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안양시에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 강연이 있기 전 스님은 하루 종일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했습니다.

아침 9시부터 11시까지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회의를 한 후 11시부터는 『훈민정음의 길 - 혜각존자 신미 평전』을 저술한 박해진 작가와 설법연구원 동출 스님이 찾아와 점심식사를 함께 하고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박해진 작가님은 12년의 문헌조사와 사찰 순례를 통하여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훈민정음 창제의 핵심 편집인이었던 조선 초기의 고승 혜각존자 신미 스님의 생애와 업적을 재구성한 분입니다. 훈민정음의 역사와 함께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언해 불전(佛典)의 간행 내력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했을 뿐만 아니라 세종이 강력한 왕권으로 경복궁에 지은 내불당의 건립 내력도 함께 정리해내 호평을 받은 분입니다.

스님은 “작가님의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라고 하면서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을 묻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약 2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눈 후 스님은 간략히 소감을 말했습니다.

“작가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쩌면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낸 뒤에 이것저것 자료를 찾다가 원나라(몽골)의 문자 ‘파스파’를 참조하고 그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원나라 이전에 있었던 요, 금나라도 문자가 있었거든요. 저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역사를 복원하려면 거란족, 여진족, 몽골족, 선비족의 역사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라고 봐야 해요. 우리와는 사촌 관계라면 중국과는 사돈에 팔촌 정도로 떨어져 있는 관계거든요.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시기까지는 다 우리의 영역 안에 있던 소수 민족들이었습니다. 발해가 망하자 각기 다 독립을 하게 된 겁니다. 이 민족들이 썼던 언어와 역사를 연구해야 우리의 고대사를 제대로 복원하지 중국의 문헌만 자꾸 뒤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중국이 변방에 있는 소수민족의 풍습 정도로 기록해 놓은 걸 토대로 우리 역사를 복원하려고 하니까 우리 역사 자체가 변방사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인도 언어 중에서도 백성들이 썼던 드라비다 언어는 우리말과 비슷한 게 많다고 학자들이 말합니다. 부처님 당시에 생활언어는 빨리어였기 때문에, 어쩌면 빨리어가 이 드라비다 언어를 계승했을지 몰라요. 빨리어는 우리말과 발음이 비슷해요.

작가님의 주장은 스님들이 훈민정음 창제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건데요. 이렇게 한글의 창제와 유포에 스님들이 큰 기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기독교에서는 성경이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한글로 번역해서 유포를 했는데, 오히려 불교는 그 어려운 한문을 계속 붙들고 있었던 형국이네요.

용성스님도 감옥에 가서 한글로 된 성경을 보고 크게 느끼셨다고 해요. 이 좋은 부처님의 말씀을 한문이라고 하는 문자 감옥에 가두어놓고 있구나. 그래서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삼장역회를 조직하셔서 많은 번역 활동을 하시거든요.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용성스님의 독립운동과 활동도 이렇게 누군가가 연구해서 밝히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음에 또 모시고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박해진 작가님과 동출 스님도 “바쁘신 가운데 이렇게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용성조사님의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함께 연구 작업을 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면서 ‘독립운동가 백용성’ 책을 사인해서 선물했습니다.

오후 2시부터는 불교신문에서 찾아와 부처님오신날 특집 기사에 나갈 인터뷰를 했습니다. 기자님은 “부처님 오신 날에는 무엇보다 법륜스님 특집을 꼭 싣고 싶었다”라고 하면서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총 10개의 질문을 준비해와서 약 2시간 동안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중에서 한 가지 질문과 대답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기자님은 즉문즉설을 통해 새롭게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있는 모습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즉문즉설을 하면서 곤혹스러울 때는 없었는지?’, ‘극단적인 처방을 내린다는 의견도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스님은 편안하게 대답을 이어갔습니다.

“즉문즉설을 듣다 보면 극단적인 처방을 내리시는 경우도 가끔 있어서 듣는 사람이 불편했다는 의견도 좀 있더라고요.”

“예, 대화라는 건 그럴 수 있죠.”

“예를 들어 이혼하고 싶다고 하면 스님께서는 ‘그럼 이혼하세요’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잖아요. 그래서 시원하기는 한데, ‘다르게 표현해주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왜 꼭 그렇게 말씀하실까?’ 이런 의아함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뭔지요?”

“즉문즉설이 어떤 지식을 전달하거나, 누군가를 위로하거나, 어떤 답을 준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기는 것 같아요. 저는 깨우쳐주는 거예요. 그 사람이 이혼하든 안 하든 그런 것은 아무 관계가 없어요.

질문자가 ‘남편이 술을 먹고 바람을 피워서 못 살겠다’라고 하니까 ‘아, 그러면 이혼하세요’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고, 그러면 또 ‘애가 아직 어린데 어떻게 이혼을 합니까’라고 하니까 ‘그러면 그냥 같이 사세요’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들을 때는 ‘스님이 말을 왜 저 따위로 하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러면 또 질문자는 ‘술을 먹고 이러는데 어떻게 살아요!’라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이혼하면 되겠네요’라고 합니다. 그러면 또 질문자가 애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다른 얘기를 하면 ‘그럼 계속 같이 살아야지 어떡하겠어요’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이런 대화를 두 번, 세 번 반복하면서 제가 염두에 두는 건 ‘어, 이게 남편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네!’ 이걸 자각하게 하는 거예요.

질문한 사람은 이혼을 할까 말까가 관심사이지만 저는 ‘당신이 이혼하고 안 하고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제가 볼 때는 ‘아, 이게 내 문제이구나’라고 깨우치는 게 중요하니까요.

질문자가 ‘자살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렇게 말해도 ‘자살은 하면 안 돼요’ 이런 말을 안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도 제가 딱 보니 이렇게 있다가는 당신이 죽을 것 같네요’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꼭 죽고 싶어요? 죽는 건 당신 자유지만 죽으려면 조용히 죽어야지, 죽어서 어머니 아버지 가슴에 못을 박아서 되겠어요? 죽어서까지 부모 속 썩이려고요?’

예를 들면 대화를 이런 식으로 하지 ‘죽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큰일 나요!’ 이렇게 대화를 하진 않아요. 이렇게 대화를 하기 때문에 옆에서 듣는 사람들은 가끔 오해를 해요. 예를 들어서 어떤 여성분이 남편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하소연을 하면 제가 두 번 세 번 질문을 해봅니다. 그래도 계속 같은 소리를 반복하면 제가 그러죠.

‘당신이 그렇게 고집이 센데 당신 남편 아니면 누가 당신하고 같이 살겠어요? 당신 같은 사람 만날까 싶어서 제가 장가를 안 가는 겁니다. 저라도 당신 하고는 못 살겠어요.’

제가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걸 옆에서 들으면 ‘여자를 왜 저렇게 윽박지르나’ 이렇게 생각하는데, 사실은 이렇게 저렇게 해서 질문자를 깨닫게 하는 거예요. ‘아, 이게 내 문제구나’라고 깨닫도록 도와주는 게 제가 대화를 하는 목적입니다.

그런데 본인이 못 알아듣는 경우가 가끔 있어요.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는 분 중에는 대화를 해도 이해를 잘 못합니다. 그럴 때는 옆에서 듣는 사람들도 답답해하죠.

‘그냥 질문자가 듣고 싶은 얘기를 해주면 될 텐데, 왜 스님이 그 얘기는 안 해주고 다른 얘기를 저렇게 하느냐’

이렇게 말하는데, 저는 위로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깨우쳐주는 게 목적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질문에도 스님이 막힘없이 대답해준다’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볼 때는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어떤 문제를 얘기해도 그건 꿈에 불과해요. 100명이 악몽을 꾸면 그 내용이야 다 다를 수 있지만 꿈의 종류가 뭐가 중요해요? 흔들어 깨우기만 하면 되는데요. 그 사람이 뱀 꿈을 꿨든, 도둑 꿈을 꿨든, 호랑이 꿈을 꿨든, 깨우기만 하면 됩니다. 흔들어 깨울 때 ‘그래, 호랑이가 이러저러했구나’ 이렇게 몇 마디 할 뿐이지, 호랑이가 핵심은 아닙니다.

질문자가 ‘이혼을 했네’, ‘남편이 바람을 피웠네’ 이런 얘기를 해도 이혼을 하거나 바람을 피운 건 중요하지 않아요. 질문자가 지금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서 거기에 집중돼 있는 상태인데, 대화를 나누면서 거기로부터 빠져나오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가끔 못 빠져나오는 경우가 있죠. 우울증이 심하거나 다른 이유가 있어서 못 빠져나오는 경우에는 본인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어요. 또 본인은 고민이 해결됐는데, 그걸 구경하는 사람이 사회의식이 너무 강해서 ‘사회 제도의 문제는 왜 외면합니까’라고 문제제기를 해요.

자식이 죽었다고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분에게 위로를 해주는 건 세상 사람들이 많이 하잖아요. 제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그렇게 자식을 가슴에 묻어놓은 걸 확 털어버리게 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러나 그런 분들은 법문을 들을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그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법문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도와줄 따름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재발 방지를 위한 300만 명 서명 중에 140만 명을 저와 정토회 회원들이 해주었지만, 팽목항에 가서 법문을 해주지는 않았어요.

법문이라는 것은 자식을 잃은 것보다 더한 고통을 당해도 탁 돌이키게 하는 거예요. 칼 맞아 죽어도 한 생각 탁 돌이켜서 해탈하는 게 법문입니다. 법문과 상담을 구분하지 못하니까 오해가 생기는 것 같아요. 세상 사람들은 즉문즉설이 상담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 사람이 뭘 질문하든, 무슨 고민을 내놓든, 그건 그냥 마음을 깨우치는 하나의 소재에 불과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기자님은 불자들에게 꼭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한 말씀을 부탁했습니다.

“부처님이 얼마나 훌륭하시냐, 스님이 얼마나 훌륭하시냐, 이런 걸 너무 생각하지 마세요.

‘스님 법문을 듣고 내 삶이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됐나? 부처님 경전을 읽고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됐나?’

이렇게 법문을 자기화하는 게 정말 필요합니다. 부처님이 불쌍한 중생을 구제하시지, 우리가 왜 부처님을 걱정해야 해요? 부처님은 우리가 칭찬해도 말이 없으시고 비난해도 말이 없으십니다. 부처님의 담마(법)를 공부해서 내 삶이 자유롭고 행복해져야 해요.

엊그제도 스님의 유튜브 즉문즉설 동영상 1,500개를 다 봤다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당신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 중독된 상태입니다. 몇 개만 보고 직접 실천을 해야 의미가 있지, 그걸 무엇 때문에 천 몇 백 개를 다 봐요? 당신처럼 듣기만 하고 아무것도 안 하면 그림의 떡입니다. 그러면서 법륜스님이 훌륭한 분이라고 칭찬한다고 당신 인생에 무슨 도움이 돼요? 당신 인생에 도움이 되라고 제가 이렇게 천 몇 백 개를 유튜브에 올리지, 나 좋자고 천 몇 백 개씩 올리는 게 아니잖아요.’

법문을 한 번 듣더라도 그에 따라서 실천하고 경험을 해보세요. 그렇게 해보고 좀 부족하면 하나를 더 들어보고 참고하고, 이런 자세를 가지세요. 내내 밥 먹고 앉아서 법문만 들으면 애들 만화 보는 거하고 똑같아요.

지금 불자 여러분이 스님 걱정하고 절 걱정하고 부처님 걱정할 필요 없어요. 저는 불법을 통해 자기 삶이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것을 경험하고 그것을 확산시켜 나가는 게 불교의 새로운 진로라고 생각합니다.”

스님의 좋은 말씀에 기자님도 “감명 깊게 들었다”며 “신문에 잘 싣겠다”고 인사한 후 돌아갔습니다.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오후 4시부터는 인도에서 선관스님이 찾아와 대화를 나눈 후 오후 5시가 넘어서 저녁 강연이 열리는 안양아트센터로 향했습니다.

세상은 연둣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 나날이 푸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설레는 표정으로 강연장을 들어서는 사람들에게도 싱그러운 봄기운이 느껴집니다. 아트센터 1, 2층의 1126석은 금세 다 채워졌습니다. 몇 분 차이로 아깝게 자리를 배정받지 못한 분들은 로비에 준비된 의자에 앉아 모니터로 강연을 보았습니다.

스님은 국회의원 추혜선 님이 찾아와 잠깐 차담을 나눈 뒤 7시가 되자 무대에 올랐습니다.

“꽃도 피고 신록이 시작되는 봄날 저녁에 여러분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기가 예술 공연을 하는 곳이라서 원래 잘 안 빌려준대요. 그동안 큰 장소를 못 빌려서 늘 많은 분들이 강연을 들으러 오셨다가 돌아가셨어요. 오늘 이렇게 큰 공연장을 쓸 수 있게 해 주신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모두 박수)

오늘은 덜 미안하네요. 늘 강연을 들으러 왔다가 몇 백 명이 돌아가셔서 ‘죄송합니다’하고 사과를 했는데 오늘은 안 해도 되겠어요.”

스님은 질문을 받기 전에 옛날이야기 한편을 들려주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행복하지 못한 왕이 있었습니다. 왕이 신하들에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묻자 다들 답변을 못해서 쩔쩔매는데 한 신하가 꾀를 내어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입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 신하가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찾으러 나서게 되었습니다. 행복한 사람을 찾아보니 부자도 신분이 높은 사람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대장장이가 뜨거운 불 앞에서 땀을 철철 흘리며 쇠를 다듬고 마시는 시원한 물 한잔에 행복해하고 있었습니다. 신하가 기뻐하며 속옷을 한 벌 달라고 하자 그 대장장이는 속옷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행복은 바깥으로 드러난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질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 외형적인 조건을 가지고 괴롭다고 아우성을 칠 거예요. 어떻게 아우성을 치는지 들어봅시다.”(모두 웃음)

총 9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 가슴에 맺힌 한을 풀고 싶다는 질문자와 대화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가슴에 한이 하도 많이 쌓여서 스님께 좀 다 풀고 이 세상을 떠나고 싶습니다.”

“아이고, 30분씩 얘기하려고요.” (모두 웃음)

“아유, 잠깐만 들어주세요.”

“무슨 한이 그렇게 쌓였어요?”

“아버지는 돌아다니면서 소를 사고파는 소 장수였는데, 우리 엄마와 눈이 맞아서 절 낳았나 봐요. 그러다 제가 3살 때 우리 엄마가 죽고 나니까 자기 본처한테 저를 데려다 놨어요.”

“그러니까 아내가 있는 아버지가 소 장사 때문에 돌아다니다가 질문자 어머니를 만나서 질문자를 낳았다는 거죠? 그리고 질문자가 세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질문자를 아버지의 본부인한테 보냈다고요?”

“네.”

“자, 그래서요?”

“그 집에 가보니까 애들이 여섯 명이예요. 제가 여섯 살 때 우물가에서 감자를 까는데 여섯 명이서 지나가면서 저를 한 놈이 툭 차고, 두 놈이 툭 차고 했어요. 제가 하도 힘들어하니까 아버지가 저를 교회에 데려다 놓더라고요. 교회에서 애를 봐주니까요. 그러다가 또 무당집에 갔다가 다른 집에 갔다가 그렇게 이 집 저 집에서 살았어요. 제가 열일곱 살 때까지 열네 집을 돌아다니면서 컸어요.”

“아이고, 열네 집이나 구경을 하셨네요.” (모두 웃음)

“네. 열네 집마다 성격이 다 다르더라고요. 그렇게 살다가 너무 힘이 들어서 본가를 한번 찾아가 봤어요. 본가에는 아흔일곱 살 먹은 머리 하얀 할머니가 뒷방에서 앓고 있고, 둘째 오빠는 그 할머니 때문에 장가도 못 가고 그냥 들일을 하면서 할머니 밥을 해주고 있더라고요. 제가 그걸 보고 그냥 나올 수가 없어서 그 할머니 밥해주고 둘째 오빠, 셋째 오빠까지 장가를 다 보냈어요.

그러고 나니 스무 살이 돼서 저도 시집을 갔는데, 어릴 때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면서 실컷 두드려 맞은 것도 부족했는지 애들 아빠가 저를 그렇게 두들겨 패는 거예요. 무식하다고 두드려 패고, 뭐 못 해왔다고 두드려 패고, 패고 패다가 결국은 마흔일곱 살에 그냥 죽더라고요.”

“팬 남편이 죽었다는 거죠?” (모두 웃음)

“네. (모두 웃음과 박수)”

“세긴 세네요.”

“제가 아직 기가 센 것 같아요. 스님께 이 한풀이를 하면 빨리 죽을까 싶어서, 딸이 가자고 할 때 얼른 따라왔어요. 남편이 애들도 팼어요. 딸 둘이 모두 저처럼 스무 살에 똑같이 시집을 갔는데, 얘들도 결혼생활에서 힘든 점이 많은가 봐요.”

“그래서 뭐가 괴로워요?”

“화목해지고 싶어요. 저는 상을 차리면 반찬 열다섯 가지를 기본으로 해요. 큰사위가 온다고 해서 헐레벌떡 상을 차려놓으면 큰딸이 와서 들여다보고는 ‘흥, 동생이 먼저 왔다 갔구먼’이라고 해요. 그래서 ‘아니다, 이쪽에 상 또 차려놨다. 이쪽에서 먹어라’ 하면 또 작은딸이 보고 ‘흥, 언니 먼저 왔다 갔군’ 해요. 제 나름대로 큰딸에게 잘해줘도 삐지고, 작은딸에게 잘해줘도 삐지고, 딸들이 그러면 아들은 저더러 ‘누나네 집에 가서 살아라’라고 해요. 저만 중간 역할을 하는 게 너무 힘이 들어요.”

“그럴 때는 아무 역할도 안 하면 돼요. (모두 웃음) 자식들이 다 스무 살 넘었죠?”

“네. 그러다가 그럭저럭 영감탱이를 하나 만났거든요. (모두 큰 웃음) 우리 아들내미 열 살 때 만난 영감탱이인데 곰 같아서 그냥 이래도 참고 저래도 참아요. 그렇게 참으면서 그래도 아들내미 뒷바라지를 다 해주고 아들은 이제 군대를 갔어요. 영감탱이가 지금 대장암 수술을 받아서 ‘내가 내 자식도 없는데 이 나이까지 너 먹여 살리느라고 대장암까지 걸렸다’ 이러고 우울증에 빠져 있어요. 그래서 영감 비위 맞추기도 힘들고, 딸들 비위 맞추기도 힘들어요. 두서없이 죄송해요.”

“괜찮아요, 두서가 있었어요. (모두 웃음) 어릴 때 어머니를 잃고 지금까지 온갖 인생 역정을 겪으면서 여기까지 살아오셨는데 아주 장하십니다. 격려 박수 한 번 부탁드립니다. (모두 박수)

짧게 얘기할게요. 절해도 괜찮아요, 무릎이 아파서 못해요?”

“제가 너무 힘들어서 가려고 보따리를 싼 적이 있어요. 계집애 둘을 장롱에다가 넣어놓고 ‘얘들아, 잘 있어라’ 그러고 가려고 뒤돌아서니까 못 가겠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무릎이 괜찮냐고 묻는 거잖아요.” (모두 웃음)

“아니, 무릎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제가 이렇게 서론을 꺼내는 거예요. (모두 웃음) 어떻게 됐냐 하면요, 올케 언니 가요...”

“지금 무릎이 괜찮아요, 상했어요?” (모두 웃음)

“반은 상한 것 같아요. 아파요.”

“지금 절하기 싫다 이거죠?” (모두 웃음)

“아니, 그게 아니고요. 올케 언니가 애들 버리고 가느니...” (모두 웃음)

“그러니까 천천히 절은 할 수 있겠어요?”

“네.” (모두 웃음)

“알았어요. 그러면 내일 아침부터 일어나서 절을 하면서 이렇게 기도하세요. 따라 해 보세요.”

‘부처님, 감사합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래도 안 죽고 살았습니다.’

‘그래도 안 죽고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절하면 돼요. 그러면 싹 다 풀려요.”

“네, 감사합니다.” (모두 웃음과 박수)

스님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질문자는 더욱 찰지게 따라 했습니다. 청중은 웃으며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한이 가득 차 있으면 감사하는 마음이 안 들잖아요. 어머니가 낳아주셔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먼저 죽었다고 원망하고, 아버지가 큰집에 보내서 그래도 돌봐줬지만 구박받았다고 원망해요.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라면 그냥 버렸을 거예요. 그래도 큰집에 데려다줬다는 건 아버지가 아이를 그래도 아끼니까 안 버리고 큰집에 데려다 놓았다는 뜻이거든요. 그래서 고마워할 일이에요. 큰집도 그래요. 일을 막 시켰다고는 하지만 밖에서 낳은 아이를 데려왔는데 내치지 않고 거둬줬으니 질문자가 살았잖아요. 그것도 감사한 일이에요. 또 세상을 살면서 한 집에서만 사는 게 꼭 좋다고는 할 수 없잖아요. 열일곱 살 때까지 열네 집을 돌면서 살았다는 건 1년에 한 집 꼴로 돌아가면서 살았다는 거죠. 그때는 힘들지만, 지나 놓고 보면 열네 집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다 눈으로 봤기 때문에 인간들이 어떻게 살고 인간들 성질이 어떤지를 어릴 때부터 벌써 짐작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러니 질문자의 생존력이 아주 강해진 거예요.

이런 식으로 ‘어려웠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래도 내가 안 죽고 여기까지 살았다. 참 고마운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부잣집에 태어나 나보다 먼저 죽은 인간도 있고, 돈이 많은데 나보다 먼저 죽은 인간도 있고, 남편 잘 만나서 호의호식했는데 나보다 먼저 죽은 인간들도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나는 다행히 그래도 안 죽고 살았잖아요. 그래서 어머니에게도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고, 아버지에게도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세요. 이렇게 질문자가 감사기도를 하면 한이 풀립니다.

애들에게도 ‘얘는 어쩌고 쟤는 어쩌고’ 하지 말고 ‘아이고, 그래도 너희가 잘 살든 못 살든 결혼해서 잘 살아주니 고맙다. 군대라도 가주니 고맙다’라고 하세요. 자식들이 뭐라고 해도 이렇게 늘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집에 온다고 귀찮게 생각하지 말고요. 그것도 집에 찾아오니 그런 일이 벌어지지, 요즘은 애들이 집에 아예 안 찾아오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귀찮게 한다’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아이고, 그래도 엄마라고 찾아와 주니 고맙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이렇게 질문자가 기본적으로 ‘아이고,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래도 안 죽고 살았구나. 부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살아오면서 쌓인 이 모든 한이 풀립니다. 한을 쓰레기에 비유한다면 쓰레기가 싹 발효돼서 거름이 돼버려요. 이게 바로 기적이 일어나는 거예요. 쓰레기가 전부 거름이 돼서 질문자가 인생을 가장 잘 사는 사람이 돼버립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기적이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모두 박수)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질문자뿐만 아니라 듣는 사람도 마음에 있는 쓰레기가 싹 거름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온갖 어려움을 겪은 질문자와 스님에게 큰 선물을 받은 청중은 한참 동안 큰 박수를 쳤습니다.

두 가지 질문만 짧게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 청년은 여자 친구의 부모님이 자신의 부모님의 직업을 멸시해서 상처를 받았다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여자 친구의 부모님이 자신의 부모님 직업에 대해서 멸시를 해서 상처를 입었고, 그 일로 여자 친구와 헤어졌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고물상을 하고, 어머니는 백화점에서 샵매니저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질문자가 상처를 받은 원인이 무엇인지 직시하도록 했습니다.

“물론 여자 친구의 엄마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예의에 맞지 않아요. 그러나 그분의 가치관으로는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상처를 입은 이유는 질문자의 마음속에도 부모님의 직업에 대해서 하찮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에요. 버려진 물건을 주워서 재활용하는 것은 환경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지구적인 차원에서 보면 새 물건을 만드는 것보다 고물상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소중합니다. 꼭 환경운동가라는 이름을 갖고 이 일을 해야 환경운동이 아니에요. 버려진 물건을 재활용하는 사람들이 바로 지구를 살리는 바로 환경운동가입니다. 그런 말을 할 때 상처를 입을 필요가 없어요.

‘네, 저희 아버지는 버리는 물건을 재활용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희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희 어머니는 정당하게 일해서 저를 대학까지 보내주고 키워주셨습니다.’

질문자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아무런 상처가 안 됩니다. 오히려 ‘너희 아버지는 도지사라며?’, ‘너희 아버지가 회사 사장이라며?’ 이런 얘기가 상처가 되어야죠. 누구나 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데, 그런 말이 상처가 되는 것은 내 마음속에 이미 그런 직업에 대한 열등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늘부터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세요.”

청년은 환하게 밝아진 얼굴로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어진 질문자는 아이와 남편 사이에서 끼여 있어서 힘들다는 중년 여성이었습니다. 안경을 끼게 해야 할지, 라식 수술을 하게 해야 할지 남편과 갈등 중이라고 하며 힘들어했습니다.

“아이는 안경을 안 끼고 라식 수술을 해달라고 하고, 남편은 눈 수술을 잘못해서 혹시 다칠까 싶어서 절대로 라식 수술은 안 된다고 합니다. 아이 말대로 라식 수술을 해주고 싶기는 한데, 중간에 끼인 제가 너무 힘듭니다. 그런 중에 스님 법문을 듣다 보니 앞에서 ‘예’하고 뒤에서는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셔서요. 저도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스님은 무엇이 아이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인지 말했습니다.

“법문을 자기 식대로 듣네요. (모두 웃음) 그것도 방법이긴 합니다. 그런데 아이 교육이 중요할까요? 눈 수술이 중요할까요? 남편이 안 된다고 하는데 질문자가 ‘예’ 해놓고는 뒤에서 자기 마음대로 눈 수술을 해버리면, 나중에 아이도 그걸 배웁니다. 엄마가 뭐라 그러면 ‘예’ 해놓고는 뒤에 가서 자기 마음대로 해버릴 겁니다. 아이는 어른이 하는 것을 그대로 본받는 존재입니다. 그 과보를 마땅히 받을 각오를 했어요?

여러분은 안경 이야기가 나오면 안경이 모든 것의 판단 기준이 됩니다. 안경을 소재로 해서 두 부부가 의견 차이가 났을 때는 이것을 어떻게 조율하느냐를 보여주는 것이 아이에게 가장 중요합니다. 안경을 해주느냐 수술을 해주느냐, 이게 중요한 게 아니네요. 정말로 아이에게 수술을 해줘야겠다고 생각한다면, 동의 안 해주는 남편을 왜 나무랍니까. 아무런 노력도 안 하고 공짜로 먹으려는 것 아니에요? 오늘부터 남편 어깨도 주물러주고, 밥도 맛있게 해 주고, 최소한 일 년은 정성껏 노력을 해야죠. 그렇게 하면 일 년 뒤 남편이 감격을 해서 ‘너 소원이 뭐야?’라고 할 겁니다. 그때 ‘아이 눈 수술이요’라고 말하면 돼요. (모두 웃음)

아이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무언가 노력을 하도록 해야죠. 그게 다 아이에게 교육이 되는 거거든요. 자기가 노력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가 노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도 아니고, 남편만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거예요.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노력을 하면 되지, 괴로워할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관점을 전화시켜 주는 이야기에 청중석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아는 사람이 제가 바람을 폈다고 헛소문을 퍼뜨려서 오해를 받고 있어요. 어떻게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 지적장애 아들이 분노조절 장애와 폭력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제가 어떻게 아들을 돌봐야 할까요?
  • 남편과 이혼하고 딸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어요. 아이가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제가 먼저 행복해야 할 텐데,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나요?
  • 의지했던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외로워서 다니게 된 산악회에서 안 좋은 일을 겪은 후 우울증이 더 심해졌어요.
  • 27살 직장인입니다. 저는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막상 시작을 하면 금세 지루해져요.
  • 학창 시절에 버스에서 가방에 깔린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비슷한 상황이 되면 불안해져요.

마지막으로 질문자들의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가슴에 한이 맺혔다는 질문자는 완전 관점이 바뀌어 “죽은 남편도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감사합니다.”라고 밝게 소감을 말해주었습니다. 스님은 짧게 수행에 대해 덧붙인 뒤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치료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누구나 자기를 치료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부처란 고상한 어떤 존재가 아니라 괴로움이 없는 자가 바로 부처예요.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강연을 듣는 중간중간 부처님이 몇 분 나타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일은 청주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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