기보다는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게 제일 나을 수 있습니다. 다만 아이가 처음 한 말과 그다음에 하는 말 사이에 모순이 있다면 그건 지적을 해줘야 해요.

예를 들어 아이가 공부를 안 하겠다고 해요. 그건 존중할만한 일이에요. 그러면 부모도 ‘그래, 안 할 수도 있다. 그러면 너는 뭘 하고 싶니?’ 이렇게 물어봐줘야 합니다.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때는 놀고 싶은 게 정상이잖아요. 공부하기 싫은 게 정상이에요. 또 중학교나 고등학교 다닐 때 여자 친구, 남자 친구를 사귀고 싶은 게 정상이에요. 그런데 왜 정상인 걸 가지고 자꾸 야단을 쳐요? 이건 지극히 정상이에요. 여러분을 보면 이렇게 야단치면서 자기는 꼭 안 그랬던 것처럼 시치미를 떼요. (모두 웃음)

어쨌든 공부를 안 하고 놀고 싶은 건 이해가 된다 이거예요. 그러면 이제 물어봐야죠. ‘놀고 싶은 건 이해가 된다. 그러면 대학은 갈래, 안 갈래?’ 이렇게 물어보면 돼요. 자기는 대학 갈 필요 없다고 대답한다면 그건 괜찮아요. 놀고 싶은 것과 대학 안 가겠다는 것은 일치하니까요. 그런데 이럴 수도 있겠죠.

‘대학은 가고 싶어요.’
‘그러면 현재 교육과정에서 놀아도 대학 갈 수 있을까?’
‘아니오.’
‘그러면 네가 선택을 해야 하지 않을까? 놀려면 대학을 가지 말고, 대학을 가려면 놀고 싶어도 공부를 좀 해야지.’

이처럼 아이가 어릴 때부터 자꾸 선택과 책임을 지는 기회를 마련해주세요. 틀리고 맞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선택은 어떤 선택이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는 걸 배우게 해 주세요.

그러니 우리는 아이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라도 어떤 문제를 제기하면 그걸 갖고 대화를 해야 합니다. 어떤 얘기도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해요. 대화를 하면서 ‘너의 그런 생각은 가상하지만 그것을 뒷받침해줄 재정적 기반이 없지 않느냐’ 이렇게 설명하면 돼요. 아이가 결혼하고 싶다고 해도 마찬가지예요.

‘결혼하고 싶어요.’
‘그건 좋지만 법령에 따르면 20세까지는 부모의 승낙이 없으면 결혼을 못하는데 어떡하겠니?’
‘엄마가 허락해주면 되잖아요.’
‘엄마는 해줄 의향이 없는데 어떡하겠니?’ (모두 웃음)

또 엄마와 자식, 아빠와 자식 사이에 의견이 달라도 ‘내가 네 의견을 존중하듯이 너도 아빠 의견을 존중해야 하지 않겠니?’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꾸 대화를 해서 아이를 존중해줄 때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처럼 공부를 몇 시간 더하라는 건 큰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집에 가서 잘 생각해보겠습니다.”

“뭘 생각을 해요, 그렇게 하면 되죠.” (모두 박수)

이 외에도 10명이 더 질문을 했습니다. 대화가 깊어갈수록 질문자들의 얼굴이 표정이 환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아쉽게도 질문 주제만 간략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막내아들이 우울증에 걸려 학교에 나가지 못하고 집에 있습니다. 가족들이 돌아가며 돌봐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이민을 오고 아이 낳기 전까지 공부를 해봐도 영어가 늘지 않았습니다. 영어를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요?
  • 2년 전 대학원 과정을 이수해서 이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5년간 다닌 직장이 여러모로 편해서 망설이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사는 것 자체에 대해서 이유를 찾기가 힘듭니다. 사는데 이유가 없으면 죽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 고학년 자녀를 두 명 두고 있습니다. 성적은 잘 받아오지만 생각이 깊지 않은 것 같은데 아버지로서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

  • 깔끔한 성격의 남편이 30분 단위로 계획을 세워서 아들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힘들어하고 사춘기가 되면 반항을 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 어머니께서 사회에서 배타시 하는 종교에 몸을 담그셨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박해하시고, 과도한 음주를 하시다가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두 분에 대한 원망과 후회에 젖어 지금까지 살았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는데,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해줘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형제들이 부모님을 찾아뵙는 효도 문제로 갈등을 빚었습니다. 형제 사이가 나빠져서 결과적으로 불효가 되었습니다.
  • 1년 전 부모님을 도와드릴 일이 있어서 도와드렸는데, 앞으로도 계속 도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니 삶에 대한 의지가 떨어졌습니다. 어떡하죠?
  • 부처님도 망설임이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해탈 후 진리를 설하기 전과 비구니의 출가를 처음으로 허락하기 전입니다. 그런 망설임이 있을 때 수행자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합니까.
  • 음식이 식탁까지 오게 되는 과정에 대해 알게 된 후 식생활이 바뀌었습니다. 가축들이 대량으로 사육되면서 받는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축산업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1명과 대화를 다 나누고 나니 거의 3시간이 지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살라고 당부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자기 나라에 살다가 힘들면 미국에 가고 싶어 해요. 미국만 가면 다 해결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작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죽겠다고 해요. (모두 웃음) 저는 이걸 볼 때마다 천국이 생각나요. 여기서 사는 인간들은 전부 힘들다며 천국에 가겠다고 하는데, 정작 천국에 가보면 거기 있는 인간들은 술집도 없고 노래방도 없어서 죽겠다며 다 뛰쳐나간다고 해요. (모두 웃음)

물론 여기에도 어려운 조건이 있겠지만, 자기가 있는 이곳에서 행복하게 살아야 해요. 한국 가면 한국 가서 행복하게 살고요. 여기서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한국 가서 행복해질 리가 없고, 한국에서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미국에 온다고 행복해질 수가 없어요. 혼자 사는 게 힘든 사람이 둘이 산다고 행복해질 수가 없고, 둘이 못살아서 헤어진 사람이 혼자 산다고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혼자 살면 외롭다 하고 둘이 살면 귀찮다 해요. (모두 웃음)

혼자 있을 때는 혼자 있어서 좋고, 같이 살 때는 같이 살아서 좋고, 한국에 있을 때는 한국에 있어서 좋고, 미국에 가면 미국에 있어서 좋고, 이렇게 항상 자기가 처한 조건에서 만사를 긍정적으로 보며 살아가는 게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의 삶이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해질 거예요. 자기의 존재를 조금 더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시면 좋겠습니다.” (모두 박수)

강연을 마치고 참석자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봉사자 33명을 포함하여 총 245명이 참가하였습니다. 정토불교대학에 관심을 표하신 분도 참 많았습니다.

스님이 책 사인회를 하는 동안 참가자들에게 말을 건네 보았습니다. 다들 “유튜브로 스님의 도움을 평소에 너무 많이 받고 있다”며 감사한 마음을 표시했습니다. 줄을 길게 서서 많은 분들이 스님의 사인을 받았습니다.

반가운 분들도 만났습니다. 예전에 워싱턴 정토법당을 다녔던 분인데, 의대를 마치고 산호세로 이사를 와서 병원에 근무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병원도 쉬고 봉사도 하고 강연을 들으러 왔다고 인사했습니다.

10년 전에 팟캐스트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서 즉문즉설을 올리면 좋겠다고 제안해주었던 분도 만났습니다. 오스틴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3년 전에 산호세로 이사 와서 지금은 IT회사에 근무하고 있다고 합니다.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기념 촬영을 한 후 수고했다고 인사하고 오늘 숙소인 김준자 님 댁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렌지카운티 강연에서 만난 봉사자들처럼 오늘 산호세 강연장에서 봉사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정토회원들의 모습도 다들 밝고 즐거운 모습이었습니다. 참으로 기쁘게 한바탕 신나게 노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여 내일 일정에 대해 의논하고 나니 금방 12시가 되었습니다. 내일은 캐나다 밴쿠버로 이동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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