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동북아 역사기행을 떠난지 3일째 되는 날입니다. 오늘은 집안에 있는 고구려 유적들을 돌아보며 고구려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탐사했습니다.

새벽 5시 정각에 숙소를 출발해 국동대혈로 향했습니다. 몸이 피곤한 분은 숙소에서 쉬어도 된다고 했지만, 한 분도 쉬지 않고 모두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저기 보세요. 산꼭대기를 빼고는 다 뙈기밭이에요.”

국동대혈로 가는 길에 보이는 압록강변의 북한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웠습니다. 산을 개간해서 만든 밭이 뙈기밭입니다. 산 전체를 둘러싼 뙈기밭을 보면서 굶주린 북한 주민들이 얼마나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쳤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동대혈로 올라가는 길에는 관세음보살이 모셔진 관음굴이 있습니다. 매년 이곳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발원하며 예불을 드렸는데, 올해는 굴이 막혀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정부에서 종교행위를 금지하여 관세음보살상을 부수라고 지시했는데, 이 유적지를 사유한 사람이 사정해서 막아두기만 했다고 합니다. 앞이 막힌 곳에서 예불을 드리고 국동대혈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안개가 어슴푸레 서린 산 중턱을 지나 하늘로 뻥 뚫린 국동대혈에 들어섰습니다. 국동대혈은 국내성의 동쪽에 있는 큰 동굴로 고구려의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입니다. 스님은 고구려 왕들이 나라의 번영을 기원했던 것처럼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을 간절히 발원하였습니다.

스님의 간절한 목소리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스님의 발원을 가슴에 새기며 통일의병들도 모두 합장 반배를 함께 했습니다.

둥글게 서서 손을 맞잡고 남북한의 평화와 통일을 간절히 기원했습니다.

이제 날이 완전히 밝았습니다. 국동대혈을 내려와 압록강변을 따라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강 건너편 북한의 모습이 더욱 뚜렷이 보였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북한 사람도 보였습니다.

“건너편에 아파트가 쭉 있는 게 보이죠. 저 곳이 북한 만포시입니다.”

중국 집안과 만포시 사이에는 하루에 한 번씩 기차가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같은 민족은 오갈 수 없는 길입니다. 뻥 뚫렸지만 갈 수 없는 길을 보며 서울에서 평양을 거쳐 만포로 기차를 타고 역사기행을 오는 날을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8시에 숙소로 돌아와서 아침을 먹고 짐을 싼 후 시장에 들러 점심에 먹을 음식을 샀습니다. 기행단은 한 시간 안에 모든 일을 마치고 재바르게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이어서 400년이 넘도록 고구려의 수도로 사용된 집안시 곳곳을 꼼꼼하게 돌아보았습니다. 장군총, 광개토대왕비, 광개토대왕릉을 차례대로 둘러보며 고구려인들의 숨결을 더욱더 가까이에서 느껴 보았습니다.

먼저 동방의 피라미드라고 불리는 장군총을 둘러보았습니다. 스님은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어제 배웠던 것 중 핵심만 요약해서 알려주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장군총은 총 7층으로 되어 있고, 돌의 층수는 22층, 쌓여있는 돌의 총 개수는 1,100개입니다. 옆에 길쭉하게 세워놓은 돌은 호석이라고 하는데, 중력 때문에 밖으로 밀려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세워놓았습니다. 호석 한 개의 무게가 작은 것은 15톤, 큰 것은 25톤이 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큰 돌입니다. 5층에는 무덤실이 있습니다. 무덤의 천장을 덮은 돌은 통돌입니다. 통돌의 무게는 50톤입니다.

장군총 밑바닥에는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해 진흙을, 가라앉지 않게 하기 위해 강돌을 함께 다져 넣었습니다. 진흙과 강돌을 아주 단단하게 다진 위에 큰 바닥돌을 깔았습니다. 바닥돌에는 홈을 팠습니다. 그 홈에 맞물리도록 한 다음 돌을 쌓았습니다. 그래야 밖으로 밀려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조별로 나보다 똑똑한 사람에게 배우면서 한 번 살펴보세요.”

어제 배웠던 것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장군총을 꼼꼼히 둘러보았습니다. 무덤 가까이에 다가가 정말로 바닥돌에 홈이 파져있는지, 호석이 있는지 등 일일이 확인해 보며 다시 한 번 선조들의 지혜를 헤아려 보았습니다. 겉으로 보기만 해서는 쉽게 알 수 없는 과학적 원리가 곳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이어서 광개토대왕비와 광개토대왕릉을 보았습니다. 광개토대왕비는 장수왕 때 만든 것으로 높이가 6.39m나 되는 웅장한 비석입니다. 비석에는 고구려의 건국 이야기와 대왕의 업적에 대해 자세한 기록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어떻게 이 어마어마한 돌을 옮겨서 이렇게 글을 새겼는지 놀랍기만 했습니다.

광개토대왕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후 바로 옆에 위치한 광개토대왕릉으로 이동했습니다. 18세에 왕위에 즉위하여 39세에 죽을 때까지 광활한 영토를 확장했던 광개토대왕은 그 업적에 걸맞게 무덤의 크기가 장군총에 비해 훨씬 컸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무덤인지 돌산인지 구분할 수 없는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차례로 광개토대왕릉에 올라 무덤실도 살펴보았습니다. 무덤실 앞에 중국 관리인이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었습니다.

올해는 고구려 벽화가 있는 5회분 5호묘는 보지 못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문화재 발굴 공사를 시작해서 입장을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아쉬운 마음에 가는 길에 고국양왕의 능으로 추정되는 천추대묘와 미천왕의 능으로 추정되는 서대묘를 둘러보았습니다. 여기까지 고구려 유적을 둘러보고 이제 집안을 출발해 통화를 지나 림강으로 향했습니다. 버스 안에서 점심식사로 아침에 시장에서 사온 음식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집안에서 림강까지는 약 4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버스 안에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두 가지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 동안 고구려 유적을 살펴보며 야외에서 모여서 유적에 대해 설명할 수도 없고, 유적을 살펴보는데 중국 관리인의 제지를 받거나 유적에 들어갈 수조차 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한 분은 그런 상황을 보며 고구려가 우리 역사라고 알고 있었는데 중국인들은 고구려를 어떻게 생각하길래 유적 보는 것을 제지하는지 물었습니다. 또 남북이 통일된다면 역사적 정통성을 어디에 둬야할지에 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이동하는 도중 3호차에 가벼운 접촉사고가 생겼습니다. 3호차의 차를 바꾸어야 했습니다. 성수기라 대형버스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일단 1,2호차가 림강으로 먼저 출발하고, 1호차가 다시 되돌아와 3호차 의병들을 태워 림강으로 오기로 했습니다.

림강에 먼저 도착한 1,2호차 기행단은 두 군데 숙소에 나누어 짐을 푼 후 저녁 5시 반부터 강당에 모여 저녁 강연을 들었습니다. 3호차 의병들이 없기 때문에 오늘 저녁 강연은 특별한 주제 없이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이 “그동안 여행하면서 궁금했던 점에 대해 물어보세요”라고 하자 여기저기서 몇몇 분들이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 그 중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아올 방법에 대한 질문과 민족주의가 세계화와 부딪치는 건 아닌지에 대한 질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아올 방법이 있을까요?

“막상 중국에 와서 거대한 영토를 보니까 ‘이 땅이 지금도 우리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듭니다. 잃어버린 고토인 간도와 연해주를 되찾아올 어떤 비법이 없을까요?” (모두 웃음)

“역사적으로 세계사를 살펴보면 영토는 늘 주인이 수도 없이 바뀝니다. 때로는 이 나라가 차지했다가 때로는 저 나라가 차지하면서 늘 바뀌어요. 유럽만 봐도 그렇게 수없이 주인이 바뀌고 있고요. 주인이 잘 안 바뀐 나라들은 영국이나 일본 같은 섬나라여서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은 적이 별로 없는 경우거나 비교적 최근에 건국된 미국 같은 나라 정도예요. 중국만 하더라도 이민족에게 영토를 지배당한 것이 여러 번이고, 인도도 마찬가지고, 중동의 경우에는 주인이 수도 없이 바뀌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이게 내 땅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원래 내 것이라는 것은 없어요. (모두 웃음)

오늘날에 와서 우리가 ‘연해주와 북간도가 우리 땅이다!’ 이렇게 접근하는 방식은 국제분쟁을 초래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여기 와 둘러보면서 ‘백두산이 우리 거다’, ‘만주가 우리 거다’ 이러는 사람들이 가끔 있어요. 그래서 중국에서도 엄청나게 긴장을 하고 감시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이 우리 거다, 너희 거다’ 이런 시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이 땅에 우리 선조들이 옛날에 살았고 그들의 유물과 유적이 지금 여기에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곳을 여행하는 거예요. 이 땅이 옛날에 우리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 다시 찾으려고 둘러보러 왔다는 개념은 아닙니다. ‘우리 거다!’라는 관점에 서면 국제분쟁을 초래하게 됩니다.

영토가 크면 좋긴 하지만, 미래에는 영토가 크고 인구가 많다고 반드시 좋은 건 아니에요. 앞으로는 유연하게 가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영토가 크고 인구가 많으면 짐이 너무 무거워져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럽에서 강대국으로 꼽히는 나라들의 인구를 살펴보면 독일 같이 큰 나라가 8천만 명 정도 되고,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는 다 6천만 명 수준이에요. 면적도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프랑스가 한반도의 3배 정도 되고, 영국 같은 나라는 한반도와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니 지금은 영토나 인구의 규모가 국력을 크게 좌우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홍콩이나 싱가폴 정도로 영토나 인구가 너무 작다면 참신한 사회는 만들 수 있지만 하나의 국가라고 하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죠.

그런데 한국은 남북이 통일이 되면 크게 확장돼요. 남한만 따지면 세계적으로 좀 작은 축에 들어가지만, 남북이 통일이 되면 영토는 21만 제곱킬로미터에 인구는 7천 5백만~8천만 명 정도가 돼요. 유럽과 비교하면 독일보다는 좀 작지만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수준은 돼요. 경제면에서 보면 이미 남한만 가지고도 스페인은 넘어섰고요. 우리보다 앞서 있는 유럽 나라들을 살펴보면 GDP 규모가 큰 나라가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이렇게 4개국입니다. 그런데 독일을 제외한 세 나라는 남북이 통일되면 금방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고 볼 수 있어요.

경제 규모로 따지면 세계에서 미국이 제일 크고, 그 다음이 중국이고, 세 번째가 일본이에요. 앞으로 20년 정도를 내다보면 일본은 밀리게 돼 있고, 인도가 세 번째로 들어오겠죠. 그 다음이 일본, 독일이 될 겁니다. 여기에 더 밀고 들어올 나라가 러시아, 그 다음이 브라질 정도입니다. 통일된 한국이 이들 7개국을 제외하고 바로 세계 8위 정도의 경제력을 갖는 것은 사실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즉 영국이나 프랑스 정도를 능가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해요. 그러면 전 세계에서 큰 규모를 갖기 때문에 결코 작다고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국가 규모가 너무 크거나 작으면 안 좋지만, 어느 정도의 규모는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남한만 가지고는 국가 규모도 적을 뿐 아니라 남북 갈등 때문에 장애가 생겨요. 북한이 없고 남한만 있다면 그래도 괜찮겠지만, 민족의 분단으로 늘 갈등관계에 있다 보니 남한의 발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돌아보면 남북한의 분단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서로 싸우면서 경쟁하다보니 오히려 발전의 동력을 가져온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남한만 갖고는 거의 발전의 한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통일을 해야 하는 거예요. ‘같은 민족이니까 통일하자’, ‘분단됐으니까 통일하자’ 이런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의 발전 전략 차원에서 통일 문제를 딛지 않고는 국가 비전을 잡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제는 질적으로 발전을 해야지, 영토를 더 확보한다고 해서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아요. 국제 분쟁을 일으켜가면서 영토 문제에 집착하면 오히려 현재와 같은 국제 정세에서는 훨씬 발전을 더디게 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러시아는 워낙 나라가 크니까 크림반도 사태로 무역규제를 받아도 견뎌내지만, 한국은 대외의존도가 90퍼센트입니다. 대외의존도가 90퍼센트인 국가가 국제분쟁에 휩쓸린 상태에서 국가발전계획을 세운다는 건 불가능해요. 그렇기 때문에 영토의 확장을 도모하는 것은 그런 꿈은 꿀 수 있지만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민족을 강조하다보면 세계화와 충돌하는 것 아닐까요?

“고대사를 통해서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부분이 자칫하면 지금 전 세계가 공통성을 추구하는 세계화와 충돌할 위험성이 있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스님도 강의하실 때 민족이라는 표현을 자주 하셨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 우리가 어떤 견해를 가져야 대한민국도 위대하게 만들면서 전 세계와 공존할 수 있을까요?”

“민족주의라는 것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위대하다. 그래서 남의 민족을 지배해도 좋고, 지배하는 게 당연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우월주의적 민족주의입니다. 이것은 세계 평화를 해칩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일본의 민족 우월주의, 중국의 중화주의, 독일의 게르만주의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 분쟁을 불러오고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러나 민족 해방적 성격을 갖는 민족주의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즉 다른 민족의 억압을 받고 있으면서도 자주적 입장이 없이 그런 굴욕을 당연히 받아들이던 민족이 ‘아, 우리도 우리의 자주적 권리가 있다’ 하고 자기 긍정성을 갖고자 민족 해방을 추구하는 것은 인류의 해방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렇듯 같은 민족주의라 하더라도 후자의 민족주의는 인민의 해방을 추구하고 피압박 계급의 해방을 추구하는 민족주의이지 세계 평화를 깨뜨리는 민족주의가 아니에요. 억압된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모두 인류 문명의 발전에 있어서 정당하다고 봐야 해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민족주의는 민족 우월주의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콤플렉스나 열등의식을 극복하자는 의미의 민족주의예요. 약간의 피해의식이나 열등의식을 갖고 있는 것에서 벗어나 자주적 입장을 가지자는 겁니다.

이것은 이웃 친구와 대등하게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데도 꼭 필요합니다. 우리가 열등의식을 갖고 중국이나 일본을 대한다면 조그마한 일에도 피해의식이 발동해서 친구관계가 깨질 수 있어요. 우리가 그러한 열등의식에서 벗어나야 건강한 친구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요.

상고사에서는 황하 문명보다 2천년 정도 앞선 요하 문명에 대해 얘기하는 겁니다. 없는 걸 지어내서 우리가 위대하다고 우기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지금 문명이 발굴돼서 전시되고 있고, 중국에서 연구를 해서 어마어마한 결과물이 나와 있잖아요. 그걸 조금만 생각해보면 중국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이것은 옛날 우리 조상들의 문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걸 굳이 외면할 이유는 없잖아요. 그걸 견강부회(牽强附會)해서 우리 것도 아닌데 우리 것이라 하고, 우리가 최고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에요.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충분히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부분을 그냥 주장할 게 아니라, 국가에서 많은 인력을 투입해 연구를 해서 지금껏 기록이 부족했던 우리들의 유실된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유실된 역사를 복원하려면 지금 중국 역사책에 기록된 것만 자꾸 찾아보려 하지 말고, 이 땅에 함께 살았던 다른 나라와 민족들의 역사들을 다양하게 살펴봐야 해요. 몽골 역사도 연구하고, 거란 역사도 연구하고, 여진 역사도 연구하고, 그 나라의 말도 연구하고, 그들의 전설도 연구하다 보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많이 보완할 수 있어요.

일본 천황 쪽 기록들도 연구해야 해요. 그게 다 우리 역사의 일부이기 때문에 일본 것이라고 무조건 외면하면 안 돼요. 오히려 그 부분을 연구하면 우리의 역사를 더 밝혀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신사 같은 것도 무조건 ‘일본 놈들이 세운 신사는 나쁘다!’ 이렇게 접근하면 안 돼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호미를 가져가서 일본에 전달하면 그게 일본 신사에서는 호미신이 되고, 낫을 가져가면 낫신이 되고, 감자 씨를 가져가면 감자신이 되었던 겁니다. 이렇게 우리나라로부터 받아들인 것을 일본은 모두 신격화했기 때문에 일본에 신이 그렇게 많은 거예요. 그러니 그런 걸 일본 것이라고 무조건 반대할 게 아니에요. 가만히 보면 그게 다 우리 조상들이 당시 일본에 들어가서 전파한 것이 신이 되어 남아 있는 거예요. 이런 것도 좀 합리적으로 연구를 해야 합니다. 일본에서도 좋은 게 있으면 배우고요. 일본 문화의 원류가 다 우리 문화인데, 지금 우리가 일본과 갈등이 있다고 해서 그걸 다 부정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싸워야 할 것을 싸우지 않고 비굴하게 구는 것도 나쁘지만, 포용해야 할 것을 배척하는 것도 자기 정체성이 부족한 데서 나오는 거예요.

좀 당당하게 세계의 모든 문명을 다 열어놓고 연구하고 토론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 데서 우리가 너무 협소한 의식을 가지니까 제가 ‘우리 조상들은 옛날에 이런 웅장하고 당당한 면도 있었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역사는 객관적으로 접근해야 해요. 자긍심 이야기가 나오면 여러분은 무조건 광개토대왕이 만주 벌판을 휘날리고 어쩌고 하는데, 광개토대왕비에 쓰여 있는 건 전부 백제성 빼앗은 얘기가 대부분이에요. 물론 고구려의 입장에서 볼 때는 고구려의 철천지원수를 갚은 것이니까 엄청나게 위대한 업적이죠.

그러나 우리가 민족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고구려도 우리 민족이고, 백제도 우리 민족입니다. 자기들끼리 역사적 정통성을 위해서 싸운 것이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 ‘광개토대왕이 무조건 위대하다’ 이렇게 접근하는 것도 옳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가 역사를 좀 더 객관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경험해서 직접 아는 거예요. 위대하다고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내가 경험하고 사실을 알면 위대할 수밖에 없어요. 부처님이 위대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부처님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면 알수록 위대하게 느껴지잖아요.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래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만 밝히면 되지, 뭘 과장해서 강조할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것은 인류 문명사에도 좋은 거예요. 만약 터키에서 인류 최초의 문명이 발견됐다고 하면 그게 인류 문명사에 기분 나쁜 게 아니잖아요. 그게 터키에서 발견됐든, 이집트에서 발견됐든, 인류 문명사에서 보면 좋은 일이잖아요.” (모두 웃음)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우리 민족을 한민족이라고도 하고 조선족이라고도 합니다. 한의 의미를 알겠는데 조선은 어떤 의미에서 나온 것인가요?
  • 4대강국이 반대하는 상황 속에서 남북한만 합의한다고 통일이 가능할까요?

1시간 30분 동안 질문을 받고, 스님은 30분 동안 단군신화를 자세히 해석해주며 신화를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정리해주었습니다.

“제 말이 다 맞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여러 가지 사료를 가지고 대략 인류문화사적으로 유추해보는 것이죠. 무조건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해도 안 되고, 무조건 다 진실이라고 해도 안 되고, 앞으로 더 연구를 해야 할 과제입니다.

다만 신화나 설화가 실제 역사와 일치하는지는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치우천왕이 황제 헌원과 100번 싸워 100번 이겼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치우천왕은 뿔이 나 있었대요. 이건 무슨 뜻일까요? 머리에 뿔이 났다는 묘사는 투구를 썼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살펴볼 수 있습니다.

현재 요하강 상류 지역에서 발견된 신전이나 무덤의 크기와 규모, 출토된 옥기 등 유물의 면면을 살펴보면 황하 문명보다 1천 년에서 2천 년 앞서 있습니다. 이 문명은 우리의 역사 속에 배달시대, 단군조선시대와 시간적으로 거의 일치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좀 더 깊이 연구한다면, 단순한 설화라고 생각했던 내용이 역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요하강 상류 지역에서 확인된 무덤과 성들은 고구려 성이나 무덤의 초기 원류라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상당히 큽니다. 이 지역에서 발견된 여신상은 웅녀의 신상일 가능성도 매우 높고요. 좀 더 깊이 연구해보면 이런 점들을 우리가 유추해볼 수가 있어요.

이렇게 살펴볼 때 중국이 세계 5대 문명의 하나라고 말하는 이 요하 문명은 엄격하게는 우리의 배달 문명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배달 문명과 조선 문명은 같은 곳에서 일어났기 때문이에요. 그러다가 조선 문명의 말기에 이르러 분열되고 흩어진 거죠.

이것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에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고구려 건국이념이 ‘다물(多勿) 사상’이잖아요. 다물 사상은 조선의 잃어버린 옛 영토를 되찾자는 운동이에요. 신라처럼 6부 촌장이 모여서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고 나라를 만들었다는 식의 개념이 전혀 아니에요. 혁명군이 모여서 잃어버린 땅을 되찾기 위해 건국한 나라가 고구려입니다. 그전에 자신들의 모본이 되는 커다란 본래 나라가 있었다는 뜻이에요. 그랬기 때문에 고구려인들은 제국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이 동북 지역이 원래 단군조선의 땅이었는데, 한나라에 잃었다. 그러니 우리가 옛 땅을 되찾자’

이런 뜻을 지녔기 때문에 제국이라는 큰 그림을 그렸던 거죠. 그런데 경주에서 여섯 씨족이 모여서 ‘우리도 나라 하나 만들자’ 해서 만드는 수준에서는 제국에 대한 미련이 없잖아요.

이렇게 신라와 고구려는 차원이 다릅니다. 신라는 인류문화사에서 씨족이 부족이 되고, 부족이 부족연맹이 되고, 부족연맹이 고대왕국이 되는 절차를 거쳐 발전해온 거예요. 그러나 고구려의 건국은 그런 개념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제국을 재건하는 운동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는 중국과의 관계나 동북아 지역 다른 민족들과의 관계에서 한 번도 자부심이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언제나 주인 된 자세로 대응했어요. 문명의 어떤 정신을 계승하지 않고는 그런 태도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하문명이 고구려와 연결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우리가 민족의 뿌리에 대해 좀 더 연구하고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그 이후에 신라가 작지만 아주 섬세한 고도의 문명을 이룩한 것도 눈여겨봐야 해요. 최치원 선생이나 원효 스님 같은 분들은 단순히 그냥 유학을 공부했거나 불교를 공부한 게 아닙니다. 이분들은 우리의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정신을 계승했습니다. 원효 스님은 순수하게 불교만 연구한 게 아니라 우리의 전통사상과 불교를 결합했어요. 최치원 선생은 순수하게 유교만 공부한 게 아니라 유교와 우리의 전통 사상은 물론 불교까지 결합했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순전히 유교만 따지는 사람들은 최치원 선생이 사실은 우리나라 유학자의 효시인데도 그를 서원에서 빼내버렸어요. 불교를 비롯해 잡다한 걸 공부하니까 순수 유학이 아니라고 본 거죠. 당시 유학자들은 이런 편협한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전통문화나 사상에 대한 재검토가 좀 필요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빠른 속도로 발전을 이룬 이유는 세계 최고 문명을 가진 미국과 가깝게 교류했던 것도 있고, 우리의 노력도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것만 갖고는 설명하기 쉽지 않은 부분을 우리 역사 속에서 좀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은근과 끈기, 약소국이니 하는 담론은 조선시대 이후에 형성된 거예요. 최근 500여 년 안에 형성된 것입니다. 그 이전 고려시대까지는 비록 힘은 다소 약할지 몰라도 의지와 기상이 높았어요. 그러다 조선시대에 와서 자발적 사대(事大)를 함으로 해서 중국에 완전히 편향된 변방의 약소민족으로 전락했고, 그 후 일본의 침략을 받으면서 더 많이 위축되었어요.

이런 부분은 우리가 상고사를 제대로 정리한다면 다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강연을 마친 후 8시부터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오늘은 저녁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지만 3호차가 늦게 오게 되어 식사만 했습니다.

3호차는 밤 11시가 되어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3호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고생한 기행단을 격려해주었습니다. 3호차 기행단은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림강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지역이라 중국 경찰의 감시가 더욱 삼엄했습니다. 한꺼번에 많은 한국인이 찾아온 것을 경계하여 오늘 밤 기행단이 머무는 숙소에 경찰이 경비를 선다고 했습니다. 스님은 중국 경찰을 대응하느라 고생한 현지 가이드 조신 님을 격려하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내일은 전체 일정 중에 버스를 가장 오래 타는 일정입니다. 림강을 출발하여 압록강을 따라 달리며 북한 국경변을 계속 만나게 됩니다. 장백에 이르러 영광탑을 참배하고 북한의 혜산시를 내려다 본 후 백두산 아래 동네인 이도백하까지 가는 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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