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광원과 스님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16년 전입니다. 2003년 태풍 매미로 남해안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을 때 거제도에 있는 애광원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때, JTS가 애광원의 피해복구를 도왔습니다. 피해 복구가 끝나고 스님이 김임순 원장님에게 앞으로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냐고 물으니 원장님은 "장애우들은 바깥나들이를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나들이를 도와주셨으면 좋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이후 정토회에서 매년 봄과 가을 애광원 식구들과 함께 나들이를 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애광원 민들레집 식구들과 경주로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이른 아침, 스님은 애광원 원장님께 드리려고 밭에서 고수를 수확하여 다듬고 씻고 포장한 뒤 경주로 출발했습니다.

화창한 봄날, 푸른 대릉원에서 애광원 식구들과 나들이를 할 계획을 세웠지만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쉽지만 경주문화엑스포와 경주박물관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엑스포 경주타워 앞에 도착하니 마산 정토회 봉사자 40여 명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 비가 오늘만 지나고 내렸으면 참 좋았을 텐데요.”

행사를 준비한 봉사자가 무척 아쉬워하자 스님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비가 오면 밭에는 좋아요. 농부들이 물 주려면 얼마나 고생인데요. 노는데 비가 좀 오면 어때요.”

비가 와서 애광원 식구들이 탄 버스가 조금 늦게 도착했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바쁠 봉사자들과 미리 기념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스님이 도착했다고 하자 세계경주문화엑스포 사무총장 류희림 님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스님과 사무총장님은 경주타워 전망대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무총장님은 미리 알았으면 애광원 식구들을 위해 특별 공연을 준비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습니다. 스님이 비가 와서 갑자기 오게 되었다며 새터민, 이주노동자와 함께 하는 나들이도 매년 하고 있다고 하자 사무총장님은 엑스포에서 그분들을 모시고 싶다며 오실 때 미리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애광원 식구들을 태운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중증 장애가 있는 24명의 원생들과 원장님, 13명의 선생님이 함께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원생 한 명마다 정토회 봉사자 1~2명이 하루를 책임지는 짝지로 배정되어 반갑게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다시 1층으로 내려가 애광원 식구들을 맞이 했습니다.

“안녕!”

스님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눈을 맞췄지만, 눈을 맞추지 못하는 원생들이 많았습니다. 버스에서 모든 식구들이 내리고 다 함께 전망대로 올라왔습니다.

경주타워는 신라시대에 지어졌던 크고 아름다운 황룡사 9층 목탑을 음각으로 디자인한 건물입니다. 높이도 황룡사 목탑이 약 80m였던 것을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전망대에서는 경주 보문단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습니다.

“자 자리 정돈 먼저 해주세요. 앞자리는 이쪽을 보고 앉아주시고 가족들이 안 앉겠다고 하면 이쪽을 보고 같이 서 주세요.”

모두 자리를 잡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습니다.

“먼길 오신다고 수고하셨습니다.(모두 박수) 경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야외에서 나들이를 하려고 했는데 부슬비가 살살 와서 경주 엑스포로 여러분을 모셨습니다. 이 곳에서 보는 경치도 좋지요?”

“네!”

“비가 덜 오면 밖에 나가서 놀아도 되고 비가 계속 오면 실내에서 놀아도 됩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전망대고요. 한 층 내려가면 전시실이 있는데 구경할 거리가 있어요. 여기 한 번 둘러보고 전시실까지 보고 가겠습니다.”

“네.”

“원장님 늘 건강하시고, 이렇게 다시 뵙게 돼서 정말 반갑습니다. 함께 오신 선생님들도 환영합니다. 우리는 하루하고 말지만 선생님들은 1년 365일 동안 고생하시잖아요. 선생님들에게 격려 박수 부탁드립니다. 오늘 봉사하는 여러분을 위해서도 박수 부탁드립니다. 애정을 가지고 봉사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를 치며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원생들도 웃거나 자신만의 다양한 소리를 냈습니다. 이어서 애광원을 설립하신 김임순 원장님도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법륜스님과 정토회 여러분, 해마다 봄가을로 우리 아이들을 초청해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좋은 일 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원장님은 95세가 넘으신 나이에도 휠체어를 타고 나들이에 함께 하셨습니다. 원장님이 큰 목소리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자 봉사자들은 밝게 웃으며 박수를 쳤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도 촬영했습니다. 원생들은 모두 각기 다른 곳을 보고 있었지만 모두들 오랜만의 나들이에 즐거워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전망대에는 드라마 선덕여왕에 사용했던 신라인의 옷도 전시되어 있고, 얼굴을 넣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었습니다. 원생들이 얼굴을 쏙 집어넣어야 할 자리에 얼굴을 넣지 않고 밖에서 사진을 찍고 있자 스님이 사진 찍는 법을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자, 엘리베이터는 이쪽이에요. 계단으로 갈 수 있는 사람은 계단으로 걸어가 보세요. 천천히 오세요.”

전시실로 내려오니 신라문화역사관과 석굴암 모형이 있었습니다. 모두 수신기를 끼고 스님의 설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원생들뿐 아니라 함께 온 선생님, 봉사자를 위해서도 설명을 자세하게 덧붙여 주었습니다.

바깥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원생들에게 경주타워 옆 쥬라기로드도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우산을 쓰고 짝지와 함께 손을 잡고 조심조심 걸어 쥬라기로드로 이동했습니다. 짧은 거리도 움직이기가 쉽지 않지만, 우산 아래 서로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쥬라기로드는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의 4천5백여 점에 이르는 화석들이 전시된 동양 최대 규모의 화석박물관입니다. 1억 년 전 공룡의 알, 골격이 완벽히 보존된 5천만 년 전 거북이 등도 전시돼 있었습니다.

“학생들을 데리고 왔으면 최소 2시간은 설명을 해줬을 텐데...(스님 웃음) 내가 설명을 많이 하는 것보다 식구들이 이런 걸 보는 걸 더 좋아할 것 같아요.”

자연과학에도 조예가 깊은 스님은 오늘은 핵심만 간단하게 설명을 하고 함께 화석을 구경했습니다. 원생들은 손으로 화석을 가리키기도 하고, 박수를 치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박물관을 둘러보았습니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은 떡갈비 정식을 먹었습니다. 봉사자들은 떡갈비를 잘게 썰어서 원생들에게 먹여주었습니다. 밥 한 술 잘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애광원 선생님들은 오늘 하루 편하게 밥을 먹을 만도 한데, 자기 밥보다 원생들이 잘 먹는지 살펴보고 도와주느라 바빴습니다. 밥을 다 먹고 나서는 다 함께 화장실도 다녀왔습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경주박물관으로 이동했습니다. 비는 여전히 그칠 줄 몰랐습니다. 스님은 먼저 도착하여 신라미술관을 한번 둘러보고 무엇을 설명해줄지 살펴보았습니다.

“잘들려요?”

“네”

“우리가 지금 도착한 곳은 경주박물관입니다. 경주박물관은 경주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이 잘 보관되어 있어요. 신라시대를 중심으로 그 이전, 그 이후 시대 유물까지 다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제일 먼저 온 곳은 신라미술관이에요. 저도 미술관이 따로 독립되고 처음 와 봤어요. 슬쩍 돌아보니까 1층에는 주로 불상, 2층에는 주로 장식품이 있어요. 앞에 보세요. 이 불상들은 석굴암에 있는 불상들을 그대로 복제를 해서 만든 모형이에요. 원본에 못지않는 모조품이라고 써져있어요. 자, 그럼 이쪽으로 한번 가봅시다.”

스님은 휠체어를 탄 김임순 원장님 곁에서 같이 걸으면서 미술관의 불상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습니다.

“자, 여기 부처님 보세요. 남산 장창골 미륵삼존불이에요. 불국사 석굴암에는 주로 왕족들이 찾아갔다면 남산에는 서민들이 주로 찾아갔어요. 그래서 이렇게 친근한 모습을 하고 계신 거예요. 우리 애광원 식구들처럼 참 귀엽죠?”

스님도 웃고, 애광원 식구들도 부처님처럼 미소를 지었습니다.

“손에 이렇게 그릇을 쥐고 있으면 약사여래불이에요. 이 박물관에서 제일 유명한 것은 에밀레종이고, 그다음으로 유명한 것이 이 약사여래불이에요. 이 부처님은 백률사에 있던 부처님입니다.

신라는 불교를 철저하게 금지한 나라였어요. 그런데 불교국가였던 가야와 통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가야는 신라에게 통일을 하고 싶으면 불교를 인정하고 가야인의 신분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했어요. 그런데 불교를 허용하려고 하니까 신라의 보수세력이 강력하게 반대해서 갈등이 아주 심했어요. 이렇게 이 조건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는데 이차돈 등 젊은 사람들이 불교를 공인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허락도 없이 절을 지어버렸어요. 요즘으로 치면 국가보안법을 어긴 거죠. 결국 보수세력이 반발해서 이차돈을 처형했어요. 이차돈이 죽기 전에 ‘내가 믿음이 신실하기 때문에 내가 죽으면 반드시 이적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 불교를 공인하라.’라고 했어요. 과연 이차돈의 목을 치니까 흰 피가 나오고 머리가 하늘로 올라가서 떨어졌어요. 머리가 떨어진 곳에 지은 절이 백률사예요.

그래서 신라는 불교를 공인하고, 가야와 평화적으로 통일할 수 있었어요. 앞으로 남북한이 통일할 때도 이런 문제가 생기겠죠. 우리도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해요.”

계속 걸으니 피곤했는지, 중간중간에 앉아서 쉬는 원생들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피곤한 사람은 앉아서 쉬도록 하고, 2층 황룡사실과 국은기념실도 함께 둘러보았습니다.

다음은 경주 안압지에서 발견된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는 월지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은 월지관 계단에 원생들이 앉아서 쉴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점심은 맛있었어요?”

“네.”

점심이 마음에 들었는지 원생들이 활짝 웃었습니다.

“비가 안 왔으면 밖에서 놀텐데, 비가 와서 안에서 놀 수밖에 없어요. 지금 우리가 온 곳은 안압지에서 나온 유물들을 모아놨어요.

예전에는 신라의 왕궁터를 반달처럼 생겼다고 해서 반월성이라고 하고, 그 옆에 있는 아름다운 연못을 오리가 많이 온다고 해서 안압지라고 했어요. 그런데 자꾸 발굴을 해보니 원래 이름은 반월성이 아니라 달같이 생겼다고 해서 월성이고 안압지가 아니라 월지였어요. 월지는 왕궁에 있던 정원이에요. 연못이 있고 주위에 노는 곳이 있었어요. 그리고 동궁터이기도 했어요. 동궁이란 다음에 임금이 될 태자가 있는 곳이에요. 외국에서 사신이 오면 월지에서 접대를 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월지에서 연회를 베풀고 고려의 왕건에게 나라를 바쳤다고 해요.

이 월지관에 있던 유물은 다 연못 바닥에서 나온 거예요. 진흙 속에 묻혀있었기 때문에 썩지 않고 잘 보존이 되었던 거예요.”

자리에 앉아 쉬면서 월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월지관을 한 바퀴 돌면서 유물들을 살펴봤습니다. 원생들은 유물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스님을 따라 월지관을 한 바퀴 돌아 나왔습니다.

다음으로 신라역사관도 둘러보았습니다. 신라역사관은 기원전 57년에서 기원후 935년까지 한반도 동남쪽에 있었던 천년왕국 신라를 만날 수 있는 전시관입니다. 신라의 건국과 번영과정이 네 부분으로 나누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1전시실부터 4전시실까지 돌며 신라의 역사를 쭉 설명해주었습니다. 벙긋벙긋 웃고 소리를 지르며 스님을 따르던 원생들은 비가 오는 날씨에 계속 걸어 다니고 계단도 여러 차례 오르내리다 보니 지쳤나 봅니다. 마땅히 쉴 공간이 없어 봉사자들은 박물관 한편에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깔고 원생들과 함께 앉았습니다.

비가 와서 급하게 나들이 장소를 변경하는 바람에 원생들이 다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을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박물관에 있는 강당도 월요일이라 문을 열어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원생들이 앉아서 쉬는 사이 스님은 장소를 구하기 위해 여러 곳에 연락을 했습니다. 행사를 준비한 봉사자는 박물관 관계자를 찾아가 사정을 말하며 부탁을 했습니다.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박물관에서는 강당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원생들은 폭신한 의자에 짝지와 함께 앉았습니다.

“자, 노래부를 수 있는 사람 나와서 노래해보세요.”

노래를 좋아하는 애광원 식구들에게 스님은 마이크를 넘겼습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지만 나나나 나나나나”

가사가 어려운 곳은 봉사자들이 함께 가사를 채우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중증 장애가 있는 원생들이라 혼자 노래를 온전히 부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원생들은 기분이 좋았는지 계속 웃기도 하고 율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다 함께 부를 수 있는 동요를 불러주기도 하고, 옛 기억을 더듬어서 찬송가를 불러주기도 했습니다.

애광원 선생님도 나와서 평소에 부르던 동요와 찬송가를 불러주었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받고 있지요”

코끝이 찡했습니다. 노래가 바닥날 때쯤 스님은 이 시간을 마무리했습니다.

“오늘 즐거우셨나요?”

“네!”

“비가 안 왔으면 햇볕도 쬐고 바깥 잔디밭에서 놀았을 터라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요즘 봄철에 비가 와야 합니다. 그래야 농사를 지어요. (모두 웃음) 가물면 문제예요. ‘농부들이 일일이 물 뿌리려면 너무 힘든데 오늘 비가 와서 잘됐다. 노는 게 조금 불편하더라도 올 비는 와야 한다’ 이렇게 좋게 생각하시고요.

덕택에 계획에 없이 경주엑스포 구경도 잘하고 경주 박물관도 구경했습니다. 제가 경주 박물관을 와본 지 15년이 넘은 것 같아요. 오랜만에 와보니 전시관도 새로 많이 생겼네요. 덕택에 저도 오늘 구경 잘했습니다. (모두 박수) 자원봉사자들도 오늘 하루 잘 쉬었죠?”

“예!”

“예, 봉사라는 미명 하에 잘 먹고 잘 놀았습니다. (모두 웃음) 우리는 남을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라 남을 위하는 게 곧 나를 위하는 길이라는 걸 알잖아요. 이런 관점에서 봉사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김임순 원장님은 올해 95세시랍니다. (모두 놀람) 아직도 건강하신데, 100세 넘어까지 건강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또 애광원 운영하신 지 아마 70년이 넘은 것 같아요. 20대 중반에 시작하셨으면 70년이 아마 넘었을 것 같네요. 애광원 70주년 기념식 했습니까? 아직 안 했어요?”

“이제 67주년입니다.”

“우리가 70주년 기념식에도 다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내년에는 또 세계 장애인 대회를 애광원에서 한대요. (모두 감탄) 경남지부에서 장애인 대회 때도 봉사 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예!”

“오늘 박물관 문 닫는 날인데 장소를 빌려주셔서 감사하네요. 역시 사정이 제일 큰 무기입니다. 가서 눈물을 글썽글썽하면서 사정을 했더니 잠긴 문도 열어줬어요. (모두 웃음) 제가 높은 사람한테 전화해서 부탁을 한 건 안 통하더니 밑에 찾아가서 사정하니까 열어주네요. 감사합니다.” (모두 웃음과 박수)

김임순 원장님도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원장님은 정토회의 매년 계속되어 온 지원활동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16년 전 법륜스님과 어떻게 인연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들려주었습니다.

“하루 종일 비가 촉촉이 오네요. 법륜스님을 언제 알았냐면, 태풍 매미가 지나가고 우리 애광원에 물이 끊겼던 때였어요. 마실 물이 하나도 없었어요. 수도 파이프고 뭐고 다 망가졌거든요. 그래서 그냥 막 언덕에서 내려오는 물을 마시고 우리 아이들이 설사를 해서 말이 아니었어요. 그때 법륜스님은 국제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서울에서 무슨 회의에 참석하셨는데, 우리 애광원 이사님 가운데 목사님 한 분이 그 회의에 참석했어요. 그 회의에서 거제도에 가면 지적 장애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 있는데 지금 물을 잘못 먹고 설사를 해서 야단이 났다고 말씀하셨나 봐요. 그때 우린 물이 없어서 그냥 마당이며 언덕에 내려오는 물을 아이들이 퍼마셨어요.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다음 날 커다란 8톤짜리 트럭이 한 대 오는 거예요. (모두 감탄) 8톤짜리 트럭에 무슨 생수를 가득 싣고 왔기에 눈들이 휘둥그레져서 보는데, 아이고, 웬 장삼을 입은 스님이 펄쩍 뛰어내리는 거예요. (모두 웃음)

그래서 제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여기는 예수 믿는 데지, 불교 신자들이 사는 데가 아니에요’ (모두 웃음) 이러면서 스님께 오지 말라고 하니까 스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우리는 불교 신자고 예수 믿는 사람이고 가리지 않습니다. 어려울 때에 서로 돕고 살아야 하잖아요.’

애광원 소식지 2003년 9월호에 실린 태풍 매미 피해 긴급구호 소식
▲ 애광원 소식지 2003년 9월호에 실린 태풍 매미 피해 긴급구호 소식

그렇게 해서 우리가 법륜스님을 만났어요. 알고 보니까 어떻게 또 인연이 있어서 아시아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막사이사이상도 나보다 2년 후에 받으셨대요. (모두 박수)

그렇게 해서 우리가 이렇게 오늘날까지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나들이를 합니다. 이 일을 법륜스님 혼자 어찌하시겠어요? (모두 웃음) 정토회 회원 여러분들이 협력해주셔서 늘 애광원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우리 지적 장애인들을 위로하고 콧구멍에 바람을 쐬어줄 수 있는 거예요.”

“봄바람이죠.” (모두 웃음)

“봄에는 봄바람을 넣고 가을에는 가을바람을 넣어줘서 아이들이 돌아가면 참 기분 좋아하고 그때그때마다 잘 살고 있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정토회 회원 여러분들, 저희를 잊지 마시고 계속해서 우리 애광원 지적 장애인들을 기억해주세요. 저는 지금 아흔다섯입니다. 그래서 언제 하나님이 부르실지 모르지만, 제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먼저 가더라도 법륜스님 하고 정토회 여러분께서 애광원을 잘 기억해주세요. 애광원만이 아닙니다.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기억하고 도와주세요. 오늘도 정말 재미있는 시간 감사합니다.” (모두 환호와 박수)

16년 전이 생생하게 다가오며 뭉클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애광원과 정토회가 서로 감사의 마음을 담은 선물을 증정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평소에 늘 애써주시는 애광원 선생님들에게 ‘스님 왜 통일을 해야 하나요?’ 책에 사인을 해서 선물을 했습니다. 애광원에서는 직접 키운 농산물을 선물해주었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울컥하는 봉사자도 보였습니다. 애틋한 마음에 “내년에도 꼭 봉사 올 테니 그때 봐요” 하는 얘기들을 서로 주고받았습니다. 말 못 하는 원생들의 눈빛만 메아리처럼 돌아왔습니다.

“이제 눈을 잘 맞추네.”

강당을 나서는 원생들에게 스님은 눈을 맞추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새 정이 들었나 봅니다. 스님은 봉사자들에게도 “비 오는데 이만하면 잘했다”고 격려를 했습니다. 애광원 식구들과 정토회 봉사자들은 함께 저녁을 먹고, 먼 길을 가야 하는 스님은 먼저 서울로 떠났습니다.

하루 종일 비가 와도 참 좋은 봄소풍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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