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아침 7시부터 시작된 1,2,3,4부 법회에 이어서 저녁 7시 30분에는 청년들을 위한 5부 법회가 열렸습니다.

청년정토회에서 활동하는 청년들 200여 명이 서울 정토회관을 가득 메웠습니다.

스님은 청년의 눈높이에 맞춰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법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처님은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분이 가셨던 길을 가야 하고, 이분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교리를 외우고, 밥을 굶고, 절을 많이 하라는 뜻이 아니에요. 지금 여기서부터 그 가르침을 실천하면 돼요.

내가 자식이라면 오늘 당장 집에 가서 부모를 이해해보는 거예요. 내가 부모가 안 되어 보고도 부모를 이해해보는 겁니다. 내가 젊으면 안 늙어보고 늙음을 이해해보는 것과 같아요. 내가 부모라면 아이들을 이해해보는 겁니다. 내가 배운 사람이라면 배우지 못한 사람을 이해해보는 겁니다. 내가 배부르다면 배고픈 사람을 이해해보는 겁니다. 내가 건강하다면 아픈 사람을 이해해보고, 내가 장애가 없다면 장애 있는 사람의 어려움을 이해해보는 겁니다. 내가 직원이라면 사장의 어려움을 이해해보는 겁니다. 내가 사장이라면 직원의 어려움을 이해해보는 겁니다.

이것을 실천하는 것에서부터 여러분은 번뇌 없는 길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실천하지 않으면서 ‘번뇌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바란다면 그건 불가능해요. 여러분 중에 정토회에 나와서 처음엔 막 좋다고 하다가도 1년 다니다 그만두고, 2년 다니다 그만두고, 3년 다니다 그만두는 사람이 생기는 이유는 실천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길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는 좋았지만, 실천을 하지 않으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부처님의 ‘빽’을 빌어서 내 이익을 얻으려는 쪽으로 흘러가게 돼요. 그런 기대를 갖고 정토회에 다니면 실제로는 아무 도움이 안 되니까 그만두게 되는 겁니다.

붓다의 위대함은 신분이 높은 곳에서 태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 지위를 버리고 신분이 낮은 곳으로 돌아갔다는 것에 있어요. 붓다는 풍요로운 곳에서 자랐는데 스스로 그것을 버리고 빈곤한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붓다는 두려움도 없고 열등의식도 없었어요. 빈곤한 곳에서 태어나서 빈곤하게만 살면, 부자에 대한 열등의식과 저항의식이 생깁니다. 분노와 저항이 있는 한편으로 열등의식도 함께 갖게 돼요. 그런데 붓다는 부유함을 가지고 있는데도 스스로 그걸 버리고 검소하게 살았기 때문에 부자에 대해 아무런 부러움과 열등의식이 없었습니다. 늘 당당하고 겸손했습니다.

상층에서 태어난 사람이 자기 지위에 안주해서 그것을 지키려고 하면, 그것을 탐하는 사람과 갈등이 생깁니다. 하층에서 태어난 사람이 상층을 부러워해서 그것을 빼앗으려 하기 때문에 그 사이에 충돌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그런데 상층에서 태어난 사람이 스스로 그것을 버리고 하층으로 내려갔는데 무슨 갈등이 있겠어요? 여기에 무슨 분노가 있겠어요? 여기에 무슨 열등의식이 있겠어요?

그래서 붓다의 가르침은 화합을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화합하라고 가르쳤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삶이 화합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분은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어요. 내가 가진 것을 지키려면 두려움이 생기고 초조 불안해지지만, 스스로 버렸기 때문에 두려워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여래는 두려움이 없다.’

여러분도 절에만 다닌다고 수행이 저절로 되는 게 아니에요.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하면서 그런 보통 사람이 어떻게 부처의 길로 갔느냐를 살펴봐야 합니다. 성경을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목수의 아들 예수가 어떻게 하느님의 아들로 거듭났느냐를 봐야 해요. 이걸 자각해야 크리스천 정신이 분명 해지는 거예요.

왕자로 태어났다는 건 수행하기에는 나쁜 조건이에요. 상대적으로 가진 게 많지 않은 우리도 더 가지려고 하는데, 가진 게 많은 사람이 버리기가 쉽지 않겠죠. 그런데도 붓다는 그것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가셨어요. 보통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이런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이런 점에서 달라야 해요. 다른 사람은 자기가 배부르면 남이 배고픈지 안 고픈지 관심 없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배부를 때 배고픈 사람을 좀 생각해야 해요.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부처님 당시 상층 사회의 사람들과 비슷합니다. 저희 세대는 어릴 때 배고파본 적이 있어요. 오뉴월 보릿고개라고 해서 먹을 게 없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제가 어릴 때는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소리가 무엇이었는지 아세요? 호랑이 소리가 아니에요. 쌀독에 쌀이 떨어져서 바가지가 바닥 긁는 소리가 제일 무서운 소리예요. 쌀을 푸러 갔는데 딱 긁으면 바닥이 ‘드르륵’ 긁히는 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소리였어요.

여러분한테는 꿈같은 얘기죠? 도대체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을 거예요. 우리가 이런 식량난을 극복한 지 50년 가까이 됐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극복했어요. 지금 50세 이하는 그런 건 듣도 보도 못하고 경험도 못해봤을 겁니다. 책에서나 읽은 정도죠. 그래서 ‘사람이 굶어 죽는다’, ‘식량이 부족하다’라고 아무리 호소해도 감이 안 와요. 심지어 이렇게 생각하는 청년도 있었어요.

‘쌀 없으면 라면 끓여먹으면 되지. 사람이 꼭 밥만 먹어야 하나? 밥 없으면 빵 먹으면 되지. 우유 먹으면 안 되나?’(모두 웃음)

배부른 사람이 배고픈 사람을 생각하기는 진짜 어려워요. 쉽지 않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을 생각하는 것도 정말 어려워요. 그러나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게 이 세상의 도리예요. 어른이 아이를 돌보는 게 도리예요. 젊은이가 늙은이를 돌보는 게 도리예요. 정상인이 장애인을 돌보는 게 도리예요. 배운 사람이 배우지 못한 사람을 가르치는 게 도리입니다. 마치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것과 같아요.

붓다는 그 길을 발견해서 우리에게 알려준 거예요. 길을 발견했으면 길을 알지 못해서 헤매는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주는 게 도리인 겁니다. 여기에 대립과 갈등이 있을 수 없습니다.”

배부른 사람이 배고픈 사람을,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을, 어른이 아이를 돌보는 게 세상의 도리라는 말에 청년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북한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여러분이 보기에 스님 성격이 조금 까다로울 것 같아요, 그냥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할 것 같아요?”

“까다로울 것 같아요.”(모두 웃음)

“북한에서 식량을 달라고 하면 곧이곧대로 믿고 줄 사람 같아요, 따질 것 같아요?”

“따질 것 같아요.”(모두 웃음)

“작년부터 북한에서 식량 지원을 요청해 왔지만, 제가 바로 지원을 하지 않았어요. 북한이 그렇게 신뢰할 만한 나라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상대에게 속으면 좀 창피하잖아요. 남에게 속으면 여러분은 화가 나는지 몰라도 저는 좀 창피해요. 속은 건 내 잘못이니까요.

그래서 수차례 점검을 해보고 나서 이번에 지원을 하고 왔어요. 그런데 북한에서 또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JTS는 주로 고아원을 지원했는데 고아원은 국가에서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식량 부족 현상이 덜하고, 광산촌이 문제라는 거예요. 그래서 JTS 대표가 먼저 북한에 들어가서 한 번 둘러봤더니 북한에서 말하는 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난 5월 초에 북한에 들어가서 다른 고아원과 광산촌을 직접 가보았습니다. 고아원은 좀 과잉이다 싶을 만큼 최신 시설로 다 새로 지어져 있었어요. 옛날에는 진짜 눈물 나는 곳이었거든요. 영양이 충분한지는 차치하고 일단 건물을 비롯한 하드웨어는 잘 갖춰져 있었어요. 그만큼 국가에서 신경을 쓴다는 얘기죠. 영양 공급을 잘하고 있다고 하면서 창고를 보여주었는데, JTS가 지원한 식량도 다 도착해 있었어요.

그러면서 요청하기를 추가로 들어오는 식량을 광산촌으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광산촌에 가서 실정을 살피고 얘기를 들어보니까 정말 시급하다 싶었어요. 그래서 ‘나머지는 광산촌에 주도록 하겠다’ 이렇게 말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JTS는 이번 5월과 6월에 북한에 옥수수 1만 톤을 보내기로 하고, 모금운동을 오늘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분이 ‘미사일 쐈잖아요!’라고 해요. 지금 상황은 제가 20년 전에 겪었던 상황과 똑같습니다. 북쪽에서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절에 사람들이 굶어 죽어 간다고 해서 북한동포 돕기 운동을 막 시작했는데 시작하자마자 강릉 잠수함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러자 모든 지원이 중단됐어요. 그때 제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압록강에서 만난 그 배고픈 소년은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됐다. 며칠 전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지원을 하겠다고 해놓고, 강릉 잠수함 사건이 났다고 해서 지원을 하지 않아도 될까? 그 아이가 배가 불러져서 내가 지원을 중단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강릉 잠수함 사건을 일으킨 사람은 그 아이가 아니다. 이 아이는 아무런 잘못도 없고, 배고픔도 해결이 안 됐는데 왜 나는 지원을 중단해야 하는가?’

그래서 제가 중단 없이 계속 지원을 했더니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는 좀 과격하다는 인상을 주었나 봐요. ‘다 안 하는데 왜 너만 하느냐? 법륜스님은 과격하다’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런 게 과격한 거라면 과격해야 하겠죠. (모두 웃음)

그런데 묘하게도 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시작하자마자 터졌어요.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UN도 그렇고, 정부도 지금 좀 지원할 의향이 있었는데, 미사일이 딱 발사되니까 여러분 마음도 움츠러들었죠. 댓글에 욕하는 내용도 많아졌어요.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세요. 제가 지난주에 북한에 가서 배고픈 사람들을 보고 왔어요. 그 사람들이 미사일을 쏜 것도 아니고, 그 미사일을 쐈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배고픔이 해결된 것도 아닌데, 우리는 왜 주겠다고 했다가 다시 지원을 멈춰야 할까요?

인도적 지원은 배고픈 걸 해결하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어떤 정치적인 이유로 지원을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소신파들이잖아요.(모두 웃음) 세상이 하든 안 하든 눈치 볼 필요는 없습니다.

인도적 지원의 원칙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정말 인도적 위기 상황인지를 확인해야 해요. 정말 굶주리는지, 정말 병이 났는지, 애들이 정말 공부를 못하는 상황인지 확인이 돼야 합니다. 둘째, 아무리 어려움이 확인이 돼도 우리가 지원한 것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말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는가입니다. 지원했는데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혀 도달하지 않아서 도움이 안 된다면 아무리 사정이 어렵다 해도 지원할 수가 없습니다. 이 두 가지가 인도적 지원의 원칙입니다. 종교가 어떻고 정치가 어떻고 하는 문제는 중심이 아니에요.

제가 직접 가서 보니까 정말로 어려움에 처해 있었고, 지원한 식량이 제대로 분배가 되고 있었습니다. 식량난이 어렵다는 사실이 확인이 됐고, 지원하는 식량이 거기에 도달하고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도 확인이 됐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어떤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지원을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광산촌 유치원에 갔을 때, 우리가 지원했던 옥수수로 국수와 떡을 만들어서 애들 밥상을 차린 모습을 봤습니다. 밥 먹는 시간에 유치원에 들어가서 아이들 옆에 앉아 ‘이 떡 내가 하나 먹어도 되겠니?’ 하면서 떡을 하나 집으니까 아이가 눈물을 글썽글썽했어요.(모두 웃음)

지난 5월 6일, 북한 광산촌 유치원 방문
▲ 지난 5월 6일, 북한 광산촌 유치원 방문

옥수수떡이 4개 있어서 1개 쯤은 먹어도 될 것 같았는데, 제가 손으로 딱 집으니까 아이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한 거예요. 차마 제 입에 못 넣겠더라고요.

이런 게 배고픈 사람들의 심정입니다. 그 심정을 이해하셔서 여러분들도 적극적으로 모금에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떡 하나에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에게 떡 하나 쥐어주는 일이 참 어렵습니다. 청년들은 미사일을 쐈다고 배고픔이 해결된 것도 아닌데 왜 지원을 멈춰야 할까 고뇌했던 20년 전 스님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한국 청년들로서 굶주림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20년 전도, 지금도 여전히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훔치는 청년들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봉축 기념 법문을 마친 후 스승의 날을 맞이해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스님에게 드리는 영상 편지를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 속에는 청년 불교대학과 경전반 등에서 공부하거나 봉사를 하는 청년들이 감사 인사를 짧게 릴레이로 이어갔습니다. 생기발랄한 모습 속에서도 스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청년들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스님도 환하게 웃으며 영상을 시청했습니다.

이어서 법륜 스님에게 드리는 감사편지 낭독이 있었습니다. 편지 낭독은 서초 청년 경전반 담당자 소임을 맡고 있는 이민진 님이 해주었습니다. 이민진 님은 싫은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경험을 들려주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을 만나 진정한 행복을 알게 된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경전반에서 봉사 시간을 쉽게 채우려고 불교대학 담당을 했습니다. 하지만 엄청나게 싫은 사람을 만나 그것이 가장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분에게 사진 찍는 봉사를 부탁했더니 나는 사진 찍고 찍히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고 거절하셨습니다. 늘 그랬습니다. 제가 어떤 말을 하면 그분은 늘 부정적으로 답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울해져서 정진을 하고, 수련 때마다 질문했습니다. 말을 거는 것조차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봉사자가 아니라 청강생이라고 마음을 바꾸어 보았습니다. 그래도 그분을 대할 때 어려운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다른 관계들이 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누가 마음에 안 들 때마다 짜증이 났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만난 뒤에는 '아, 기대하는 나의 마음이 있었네' 하고 돌이키게 되었습니다. ‘저 사람은 그렇구나’ 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힘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깨달았습니다. 정토회에서 스님 법문을 듣고 봉사하고 정진을 통해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엄청난 공덕입니다.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 봉사, 보시를 한 것뿐인데 저도 모르는 새 괴로움이 사라지고, 사람과 환경을 위하는 마음이 듭니다. 오늘도 잘 보여야 한다는 제 마음의 습관을 바라보며 정진을 합니다. 회사에서 욕먹고 소개팅은 망했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인생은 어차피 뜻대로 안 되고, 그래도 좋다는 마음을 낼 수 있어 정말 감사합니다. 이 공부를 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며 진짜 나에게 손을 내밀어 처음 맞잡은 것 같습니다. 스님, 불법을 만나 끝이 없는 기쁨을 느끼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지를 읽던 청년은 스님을 만나 행복해진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앉아 있는 청년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함께 웃으며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다음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스님에게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청년들은 아주 고액의 선물을 했습니다. 바로 배고픈 아이들이 없는 그날까지 꾸준히 보시하겠다는 청년들의 다짐을 담은 무한 보시권이었습니다.

무한대라는 기호가 꼭 나와 너, 남과 북을 이어주는 듯했습니다. 자신의 고뇌에서 벗어나 남의 고통을 덜어주는 길로 나아가는 청년들이 당당해 보였습니다.

이렇게 스승의 날 행사까지 모두 마친 후 다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드디어 아침부터 밤까지 연달아 진행된 다섯 번의 법회를 마쳤습니다. 법회가 끝나니 어둠이 짙게 내려 연등이 더욱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연등처럼 밝은 표정을 한 청년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내일부터 두북 수련원에서 법사단 수련을 시작합니다. 스님은 밤새 두북으로 이동하며 달리는 차 안에서 하루 종일 쌓인 고단함을 내려놓았습니다.

북한은 지금 춘궁기 보릿고개로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습니다. 감자를 수확하는 7월까지 북한의 아이들은 먹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보내는 옥수수 1만 톤은 북한 아이들이 보릿고개를 넘기는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함께 해주세요.

<후원 신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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