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술락(Ajarn Sulak Sivaraksa) 박사의 강연에 참가한 후 저녁에는 용인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오늘은 INEB(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 방문단이 일정을 모두 마치고 한국을 떠나는 날입니다. 마지막으로 서울 정토회관에서 새벽예불과 발우공양을 함께 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스님이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술락 박사님을 비롯해서 정토회를 방문한 동남아 스님들은 그 사회에서 지도력을 가지신 분들입니다. 저희가 이 분들을 손님으로 접대했다면 편안하게 모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불편하지만 저희들과 똑같이 생활해보는 게 학습에는 더 좋다고 생각했어요. 저희와 같이 생활해보면서 힘들고 불편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죄송했습니다. 그러나 배움의 기회를 위해서 이런 프로그램을 마련했으니까 좋게 받아들여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INEB 스님들은 합장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은 북한에서 선물 받은 인삼차를 하나씩 선물로 드렸습니다. 요 박사님은 특별히 제작한 명상 종을 스님에게 선물로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일주일간 INEB 방문단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많이 보고 듣고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서울 공동체 대중은 동남아 스님들에게 삼배를 드리고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테라밧다 불교와 마하야나 불교가 이렇게 서로 교류하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오전 10시에는 조계사 국제회의장에서 술락 박사님의 불교경제학 한국어판 출판 기념회 겸 초청강연이 있었습니다. 주제는 ‘문명 전환 시대, 생명 평화의 길’이었습니다. 법륜 스님과 INEB 스님들이 함께 참석했습니다.

강연에 앞서 법륜 스님이 직접 술락 박사님을 소개했습니다.

“요즘은 과학기술이 워낙 발달해서 앞으로 10~20년 후의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꼭 좋은 면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인간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괴로움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느냐’에 대해 가르치기 때문에, 미래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들에게 계속 요긴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교가 인간의 고뇌를 해소시키는 좋은 가르침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적인 고뇌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만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는 옛날보다 점점 더 복잡해져 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겪는 고통이 꼭 개인의 잘못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옛날 농경 사회에서는 부지런한 사람이 잘 살고, 게으른 사람이 못 살기 때문에, 부지런하면 잘 살 수 있다는 것이 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이렇게 복잡한 사회에서는 개인이 부지런하면 잘 살 수 있다는 것이 이제 더 이상 진실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게으른 것보다는 낫지만요.

이 복잡한 사회 구조 속에서 하층에 배치된 사람들은 노력한다고 해서 노력한 만큼 자기의 삶을 행복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보통 윤리는 개인적인 어떤 행위, 예를 들어 ‘폭력을 행사하지 마라’ 이렇게 말해요. 그러나 2000년 전 사회에서 형성된 윤리로는 현대의 사회구조적인 폭력에 의한 고통을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붓다 담마 속에는 이런 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하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가르침에 귀 기울이지 못했던 이유는 과거 우리가 살아왔던 사회에서는 그런 구조적인 문제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대사회에 들어와서 이런 구조적인 모순에 의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는 전통적인 가치에 의존해 주로 개인의 윤리만을 강조해 왔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가장 먼저, 가장 예리하게 지적하신 분이 오늘 여러분들이 강의를 들을 술락 박사님이십니다.”

불편한 몸을 배려하여 의자를 준비해 드렸지만, 80대의 술락 박사님은 서서 힘찬 목소리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슈마커 박사가 말한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것을 변화시킬 때는 큰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은데요. 작은 것이 더욱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붓다도 전법을 5명의 비구와 시작했습니다. 다음에는 60명의 승려만 있었습니다....”

불교 경제학이 무엇인지 설명한 뒤 청중으로부터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박사님께서는 불교 경제학이라는 책을 쓰셨는데요. 불교와 경제학이 어떻게 연결되나요?”
“문명 전환시대에 불교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현재 한국은 남북이 분단되어있어 평화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남북이 분단된 유일한 국가인데 어떤 사람은 통일 이후에 훨씬 더 강해지고 부유해질 거라고 기대합니다. 남북이 통일된 이후에 문명 전환의 길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붓다의 가르침이 여성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현대 여성들에게 해줄 말씀이 있으신가요?”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인구가 자본주의, 소비주의에 젖어있습니다. 전 세계가 자본주의에 휩쓸려가는 지금, 생명평화의 길을 가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지속가능성이 무엇입니까?”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고, 박사님은 막힘없이 대답했습니다. 대중은 술락 박사님의 열정적인 강의에 큰 박수로 환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다시 일어서서 오늘 기념 강연을 마무리하는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잘 들으셨습니까? 더 많은 질문을 받아야 하는데 동남아에서는 스님들이 11시 30분이 되면 식사를 해야 합니다. 저도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행사 진행하다가 깜박깜박 놓쳐서 혼란을 드렸습니다. 이번에도 동남아 스님들을 모시고 산행을 갔는데, 처음에는 아주 여유 있게 다니려고 계획을 세웠어요. 그런데 산을 내려오다 보니까 11시 반까지 도착하기 어려워서 막 빨리 내려와야 했어요. 어제 INEB 정토회 방문을 모두 마치고 동남아 스님들의 소감을 들었는데, ‘다 좋은데 너무 빠르게 다니고, 스케줄이 너무 빡빡해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행사를 시작하기 전에 이번에는 진짜 여유 있게 천천히 진행하자고 의논을 다 했는데도 결과가 이렇습니다. (모두 웃음)

이것이 바로 습관이 아닌가 싶습니다. 습관은 이만큼 고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런 개인적인 습관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관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떤 변화를 위해서 노력을 하지만, 변화는 그렇게 쉽게 오지 않아요. 변화가 더디게 온다는 것을 이런 경험을 통해 자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많은 분들이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미래사회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구조적인 폭력에 대해서 이렇게 한 두 명이 노력한다고 해결되겠느냐’
‘현대 문명의 문제점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느냐’

그러나 이런 변화는 방법을 몰라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사실 이 문제는 많은 사람들의 힘과 노력이 모여야 하고, 그러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문제입니다. 변화를 가져오려면 꾸준히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술락 박사님의 말씀은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라는 것 같습니다. 책을 쓰든, 강연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내가 먼저 해야 한다고 박사님은 늘 강조하십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박사님의 말씀에 동의한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책을 사고, 이 책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그런 후 그 ‘아는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힘이 적기 때문에 혼자서 노력하는 것으로는 변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웃과 손을 잡고 함께 해나가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미래사회는 작은 힘들이 모여서 큰 파워를 내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몸통이 꼬리를 흔들었다면, 어쩌면 미래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진 작은 힘들을 모아서 우리가 바라는 그런 큰 변화를 가져옵시다. 여러분들부터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술락 박사님은 이런 문제를 처음 제기하셨고, 지금 87세이신데 노구를 이끌고 지금까지 꾸준히 해오셨고, 아직도 젊은이 못지않게 정열을 가지고 구조적 폭력에 대해 평화적으로 저항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 뒤를 이어서 계속해 나간다면,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상생하며 살아가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스님의 마무리 말씀이 참 희망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몸이 불편하셔서 의자를 놓아 드렸는데도 불구하고 장시간 서서 정열적으로 강연을 해 준 술락 박사님께 대중은 다시 한번 큰 박수로 감사를 표했습니다.

조계사 앞에서 INEB 스님들과 함께 마지막 점심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비행기 스케줄로 인해 오늘 오후에 먼저 공항으로 출발하는 비구니 스님들이 가장 먼저 일어났습니다.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합장을 하며 진심 어린 눈빛으로 거듭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다시 평화재단으로 돌아온 스님은 오후 2시부터 기획위원들과 3시간 동안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저녁에는 강연을 하기 위해 용인으로 향했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하여 용인 시장님과 차담을 했습니다.

저녁 7시 30분이 되자 용인시청 에이스홀은 20대와 30대 청년들로 자리가 가득 메워졌습니다. 물론 곳곳에 머리가 희끗한 50대와 60대 청년들도 보였습니다.

스님이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내자 350여 명의 청년들이 큰 박수로 스님을 환영했습니다. 스님은 거두절미하고 곧바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11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13살 연상 남자 친구와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20대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3살 연상 남자 친구가 저를 자꾸 가르치려고 해서 화가 나요.

“저보다 13살 많은 남자 친구와 교제 중입니다. 검소한 생활 습관에 반했고, 아빠 같은 든든함으로 저를 아껴주는 사람입니다. 이런 남자 친구와 요새 앙숙처럼 싸웁니다. 연애 초반에는 안 그랬는데 저를 점점 바꾸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예를 들면, 돈 쓰는 방법부터 생활 습관까지 많은 부분에서 간섭합니다. 지난번엔 저의 인생 설계까지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를 위해 해주는 말이 고맙기는 하지만, 저를 자꾸 바꾸려고 해서 화가 납니다.

상대를 바꾸지 말고 자기 자신을 바꿔야 한다고 배웠는데, ‘왜 나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중에는 이런 일로 화를 냈던 저 자신에게도 화나고 실망합니다. 정토회에 다니고 있는데 아무리 배워도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제가 싫어집니다. 내가 남을 이해하고 바꾸려고 하지 않듯이 남자 친구도 그랬으면 하는 욕심이 생깁니다. 어떤 기도문으로 기도하면 좋을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칼은 요리할 때 사용하면 편리한 도구죠. 그러나 칼로 남의 팔을 그으면 흉기가 됩니다. 사실 칼은 흉기도 아니고, 편리한 도구도 아니에요. 칼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흉기가 되기도 하고, 편리한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존재 자체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에요. 그 존재가 어떤 조건에서 적용하느냐에 따라서 흉기라고도 부르기도 하고 도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삽은 땅을 팔 때는 좋은 도구인데, 삽을 가지고 화가 나서 남의 머리를 때리면 흉기가 되겠죠. 흉기라고 하는 물건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도구라는 물건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에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삽은 흉기다’, ‘삽은 도구다’ 이렇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에요.

‘삽은 흉기도 아니고 도구도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흉기가 되기도 하고,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자기에게만 적용해야 하는데, 지금 질문자는 상대에게 적용한 거예요. 부처님이 ‘남을 바꾸려고 하지 마라’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그 말을 상대에게 적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하라는 것이에요. 상대를 바꾸려고 해도 상대가 정말로 바뀌던가요? 안 바뀌니까 내가 괴롭잖아요. 그러니 상대를 바꾸려는 생각을 버려야 이 괴로움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상대를 바꾸려고 하지 마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이 말을 상대에게 적용하고 있어요. ‘나를 바꾸려고 하지 마라’라고 요구하는 것도 역시 그런 말을 하는 남자 친구를 바꾸려고 하는 것 아닌가요?”

“바꾸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요. ‘너 그런 말을 하지 마라’ 하는 것은 상대의 버릇을 고치려고 하는 거잖아요. 질문자가 지금 가르침을 잘못 적용하고 있는 거예요. 부처님의 말씀을 도구로 안 쓰고 흉기로 쓰고 있는 겁니다. 나에게만 적용해야 할 것을 상대에게 적용하고 있어서 생긴 괴로움이에요.

남자 친구가 나한테 조언을 해주면 ‘감사합니다’ 이러면 되잖아요. ‘돈을 이렇게 써라’ 하면 ‘좋은 방법 가르쳐 줘서 감사합니다’ 이러면 돼요.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질문자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남자 친구가 나쁜 의도로 질문자를 가르치려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처럼 좋은 사람이라면서요. 아버지는 원래 이런 거 저런 거 잘 가르쳐 주시잖아요. (모두 웃음)

나보다 나이가 13살이나 많은 사람을 만났다면 이런 점을 감수해야죠. 경제력이 질문자보다 낫고, 또래의 친구보다 여유가 있다는 좋은 면도 있잖아요. 그리고 어떤 얘기를 하면 친구들하고는 말다툼을 할 수 있는데, 남자 친구는 아버지처럼 포용해주는 장점이 있어요.

나이 많은 사람과 사귀면 이런 좋은 점이 있어요. 대신에 아버지같이 자꾸 뭘 가르쳐요.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좋은 것만 생각하고 있어요, 돈이 좀 여유가 있고, 듬직하고, 이런 아버지 같은 부분은 다 가지려고 하고, 그러면서 또 잔소리는 안 들으려고 하고 하니까 생기는 문제입니다.

칼을 가져와서 ‘아! 날카로워서 좋다’ 이래 놓고 ‘너는 왜 솜같이 부드럽지 않니’ 이러고, 솜을 가져와서 ‘아! 부드러워서 좋다’ 그래 놓고 ‘너는 왜 칼같이 날카롭지가 못해!’ 이러는 것과 같아요.

모든 사물은 그 성질 그대로인데, 질문자는 요술 방망이처럼 ‘부드러워라!’ 하면 부드러워지고, ‘날카로워라!’ 하면 날카로워지는 것을 원하고 있어요. 이것은 전적으로 질문자의 욕구가 너무 많기 때문에 생기는 괴로움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는 거예요. 은행에서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하고, 갚기 싫으면 다음부터는 안 빌려야 하는데, 질문자는 지금 돈은 빌려놓고 갚기는 싫다는 이야기예요. 그러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방금 하신 말씀을 하실 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어요. 사실 남자 친구한테 자격지심 같은 게 있어요.”

“어떤 자격지심이요?”

“제가 처음에 반하게 된 계기가 쓸데없는 곳에 돈을 안 쓰고 삶을 검소하게 사는 거였어요.”

“검소하게 사는 사람과 결혼하면 나중에 인색해서 힘들어요. 검소하게 사는 것은 남이 그렇게 살 때는 아주 좋아요. (모두 웃음) 그가 남일 때 ‘아! 저 사람 검소하다’ 하고 존경하기에 굉장히 좋지, 부부나 부모 자식 사이에는 상대가 검소하면 굉장히 살기가 힘들어요.”

“남자 친구한테 인정받고 싶어요. 그런 모습에 저도 반했으니 저도 그렇게 살려는 쪽으로 가려고 하거든요.”

“인정받아서 뭐 하려고 하는데요? 그 남자가 질문자를 인정해 주니까 친구로 사귀는 거예요.”

질문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을 인식했다는 듯 대답을 했습니다.

“아!”

“인정 안 해주면 왜 사귀겠어요. 남자 친구가 누구예요? 제가 만나서 ‘저런 여자는 사귀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모두 웃음)

질문자를 인정해 주니까 사귀는 거예요. 다만 남자 친구는 자기가 검소하니까 그렇지 못한 질문자를 보면 잔소리를 하게 되겠죠. 그것은 필연적인 거잖아요. 만약 질문자가 스님과 같이 지내면 스님이 잔소리를 하겠죠. 그 사람이 존경할 만하다면 질문자가 배울 점이 있다는 얘기이니까 그런 잔소리는 기꺼이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검소하게 살아라’ 하면 ‘네’ 하고 막 쓰는 거예요. ‘왜 안 고쳐?’ 그러면 ‘잘 안되네요’ 이러면 돼요. 뭐가 어렵다고 그래요. 또 뭐가 문제예요?” (모두 웃음)

“없습니다. 명심문 하나만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칼은 날카로운 대신에 부드럽지 않다.”

“약간 어렵습니다. 이해가 잘 안 가요.”

“칼은 날카로운 면에서는 좋지만,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가질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자는 자리에 앉았지만, 스님은 질문자를 위해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만약에 60대 남성이 30대 여성과 결혼한다면 여성의 또래 남자 친구들도 30대겠죠. 그러면 동창회 같은 데 가서 여성은 학교 친구로서 젊은 남자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겠지만, 늙은 영감이 볼 때는 무슨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하겠죠.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젊은 사람하고 같이 살면 좋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만한 대가가 따릅니다. 마찬가지로 젊은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하고 살면 이익이 있는 반면 또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것처럼 나이 13살 많은 사람하고 살면, 질문자는 늘 어린아이 취급을 받아야 해요. 그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안 그래도 아버지한테 잔소리 듣기 싫어서 집을 나왔는데, 또 다른 아버지를 만나서 잔소리를 듣고 살아야 하는 거예요.

문제는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에게 있는 거예요. 칼이 아주 날카로울 때는 좋은 도구 역할을 하지만 잘못하면 흉기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이 좋아 이 사람하고 사귀었지만, 나중에 헤어질 때는 ‘이것’이 문제라서 이 사람과 헤어지게 되는 거예요.

남자가 줏대도 있고, 결단력도 있고, 카리스마도 있고, 리더십도 있어 보여서 결혼을 했다면, 막상 결혼해서 살아보면 어떨까요? 여자 말을 안 듣고 고집불통이에요. 자기 마음대로 해요. 그것은 필연적으로 따르는 거예요.

아버지가 너무 귄위적이여서 권위주의를 가진 남자가 싫었는데, 남자 친구가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너무너무 친절해서 결혼을 했다면, 막상 결혼해서 살아보면 어떨까요? 줏대가 없고 책임감이 부족해요.

이것은 그 사람 때문에 생기는 괴로움이 아니에요. 때로는 아버지 같아야 하고, 때로는 야성미가 넘쳐야 하고, 때로는 친구같이 대해줘야 하고, 때로는 짐 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고, 이런 식으로 내 요구가 많기 때문에 생기는 괴로움이에요. 남자도 여자한테 이런 요구를 많이 하면 마찬가지로 괴로워지는 거예요.”

질문자의 얼굴이 한층 밝아졌습니다.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남의 시선을 의식을 많이 합니다. 예의 없는 직장 후배의 말에 휘둘리는 게 싫습니다.
  • 저희 어머니 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 활동적이고 명석했던 어머니가 집안에서 먹방 유튜브만 보세요.
  • 스트레스에 취약합니다. 청소년 관련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일을 할수록 힘이 빠집니다.
  • 올해 16살 중학생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부터 틱장애가 있었습니다. 틱장애가 나올 때마다 두렵습니다. 7년째,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성인이 된 후에도 자식에게 집착하는 엄마, 습관적으로 욕하는 엄마 때문에 너무 힘듭니다.
  • 4년 전 27살 대기업을 다니다 응급실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았습니다. 최근 안정제를 복용하고 좋아졌습니다.
  • 눈이 갑자기 어지러워지는 병이 생겼어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데 언제 병이 발병할지 몰라 두렵습니다.
  • 긴장과 불안이 많습니다. 친오빠가 외국인과 결혼해서 살다가 사고로 식물인간으로 1년 살다가 깨어났는데 많이 힘들어해요
  • 인권 관련 활동을 하는데 옳다, 그르다 분별심이 잘 생깁니다.
  • 가끔씩 찾아오는 우울감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다 마치고 나니 벌써 2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행복해지려면 긍정적 사고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다람쥐나 토끼도 별문제 없이 사는데 왜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이렇게 힘들게 살까요? 너무 사명감과 욕심에 찌들어서 그래요. 좀 가볍게 살아야 해요. 제일 가볍게 사는 방법은 아침에 눈을 딱 뜨면 ‘아! 오늘도 살았네!’ 하고 외치는 겁니다. 안 죽고 살았다는 것은 굉장한 선물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고, 부처님을 믿는 사람은 부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밥 먹을 수 있으면 됐지 뭐가 걱정이에요. 만약 여러분들이 밥을 먹고 나서 ‘요새 밥맛이 없어’ 그런다면, 이 얘기를 배고픈 사람이 들으면 어떨까요? ‘나는 그런 밥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겠지요.

똑같은 상황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전혀 달라집니다. 여러분들은 법륜 스님이 좋아 보이죠. 한 번 바꿔 볼까요? 67세 된 법륜 스님과 25세 된 질문자와 서로 바꾸자고 하면, 금방 바꿔 줄 수 있어요?”

“아니요.”

“25살이라는 그것만 갖고도, 그 어떤 지식과 지위와 돈보다도 더 큰 재산을 갖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기가 얼마나 큰 재산을 갖고 있는지 모르고 있어요. 그리고 법륜 스님처럼 이렇게 되려면 고생을 꽤 해야 되겠죠. 어떤 젊은이가 이렇게 물었어요.

‘스님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고생을 많이 하면 되는데, 해 볼래요?’

‘아니요.’

이렇게 여러분들은 공짜로 먹으려고 해요. 이렇게 되려면 엄청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것도 안 거치고 ‘나도 법륜 스님처럼 됐으면 좋겠다’라고 바랩니다. 그런 것을 욕심이라고 해요.

지금 자기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부모님이 나를 어릴 때 어떻게 했고...’ 이런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그래도 낳아줬으니 내가 이 세상에 살고, 그래도 키워 줬으니 이렇게 살고 있구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부모에게는 ‘낳아 주시고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을 ‘긍정적 사고’라고 합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것 가지고 뭐라고 해도 소용없어요. 남자 친구가 떠났다면 새로운 남자 친구를 만날 기회가 생긴 거예요. 그러니까 고맙죠. ‘아이고, 자리를 비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가져야 삶이 행복해집니다. ‘즐겁게 살겠습니다’ 각오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이렇게 관점을 바꾸면 삶은 저절로 즐거워지게 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단명한다는 얘기를 듣고 살았어요. 그래서 마흔이 넘으면서부터는 제 인생이 굉장히 편해졌어요. 살 만큼 살았기 때문에 앞으로의 삶은 ‘덤’이었어요. 덤으로 살기 때문에 늘 웃으며 살 수 있었어요.

이렇게 긍정적인 관점을 갖고 늘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무대 위에서 내려온 스님은 질문했던 청년들에게 다가가 악수를 건네며 다시 한번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책 사인회는 하지 않고 곧바로 강연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과 수행 법회 생방송 촬영을 한 후 저녁에는 대구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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