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녁에는 대구 서구문화회관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스님은 오전에 수행법회를 마치고 두북에 들러 논과 밭을 둘러보았습니다. 햇살이 뜨거웠습니다. 농부들은 쉴 시간이지만, 이렇게라도 둘러보고 대구로 출발했습니다. 대구 서구문화회관에 도착해서는 서구청장님과 차담을 했습니다.

스님이 대구 서구청장님과 함께 입장을 하자 청중은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보냈습니다. 서구청장은 웃으며 시민들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이렇게 많은 박수를 받아보기는 평생 처음입니다.(모두 웃음) 행복한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어서 스님은 더운 날씨에 바닥에 앉거나 밖에서 듣고 계신 분들을 위로하며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대화하기 위해 바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총 9명이 질문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유산 때문에 속상하다는 질문자가 두 명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질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시아버지가 시동생들에게 재산을 줘서 속상해요

“저는 올해 결혼생활 35년차입니다. 남편 형제가 4남매인데, 시동생들은 시아버지 재산에서 자기들 몫을 벌써 다 받았습니다. 시아버지께서 ‘이제 남은 재산인 묘답만 장남인 너희들 거다’ 이렇게 말씀해 왔습니다.

제가 좀 창피하지만, 시아버지께서 90이 가까이 되시는데도 외도를 하셔서 이혼 소송 중입니다. 저희 남편만 빼고 3남매가 어머니 편을 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아버님이 ‘묘답 문서를 다 줄테니 어머니를 찾아오고 소송을 취하해 달라’ 이렇게 나오십니다. 시아버지에게 남은 재산이 몇 억이 됩니다. 재산을 제게 달라고 한 적도 없고, 늘 ‘아들한테 주십시오’ 이렇게 얘기해 왔습니다. 시동생들은 이미 자기 몫을 다 받았는데, 남은 재산을 또 시동생들에게 다 주신다니 저도 인간인지라 굉장히 섭섭합니다. 그 동안 저는 시어른을 정성껏 모셨습니다. 직장을 사표 내라 하셔서 사표 냈고, 같이 살자 그래서 같이 살았고, 나가 있으라 그러면 나갔습니다. 입의 혀같이 했습니다.”

“하라는 대로 안 했네요. ‘재산을 받지 마라’ 이러면 안 받으면 되잖아요.”

“제가 받으려는 건 아니지만, 장남은 묘답이라도 있어야 하잖아요. 제사가 많거든요. 저는 재산을 안 줘도 나름대로 장남 노릇을 한다고 했습니다. ‘재산을 준다면 시아버님 쓰시다가 자식을 주시라’ 이렇게 얘기했는데요. 어떻게 저희들한테 동의도 안 받고 이렇게 하는지 섭섭합니다.”

“그것은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개인의 자유입니다. 섭섭하면 질문자가 대한민국 헌법을 바꾸든지요.”

“스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모두 웃음) 이제 서너달 됐는데요. 처음에는 침식을 못 할 정도로 괴로웠습니다. 정말 괴롭더라구요.”

“남의 것을 쳐다보고 자기 것인 줄 착각해서 그렇지요. 잠을 못 자야 쌉니다. 자기 것도 아닌 걸 왜 자기 것을 삼았어요.”

“시동생 몫은 다 줬고, 남은 건 너네 것이라고 하셨거든요.”

“말은 효과가 없습니다. 증서를 딱 받으면 됩니다. 증서를 안 받으면 내 것이 아니에요. 제가 질문자에게 ‘나한테 잘해주면 나중에 1억 줄게요’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시어른에게 증서를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안 되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당신 사업이 안 되는 것은 조상이 이래서 문제가 있으니 한 5천만 원 들여서 천도재를 지내라고 하길래 5천만 원 내고 천도재를 지내는데도 사업이 안 됐다면 사기죄가 될까요, 안 될까요? 안 됩니다. 강압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이렇게 자발적으로 한 것은 해당이 안 됩니다. 무당이 1억 내고 굿하면 병이 낫는다 해서 굿을 했는데도 병이 안 나았다면, 그것도 사기죄가 안 됩니다.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질문자 심정을 제가 이해 못해서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얘기해봐야 아무 소용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정말 재산 문제가 아니라 부모 자식이라는 인간과 인간의 문제로 본다면 질문자에게 이런 섭섭한 마음 자체가 없어야 합니다. 질문자는 지금 시아버지를 물질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시아버지가 돈을 주든 안 주든 관계없이 내가 내 시아버지니까 모신다’ 이런 관점이면 괴로움이 안 생깁니다. 질문자가 이 문제에 대해서 섭섭한 것은 내가 이렇게 하면 그래도 시아버지가 물질적으로 보상을 해주지 않겠나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물질적인 것은 법적으로 보장된 것만 권리가 인정됩니다. 법적인 문제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의리 문제로 바라보는 모순 때문에 괴로운 겁니다.”

“제가 인간의 좁은 소견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이해가 안 됩니다.”

“좁은 소견이 문제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한 사람은 신이 있다고 주장하고, 한 사람은 신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논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신이 정말 있을까 없을까 저한테 묻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됐습니다. 신이 있느냐 없느냐는 객관의 문제가 아니라 주관의 문제이고 믿음의 문제입니다. 주관의 문제는 주관으로 접근해야 되는데, 주관의 문제를 객관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접근 방식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주관을 객관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밤새 토론하고 3천 년 토론해도 결론이 안 납니다.

그러나 주관을 주관으로 접근하면 금방 간단하게 해결이 됩니다. 한 사람은 신이 있다고 하고, 한 사람은 신이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이면 될까요?”

‘이 사람은 신이 있다고 믿고, 이 사람은 신이 없다고 믿는구나. 두 사람의 믿음이 다르구나.’

이렇게 주관을 주관으로 접근하면 끝입니다. ‘두 사람 믿음이 다르네’ 이러면 아무 번뇌가 안 생겨요. 나는 아버지를 칭찬했는데 아버지는 나를 비난한다는 것도 도덕과 도덕의 문제입니다. 재산의 문제는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계약 관계의 문제예요. 내가 시아버지에게 잘해준 것은 도덕의 문제이고, 왜 시아버지가 재산을 나한테 안 주고 시동생들한테 줬나 하는 것은 법률적인 문제입니다. 주관은 주관으로 따져야지, 주관을 객관으로 접근해서 이 문제를 바라보면 끝이 안 납니다. 마음만 상하지 아무 해결책이 안 나와요.”

“마음이 상한 것을 제가 어떻게 하면 치유할 수 있을까요?”

“상처를 치유하고 싶다면 이렇게 받아들여 보세요.

‘아, 내가 접근을 잘못했구나. 내가 시아버지에 대해서 사람과 사람의 도리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고, 시아버지에게 좀 잘 해준 것에 대해 재산으로 보상받으려고 했구나.’

질문자는 안 그랬다고 하지만 무의식 세계에 이런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상처가 생긴 겁니다. 이것은 시아버지 문제가 아니고, 잘해준 것과 물질로 보상을 받으려고 한 내 계산이 안 맞아서 생긴 문제예요.”

“그런 것도 있었다고 인정을 합니다.”

“전생이나 사주팔자 때문도 아니고, 아버지가 나쁜 것도 아니고, 그냥 접근 방식이 잘못돼서 괴로움이 생긴 겁니다.”

“스님 말씀대로 그 동안 저도 물질적인 욕심을 완전히 배제했다고 볼 수는 없겠죠. 저희하고 시동생하고 재산 규모를 보면 한 10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도 시동생은 제사에 한 번도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접근법이 잘못됐습니다. 시동생이 제사에 오는 것과 시동생의 재산 규모하고는 아무 관계없는 문제예요. (모두 웃음) ‘재산이 10배나 되는데도 시동생이 제사에 안 오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무 관계없는 것 두 개를 갖다 붙여서 접근하고 있는 겁니다. 질문자가 그렇게 하기 때문에 고뇌가 생기는 겁니다. 제사에 오고 안 오고는 가난하냐 부자냐와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제사에 왔다 안 왔다 이것만 생각하면 돼요.”

“저희는 형제인지라, 형제는 비교하게 되지 않습니까. 시동생은 제사에 한 번도 안 갔는데, 재산 안 준다고 항의를 하니까 어른이 재산을 주었고, 저는 30년 이상을 제사에 계속 갔는데도 재산을 안 주니까 원망스러워요.”

“계속 달라고 요구해서 얻어간 걸 딱 봤으면, 이 거래는 요구를 해야 성립하는구나 하고 깨달아서 질문자도 빨리 재산을 얻는 방법을 바꿔서 요구를 했어야지요.” (모두 웃음)

“주위에서도 그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너도 달라고 그러지 왜 바보처럼 재산도 안 주는데 계속 제사를 갔느냐고요.”

“재산하고 제사하고는 관계없는 문제라니까요. 제사를 잘 지내는 것과 재산 주는 것을 연결시키지 마세요. 제사는 그냥 동생이 오든 안 오든 재산 분배와 관계없이 자식이 자식으로서 해야 될 일이고, 아버지 재산을 내가 좀 얻고 싶으면 이건 물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장사할 때 손님을 관리하듯이 연구를 좀 하면 될 일이에요.

아버지한테 어떻게 거래를 하는 것이 재산을 잘 받겠는지 연구를 했어야죠. 막 떼를 쓰면 잘 받겠느냐, 인간적으로 잘 해주면 잘 받겠느냐, 이렇게 연구를 해본 결과, 동생은 떼를 써서 받는 방식을 택했고, 질문자는 잘 해줘서 선의로 받을 방법을 택했는데, 아버지는 떼쓰는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먼저 준 거에요. 질문자가 지혜가 부족한 겁니다. 재산을 받을 수 있는 접근 방식을 잘못 선택한 거예요.”

“스님 말씀처럼 주위에서 왜 그렇게 했냐고 저보고 바보라고 해요. 스님이 바로 지적을 해 주시네요.”

“제 말은 질문자도 시동생처럼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에요. 부모에게 그렇게 접근하는 시동생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질문자는 그런 식의 접근을 안 해야지요. 시동생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면 질문자도 그것을 본받아서 하든지, 시동생이 하는 방식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이렇게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부모에게 재산을 달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낳아주고 키워주신 것만 해도 감사하다.’

그런데도 부모가 재산을 주신다면 그건 마다할 이유가 없죠.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남는 것이 있다면 N분의 1로 나누면 됩니다. 관점을 이렇게 가지면 돼요. 욕 얻어먹기 싫어서 싫은 소리 안 해놓고, 자기가 착해서 싫은 소리 안 한 것처럼 하고 있어요. 그만 내숭 떠세요.”

“맞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질문자는 이제야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청중은 큰 박수로 격려의 마음을 보냈습니다.

“저 분 심정을 몰라서 스님이 이런 말을 할까요? 아니에요. 부모가 재산을 갖고 있으면 자식은 그것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 것이 아닙니다. 은행 직원이 돈을 많이 세면 자기 것입니까? 아니에요. 자기 것이라고 생각해서 사고가 나는 겁니다. 부모의 재산은 부모의 것입니다. 내 재산은 내 것이고요. 부모의 재산이 어떻게 쓰이는가는 부모의 권리에 속합니다. 나를 낳고 스무살까지 키워준 것으로 부모의 의무는 끝입니다. 그 이상을 부모에게 바란다면 여러분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시아버지가 나이 90이 되어서 바람을 피웠다고 하는데, 나이 90일 때도 바람을 피울 수 있어요. 바람을 피울 때 왜 90이면 안 되고, 80이면 되고 그래요? 그게 나이하고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제가 볼 때는 ‘아, 그 양반 정열이 좋다’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모두 웃음)

윤리 도덕을 엄청나게 중시하는 유교에서도 인간이 80을 넘으면 모든 예의를 면제해 주잖아요. 연애를 하는 건 그의 자유입니다. 비난받을 일은 아닙니다. 나이 90이 됐는데도 바람을 피워서 기분 나빠할 게 아니라 ‘젊을 때 안 피우고 늙어서 피워서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이제는 별 필요 없을 때인데 바람을 피운 거잖아요. 그럴 때 다른 여자가 데려가서 보살펴주면 좋지 않아요? 저 같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어요. (모두 웃음)

이런 건 노인이 재물이 있어서 생긴 문제입니다. 재물이 있으니까 자식들도 그걸 쳐다보고 있고, 부인도 그걸 쳐다보고 있다 보니 생긴 문제예요.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이럴 때 이혼 소송하면 절반은 부인 거잖아요. 이걸 핑계로 이혼 소송을 하는 것은 재산을 많이 가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남편이 죽으면 자식과 1:1.5로 나누어 가져야 하니까 자식이 많으면 5분의 1도 안 돌아오는데, 이혼 소송을 하면 절반이 자기에게 돌아오는 거예요.

그렇다고 ‘시어머니는 나쁜 사람이다’ 이렇게 규정하면 안 됩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이렇게 할 권리가 주어져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두고 비난할 권리도 있어요. 비난은 좀 할 수 있겠지만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것처럼 우리는 시민의 권리와 윤리를 혼동하지 말아야 해요. 자꾸 이걸 섞지 마세요. 누구나 다 보장된 시민의 권리가 있어요. 시아버지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어요. 그래도 질문자는 지금 제 얘기가 귀에 잘 안 들어갈 거예요.”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아들이 10년 넘게 방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어요. 정신과 치료도 받지 않아요.
  • 농사를 짓고 있는데 농산물 가격이 떨어져서 답답해서 일하다 바로 왔습니다. 농업 전망이 어떻게 될까요?
  • 남에게 싫은 소리와 거절을 못합니다.
  • 85세 4년전 어머니가 치매가 생겨 요양원에 입원시켰는데 서울 사는 누나가 형과 저를 경찰에 신고 했습니다. 어머니 집도 누나 명의로 돌리고 잘 찾아오지도 않습니다. 누나의 행패가 납득이 안갑니다. 형도 아파서 어머니를 제가 보필하고 있는데 마음을 어떻게 먹어야할까요?
  • 폐기물 유통업을 하는데 경쟁업체들과 사업체를 뺏고 뺏기는 일을 하는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 자수성가해서 부모님과 처가에도 다 아파트를 사드리고 아내와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습니다. 윤회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부모님이 이혼하셨는데 아버지를 보면 불쌍했다가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보면 아버지가 미워요. 주위에서는 자식 된 도리로 부모님을 찾아뵈야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자식이 내성적이고 말을 잘 안 해요. 어떻게 말을 하게 할까요?

“다 하려고 했는데 어렵겠네요. 죄송합니다.”

스님은 사과를 하고 마지막으로 질문자들의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아직 답답한 표정의 질문자들도 있었습니다.

“모르겠어요. 편안한 것 같아요.”
“지혜가 부족해서 터득하진 못했지만 스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표정과 목소리가 확연하게 밝아진 질문자들도 있었습니다.

“시원한 해답 듣고 갑니다.”
“다른 사람들의 고민을 듣다보니 이미 다 해결이 됐습니다.”

농업의 전망을 물어보았던 40대 농부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오늘 마늘 캐다가 놔두고 왔는데 속이 시원합니다. 인건비도 비싸고 일꾼 구하기도 힘들고 내년에 더 나아지리라는 보장이 없는 너무 답답한 현실에 농사를 계속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었습니다. 농부가 10년 뒤에는 괜찮은 직업이라고 하니 10년 동안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스님한테 좀 배워야겠습니다.”

밝아진 질문자를 보며 스님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당부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여러분들은 저한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런 답을 얻으려고 하죠. 답을 얻으려고 하면 죽을 때까지 저한테 물어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스님에게 고맙다 할지 몰라도 여러분들은 자기가 주인이 못 되고 스님의 노예가 됩니다. 스님과 대화를 하면서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에 대한 결정은 내가 하는 겁니다. ‘아, 이러면 되겠구나’ 이렇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데에 이르러야 됩니다.

한 번 물어서 안 되면 나중에 한두 번 더 물어보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아, 이러면 되겠네’, ‘이 문제는 내가 이렇게 하면 되겠네’ 이렇게 자기가 결정하는 힘이 점점 커져서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남편이 술을 먹는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 ‘아이가 말을 안 듣는다’ 이런 것은 운전할 때 옆 차가 내 앞에 끼어들거나 급정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놈이 끼어들었다’, ‘저 놈이 급정거 한다’ 이러면 운전 하다가 성질만 납니다. 그런 것을 감안해서 앞 차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서 운전하면 앞 차가 급정거를 해도 덜컥 하지만 부딪히지는 않습니다. 다른 차가 끼어들 때 내가 비켜주기 싫으면 좀 막아가면서 가면 되고, 부딪힐 것 같으면 약간 끼어주면 돼요. 이렇게 자기가 운전하면서 다닐 수 있어야 해요. 스님한테 일일이 물어볼 필요가 없어요.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날이 맑으면 맑은 대로 살면 돼요. 날이 추우면 옷 하나 더 입고 나가고, 더우면 벗고 나가고, 비 오면 우산 쓰고 나가면 돼요. ‘오늘은 날씨가 왜 이리 추워’, ‘왜 이리 더워’, ‘비가 왜 아침부터 와’ 이렇게 성질을 부리면 자기 인생만 피곤해집니다. 알았습니까?”

“네!”

“세상이 다 내 뜻대로 안 됩니다. 세상은 나하고 아무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돌아갑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낳아서 키운 내 자식도 내 마음대로 안 됩니다. 자식도 크면 자기 마음대로 삽니다.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자식이 자기 마음대로 안 살고 내 뜻대로 살면, 내가 죽으면 자식이 어떻게 살겠어요. 자식이 나 살아있을 때 자기 마음대로 살아야 내가 죽어도 자기가 알아서 살 거 아니에요. 제 말 이해하시겠어요?”

“네!”

“애가 말 안 들으면 좋아해야 됩니다. ‘지가 알아서 잘 살겠구나’ 이렇게 생각을 바꿔야 돼요. 세상을 살다보면 비 오는 날도 있고 맑은 날도 있듯이 이런 일 저런 일이 생깁니다. 남편이 갑자기 죽는다 해도 ‘아이고, 시집 한 번 더 가겠구나’ 하고 빙긋이 웃어야 됩니다. 남편이 싫어서가 아니라 꼭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연애하다가 상대가 가버렸다면 ‘새로운 사람 만나겠구나’ 하면 돼요. 학교를 졸업하면 졸업이 끝이 아니라 입학이 되듯이 헤어졌다는 건 만남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만났다 하면 또 이미 헤어짐이 전제되어 있는 겁니다. 봄이 올 때 이미 낙엽을 봐야 됩니다. 봄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봄에 낙엽을 봤다고 봄부터 낙엽을 떨어뜨릴 필요도 없어요. 봄에 낙엽을 보기 때문에 봄은 봄으로 만끽하고, 여름은 여름으로 만끽하고, 가을은 가을로 만끽하고, 겨울은 겨울로 만끽하는 겁니다. 젊을 때는 젊은 대로 만끽하고, 혼자 살면 혼자 사는 대로 만끽하고, 결혼하면 결혼한 대로 만끽하고, 늙으면 늙은 대로 만끽하면 돼요.

늙으면 좋은 것이 많습니다. 공부 안 해도 되고, 애 낳고 안 키워도 되고, 취직 안 해도 되잖아요. 안 그래도 듣기 싫은데 귀가 안 들려서 다행이고, 안 그래도 꼴 보기 싫은데 안 보여서 다행이잖아요. 안 그래도 점잖지 못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다리가 아파서 저절로 점잖아 지잖아요. 늙으면 이렇게 저절로 조절이 다 되는데, 늙어도 조절이 안 되는 게 딱 한 가지 있는데, 뭔지 아세요?”

“마음이요.”

“입입니다. 늙으면 말도 안 해야 되는데, 이게 계속 조잘대는 거예요. 젊은이들이 밥 해줘야 하고, 부축해줘야 하고, 이런 것 때문에 늙은이와 못 사는 것이 아니라, 입 때문에 같이 못 삽니다. 그러니 늙어서 젊은 사람과 같이 살려면 입을 다물어야 됩니다. 입만 딱 다물고 있으면 사람들이 뭐든지 다 해줍니다. 며느리들이 시어머니 모시고 같이 살 때 제일 힘든 것도 잔소리입니다. 입이 안 다물어지면 차라리 염불을 하세요. (모두 웃음)

그럼 젊은 사람이 늙은 사람을 모실 때는 어떤 자세를 가지면 될까요? 늙으면 입이 잘 안 다물어지기 때문에 나이든 엄마 아빠가 잔소리하는 것을 노래 소리로 들어야 합니다. 왜 자꾸 잔소리 하냐 이러지 말고 ‘아, 늙으면 입이 잘 안 다물어진다더니 진짜구나’ 이렇게 생각하세요.

늙으면 자꾸 옛날 얘기하고, 했던 말을 또 합니다. 뇌의 구조가 그렇게 돼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늙으면 뇌 구조 상 어릴 때 기억 속에 살기 때문에 자동으로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노인과 살 때는 맞춰야 됩니다. ‘일찍 들어오너라’ 이러면 정색을 하고 ‘내가 다 컸는데 왜 그러냐’ 이러지 말고, ’네’ 하면 됩니다. 전화로 ‘어떻게 해라’ 그러면 ‘네’ 하세요. 그렇게 대답만 하고, 실제로는 안 하면 돼요. (모두 웃음)

일부러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으면 하고, 못 하면 ‘못합니다’ 하는 대신 ‘네’ 하고 안 하면 돼요. 그런데 늙은 사람은 그런 것을 별로 기억도 못 합니다. 혹시나 기억을 해서 ‘한다고 해 놓고 왜 안 하냐’ 이러면 ‘죄송합니다. 다음에 할게요’ 라고 하면 돼요. 이렇게 맞춰가면서 살면 돼요. 인생을 약간 지혜롭고 유머스럽게 살아 보세요.”

스님의 노예가 되지 말고 인생의 주인이 되라는 당부에 깊은 애정이 느껴졌습니다. 청중은 박수로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책사인회를 마치고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후 서울로 향하는 차에 올랐습니다. 스님은 부모님의 유산 문제로 서운해 하던 질문자들의 어려움을 공감하며 한 마디 했습니다.

“참 쉽지 않은 일이야. 같이 사는 자식은 갈등이 생기니까 소홀하고 멀리 있는 자식은 가끔 와서 잘해주니까 좋지. 사람의 심리가 그래. 나도 가까이서 운전해주고 함께 일하는 실무자들보다 외부 사람을 잘 해주니까.”

서울에 도착하기까지 3시간이 남았습니다. 스님은 차 안에서 밀린 업무를 보았습니다.

“종교인 모임에서 쓴 북한 인도적 지원에 대한 호소문을 내일 오전에 언론사에 다 보내주세요.”
“INEB 스님들은 다 잘 돌아가셨어요? 불편했다고 얘기한 내용은 없어요?”

서울에 도착하니 새벽 1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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