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가진 후 저녁에는 순천에서 시민들을 만나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아침 7시, 평화재단에 도착한 스님은 목사님, 신부님, 교령님 등 이웃종교인 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부엌에서는 조찬을 위한 밥상을 내느라 분주한 가운데, 정성스러운 밥상이 하나씩 세미나실로 들어왔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김명혁 목사님이 기독교식으로 식사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가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 마음과 뜻을 모을 수 있도록 해주시고, 오늘도 남북이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 귀한 모임을 갖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들이 부족하지만, 작은 제물이 되고, 심부름꾼이 되어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우리들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의 모임 주제는 ‘대북 인도적 지원’입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은 지난 3일 '북한의 식량안보 평가' 보고서에서 올해 북한 식량사정이 최근 10년 사이 최악이며 문제 해결을 위해 136만 톤의 식량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종교인 분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북한의 식량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김명혁 목사님은 “우리 종교인들이 어떻게 하면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을 살릴 수 있을까요?” 라며 법륜 스님에게 인도적 지원의 해법을 물었습니다. 스님은 현재 상황에 대해 쉽고 간명하게 설명했습니다.

“지금 북한의 식량 사정은 굉장히 어려운 것 같아요. 6월 말까지 긴급하게 식량이 필요한 상황이에요. 그런데 UN에서 북한에 경제 재재를 하고 있어서 중국으로 송금을 하는 것도 안 되고, 트럭이 북한에 들어가는 것도 허용이 안 되고 있어요. 남한 정부에서 식량 지원을 승인도 해주고, 식량이 경제 제재 품목에는 안 들어가는데도, 트럭이 북한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이 안 되기 때문에 식량을 실어 나를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제가 휴전선 앞에서 소달구지에 식량을 싣고 가는 퍼포먼스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식량은 허용되는데 트럭은 허용이 안 된다고 하니까요. ‘그럼 소달구지에 싣고 가도 막을 거냐’ 이런 뜻의 항의를 해보는 거죠.

이 문제를 풀려면 UN에다가 인도적 지원을 위한 운반 수단의 출입을 허용해달라고 신청을 해야 합니다. 미국에 변호사를 고용해서 UN에서 신속하게 허락이 떨어지도록 요청을 해야 할 상황이에요. 즉, 남한에서 보내는 것은 운송수단에 대한 제재 유예 조치가 필요하고, 중국에서 보내는 것은 송금에 대한 제재 유예조치가 필요합니다.

최소한 5만 톤 정도를 긴급히 보내려면, 첫째, 국내에서 자금을 모아야 합니다. 둘째, UN에 제재 유예 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청을 해야 하고요. 미국이 허락을 해주면 UN도 허락을 해줄 수밖에 없어요. 핵심은 미국을 설득하는 거예요.”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난 종교인 분들은 성명서를 내자, 퍼포먼스를 하자, 건의서를 올리자는 적극적인 의견에서부터 북한, 남한, 미국의 동향을 조금 더 지켜보자는 의견까지 다양한 의견을 내고 토론을 했습니다.

다음달 모임까지 조금 더 추이를 지켜보는 것으로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종교인 모임을 마치고 나서 동국대에서 몇 분의 스님들과 미팅을 가진 후 오후 3시에 평화재단을 출발해 저녁 강연이 열리는 순천으로 향했습니다.

요즘 스님의 가장 큰 고민은 북한 주민들을 살리기 위한 인도적 지원 문제입니다. 서울에서 순천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도 스님은 대북 인도적 문제를 어떻게 할지 많은 분들과 전화 통화를 하며 상의를 했습니다.

전화 통화가 쉼 없이 계속되는 가운데 순천시 문화건강센터에 도착했습니다.

400여 명의 순천 시민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 채 사전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즉문즉설을 듣고 달라진 점은?’,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인가요?’ 사회자가 던지는 질문에 답하며 강연장은 서서히 열기가 달아올랐습니다.

소개 영상에 이어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열렬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다 큰 사람들이 무슨 애들처럼 ‘와’ 하고 그래요.” (모두 웃음)

반가운 마음을 표현하는 스님 방식의 인사입니다. 스님은 특별히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며 청중석에 앉아 있는 한 분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저는 오늘 평소에 존경하던 아주 귀하신 분을 만나서 기분이 좋습니다. 이현주 목사님 아시죠? 저와 같이 대담한 책도 내신 분이에요. 오늘 함께 자리해 주셨습니다.” (모두 박수)

큰 박수 소리와 함께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즉문즉답과 즉문즉설의 차이를 말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대화를 하다 보니 내 문제가 가벼워졌다, 이런 게 즉문즉설이에요. 답을 주는 게 아니에요. 인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즉문즉설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어떤 종류의 고민이든 대화의 소재로 삼을 수 있습니다.”

총 13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오늘은 약 3시간 동안 질문한 모든 분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중 자존감이 낮아서 남들의 눈치를 많이 보게 되어 힘들다는 30대 여성과 스님의 대화가 청중들의 큰 공감을 얻었습니다.

“올해 서른 살입니다. 자존감이 낮아서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게 고민입니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을 많이 하고, 결과가 안 좋으면 상처를 많이 받고 헤어 나오기가 힘들어요. 자신을 사랑하고 자존감을 높이고자 마음먹고 ‘자존감 수업’ 같은 책을 많이 읽어도 실천이 잘 안 되고, 저보다 나은 사람과 끊임없이 비교합니다. 특히 연애를 하거나 친구를 사귈 때처럼 사람 관계에 있어서 많이 힘듭니다. 자존감이 낮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상대에게 많이 맞춰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피곤합니다.”

“욕심이 많아서 그래요. 자존감이 낮다는 건 질문자가 과대망상증이 있다는 뜻이에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세요?”

“이해하기는 좀 힘든 것 같아요.”

“자기가 과대망상이라는 걸 모르겠다고요?”

“네, 제가 그렇다는 게...”

“여기에 컵 뚜껑, 컵, 텀블러가 있어요. 이 물건을 두고 제가 물어볼게요. 어렵지 않으니까 질문자 생각대로 편하게 대답해보세요. 이 컵은 텀블러보다 커요, 작아요?”

“작아요.”

“이 컵은 뚜껑보다 커요, 작아요?”

“커요.”

“텀블러보다는 어때요?”

“작아요.”

“뚜껑보다는요?”

“커요.”

“그러면 이 컵은 커요, 작아요?”

“잘 모르겠어요. 어디에 비교하시는 건지...”

“아니, 서른 살이나 됐는데 이 컵이 큰지 작은지도 몰라요? 이 컵은 커요, 작아요?”

“적당해요.” (모두 웃음)

“그것도 좋은 답이에요. 질문을 잘 들어 보세요. 이 컵은 커요, 작아요?”

“커요.”

“이 컵이 크다고요?”

“제 기준에서는... 크다고 생각해요.”

“그래요? 이 컵을 컵 뚜껑 하고 비교하면 커요, 작아요?”

“커요.”

“컵 뚜껑보다는 크지만, 텀블러보다는 어때요?”

“작아요.”

“그러면 이 컵은 커요, 작아요?”

“...”

질문자가 어려워하자 스님은 청중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사람 손 들어봐요. 저쪽 사람한테 마이크를 주세요. 자, 이 컵은 텀블러보다 어때요?”

“작아요.”

“컵 뚜껑보다는요?”

“커요.”

“그럼 이 컵은 커요, 작아요?”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에요.” (모두 웃음)

“제가 이걸 자꾸 묻는 이유를 알려드릴게요. ‘이 컵은 작다’라고 할 때 그 ‘작다’는 것은 컵 자체가 작다는 뜻일까요, 텀블러와의 비교에서 오는 걸까요?”

“비교에서 오는 겁니다.”

“머리와 눈으로 인식할 때 작다고 인식이 된다는 뜻일까요, 존재 자체가 작다는 뜻일까요?”

“작다고 인식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 컵을 뚜껑과 비교해서 ‘크다’고 말할 때 컵 자체가 큰 걸까요, ‘크다’라고 인식이 되는 걸까요?”

“크다고 인식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작다’, ‘크다’는 존재에 있을까요, 인식에 있을까요?”

“인식에 있습니다.”

“지금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이 정도만 이해해도 깨달음에 이르기 직전이에요. (모두 웃음)

우리가 ‘작다’, ‘크다’라고 말할 때 ‘작으니까 작은 거지!’, ‘큰 거니까 큰 거지!’ 이렇게 말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존재에는 작은 것도 없고 큰 것도 없어요. 존재는 그냥 존재일 뿐이에요. 다만 그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물을 인식을 할 때 어떤 때는 크다고 인식이 되고, 어떤 때는 작다고 인식이 되는 거예요. ‘크다’, ‘작다’는 인식 상의 문제예요. 존재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착각을 하고 있어요. 나에게 인식 상으로 작다고 인식된 것인데, 이렇게 머릿속에서 인식된 것을 객관화시켜 버립니다. ‘이건 작은 거라서 내가 작다고 인식했다’ 이렇게 착각을 합니다. 작다는 것은 인식 상의 문제, 즉 주관의 문제인데 이걸 객관화시키는 겁니다. ‘이게 작은 거라서 내가 작다고 인식했다’ 이렇게 착각을 하기 때문에 온갖 오류가 발생하는 거예요.

여기 프리즘이 있다고 합시다. 햇빛이 쭉 오다가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 색으로 스펙트럼이 펼쳐지죠? 우리들의 업식은 이 프리즘과 같아요. 바깥에 있는 햇빛 또는 사물이 내 업식을 통과해서 나에게 특정한 색으로 인식이 되는 겁니다. 그 프리즘을 통과해서 인식이 될 때 어떤 사람은 빨갛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주황색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파란색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아, 내 눈에 빨갛게 보였구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저 벽은 빨간색이야!’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걸 내가 작다고 인식했구나’라고 알지 못하고 ‘컵이 작은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관을 객관화시키는 거예요. 불교용어로 ‘상(相)을 지었다’라고 합니다. 이 상은 실상이 아닌 허상이에요. ‘상’이라는 말은 주관을 객관화했다는 뜻이에요. 같은 사물을 두고 한 사람이 빨갛다고 하고 한 사람이 노랗다고 하면 ‘어떻게 노란 걸 빨갛다고 하냐!’, ‘어떻게 빨간 걸 노랗다고 하냐!’ 이렇게 시비가 생겨요. 그런데 이것이 인식 상의 문제임을 알면 상대가 ‘노랗다’ 혹은 ‘빨갛다’라고 해도 ‘잘못 봤다’가 아니라 ‘저 사람 눈에는 노랗게 보이는구나’, ‘저 사람 눈에는 빨갛게 보이는구나’ 하게 됩니다. 신에 대해 대화를 할 때도 ‘아, 저 사람은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아, 저 사람은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구나’ 이렇게 됩니다. ‘이 사람은 귀신이 있다고 하고, 저 사람은 귀신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맞느냐?’ 이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 사람은 있다고 인식하고, 저 사람은 없다고 인식하는 거예요. 그러면 아무런 갈등이 생기지 않습니다.

질문자는 지금 이 컵과 같아요. 본인이 방금 이 컵의 크기가 적당하다고 말했죠? 그런데 계속 이 텀블러 하고만 비교하다 보니까 자기가 작다고 인식이 됐어요. ‘작다, 작다, 작다’라고 인식을 계속하다 보니 질문자는 작아져 버렸어요. 제 말 뜻 이해하시겠어요?

질문자가 자존감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자기보다 키 큰 사람하고 맨날 비교하니까 자기는 작은 사람이 된 거예요. 자기보다 홀쭉한 사람하고 비교하니까 자기는 뚱뚱한 사람이 된 겁니다.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하고 비교하니까 자기는 이미 나이가 들어버린 사람이 된 거예요. 자기보다 재능이 더 있는 사람하고 계속 비교하니까 재능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를 열등하게 생각하게 된 거예요.

그건 존재의 문제에서 오는 게 아니에요. 잘못된 인식이라고 말할 수 있고, 욕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백만 원을 가지고 있어도 충분한데, 맨날 천만 원을 가진 사람과 비교해서 ‘나는 가난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과 같아요. 질문자가 말한 내용을 스스로 생각해 보세요. 질문자는 열등한 사람이에요, 적당한 사람이에요?”

“적당한 사람이요.”

질문자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눈물과 함께 웃음꽃도 활짝 피었습니다. 스님은 질문자의 얼굴을 청중이 볼 수 있게 질문자가 뒤로 돌아보도록 했습니다.

“자, 뒤로 한 번 돌아봐요. 여러분이 보기에 질문자가 어때 보여요? 괜찮죠?”

청중은 큰 목소리로 “괜찮아요!”, “화이팅!”하고 말하며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박수 속에서 청중 중에 한 분이 말했습니다.

“야단맞아야겠네요.”

스님도 웃으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맞아요, 야단맞아야 해요. ‘네가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사냐!’ 이렇게 얘기하고 싶죠? (모두 웃음)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귀한 것도 없고 천한 것도 없어요. 큰 것도 없고 작은 것도 없어요. 깨끗한 것도 없고 더러운 것도 없어요. 신성한 것도 없고 부정한 것도 없어요. 다 그것입니다.

이것을 다양한 언어 표현을 빌려서 설명하는 거예요. ‘이 컵은 큰 거예요, 작은 거예요?’라고 제가 물었을 때 ‘크다’, ‘작다’라는 용어를 빌려서 표현하면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닙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 용어를 안 빌리고 철학적으로 표현하면 ‘공(空)이다’ 이렇게 말해요. ‘공’이라는 말은 없다는 뜻이 아니라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라는 뜻이에요. 선(禪)의 언어를 빌려서 표현하면 ‘다만 그것이다’라고 말해요.

또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뭐라고 할까요? ‘큰 거예요, 작은 거예요?’라고 물으면 ‘할!’ 이렇게 소리를 지릅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모두 웃음)

다른 표현으로 ‘큰 거예요, 작은 거예요?’라고 물으면 ‘팍!’ 하고 주장자로 머리를 때립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하라는 뜻이에요. 차를 마시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이건 큰 거예요, 작은 거예요?’라고 물으면 ‘여보게, 차나 한 잔 마시지’라고 대답합니다. 아무 때나 ‘차나 한 잔 마시지’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차를 마시고 있는 중에 뭐라고 하니까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차나 한 잔 마시고 가거라’ 이런 뜻으로 하는 얘기예요. 그런데 이런 대화를 보고 ‘차나 한 잔 마시게’라고 대답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정신 나간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질문자는 괜찮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오늘부터 이렇게 기도하세요.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이만하면 됐어.’

이렇게 기도해도 자존감 문제가 잘 극복이 안 되면 내일부터 지체부자유 장애인 보호시설 같은 데 가서 봉사를 해봐요.

‘아, 내가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정말 큰 축복이구나. 내가 말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정말 큰 축복이구나. 걸어 다닐 수 있는 것만 해도 정말 큰 축복이구나!’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면 금방 치유가 돼요. 그런데 질문자는 뭐가 부러운 거예요?”

“훌쭉해지고 싶어요.”

“그건 밥 안 먹으면 돼요. 먹을 거 다 먹고 훌쭉해지고 싶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요. (모두 웃음)

‘홀쭉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해요. 미인의 기준은 원래 없어요. 미인으로 유명한 양귀비는 홀쭉하지 않고 좀 통통한 편이었어요. 요즘 말하는 홀쭉한 미인은 소비적입니다. 일하는 데는 별로 쓸모가 없어요. 무거운 짐도 못 들잖아요. (모두 웃음) 이게 다 소비적인 관점에서 나오는 미적 감각입니다. 그런 것에 세뇌되지 마세요.

자존감이라는 건 ‘나는 자존감 있다!’ 이런다고 생기는 게 아니에요. 질문자가 스스로 욕심을 내기 때문에 자존감이 없어지는 거예요. 자기를 너무 높이 평가하고 싶어 해서 생기는 문제예요. 공부도 잘하고 싶고, 예쁘다는 소리도 듣고 싶고, 재능도 뛰어나고 싶은데, 그렇게 안 되니까 괴롭죠. 이런 걸 욕심이라고 해요.

이 컵은 큰 거예요, 작은 거예요? 무거운 거예요, 가벼운 거예요? 새 거예요, 헌 거예요?

제가 어릴 때는 무덤을 파면 그릇이 나왔어요. 무덤 속에 있던 그릇은 새 그릇이 아니라 헌 그릇이잖아요. 그런데 그 헌 그릇 다섯 개를 가져가서 새 그릇 하나 하고 바꿨어요. 그런데 관점이 ‘진짜냐, 가짜냐?’ 이렇게 바뀌면, 무덤 속에 있던 게 더 값이 나가게 될까요, 새로 만든 게 더 값이 나가게 될까요?”

“무덤 속에 있던 거요.” (모두 대답)

“그래요. 무덤 속에 있던 그릇 1개는 새 그릇 50개와도 바꿀 수 있어요. 그런데 ‘새 거냐, 헌 거냐’ 이렇게 접근하면 입장이 확 바뀌어 버려요.

마찬가지로 얼굴은 검을수록 좋고, 머리는 흴수록 좋고, 주름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게 관점의 전환이라는 거예요. 스님이 결혼해서 둘이 사는 부부를 보고 좋다고 생각하면 스님 노릇을 못 하겠죠. 저는 혼자 사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밤에 늦게 들어가도 잔소리하는 마누라도 없고 징징대는 애도 없어요. 며칠씩 집에 안 들어가고 돌아다녀도 누가 뭐라 그러는 사람이 없어요.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어요? (모두 웃음)

늙으면 얼마나 좋은지 알아요? 공부할 일도 없고, 시험 칠 일도 없어요. 직장 다닐 일도 없고, 애 키울 일도 없어요. 제일 좋은 게 늙는 거예요. 강연 전에 이현주 목사님을 만났는데, 늙어서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하셨어요. 목사님 귀가 굉장히 좋은 귀예요. 어느 정도로 좋으냐면, 둘이 얘기하는 건 다 들리고, 나 빼고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건 안 들린다고 해요. 이것보다 더 좋은 귀가 없어요. 옆에서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게 귀에 다 들리면 얼마나 거슬리겠어요? 그게 안 들리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모두 웃음)

이처럼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다릅니다. 이것을 ‘관점 바꾸기’라고 해요. 여러분이 ‘행복학교’에 오면 이 ‘관점 바꾸기’를 배울 수 있어요.

남편이 지금 나한테 잘하는 게 100이라고 합시다. 결혼할 때 내가 약간 기대가 높아서 200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어요. 그런데 살아보니까 100밖에 안 돼요. 그러면 실망하겠죠. 그런데 남편이 50밖에 안 되는 줄 알고 결혼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결혼하고 보니 100이나 되니까 황송하겠죠. 똑같은 100인데 어떻게 기대했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차이가 생기는 거예요. 아내, 남편, 자식, 회사 동료 모두 똑같아요. 상대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내 기대에 따라서 달리 보이는 거예요.

법륜스님은 지금까지는 인기가 올라갔어요. 왜 그럴까요? 사람들이 별로 기대를 안 했기 때문이에요. 기대 없이 왔는데 얘기를 들어보니까 ‘야, 이런 사람이 다 있네!’ 이렇게 된 거예요. 그러면 앞으로 여러분의 기대가 높아지겠죠. 법륜스님한테 묻기만 하면 인생 문제가 다 풀릴 것 같다는 환영을 갖게 돼요.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물었는데, 대화를 통해 고민 해결이 잘 안 됐다고 합시다. 그러면 돌아가면서 ‘별 거 아니던데?’ 하면서 실망해요. 그러니 앞으로 시간이 점점 흐르면 인기가 어떻게 될까요? 인기가 올라갔다가, 정체되었다가, 떨어지겠죠. 인기가 떨어질 것까지 예측을 하고 있으면 떨어져도 괴롭지 않고 편안해요. 그런데 대부분은 인기가 올라가면 계속 올라갈 것이라는 환영에 사로잡힙니다.

인기라는 건 스님이 잘해서 생기는 게 아니에요. 자기들이 그저 좋아했다가, 좀 있으면 또 싫어했다가, 이렇게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 거예요. 거기에 놀아나면 안 돼요. 그러면 내 인생만 불쌍해져요. 막 좋아해도 그건 자기들 문제고, 욕을 해도 자기들 문제예요. 그래야 내가 내 인생의 행복을 온전히 지켜갈 수 있습니다. 환상에 나를 맡겨 놓으면 파도에 떠밀려 다니는 나룻배처럼 살게 됩니다.

그러니 남편이 잘해준다고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연애할 때 잘해주던 남자 친구와 결혼하면 대부분 실망합니다. 기대가 높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연애하지 않고 결혼하던 시절에는 결혼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눈 감고 3년, 귀 막고 3년, 입 다물고 3년’이라고 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시집가면 곧 죽으러 간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살아보면 안 죽고 살 만하거든요. 실제로는 굉장히 열악한데도 기대가 워낙 없었기 때문에 막상 살아보면 살 만하니까 그걸 행복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요즘은 연애도 하고 몇 년씩 동거도 해서 온갖 기대를 잔뜩 갖고 결혼을 하기 때문에 결혼 생활이 오래 못 갑니다. 요즘 이혼율이 높은 이유는 기대가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기대를 조금 내려놓으세요. 자꾸 상대를 바꾸려고 하지 마세요. 행복해지고 싶다면 내 관점을 바꾸거나 내 기대를 조금 조절하면 돼요.”

질문자가 웃음을 머금고 자리에 앉자 강연장에는 봄볕처럼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이외에도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 대학을 졸업하고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임용고시를 준비했지만 결국 합격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요?
  • 현장에서 20년 넘게 체육 지도를 하다가 사무도 겸하게 됐는데, 직원들이 저를 싫어하는 것 같아서 직장을 그만두려고 합니다. 주위에서 말리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 32살인데, 무슨 일을 하고 살아야 할지 막막해요.
  • 기수련을 13년 한 후 지도도 하다가 지금은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다. 저를 보면 무속인은 신 내림을 받으라고 하고, 목사님은 신학대학을 가보라고도 하는데, 제가 영적인 길을 가야 할까요?

사람은 왜 살고 늙고 죽는지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도 있었습니다.

  • 사람은 왜 사는 걸 까요?
  • 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어느새 엄마에게 흰머리가 생기고, 손에 주름이 많이 생겼어요. 왜 사람은 늙고 죽을까요?

늙고 죽음에 대하여 스님이 “사는 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죽는 것도 아름다움입니다.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습니다. 청춘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늙음도 아름다움입니다.”라고 하자 머리 희끗한 분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한 질문자는 “스님은 저에게 방탄소년단과 같은 큰 연예인입니다. 유튜브로 즉문즉설을 보고 제 소소한 고민들이 모두 해결됐습니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라며 인사를 한 뒤 자리에 앉았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스님. 제가 수학을 잘 못해요. 그런데 앞으로 살아가는데 수학이 필요 있어요?”

마이크를 잡고 또박또박 말하는 초등학생이 귀여워 모두 미소를 지었습니다. 스님은 미래에는 수학이 더욱 중요해진다며 수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 불교의 오계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만든 것입니까? ‘자신을 오염하지 마라. 살생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탐욕하지 마라. 열심히 일하라.’ 이 다섯 가지가 더 좋지 않나요?
  •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한 말씀해주세요.
  • 순천에서 살다가 제주도로 이주해서 취미로 대금을 배우고 있습니다.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은데, 요즘 많이 지치고 피곤합니다.
  •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은데 퇴근하면 쉬고 싶은 마음만 들어요. 스님은 어떻게 그렇게 열정적으로 많은 일을 하시나요?

웃음과 박수가 계속 오가는 가운데 드디어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질문자 한 명 한 명에게 소감이 어떤지 물어보았습니다. 다들 웃으며 한 마디씩 했습니다.

“명쾌했습니다.”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수학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떤 삶을 살더라도 행복하면 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더 많은 행복을 가지고 갑니다.”
“손이 따뜻해졌어요. 감사합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겠습니다.”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정리 말씀을 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재밌었어요? 유익했습니까? 재미가 없으면 지금 졸리고, 유익하지 않으면 집에 가서 허전합니다.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나도 좋고, 너도 좋다면, 그것이 부처의 길이고 진리의 길입니다. 그런 삶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스님은 책 사인을 하며 한 분 한 분과 눈을 맞추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자존감이 낮아 고민이라는 질문자를 만나보았습니다.

“처음에 컵의 크기를 물으실 때 제가 대답하는데 사람들이 웃으니까 저도 모르게 또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신경 쓰였어요. 그런데 스님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나를 자꾸 비교하며 못나게 여겼구나.’하고 느껴지면서 눈물이 났어요. 속상했어요. 이제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사랑할래요.”

옆에 있던 질문자의 어머니도 “네가 얼마나 괜찮은데.”하며 함께 웃었습니다. 스님은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내일은 진주에서 시민들을 만나 즉문즉설 강연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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