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 내내 두북에서 농사일을 하고, 오후에는 문경수련원에서 통일특별위원회 통일의병들을 위해 법문을 하고, 저녁에는 선유동연수원에서 법사단회의를 함께 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땀을 흘리며 농사일을 했는데요. 먼저 영상으로 만나 보시죠. ^^

시골의 아침은 도시보다 빠릅니다. 농부들은 해가 뜨겁게 내리쬐기 전 이른 아침에 일을 시작합니다. 스님은 새벽 5시 반부터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일을 하다 아침을 먹고 다시 일을 했습니다. 서울에서 온 공동체 실무자들도 6시부터 함께 일을 시작했습니다. 고요한 논과 밭 사이로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사람 소리가 두런두런 새어 나왔습니다.


먼저 잘 익은 보랏빛 가지를 땄습니다. 하나 둘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는 한번 둘러보기만 했습니다.



해외에 다녀와서 3주 만에 오니 곳곳에 풀이 쑥쑥 자라 있었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한마디 했습니다.

“그사이 풀이 무성하게 자랐네요. 좋게 말하면 자연의 복원력이 좋은 건데 나쁘게 말하면 한도 끝도 없이 일해야 돼요.”

스님은 낫을 들고 본격적으로 잡초를 베고 가지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일을 하던 스님이 허리를 펴고 한마디 했습니다.

“천도재를 지내야겠어요. 풀들이 잘 살고 있다가 스님한테 박멸됐어요.”(웃음)

꽃대가 오른 상추와 깨도 뽑았습니다. 덕분에 봄부터 지금까지 상추와 깻잎을 실컷 먹을 수 있었습니다. 줄기에 붙어있는 상추와 깻잎을 마지막으로 수확했습니다. 큰 깻잎은 쌈을 싸 먹고, 작은 깻잎은 쪄서 반찬으로 먹도록 다 땄습니다.

다시 빈 땅이 된 곳은 삽으로 한번 뒤엎었습니다. 흙과 함께 제법 굵은 지렁이들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햇살이 조금씩 뜨거워지고 있었습니다. 뒤엎은 땅 위로 거름을 살살 뿌리고 지렁이를 피해 가며 흙과 거름을 섞어주었습니다.



“무엇하나 저절로 되는 건 없어요.”

무성한 잡초를 매고, 작물을 수확하고, 땅을 뒤엎고, 다시 거름을 주고, 고수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었습니다.

“매일 조금씩 일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한꺼번에 몰아서 하면 골병들어요.”

몇 주 치 할 일을 반나절에 끝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화 모종도 옮겨 심었습니다. 사용한 도구는 물로 씻은 뒤 말려 창고에 가지런히 정리했습니다.

점심 상에는 갓 수확한 상추와 깻잎이 올랐습니다. 일을 하고 먹는 식사는 더욱 맛났습니다. 점식식사를 마치고 문경수련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올해는 특히 더 바쁘네요. 아직 탑곡수련원도 한 번 못 둘러봤어요.”

차에 오른 스님은 한 마디를 하고 문경수련원에 도착할 때까지 단잠에 들었습니다.

문경수련원에는 정토회 통일특별위원회 통일의병 3백여 명이 모여 오전부터 제 7차통일의병대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한 시간 동안 법문을 하며 통일의병을 격려하고, 가슴 뛰는 전망을 그려주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기

“부처님은 세상을 어떤 고정된 틀로 바라보지 말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면,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어떤 일도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남편은 남편 입장에서 그럴 수 있고, 아내는 아내 입장에서 그럴 수 있고, 아이는 아이 입장에서 그럴 수 있습니다. 그 행동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각자의 입장에서 그럴 수 있는 거예요. 그걸 받아들이면 우선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해가 되면 화가 나거나 미워지지는 않습니다.

설령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더라도 그로 인해 순간 내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배우자의 입장을 이해하면 미운 감정이 가라앉습니다. 이해가 되면 기분이 나쁘지 않은 상태에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복수할 것인지, 헤어질 것인지 내가 선택하는 거예요. 화가 나서 싸우고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마치 내가 어디로 여행을 갈 것인지 선택하듯이 선택하는 거예요. 가령, 설악산에 올라가려고 왔는데 홍수가 나서 길이 막혔다고 해봅시다. 그래도 설악산에 오를 것인지, 설악산을 안 본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비 맞아가면서까지 갈 것 뭐 있겠나 하고 내려가든지 이건 자기 선택입니다. 산 밑에 서서 길이 막혔다며 화를 내봐야 인생에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개인의 고뇌뿐만 아니라 오늘날 세상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매우 유용합니다. 옛날에는 먹는 게 부족해서 괴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행복하려면 첫째 먹는 것, 둘째 입는 것, 셋째 자는 것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도 한 때 잘 먹는 기준이 쇠고기국에 흰쌀밥을 말아먹는 것이었고, 잘 입는 기준이 마카오 신사였습니다. 집 하나 장만하는 것, 자동차 하나 장만하는 것이 잘 사는 기준이기도 했습니다.

과거의 기준으로 보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물질적 수준은 천국과 다름없습니다. 그때 기준으로 보면 지금은 모든 게 다 갖추어져 있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행복한가? 삶이 자유로운가?’하고 물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물질적 풍요를 쫓는 것만으로는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백 달러에서 3천 달러가 되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3천 달러에서 3만 달러가 되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럼 앞으로 30만 달러가 되면 행복해질까요?

이 길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닌데도 계속 이 길로 나아가는 것은 헛다리만 짚는 일입니다. 헛다리를 짚는 것으로 끝이 나면 괜찮을 텐데, 그 과정에서 엄청난 부작용도 생깁니다. 물질적 풍요를 쫓는 과정에서 환경이 파괴되고, 이상기후가 생기고,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고 인간 소외 현상이 심해지고 있어요. 결국 나도 괴롭고 남도 괴로운 공멸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한 문명이 쇠퇴하고 새로운 문명이 일어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시기, 바르게 나아가는 길과 공멸하는 길의 분기점에 서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우리의 운명이 달려있습니다. 이때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올바르게 대응해야 합니다.

앞으로 사회는 사적 소유(私有)에서 공동 소유(公有)로, 경쟁에서 협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부분이 경쟁에서 협력하는 관계로 변화하고 있고, 자동차나 집도 개인적 소유에서 공동 소유로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앞으로 점점 개인이 소유하는 개념은 약화되고, 공동으로 이용하는 개념이 강화될 것입니다. 어떤 물건이 내 것이라기보다는 지금 내가 필요해서 사용할 뿐입니다. 깨달음의 장을 통해 자각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도 이거잖아요. 이제는 수련장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사회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달과 그로 인한 사회적 변화에 올바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잘못 인식하고 있던 부분을 시정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올바른 세계관, 인생관, 사회관을 정립해야 합니다.

미래 인류의 모델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은 우선 나부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 나아가 세상에서 해결되지 못한 과제의 대안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모델을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행복하게 살아가면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모델이 될 수 있고, 여러분이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면 이웃들 사이에서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정토회는 우리 사회와 종교에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인류에게 대안이 될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을 만들기 위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모델을 만들려고 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정토요!”

“정토가 아닙니다.(모두 웃음) 정토는 우리나라 안에서 공동체의 모델을 만드는 일이에요. 우리가 세계에 제시하려는 모델은 첫째 ‘평화’입니다. 적대관계에 놓여있던 남과 북이 협력한다면 세계 곳곳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에 좋은 평화의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40곳이 넘는 곳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 비하면 대부분 규모도 작고 상처나 피해도 작은 분쟁이긴 합니다. 그러니 가장 심한 분쟁을 겪고 있는 우리가 평화로 나아간다면 다른 작은 문제들은 그에 비해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도 아주 원수가 되었다가 다시 화목해진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듣고 쉽게 해결책을 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두 번째, 통일 한국이 단순히 분단된 두 나라를 합하는 것에 그친다면 그저 1945년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21세기에 20세기 문제를 푸는 것 밖에 안 돼요. 그건 세상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뒤따라가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하는 것은 과거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통일 한국은 대량 생산, 대량 소비로 인한 환경문제,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빈부격차의 문제, 독과점의 심화 문제, 민주주의의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합니다. 이것이 인류의 모델로 제시할만한 통일한국의 꿈입니다. 만약 통일운동을 하면서도 그저 분단된 나라를 합하자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가 함께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 뜻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과 같아요.

3.1 독립운동도 마찬가지였어요. 백 년 전 1919년에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3·1 독립운동이 일어났습니다. 3.1 독립운동이 그저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에서 끝이 났다면 임금이 주인이었던 나라로 돌아가는 것에 그쳤을 것입니다. 즉, 대한제국부흥운동이라고 했겠죠. 3.1 독립운동의 취지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선조들은 과거에는 임금이 나라의 주인이었지만 새로운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 되기를 꿈꿨습니다. 그래서 3.1 독립운동에서 대한제국이 아닌 ‘대한민국 만세’를 외친 거예요. 언뜻 보면 단지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운동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운동이었습니다.

3.1 독립운동을 시작한 지 올해로 100년째 접어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실패했더라도 그때 뿌려진 씨앗이 오늘까지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때 3·1 독립운동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지금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때 민(民)이 주인이 되는 커다란 역사의 흐름이 시작된 거예요. 3·1 독립운동을 나라의 독립이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실패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나라인 민국(民國)을 건설한다는 큰 틀에서 바라보면 그때 역사의 큰 흐름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는 해방만 되면 끝인 줄 알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1960년 4·19 혁명, 1980년 5·18 민주화운동, 1987년 6월 민주항쟁, 2016-7년 촛불 혁명을 지나 점차 민이 주인이 되는 대한민국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통일된 대한민국은 분단된 나라를 하나로 만드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인류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새로운 국가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새로운 국가를 모든 인류사회가 닮아가야 할 모델로 제시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예요. 지난 100년간 우리는 서양, 즉 미국이라는 모델을 따라갔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전 세계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 문제 등 모든 문제에 있어 통일 한국을 본받는 세상을 만들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운동에 첫 발을 내디딘 사람들입니다.

3·1 독립운동 당시에도 그 의미를 잘 모르고 ‘대한민국 만세’를 부른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도 ‘평화와 통일’을 주창하면서도 뭐가 뭔지 잘 모르고 하는 것 같아요. (모두 웃음) 우리는 그런 비전을 가지고, 100년을 내다보고 지금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100년’이라는 책도 쓴 거예요.

내가 행복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모델이 될 수 있고, 우리 가정이 화목해지면 주변 이웃들에게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정토회는 우리나라 안에서 공동체의 한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통일 대한민국을 만드는 건 전 세계 인류에게 국가 모델을 제시하고자 함입니다. 세계 2백 여국이 봤을 때 현실에서 본받고 싶은 실현 가능한 나라의 모델로 통일 대한민국을 떠올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미 모델이 되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현재는 북유럽이 본받아야 할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북유럽에 가서 많은 것을 배워오는 실정입니다. 가령, 선거법 개편을 하려고 하는데 독일의 모델을 많이 참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로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모델을 가져다 사용하는데 익숙합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직접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전 세계의 많은 종교단체에서 바람직한 단체의 모델로 정토회를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그런 모델을 만들어왔듯이 우리의 큰 꿈은 대한민국을 우리 미래의 문명사에 하나의 국가 모델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일꾼입니다.(모두 박수)

돈을 좀 못 벌어도 괜찮아요. 이 꿈이 이루어지면 여러분은 나중에 손자들이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면 무릎에 앉혀두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우리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야기해주면 됩니다. 3·1 독립운동에 참여한 할머니들도 중학교 다니면서 밤새 태극기를 그리고 경찰 피해서 태극기를 운반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데 그것이 곧 애국지사들의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종이를 구해서 태극기를 그린 일일 수도 있지만, 민이 주인인 되는 역사의 큰 흐름이 시작하는 데 있었기에 그분들은 지금 국립묘지에 묻혀있습니다.(모두 웃음)

여러분은 태극기를 그리는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열 배, 스무 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자손들에게 재산을 조금 더 물려주는 것보다 이러한 자부심을 물려주는 것이 더 소중합니다. 재산은 물려줘봐야 자식들 사이에 싸움만 일어나요. 그리고 그때가 되면 더 이상 재산은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지금도 사회보장이 잘 되어있는 유럽 국가에서는 부모가 물려주는 재산은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요. 이미 국가가 많은 것을 보장하기 때문에 부모가 물려줄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활동이 내가 원하는 만큼 빠르게 진척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기죽지 말고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기 모인 3백여 분이 각자 연구를 하면 열 명이 성공할지 스무 명이 성공할지 몰라요. 내가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공한 사례를 다른 활동가들에게 잘 전달해서 그 사람들이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모델이 잘 만들어지고 자리를 잡으면 퍼지는 건 순식간입니다. 모델이 자리를 잡으면 정토회에서 활동하는 수 천여 명의 통일의병들이 그 모델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제가 평소에 늘 말하듯이 ‘안 되는 것이 곧 되는 것으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늘 연구를 하고 이리도 해보고 저리도 해봐야 발전이 있어요. 모방을 하는 것은 양을 늘리는데 유용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질적 발전을 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문명에 제시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드는 일을 하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만드는 행복센터가 곧 문명의 전환입니다. 문명의 전환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곧 위기를 극복하는 길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에게 격려를 드립니다.”(모두 박수)

스님은 고군분투하고 있는 통일의병들에게 격려를 해달라는 통일특별위원회 사무처의 요청에 따라 ‘격려를 드린다’는 말로 재미있게 법문을 마쳤습니다. 격려를 듬뿍 받은 통일의병들은 뜨거운 박수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법문을 마친 후 밖으로 나와 솔숲에서 힘차게 구호를 외치며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우리가 하면, 된다! 된다! 된다!”

이어서 선유동 연수원에서 법사단 회의가 있었습니다. 스님은 법사님들과 먼저 연수원 가까이 용추계곡을 산책했습니다. 가뭄으로 계곡이 많이 메마르고 이끼가 가득했습니다.

“스님, 잘 다녀오셨습니까.”

법사님들은 해외에 다녀온 스님께 반갑게 인사드렸습니다. 계곡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스님이 가장 앞에서고 법사님들이 뒤이어 걷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스님과 함께 활동을 해온 법사님들의 머리도 희끗해지고 있었습니다. 뚜벅뚜벅 한 줄로 걷는 모습이 스님과 법사님들의 일생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한 시간을 걸어 시장기가 느껴질 무렵 선유동 연수원에 도착했습니다. 연수원에는 산책에 가지 않은 법사님들이 국수를 삶아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원한 국수 한 그릇을 말아먹고 설거지를 마친 뒤 법사단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옥수수 1만 톤이 7월 중순 경에는 북한에 다 들어갈 것 같습니다. 그동안 모금에 애써주셔서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스님은 해외 일정을 마친 소감도 한마디로 간단히 전했습니다.

“해외 정토행자들도 이제 수행자의 물이 많이 들었어요.”

몇 가지 공유할 사항을 이야기한 후 스님은 먼저 문경 수련원으로 돌아오고, 법사님들은 회의를 계속했습니다. 해가 언제 졌는지 날이 어둑어둑해져 있었습니다.

밭을 가꾸고, 통일의병들에게 법문을 하고, 법사님들과 회의를 하는 스님의 일상마다 미래 문명을 향한 원대한 꿈이 서려있었습니다. 내일은 서울 평화재단에서 하루 종일 정토회 기획위원회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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