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행복시민과정 참가자들을 위한 영상편지, 깨달음의 장 2000차 축하 영상을 촬영하고, 저녁에는 청년들을 위해 역사 강연을 했습니다.

새벽 3시에 두북에서 출발해 6시 반에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조금만 늦어도 출근길과 겹치면 차가 많이 막히기 때문에 일찍 출발했습니다.

서울에 도착하여 잠깐 휴식한 뒤 9시부터 평화재단에서 기획위원들과 회의를 했습니다. 12시에는 미국에서 손님이 오셔서 오찬을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부터 스님은 21일간 단식을 시작하기 때문에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오후 1시에는 행복학교 실무자들이 영상 촬영을 하러 왔습니다. 행복시민과정을 모두 수료하고 행복학교 실습을 앞두고 있는 참가자들을 위해 격려의 말을 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스님은 영상을 통해 행복시민과정을 수강하고 있는 참가자들을 따뜻하게 격려해주었습니다.

촬영을 마치고 저녁까지 평화재단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저녁 7시 30분에는 서초법당에서 청년 역사학교 졸업특강 ‘청춘역사톡!톡!’이 열렸습니다. 청년역사학교 참가자뿐만 아니라 일반 청년 정토회원도 강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청년역사학교 1기 수료생 40여 명을 포함한 120여 명이 법당을 가득 메웠습니다.

“잘 지냈어요?”

스님은 자상한 목소리로 청년들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지난 2월 정초 순회법회에서 청년들과 만나고 5개월 만에 열린 법회입니다.

“오늘 강연 주제는 ‘역사’입니다. 개인적인 어려움도 많이 간직하고 있겠지만 오늘은 주로 ‘청년들이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역사 속에서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거예요. 오늘부터 단식을 시작해서 목소리가 잘 안 나오네요. 마이크 소리를 조금 키워주세요.”

스님은 매년 여름 명상수련을 진행하는 전후로 3주나 4주간 단식을 해오고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가늘었습니다. 마이크 소리를 키우고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먼저 우리가 어떻게 괴롭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지, 괴로운 이유는 인식의 오류 때문인데 인식의 오류가 왜 생기고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다양한 비유를 들어 설명해주었습니다. 금세 40분이 흘렀습니다.

“인식상의 오류가 시정되면 불안이 사라지고, 화가 사라지고, 괴로움이 사라지고, 미움이 사라집니다. 이런 공부를 왜 안 하려고 해요? 여러분은 몸뚱이만 젊지 청년 기질이 하나도 없어요. (모두 웃음)

역사 이야기를 한다고 해놓고 수행 이야기를 실컷 했네요. 제가 보기에 안타까워서 그래요. 어떤 조건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이 좋은 법을 두고 왜 공부를 안 하는지 노파심에서 길게 이야기했어요. 이해해주세요.” (모두 웃음)

어느덧 스님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습니다. 스님은 왜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주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와 조선조 말엽인 1880년대와 비교해 봅시다. 그때 우리는 사회 시스템이 봉건적인 신분제도에 묶여 있었어요. 나라는 청나라의 속국으로 묶여 있었고요. 그런데 일본에 가보니까 북경보다 동경이 더 발달돼 있었어요. 산업화도 돼 있고, 가부장적인 면도 상당히 약해서 여성도 교육을 받고, 신분제도도 많이 변해서 신분 낮은 사람들도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이것은 모두 서양의 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잘 살려면 개화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하게 됐어요. ‘외래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 ‘개방을 해야 한다’라고 주장을 한 사람들이 개화파입니다.

역사와 관계없는 올바른 길이란 없어요

그리고 지난 200년 동안 우리는 청국에 예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청국이 우리의 종주국이고 대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계로 나가보니까 더 큰 미국도 있고, 영국도 있고, 가까이엔 일본도 있었어요. 그러면 청국의 속국으로 있을 이유가 하나도 없잖아요. 그래서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독립협회를 만들고, 독립문을 세우고, 독립신문을 발행했습니다. 여러분은 독립이라고 하면 그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만 생각하죠? 독립협회는 청나라로부터 독립하자고 만든 조직이고, 독립문은 청나라로부터 독립하자고 세운 문이에요. 독립신문은 청나라로부터 독립하자고 만든 언론이에요. 당연히 그 언론은 일본은 좀 칭찬하고 선망하는 반면 청나라는 좀 비판하는 태도를 취하게 되겠죠. 그때 역사의 맥락에서는 그게 선이라고 생각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청일전쟁을 해서 일본이 이겨버렸어요. 이때까지는 개화파들의 주장이 옳았어요. 진리이자 진보였죠. 그런데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고 나니까 이제는 우리를 지배하려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본하고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일본을 선망하고 일본을 좋게 말한 사람의 입장이 하루아침에 친일세력이 돼버린 겁니다. 즉 개화파가 친일세력이 돼버렸어요.

그리고 개화를 반대했던 사람이 이번엔 애국지사가 돼버렸습니다. 개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유교적 가치관에 서 있었기에 여성의 권리, 신분해방, 이런 가치관도 반대했던 사람들이에요. 그런 가치관들은 서양에서 온 것이었기 때문에 서양에 대해 반대했고, 일본에서 온 것이었기 때문에 일본에 대해서도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면서 ‘일본 하고 싸워야 한다’, ‘단발령에 대해서 저항해야 한다’, ‘의병을 일으켜서 싸우자!’ 하는 운동이 일어나게 되자, 이들 소위 ‘수구꼴통’이 독립운동가가 된 겁니다. 개화파가 친일 매국노가 되어 버렸고요.

시기와 관계없이 올바른 길이라는 건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은 역사하고 관계없이 진실한 것이 있다고 믿잖아요.

어떤 사람이 권투를 해서 주먹이 좀 세다고 합시다. 그런데 집에서 부인하고 갈등을 일으키다가 화가 나서 때려버렸더니 부인 앞니가 부러지고 난리가 났어요. 그러면 이 사람은 나쁜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 사람이 밤길을 가다가 어떤 남자가 어떤 여자를 성폭행하려는 모습을 봤어요. 가서 말리니까 그 남자가 칼을 빼서 덤비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주먹으로 때려버렸더니 상대의 앞니가 빠지면서 거꾸러졌어요. 이 경우에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 거예요.

이 사람이 주먹이 센 것 자체는 정의도 아니고 불의도 아니에요. 어떤 조건에서 작용했느냐에 따라서 이것은 정의가 될 수도 있고 불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 그 행동을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냥 ‘내가 하는 행동은 정의다!’ 이런 주장은 맞지 않아요. 똑같이 주먹을 쓰더라도 어떤 환경에서 썼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잘한 일이 되기도 하고, 잘못한 일이 되기도 합니다. 역사라는 건 시간이니까 어떤 시간과 어떤 역사적인 맥락에서 그 일을 했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지는 거예요.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우리의 삶은 늘 시간과 공간이 변해가는 속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처럼 이 세상도 관계가 서로 변해갑니다. 그래서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거예요.

그렇다고 고대사를 달달 외우는 공부만 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에요. ‘나’라는 존재는 나라고 하는 개인인 동시에 공동체의 일원이에요. 손은 손 자체이기도 하지만, 이 몸의 일부인 손이기도 합니다. 손이 자기 혼자 살겠다고 손을 제외한 다른 걸 다 잘라내 버리면 손이 살 수 없어요. 반대로, 손이 몸의 일부라고 해서 눈 하고 손이 같거나 발하고 손이 같은 것도 아닙니다. 각자의 독자적 기능이 있지만 그 기능은 서로 연관되어 작용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나는 한 사람인 동시에 일제 당시는 삼천만 겨레의 일부입니다. 각 개인은 다 자기의 인생 목표가 있어요. 농부는 농사 잘 짓고,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 잘하고, 공부하는 학생은 공부 잘하고, 사업하는 사람은 기업을 잘 이끌고, 경찰은 사회 질서를 지키는 게 목표입니다. 다 자기 나름대로 직분이 있어요. 자기 직분을 열심히 수행해야 개인은 성공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개인이 아닌 전체 삼천만 겨레의 입장에서 일제 강점기 때 우리의 행복과 자유를 저해하는 가장 큰 원인은 일본 제국주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경찰이나 검찰이 되어서 자기 직분을 열심히 수행하는 것은 곧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유지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이 되잖아요. 내가 하는 일이 삼천만 민중의 행복에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겁니다.

개인의 성공 vs 공동체의 발전 = 지속 가능한 성공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삶의 길이 전체 공동체가 발전하는 길과 일치해야 진정한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게 일치하지 않으면 개인의 성공이 지속적으로 보장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역사적 변환기에는 자기는 개인적으로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역사적으로는 큰 죄인이 돼 있을 수도 있어요.

똑같은 주먹을 어디에 썼느냐에 따라 다른 거예요. 가정에서 썼느냐, 밖에서 성폭행범에게 썼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전혀 달라집니다. 시대적 과제라는 건 개인이 그냥 혼자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열심히 사는 것 갖고는 달성되기 어려워요. 개인에게는 개인의 과제가 있고, 각 집단마다 그 집단의 과제가 있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전체 공동체의 과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라를 넘어서서 인류 공동체의 과제도 있겠죠. 지금 인류 공동체의 가장 큰 과제는 환경오염 문제입니다. 하나뿐인 지구를 어떻게 보존할 거냐가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과제입니다. 대한민국 산업이 얼마나 발전하느냐, 첨단기술을 얼마나 개발하느냐는 대한민국에서는 큰 과제이지만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에요. 이 하나뿐인 지구를 어떻게 보존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과제예요.

여러분이 텀블러를 갖고 다니면서 일회용 컵 하나 덜 쓰는 것은 지구적 과제를 실천하는 겁니다. 지구적 입장에서 보면 지금 대한민국이 축구시합에서 일본한테 이기는 게 중요할까요, 쓰레기 하나 덜 버리는 게 중요할까요? 지구적 입장에서 보면 쓰레기 하나 덜 버리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이 땅에 전쟁이 없는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활동하는 것은 민족적 과제를 여러분이 실천하는 거예요. 취직해서 당장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과제보다 어쩌면 그게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일 수 있습니다.

평가가 달라지는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첫째, 우리의 행동은 어느 집단에서 평가하느냐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집니다. 교회 집단의 관점에서 나를 평가한다면, 내가 교회에 헌금을 많이 내고, 봉사를 많이 한 점을 높이 평가하겠죠. 그런데 우리 집에서 평가할 때는 ‘저 미친놈이 교회에 돈을 다 갖다 준다’ 이렇게 평가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평가가 어떤 단계에서 이루어지느냐가 중요합니다. (모두 웃음)

둘째, 그 평가를 어느 시기에 하느냐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집니다. 즉 어느 시점에서 평가했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삶에 대한 평가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개인적 삶이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의 발전 방향과 조화를 이루려면, 두 가지를 공부해야 합니다. 하나는 역사 공부를 해야 하고, 하나는 사회관계를 공부해야 해요. 국제관계, 사회관계, 계급관계 등 사회관계망에 대해 공부해야 합니다.

민족주의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족이 억압받고 있는 상황이라든가 우리의 정당한 권리가 억압받고 있을 때는 민족 해방이든 여성 해방이든 성 해방이든 다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남의 민족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민족주의를 내세울 때는 그 평가가 달라요. ‘우리 민족이 제일이다! 다른 민족들은 모두 열등하다’ 이렇게 다른 민족을 배타하고 억압할 때는 같은 민족주의라 하더라도 부정의한 행위가 됩니다.”

스님은 한 시간 동안 설명을 하고 요점을 정리해주었습니다.

“내가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고뇌는 인식상의 오류로 인해서 생깁니다. 이 인식상의 오류를 시정하는 게 수행이에요.

그런데 내 삶은 나 혼자서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관계망 속에서 만들어지는 겁니다. 다시 말해 역사 속에서 내 삶이 규정을 받게 돼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삶이 지속적으로 행복할 있게 하려면 여러 사회적 관계와 역사를 공부해야 합니다. 즉 내가 사는 세상과 내 인생만 행복하게 할 게 아니라, 내가 속한 사회 역시 행복하게 만들어갈 책임과 의무가 우리한테 있습니다.

이것을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 우리가 역사 공부를 하는 거예요. 과거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단순히 일어난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역사적 지식에 불과합니다. 역사 공부를 하는 이유는 지금 내가 어떻게 살 건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해서 지금 우리의 당면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그 교훈을 얻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대부분 학교 시험 치듯이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다’ 이렇게 기억만 하고 마는 지식으로서의 역사를 공부합니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은 많이 알지만, 그 역사적 사실이 지금의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안 돼요. 그런 공부를 죽은 공부라고 해요. 선(禪)에서는 그걸 ‘사구(死句)’라고 표현해요. 죽은 글귀라는 뜻입니다. 반면에 화두는 ‘활구(活句)’라고 해요. 살아있는 글귀라는 뜻입니다.”

스님은 여기까지 말씀을 한 후 청년들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시계는 아홉 시가 가까웠지만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사람이 9명이었습니다. 역사학교 참가자 2명이 질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동안 영상으로 법륜스님의 역사수업을 들으면서 궁금했던 점을 질문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독립운동을 주로 한 사람들이 대종교를 믿었다고 들었는데 무엇 때문인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자는 촛불 혁명과 정토회를 만나면서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데 역사에서 왜곡된 부분이 있다는 것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질문했습니다.

두 번째 청년이 “역사 공부를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스님은 역사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설명해주었습니다.

“활구(活句)와 같이 살아있는 역사공부를 하려면, 역사의 흐름을 공부해야 합니다. 앞으로 동아시아와 인류 문명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예측하고 이것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역사공부를 하는 방법

중국이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교체되던 시기에 우리나라 역시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었습니다. 고려 말에 쿠데타를 일으킨 반군 세력은 새로 일어나는 명나라 편에 붙었습니다. 이 새로 일어나는 명나라가 성공했기 때문에 반군 세력이었던 이성계가 조선을 세울 수 있었던 거예요. 명나라가 원나라한테 진압당해서 명나라를 세우는 데 실패했다면 이성계도 당연히 성공하지 못했을 거예요. 이렇듯 우리 안에서만 잘해야 하는 게 아니라 바깥 상황과도 맞아야 하는 거예요.

그러면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바뀔 때는 어땠을까요? 대세를 보면 명이 청으로 교체되는 시기였지만, 우리나라 안에는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 세상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 지식인이 없었어요. 그래서 계속 명나라에 줄을 섰고, 결국 청나라의 침입을 받아 두 번의 호란을 겪고 청나라의 속국이 됐습니다.

청나라가 몰락할 때도 그랬어요. 청나라가 강대하지만 변화한 일본과의 전쟁에서 질 것이라는 예측을 했다면, 우리도 미리 개방을 해서 일본과 협력을 했다면 강제로 합방당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걸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청나라가 무너질 때 우리도 함께 허물어진 겁니다. 청나라 꽁무니에만 계속 붙어 있다가 새로 일어나는 일본한테 지배를 받게 된 거죠. 예측을 잘못한 결과로, 그 전에는 청나라의 속국이 됐고, 이번에는 일본에 완전히 주권을 빼앗겨버린 거예요.

그렇다면 지금 미중의 경쟁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반드시 신흥세력이 이기는 것은 아니에요.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 즉 소비에트 연합이 미국하고 경쟁할 때도 남한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미국 쪽에 줄을 서게 됐고, 북한은 소비에트 쪽에 서게 됐어요. 그 경쟁에서 소련이 지니까 남북 간에 힘의 균형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북한이 더 힘이 셌는데 점점 남한보다 약하게 되었죠.

그래서 ‘줄만 잘 서면 된다’ 이렇게 보면 안 돼요. 늘 변화한다고 봐야 합니다. 만약 앞으로 미중 경쟁에서 중국이 이기고 미국이 밀리는 일이 일어난다고 가정해보면, 남한은 지금 미국에 줄 서 있고, 북한은 중국에 줄 서 있으니까, 30년쯤 지나면 남북 간에 힘의 균형이 또 바뀔 가능성이 있어요. 줄 서기만 하는 건 규정론에 빠지는 거예요. 우리가 스스로 노력하는 것 없이 줄을 어떻게 설지만 생각하는 거죠.

이런 변화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적절히 대응을 할 거냐가 중요합니다.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역사의 변화를 살펴보고 여기에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를 찾아가는 게 역사 공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런 역사 공부를 안 해요. 기껏 한다고 해도 단순한 지식만 습득하는 공부를 하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면 미래를 보는 눈을 가질 수 있어요.

요즘 미중 경쟁을 두고 신문에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유럽 사람들이 그리스의 역사를 보고 만든 말이에요. 고대 그리스에서는 수많은 도시국가들이 서로 경쟁했는데, 신흥세력과 기존 패권세력 사이의 경쟁은 반드시 전쟁으로 종결됐습니다. 전쟁으로 우열을 가렸던 겁니다. 그게 투키디데스의 함정이에요. 그래서 ‘미중도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즉 전쟁으로 종결 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본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역사는 단순히 반복되기만 하는 게 아니에요. 소련이 도전했다가 몰락했듯 중국도 도전했다가 몰락할지, 아니면 지금의 상황이 커다란 세력 전환으로 이어질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어요. 점쟁이처럼 점을 쳐서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이런 가운데 우리가 어떻게 국가의 진로를 잡을 건지를 고민해봐야 합니다. 미국이 이길 때, 중국이 이길 때, 둘이 협력할 때, 이런 다양한 경우의 수에서 어느 경우든 우리에게 기회가 올 수 있도록 진로를 잡는 혜안이 국가 정책 수립에 절실히 필요합니다.”

열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강연 진행팀이 스님에게 이제 그만 마쳐야 한다는 쪽지를 두 차례 보냈습니다.

“다른 질문 더 안 받아도 되겠죠? 이제 그만 마쳐야 한다고 하네요.”

청년들이 “질문 하나만 더 받아주세요.”라고 하면서 아쉬워했습니다. 스님은 멀리서 온 사람, 내일 또 출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을 고려해서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여러분 개인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알겠죠?”

“네!”

“직장 생활이 바쁘다고 해서 수행 법회에 안 나오고, 아침 기도도 안 하면, 점점 괴로움의 나락에 빠집니다. 나중에 괴롭다고 하지 말고 지금 수행을 챙겨서 하세요. 종교를 넘어서서, 자기 인생의 행복을 위해서 꾸준히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토행자로서의 자기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네!”

청년들은 씩씩하게 대답했습니다.

“수행과 역사공부를 통해 몸만 젊은 청년에서 진정한 청년으로 거듭나야겠습니다. 다시 한번 멋진 강연을 해주신 스님께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재치 있는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청년들은 크게 박수를 쳤습니다. 마지막으로 청년들과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서초 법당을 나서는 청년들의 얼굴이 맛있고 영양가 있는 밥 한 끼를 먹은 듯 만족스러워 보였습니다. 법회를 마친 스님도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배부른 표정이었습니다.

내일은 서초 법당에서 정토회 회원들을 위한 수행 법회를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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