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스님은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종일 5회에 걸쳐 기념 법문을 했습니다.

새벽부터 서울 정토회관은 부처님오신날 손님맞이 준비를 하느라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아침 7시가 되자 정토회 활동가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축법요식 및 1부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1부 법회는 대부분 2,3,4,5부 법회에서 스텝 역할을 맡은 활동가들입니다. 하루 종일 행사 준비하고 뒷정리하느라 법문을 듣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아침 일찍 1부 법회가 열렸습니다.

아침 7시, 맑은 종소리가 울려퍼지자 법륜스님이 불단 앞으로 나와 만중생의 행복을 염원하며 향을 올렸습니다.

이어서 봉축법요식 순서에 따라 헌등, 헌화, 거불, 정근, 헌공 예불을 차례대로 진행했습니다.

대중이 청법가와 삼배로 부처님오신날 기념 법문을 청하자 스님이 법상에 올랐습니다. 부처님의 탄생은 일반 사람과 달리 비범합니다. 스님은 부처님이 신비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훌륭하셨던 게 아니라 훌륭하게 사셨기 때문에 탄생을 신비하게 묘사한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오늘은 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부처님은 지금으로부터 2600여 년 전, 인도 북쪽의 히말라야 산기슭에 위치한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라는 나라의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아버지는 정반왕이었고, 어머니는 마야 부인이었습니다. 마야 부인은 아기를 낳을 때가 되자 당시 풍속에 따라서 친정인 데바다하(Devadaha)로 떠났습니다. 정오 경에 카필라바스투와 데바다하의 중간 지점인 룸비니 동산에 이르렀고, 그때 아쇼카나무에 만발한 꽃도 구경할 겸 잠시 쉬고자 가마에서 내렸습니다. 그렇게 꽃구경을 하는 동안 산기(産氣)를 느끼고 그곳에서 부처님을 낳으셨습니다.

이렇게 부처님은 길에서 태어나시고, 길에서 도(道)를 이루시고, 길에서 법을 설하시고, 길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부처님은 일생 동안 오직 자유와 행복의 길을 가신 분이고, 또 우리들에게 바른 길을 인도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을 ‘삼계(三界)의 대도사(大道師)’라고 표현합니다. 길을 가르쳐주는 스승이라는 뜻입니다.

경전에는 마야부인이 오른손을 들어서 꽃가지를 잡고 꽃구경을 하고 있을 때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부처님이 태어나셨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용왕이 더운 물과 찬 물로 아기의 몸을 씻기자 몸이 황금빛으로 빛났고, 아기는 동서남북으로 일곱 발자국을 걸었고, 그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났다고 합니다. 나아가 아기는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다른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사자처럼 외쳤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정말 이렇게 태어나셨느냐 하는 의문이 들죠.(모두 웃음) 종교적인 믿음을 갖고 보면, 부처님은 위대한 성인이니까 태어나실 때의 모습이 보통 사람과는 달랐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태어날 때 기이한 모습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든, 나중에 그 사람의 삶이 훌륭해졌기 때문에 훗날 태어날 때의 모습도 상징적으로 신비하게 그리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부처님의 일대기를 쓴 사람이 부처님의 일생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의 길을 가셨다’라고 표현한 것 같아요.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났다는 것은 인도의 전통 설화에 따르면 부처님이 크샤트리아 계급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일곱 발자국을 걸었다는 것은 육도윤회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육도윤회를 상징하는 여섯 발자국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는 것을 의미해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은 신들의 세계인 천상(天上)과 인간의 세계인 천하(天下)를 통틀어 가장 존귀한 것은 바로 자유와 행복을 얻은 붓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모든 생명이 존귀하다는 뜻도 되지만, 단순한 생물학적인 생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참자유와 참 행복을 얻은 자, 즉 붓다의 생명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그 길을 알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헤매고 있으니,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자유와 행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 부처님의 삶이었습니다. 그것이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의 뜻입니다. 이렇게 부처님은 스스로가 행복했고 또한 다른 사람도 행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며 일생을 살아가셨습니다. 붓다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훌륭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삶을 사셨기 때문에 태어나는 모습을 그렇게 묘사했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스님의 기념 법문이 끝나고 이어서 아기부처님을 씻기는 ‘욕불 의식’과 미래에 부처를 이루리라는 수기를 받는 ‘마정수기’가 진행됐습니다. 대중은 차례대로 일어나서 아기 부처님에게 청수를 붓고, 합장한 채 스님 앞에 다가가 마정수기를 받았습니다. 아기 부처님을 씻기니 마음이 맑아지고, 스님에게 직접 수기를 받으니 꼭 부처가 될 것 같습니다.


욕불 의식을 마치고 나서는 부처님이 탄생하실 때 모습을 스님과 대중이 함께 읽어내려갔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네. 온 세상이 모두 고통 속에 빠져 있구나.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다 함께 발원문을 낭독한 후 마지막으로 오늘 법회에 참석한 공덕을 돌아가신 조상에게 회향하는 천도재를 지내고 1부 법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2부 법회는 주간반에 나오는 정토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열렸습니다. 주간반은 회원들이 많아 1부 법회 때보다 훨씬 많은 500여 명이 법당을 찾았습니다. 1층 법당뿐만 아니라 2층, 3층 강당과 복도, 계단까지 법회를 찾은 사람으로 가득 찼습니다. 법회는 1부와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2부 법회에서도 스님의 봉축 기념법문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부처님오신날을 진정으로 축하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늘 이 분의 태어나심을 축하하고 함께 기뻐하기 위해 이렇게 모였습니다. 그러나 이 분의 탄생을 기뻐하거나 축하하기만 하고, 이 분이 가신 길을 따르지 않는다면 축하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심지어 이 분을 따르고 이 분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오늘까지도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아들은 시험에 떨어지든 말든 우리 아들만 합격하게 해달라거나, 나만 승진하게 해 달라는 심보로 연등을 달거나 꽃을 올렸다면 이건 부처님의 가르침과 모순입니다.(모두 웃음)

애초에 ‘나한테 잘 보이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라고 말하는 신에게 그런 소원을 빈다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고는 둘째 치더라도 우선 앞뒤가 모순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붓다의 길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이 그런 마음은 갖는다면, 이건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적인 자세입니다.

오늘 우리는 붓다의 삶을 다시 새겨봐야 합니다. 붓다는 왕궁에 살면서 왕궁 밖에 사는 민중의 고통 위에 나의 삶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농부의 편리함이 소의 고통 위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새의 삶이 벌레의 죽음 위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젊지만 늙은이의 고통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건강하지만 병든 이의 고통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살아있지만 죽은 이의 고통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지금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한다면, 비록 우리는 배부르지만 배고픈 이의 고통을 이해해야 합니다. 비록 우리는 건강하지만 장애가 있어서 불편한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해야 합니다. 만약 신분차별이 있는 사회라면, 양반은 상놈의 고통을 이해해야 하고, 주인은 하인의 고통을 이해해야 합니다. 만약 남녀차별이 있다면 남성은 여성의 고통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장은 종업원의 어려움을 이해해야 합니다. 얼굴이 잘났다고 사람들로부터 인기가 있다면 못난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해야 합니다. 잘난 모습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못났다고 괄시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관점을 가질 때 우리가 붓다의 길을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붓다의 길은 배부른 사람이 배고픈 사람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도와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함께 더불어 행복해지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비단 상대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한국 사회도 배고플 때가 있었습니다. 이맘 때면 아직 햇곡이 나오기 전이라 보릿고개라는 식량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피땀어린 노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은 먹고 입고 사는데 큰 불편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은 배고파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알지 못합니다. 내가 직접 경험을 해봐야 그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 수 있는데,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경우를 당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별다른 감각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보면 좋은 조건에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조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좋은 조건에만 안주하고 있으면, 언젠가 이 복(福)이 다하게 되면 다시 고통에 떨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과보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배부를 때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나 역시 어쩌다가 배고픔에 빠지게 되어도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울 줄 알아야 내가 어려움에 처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지게 됩니다.”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는 진정한 의미는 바로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는 말씀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습니다.

2부 법회에서도 강생 찬탄, 욕불 의식, 마정수기, 탄생 선언, 발원문 낭독, 천도재 순서로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특히 2부 법회에서는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많았습니다. 아이를 끌어안은 채 아이가 스님으로부터 마정수기를 받게 했는데, 스님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표정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좋아서 활짝 웃는 아이, 인상을 찌푸리는 아이, 혓바닥을 내미는 아이 등 표정도 다양했습니다.

2부 법회가 끝나자 점심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많은 봉사자들의 맛난 비빔밥을 정성껏 준비해주었습니다.

법회가 끝나자마자 앞마당으로 나온 사람들은 비빔밥을 한 그릇씩 들고 마당에 펼쳐진 돗자리에 앉아 삼삼오오 모여 맛있게 식사를 했습니다. 햇살이 따뜻하게 비치는 가운데 오랜만에 만난 도반들과 정겨운 이야기꽃이 곳곳에서 피어났습니다.

스님도 앞마당을 둘러보며 대중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한편 점심식사가 제공되고 있는 앞마당 한편에서는 봉사자들이 천 여개의 그릇을 설거지하고 있었습니다. 설거지하는 분들의 얼굴에 부처님을 닮은 미소가 묻어있었습니다.

12시가 넘어서 2부 법회가 끝났는데 곧바로 오후 1시부터 3부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3부 법회는 저녁반에 나오는 정토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열렸습니다.

3부 법회에서도 스님의 봉축 기념법문이 이어졌습니다. 3부에서는 북한의 식량난을 돕자는 말씀이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스님은 며칠 전 북한에서 보고 온 이야기를 들려주며 생명을 살리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지난주에 UN 기구인 WFP(세계 식량계획)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셨을 겁니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북한은 작년에 여러 기후 조건이 안 맞은 탓에 식량 생산량이 감소해서 올해는 식량이 136만 톤 정도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천백만 명 가량이 영양 부족 상태에 놓여 있답니다.

제가 지난주에 북한을 다녀왔습니다. 평양만 간 게 아니라 북쪽으로는 평안북도까지, 동쪽으로는 강원도까지, 서쪽으로는 평안남도까지 둘러봤어요. 짧은 시간에 제한된 구역을 아주 제한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5일 돌아본 걸 갖고 ‘이게 북한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맞지가 않아요. 그러나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공간만 봤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10년, 20년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습니다.

예전에는 북한의 풍경을 계절에 비유한다면 겨울 같았어요. 세상이 온통 회색이고 바람에 휘날려 흐트러진 인상이었다면, 이번에 둘러본 북한은 3월 말이나 4월 초의 초봄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고, 건물에 채색도 좀 되어 있어서, 회색빛이 아니라 약간 컬러풀하다는 인상이었습니다. 봄에 막 새싹이 돋아나듯 뭔가 피어나려고 하는 모습처럼 느껴졌어요. 그 가능성이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꽃샘추위로 다시 얼어버리지 않을까 염려도 되었어요. 외부적인 상황만 둘러보고는 여기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그 속으로 조금 들어가서 탄광촌 같은 곳을 가보니까 돌아가야 할 기계가 멈춰 있었고, 식량난이 심각해서 무척 어렵다고 말을 했어요. 북한 사람들은 자존심 때문에 어렵다는 말을 잘 안 하는 사람들이에요. 곧 죽어도 큰소리치는 사람들인데 이번에는 식량난으로 어렵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20년 전 고난의 행군 시기처럼 사회 전체가 붕괴되어 있는 경우는 아니에요. 전체적으로는 정비가 되어 있고, 건설도 하고 있고, 뭔가 일어나려고 하는 가능성이 보였지만, 특히 식량 사정이 어려운 지역은 광업소들이었습니다.

광산 기업소는 광물을 수출해서 장비도 구입하고 식량도 배급하고 인건비도 줄 수 있는 곳인데, 경제 제재로 인해 그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광산이라고 하면 석탄만 있는 게 아니에요. 제가 가본 곳은 돌 광산과 석탄 광산이었지만, 철광산도 있습니다. 주로 수출에 의존하던 대단위 기업소의 사정이 더 어려웠습니다. 수출이 멈추니까 가동이 중단되었고, 일부 생산을 하더라도 국내에 판매하다 보니 가격이 해외에 파는 것에 비해 절반밖에 못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는 형편이다 보니 식량도 제대로 공급이 안 되는 어려움에 처해 있었습니다.

JTS는 원래 고아원인 학원을 지원했는데 광산지역이 어렵다고 해서 방문해 보았습니다. 식량을 지원받고 사람들이 정말 고마워했습니다. 아무도 지원해주지 않고 정말 어려울 때 식량을 지원해줬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번 받았습니다. 제가 한 10년 전 개성에 식량을 가져갔을 때는 한 번도 고맙다는 소리를 안 했어요. ‘가져왔어? 저기 갖다 놔’ 이런 수준이었어요.(웃음) 지금 그만큼 식량이 필요하다는 뜻이겠죠.

지금 상당수의 주민이 식량난으로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에 시급히 식량 지원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제가 JTS는 어린이 지원 단체라서 어린이 지원에 우선순위를 둔다고 했더니 그쪽 얘기가 이래요.

‘정부가 요즘 어린이 문제는 굉장히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어린이들도 어렵지만 그래도 식량 공급은 되고 있어요. 그런데 탄광 기업소 쪽은 식량 공급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거기다 말이 탄광이지 노동자들에게도 부양가족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도 애들이 있고 청소년이 있고 노인이 있습니다. 인구로 따지면 40퍼센트가 어린애와 청소년입니다. 결국 탄광에 주는 것도 어린이를 지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서 연령별 인구 분포 자료를 보여주는데 정말로 그랬습니다. 어린이를 돕는다는 JTS의 취지에 벗어나는 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제가 ‘그러면 탄광촌이 정말 어려운지, 고아원은 정말 괜찮은지 직접 한 번 가보자’라고 했어요. 고아원에 가봤더니 시설을 전부 현대적으로 개선해서 제가 볼 때는 조금 과하다 할 만큼 잘 꾸며놨지만 탄광촌은 어렵게 살고 있음이 확연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지원 식량의 일부를 탄광촌으로 지원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대신에 필요한 사람에게 정확하게 지원을 해서 분배에 문제가 없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합니다.

7월만 돼도 햇감자 등 햇곡식이 일부 나오니까 그래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데 5, 6월이 정말 어렵다고 해요. 질도 중요하지만 양이 더 중요하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시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속하게 지원을 해달라는 요청이었어요.

그래서 JTS는 오늘 부처님오신날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모금 운동을 전개하기로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모금에 참여해 주셔서 생명을 살리는 일에 함께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스님은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출가 정신을 새길 것을 강조하며 법문을 마무리했습니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부처님은 자기는 젊지만 늙은 사람을 생각하고, 자기는 건강하지만 아픈 사람을 생각하고, 자기는 살아 있지만 죽은 사람을 생각하고, 자기는 왕자였지만 고통받는 농민을 생각하셨어요. 이것이 출가 정신입니다.

출가를 해야 붓다의 길을 갈 수 있지, 출가를 하지 않고 붓다의 길을 가기는 어렵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출가하는 마음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부처님 오심이 훌륭한 게 아니에요. 부처님이 이렇게 사셨기 때문에 부처님의 태어나심이 성스럽게 된 겁니다. 여러분은 태어날 때 성스럽게 안 태어났다고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모두 웃음)

여러분이 이렇게 출가를 하는 마음으로 훌륭한 삶을 살면 나중에 여러분의 태어남도 성스러운 일이 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일어나 걸었다는 정도가 아니라 태어날 때 물구나무섰다고 할 정도가 될 거예요.(모두 웃음)

그런 마음으로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춘궁기에 북한 주민들이 식량난을 극복할 수 있게 작은 정성을 모읍시다. 그것이 곧 우리가 붓다가 되는 길입니다.

그러니 부처님오신날을 기해서 6월 말까지 두 달 동안 우리가 자기 돈도 좀 내고 가족들이며 일가친척들에게 모금을 해서 식량을 좀 더 지원하면 좋겠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배부르게 하는 게 최고의 공덕입니다. 제가 북한에 가서 둘러보니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분배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두 달 정도 모금을 해서 식량을 보내려고 하는데 함께 하시겠어요?”

“네!”(모두 박수)

스님이 붓다가 되는 길을 제안하자 대중은 큰 목소리로 흔쾌하게 대답했습니다.

이어진 욕불 의식과 마정수기에서도 많은 대중이 아기 부처님을 목욕시키고 스님으로부터 마정수기를 받았습니다. 대중은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기쁨을 회향하며 다 함께 발원문을 낭독했습니다.

“배고픈 자는 배불러지고
병든 이는 속히 나아지며
어린아이들은 배움을 성취하고,
괴로운 자는 평안하여지며,
방황하는 이는 바른 길로 나아가고,
어둠 속을 헤매는 자는 빛을 보게 하여지이다.
특별히 발원하옵나니,
올 춘궁기에 북한동포들 굶주림이 없어지고
남북 간에 화해와 협력과 교류가 증대하여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통일이 이루어져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고
분단의 아픔과 슬픔이 사라지게 하옵소서.”

오후 4시부터는 목사님, 신부님, 천도교 교령님 등 이웃종교인들과 국회의원, 시장, 시민단체 관계자, 언론인, 작가, 연예인 등 사회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4부 법회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저녁 7시부터는 청년을 위한 5부 법회가 열렸습니다. 4부 법회와 5부 법회 소식은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

북한은 지금 춘궁기 보릿고개로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습니다. 감자를 수확하는 7월까지 북한의 아이들은 먹을 것이 부족합니다. 우리가 보내는 옥수수 1만 톤은 북한 아이들이 보릿고개를 넘기는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함께 해주세요.

<후원 신청하기>
https://corn.jts.or.kr

이미지를 누르면 모금 참여 페이지가 열립니다.
▲ 이미지를 누르면 모금 참여 페이지가 열립니다.

스님의하루 텔레그램 구독하기

<스님의 하루>에 실린 모든 내용, 디자인, 이미지, 편집구성의 저작권은 정토회에 있습니다. 허락없이 내용의 인용, 복제는 할 수 없습니다.

<스님의 하루>를 읽고 댓글로 마음을 나눠보세요. 단, 욕설, 비방, 광고, 도배하는 댓글은 관리자가 임의로 삭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