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청년 동북아 역사기행 4일째로 백두산 정상에 올라 천지를 보았습니다.

원래 어제 연길에서 자고, 오늘 화룡에서 항일 독립유적지를 볼 예정이었습니다. 일기예보를 확인해보니 오늘이 비 올 확률이 가장 낮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백두산에 가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백두산 천지를 역사기행에서 빼야겠다.”고 하면서도 기행단이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했습니다.

3시에 기상하여 4시에 연길 새벽시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처음 중국의 새벽시장에 온 청년들은 활기찬 시장 풍경에 눈을 반짝이며 아침과 점심에 먹을 음식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스님도 옥수수 죽 한 그릇을 사서 조금 덜어먹고 남겨두었습니다.

1시간 동안 새벽시장을 경험하고 5시에 백두산으로 향했습니다. 연길에서 백두산 북편인 이도백하까지 버스로 4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백두산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잘 잤어요? 오늘 백두산에 오르니까 백두산에 대해서 사전 지식을 좀 갖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현장에서 자세하게 설명을 할 수가 없으니까요. 왜냐하면 첫째 사람이 너무 많아 도떼기 시장 같아서 설명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전혀 아닙니다. 둘째, 설명을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백두산 천지에 올라가서는 사진 찍고 끼리끼리 얘기하는 것 이상은 하기가 어렵습니다.”

스님은 먼저 백두산과 천지의 형성과정을 설명했습니다. 역사와 과학을 넘나들며 백두산에 대해 요모조모 배울 수 있었습니다. 북한과 중국이 백두산 천지의 경계를 나눈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백두산 정상이 딱 하나로 정해져 있으면 경계를 짓기가 아주 쉬운데, 엄격하게는 정상이라고 할 것이 없이 위에 올라가면 큰 웅덩이로 되어 있기 때문에 분쟁이 생겼습니다.

청나라와 조선 사이에 맺은 협약이 백두산 경계비에 적혀 있는데, 거기에는 ‘압록강과 토문강을 경계로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압록강을 따라 주욱 올라가면 골짜기 끝까지 제일 윗쪽에 천지를 둘러싼 백두산 능선에 이르게 됩니다. 압록강은 경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별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토문강을 경계로 한다’라는 부분에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토문강이 어떤 강으로 보느냐에 대해 청나라와 조선 사이에 해석이 달랐습니다. 청나라에서는 ‘당연히 토문강은 두만강이다’ 이렇게 말하고, 조선에서는 ‘경계비 세울 때 토문강이라고 써놓긴 했는데, 어느 강이 토문강인지는 불분명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조선 말기에 청나라와 국경 분쟁이 생겼을 때는 ‘토문강은 두만강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백두산 산록에서 흘려내리는 물은 세 군데로 갈라져 내려갑니다. 남쪽은 압록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서쪽과 북쪽은 송화강으로 흘러들어가고, 동쪽은 두만강으로 흘러들어갑니다. 백두산 산록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린 물 줄기의 일부는 북쪽으로 흘러 송화강으로 다 가버려요. 그래서 산록에서 동쪽으로 흘러가는 수많은 골짜기 중에서 어느 골짜기를 갖고 경계를 할거냐에 따라서 그 하류가 두만강으로 가기도 하고 송화강으로 가기도 하니까 두만강과 송화강 사이에서도 논쟁이 됩니다.

또 청나라와 조선 사이에 어느 것을 간도 땅으로 지칭할거냐 하는 해석 차이로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 갈등이 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 일본이 을사조약을 맺고 우리나라 외교권을 가져가서 청나라와 협약을 맺었어요. 이것을 ‘간도 협약’이라고 하는데, 그 내용이 동만주에 철도부설권을 일본이 가지면서, 청나라가 주장하는 토문강이 두만강이라는 설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백두산을 갖고 생긴 두 번째 논쟁은, 북한과 중국 사이의 국경에 관한 것입니다. 북한과 중국은 우리나라와 미국처럼 아주 맹방인데, 상호 총격전까지 해가면서 백두산을 두고 분쟁을 했습니다. 여기 지도를 보시기 바랍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그어진 것이 두만강 줄기입니다. 위에서 아래로 그어진 것이 압록강 줄기입니다. 두만강 줄기와 압록강 줄기가 올라가서 백두산 정상 부분에서 만나는데, 그 사이에 천지가 있습니다. 그러면 국경을 나눌 때 그 만나는 두 점 사이를 직선으로 그어야겠죠. 그런데 직선으로 그으면 천지가 우리 쪽으로 하나도 안 오고 다 중국 쪽으로 갑니다. 중국은 당연히 이렇게 해야한다는 주장이고, 북한은 최소한 천지의 절반은 우리가 가져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천지를 두고 국경에 대한 분쟁이 생긴 겁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한다면 직선으로 긋는 것이 합당합니다. 왜냐하면 양쪽에 개울을 따라 올라와서 능선에 딱 도달했는데, 그 다음에는 허공이니까 직선을 그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면 천지가 하나도 포함이 안 되니까, 북한에서 ‘백두산은 김일성 장군이 독립운동했던 성산인데 이건 안 된다’ 이렇게 나온 겁니다. 북한 노래에도 ‘장백산 굽이굽이 피 어린 자국, 압록강 굽이굽이’ 이런 가사가 있거든요. 우리 민족의 성산일 뿐만 아니라 북한은 혁명의 성산이라고 생각하는데, 천지가 다 중국 것이라고 하니까 북한에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예요. 이렇게 분쟁이 생겨서 양쪽 군대가 총격전까지 했고, 결국 김일성 수상과 주은래 수상이 국경 회담을 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국경선이 확정된 것입니다.”

백두산에 대해 한참 공부를 하다보니 어느새 저멀리 백두산 정상이 보였습니다. 스님은 백두산 천지의 물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알려주었습니다. .

“저 앞에 정면에 높은 능선이 보입니까? 저게 백두산 정상입니다. 지금 보이죠?”

“네!”

“오늘 날씨가 맑아서 백두산 정상 부분의 능선이 잘 보이네요. 그냥 보면 산 능선 같습니다. 저것이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능선입니다. 그 아래쪽에 호수 물이 빠져나가는 통로가 있습니다. 그 문을 달문이라고 합니다. 물이 호수에서 빠져나가서 급경사 면으로 흘러내립니다. 멀리서 보면 비단폭처럼 하얗게 보입니다. 그것을 ‘승사하’라고 합니다. ‘하’는 중국말로 강이라는 뜻입니다. 그 밑에 가서 폭포로 떨어지는데 그것이 장백폭포입니다. 우리말로는 비룡폭포입니다.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것 같은 모양이라고 해서 비룡폭포라고 합니다.

이 물이 흘러내려가면 이도백하가 됩니다. 우리가 지금 가는 동네 이름도 이도백하입니다. 물이 여기로 흘러내려가기 때문이에요. 중국에서는 여기를 관광지로 개발해서 어마어마한 신도시가 개발이 됐습니다. 옛날에는 산림벌채 한다고 몇 백 호가 사는 동네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몇 만 명이 사는 신도시가 되었어요. 백하에서 흘러내리는 첫번째 물을 일도백하라고 해야하는데, 중국 사람들은 머리 두 자를 써서 투도백하라고 합니다. 그 다음을 이도백하, 삼도백하, 사도백하, 오도백하, 이렇게 부릅니다. 방금 전에 삼도라는 도시가 있었어요. 삼도백하 가까이 있다고 마을 이름이 삼도입니다.

이도백하는 흘러서 송화강으로 갑니다. 송화강은 흘러서 흑룡강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오호츠크해로 빠져나가요. 천지물이 흘러 내려가면 압록강이나 두만강이 되는 것이 아니고 송화강이 됩니다. 압록강과 두만강은 백두산 산록에서 흘러내리는 물이고, 천지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송화강이 돼요. 그래서 용성 스님이 작사한 겨레의 노래 가사에는 ‘남낙동 북송화’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우리처럼 ‘남낙동 북압록’ 이렇게 부르지 않고, ‘남낙동 북송화’ 이렇게 불렀어요. 옛날 사람들은 송화강 유역이 우리 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지역에 전부 우리 조선족이 들어와서 살았기 때문이에요.”

버스는 이제 이도백하를 지나 백두산 북쪽 산문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백두산 천지는 남(南)편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지금은 폐쇄됐고, 서편으로 올라가는 길과 북편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가는 길은 북편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지난주에 1차 역사기행 때는 산 아래에 해가 쨍쨍했는데도 천지를 제대로 못봤습니다. 구름이 정상 부분에 걸쳐 있었어요. 천지가 보이고 안 보이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맑은 천지도, 구름 낀 천지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천지도 다 백두산의 자연 환경입니다. 이런 백두산의 자연 환경을 다 감상을 하면 되지, 꼭 이런 환경을 봐야 한다고 고집할 필요는 없어요. 그래도 맑은 천지에 목매는 사람들이 있어서 날짜를 바꿔서 이렇게라도 다시 오는 겁니다. 날씨가 오늘만 맑고, 내일부터는 계속 비가 온다고 해서 일정을 어렵게 조정해서 왔어요.”

백두산 북쪽 산문에 도착하니 9시가 넘었습니다. 산문을 지나 버스를 타고 다음 매표소에 도착하니 굉장히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하루 평균 백두산을 찾는 사람이 3만 명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날이 좋은 날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정상으로 가는 차를 타기 위해 다시 한 번 표를 끊어야 했습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백두산 정상에 오를 수 없기 때문에, 관리소에서는 시간별로 사람들을 끊어서 표를 끊어주고, 들여보내주었습니다. 표를 끊는 것부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청년 역사기행단이 도착하기 전에도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겨우 표를 끊고 차를 타는 곳에 갔더니 그 곳에도 많은 사람들이 긴 줄을 서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청년들은 싱글벙글한 표정이었습니다.

해발 2600m가 넘는 산 정상까지 꼬불꼬불한 도로가 나 있었습니다. 운전자의 곡예에 가까운 운전 실력으로 아찔한 재미를 느끼며 산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서 본 풍경도 멋졌습니다. 천지를 보기 전부터 감탄이 터져나왔습니다.

“저기 왼쪽에 보면 풀이 더 새파란 곳이 있죠? 저런 곳은 눈이 녹은 지 한 달도 안 된 곳이에요. 이제 새로 잎이 나서 저렇게 봄에 핀 싹 같은 거예요.”

조금 더 오르자 노란 야생화가 산 곳곳에 피어있었습니다.

“여기 야생화들은 눈 속에서 이미 싹을 틔우고 눈이 녹자 마자 일시에 꽃이 피웠다가 열매를 맺어요. 그래서 생장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짧습니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으니까요.”

백두산 정상에 내리니 서늘했습니다. 얼마 전에 눈이 녹았다는 말이 와 닿았습니다. 정상에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있었습니다.

천지를 가장 넓게 볼 수 있는 천문봉 정상으로 오르는 A코스에 사람이 많았습니다. 백두산 관리인들은 몇 십 명씩 끊어서 오르도록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스님과 청년들도 줄을 서서 기다린 뒤 천천히 A코스로 올랐습니다.

8월은 장마철이여서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는 확률이 20%정도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오늘도 날이 아주 화창했는데 금새 구름이 몰려왔습니다.

그만큼 시시각각 날씨가 변했습니다. 청년 역사기행단이 정상에 도착했을 때는 구름이 많이 있긴 했지만 다행히 천지는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우와!”

“서편에 5호 경계비가 있어요. 왼편에 툭 튀어나와 있는 부분 뒤쪽이 가장 높은 봉우리인 장군봉입니다. 높이가 2750미터입니다. 장군봉 주위에 높은 봉우리들은 모두 2700미터가 넘는 것들입니다. 저기 보시면 장군봉 왼쪽에서는 천지까지 내려오는 길이 있죠. 장군봉에서 동쪽으로 더 가면 6호 경계비가 있어요. 저쪽 서편에 있는 5호 경계비에서 이쪽에 장군봉 다음에 있는 6호 경계비까지 직선을 딱 그으면 그것이 국경선이예요. 호수의 5분의 3이 북한 것이고, 5분의 2가 중국 것입니다.

바로 앞에 보이는 호수의 길쭉한 면의 끝이 남편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의 정반대편이죠. 남문으로 올라오면 저쪽 끝으로 올라오게 돼요.

그래도 이 정도면 오늘은 잘 보이는 편이에요. 구름까지 있어서 더 좋네요. 해가 비치면 호수 위가 더 푸르게 보여요.”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천지 주위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천지를 마음으로 담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천지를 배경으로 몇몇씩 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모두들 감동의 순간을 사진으로 담느라 바빴습니다.

한 시간 정도 천지를 마음껏 보고 정상을 내려와 비룡폭포로 향했습니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부터 저 멀리서 비룡폭포가 떨어지는 웅장한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직접 보면 얼마나 더 웅장한 느낌일까 기대가 되었습니다.

비룡폭포 앞에 도착한 스님은 청년 역사기행단 140여 명을 위해 개인별로도 사진을 모두 찍어주었습니다. 청년들은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140여 명과의 개인 사진 촬영을 모두 마치고 스님은 잠시 비룡폭포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비룡폭포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소천지로 향했습니다. 소천지는 정말 맑고 투명한 호수였습니다.

잠시 쉬어가며 호수를 편안히 바라보며 감상을 한 후 녹연담으로 향했습니다. 녹연담은 작은 폭포가 흘러내리는 연못에 녹색 에메랄드빛이 가득했습니다.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빛깔이 나는 것인지 정말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하삼림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다시 연길로 돌아가려면 버스를 타고 4시간은 더 가야합니다. 백두산에서 너무 늦게 출발하면 안 되기 때문에 지하산림을 50분 만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힘들거나, 뒤늦게 온 사람은 가지 않고 나머지 청년들은 스님과 함께 빠르게 원시림 속을 걸어 지하삼림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지하삼림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습니다.

“여기가 지하삼림입니다. 계곡의 주변 지반이 붕괴하여 생긴 거대한 웅덩이 같은 곳에 형성된 울창한 숲이에요. 지하에 숲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계곡이 함몰된 곳에 숲이 형성된 것인데, 여기 절벽에서 보면 마치 땅 아래에 숲이 있는 것 같죠. 땅이 푹 꺼진 곳에서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서 지하삼림이라고 해요. 김홍신 작가님이 소설 ‘대발해’를 상당 부분 써놓고 나서 역사기행을 왔었는데, 여기서 이 지하산림을 보고 발해 군사들이 여기 지하산림에서 훈련하는 내용을 덧붙였다고 해요.”

정말로 넓은 면적이 땅으로 푹 꺼진 모습에 모두들 놀라워했습니다. 다시 빠르게 온 만큼 되돌아 나갔습니다.

백두산 산문을 나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이도백하까지 이동했습니다.

“올라가서 노래도 마음껏 부르지 못했는데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신나게 노래를 불러봅시다.”

스님의 제안에 청년들은 기뻐하며 신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차량별로 ‘백두산’ 노래를 돌아가며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백두산으로 찾아가자! 우리들의 백두산으로!
신선한 겨레의 숨소리 살아 뛰는 백두산으로
만주벌판 말을 달리던 전사들의 투쟁의 고향!
동해에서 서해에서 남도의 끝 제주도에서
그 어디서 떠나도 한품에 넉넉히 안아줄 백두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버스 안은 순식간에 열기가 활활 타올랐습니다. 흥이 오른 청년들은 ‘홀로 아리랑’ ‘광야에서’도 함께 부르고,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도 불렀습니다. 한 청년은 오늘 백두산 천지를 보며 새로운 세상을 보는 느낌을 받았다며 그 느낌을 노래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다 보니 이도백하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청년 역사기행단은 다시 연길로 출발했습니다. 4시간 정도 버스로 이동하는 거리라 두 시간은 쉬고, 두 시간은 버스 안에서 공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스님은 곤하게 잠든 청년들을 연길까지 자도록 두었습니다.

내일은 새벽 3시 20분에 기상해서 청산리전투터, 대종교 3인묘, 용정, 봉오동전투터 등 북간도의 항일독립유적지를 돌아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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