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경주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 올해 들어 13번째로 열리는 행복한 대화 강연입니다.

어젯밤 제천에서 강연을 마친 후 봉화 정토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일어나자마자 기도와 아침식사를 한 후 곧바로 두릅을 따러 수련원 뒷산에 올랐습니다.

두릅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해마다 이곳에서 두릅을 땄었는데, 오늘은 두릅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직 새순이 올라오지 않아서 그런가 싶었지만, 알고 보니 누군가가 모조리 다 따가고 없는 것이었습니다. 전문적으로 두릅을 따는 사람들인지 키가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있는 새순도 모조리 따가고 없었습니다. 함께 온 행자님이 “우리 수련원 것인데...” 하며 안타까워하자 스님이 웃으며 한 마디 합니다.

"옛날부터 산에 자연적으로 난 건 먼저 본 사람이 임자야. 누군지 몰라도 오지게 잘 따갔네.”

다행히 다소 높은 곳에 위치한 나무에 달린 새순은 아직 따가지 않아서 조금이나마 수확을 해갈 수 있었습니다.

군데군데 엄나무순도 보여서 몇 개를 땄습니다. 엄나무는 가시가 아주 사납게 쭈삣쭈삣 돋아나 있어서 두꺼운 장갑을 끼고 아주 조심스럽게 만졌습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뒷산을 내려왔습니다. 산속에는 곳곳에 연달래가 피어 있어 눈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아직 꽃은 피지 않고 꽃망울이 달린 것도 많았습니다.

연달래 구경을 마친 후 봉화 수련원을 출발해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 오후에는 가벼운 농사일을 했습니다.

“식사를 맛있게 했으니 밥값을 해야지.”

모두 다 장갑을 끼고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씨가 열린 잔디를 낫으로 베거나 , 잡초를 호미로 뽑았습니다. 스님은 비닐하우스에 가서 상추가 자라고 있는 밭 주위를 정비했습니다. 상추가 아주 크게 자랐지만 뜯지는 않았습니다.

“이 상추는 내일 손님이 오면 그때 뜯어야지. 오늘은 물을 좀 주자.”

땀이 제법 날 무렵 일을 마쳤습니다. 잠시 휴식을 한 후 저녁 강연이 열리는 경주로 향했습니다. 비가 내려 날이 흐렸지만, 경주로 가는 길은 온통 초록빛으로 싱그러웠습니다. 저녁은 남산 답사를 온 법사님들과 스님의 오랜 친구와 함께 잔치국수를 먹었습니다.

강연이 열리는 동국대학교 100주년 기념관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5백여 석이 금방 다 차고, 2백여 명은 계단 한쪽과 제일 뒤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스님이 등장하자 7백여 명이 일제히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안녕하세요. 열흘 전에 경주 서라벌회관에서 통일을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 그때 개인적인 문제는 오늘 강연에서 물어보라고 했어요. 사람들이 저만 보면 물어보려고 하거든요. 화장실에서 볼 일 보는데 옆에 서서 ‘좀 물어봐도 돼요?’라고 물어보고, 휴게소에서 밥 먹고 있는데 ‘뭐 좀 물어봐도 돼요?’라고 해요.(모두 웃음) 저도 근무시간이 있습니다. 즉문즉설 시간에만 질문을 받습니다. 그날 질문 못하신 분들은 오늘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질문이 워낙 많아서 사담을 나누고 싶은데 그럴 형편이 안 되네요.”

미리 신청한 질문이 스무 개가 넘었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결혼하라는 말이 신경 쓰인다는 25살 청년이었습니다. 오늘은 이 질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25살 직장인입니다. 저는 결혼을 못할 것 같습니다. 저는 스님처럼 혼자 살아가게 될 것 같은데, 잘 살아가는 방법이나 마음가짐에 대한 말씀 듣고 싶습니다.”

“그런 거 없습니다. 그냥 혼자 살면 돼요.”(모두 웃음)

“왜 사람들은 결혼을 못해서 난리일까요?”

“그 사람들한테 물어봐야죠.(모두 웃음) 결혼해서 같이 살려면 서로 맞춰야 하기 때문에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여러 방법이 필요한데, 혼자 살면 마음을 특별히 가질 게 따로 없어요. 그냥 밥 먹고 살면 돼요. 쓸데없는 고민이에요. ‘아, 쓸데없구나’ 이러고 앉으시면 돼요.”(모두 웃음)

“그러면 왜 사람들은 결혼을 못해서 난리입니까?”

“그 사람들한테 물어봐야지 저한테 물어보면 어떡해요. 저는 결혼을 못해서 난리인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여자가 달라붙어도 결혼을 절대 안 해요. 그런데 결혼을 못해서 안달이 나는 이유는 눈이 높아서 그렇습니다. 아무런 다른 이유가 없어요. 눈이 높아서 결혼을 못하는 거예요.”

“제 주변에도 40대, 50대인데 혼자 사는 분들이 있거든요.”

“눈이 높아서 그렇다니까요. 아무리 50대라고 해도 70대 할머니와 결혼하려고 한 번 해 봐요. 쉽게 할 수 있어요. 그렇게는 안 하겠다는 거잖아요. 그러니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그렇게 할 바에야 혼자 사는 게 낫겠다’ 이런 생각 때문에 결혼을 못하는 겁니다.”

“주변 선배님들이 결혼할 거면 빨리 하라고 자꾸 이야기를 해서요.”

“그냥 일상적인 얘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뭐든지 할 거면 빨리하라는 얘기를 합니다. 결혼뿐만 아니라, 취직도 할 거면 빨리 해라, 강연도 들으려면 빨리 가거라,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는 거 보니까 질문자는 결혼이 하고 싶나 봐요.(모두 웃음)

저한테는 아무리 그런 말을 해도 고민거리가 안 돼요. 주위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그런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리고, 질문까지 하는 것을 보니까, 질문자는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네요. 그러면 결혼하면 되는데 왜 못하느냐? 눈이 높아서 못하는 거예요.”

“저는 별로 결혼할 생각이 없는데요. 입사 동료들이나 또래 친구들이 다 결혼했는데도 저만 태연하게 아무 생각 없이 있으니까 주변에서 이상하게 보는 것 같더라고요.”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 안 해요. 질문자가 그냥 혼자 자기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자기 스스로 그런 자의식을 갖는 겁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중학교에 다닐 때 자취를 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가서 쌀과 김치를 가져왔습니다. 쌀자루에 김치 단지를 넣어서 안 흔들리도록 묶어서 버스를 탔는데, 사람이 많다 보니 김치 단지가 기울어져서 국물이 새 나왔어요. 김치 국물이 묻은 것을 어깨에 메고 버스에서 내려서 자취집까지 오면 하얀 여름 교복에 김치 국물이 벌겋게 묻습니다. 얼룩진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가면 여학생들이 저만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가만히 살펴보니까 아무도 나만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어요. 사람들은 지나가다가 옷이 벌거니까 ‘벌겋구나’ 하고 한 번만 보고 마는 것인데, 저 혼자 괜히 신경을 썼던 거예요. 이것을 ‘자의식’이라고 합니다. 다들 자기 살기 바빠서 아무도 신경 안 써요. 그냥 한 번 툭 던져보는 겁니다. ‘장가는 갔나?’ 이렇게요.

‘결혼했어요?’
‘안 했습니다’
‘몇 살이에요?’
‘스물다섯입니다.’
‘아이고, 좋은 나이네요. 장가가려면 일찍 가세요.’

이렇게 그냥 하는 소리입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박수)

“저는 이걸 중학교 때 딱 깨달았어요. 질문자는 스물다섯 살인데도 그걸 아직 못 깨달았네요.(웃음) ‘다른 사람이 자꾸 나를 쳐다본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정신 질환이에요. 이것이 조금 심해지면 과대망상이 됩니다.

누구나 다 이렇게 남을 의식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습니다. 신경 좀 써 달라고 광고판을 들고 있어도 신경 안 씁니다. 다 각자 자기 살기 바쁘기 때문이에요. 다만 지나가다가 눈에 보이니까 이렇게 쳐다는 봐요.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 쳐다보는 것이 아니에요. ‘옷에 뭐가 묻었네’ 이렇게 그냥 쳐다보는 거예요. 아무 관심이 없어요. 질문자는 약간 과대망상증이 있는 겁니다.

그 사람들은 그냥 하는 소리예요. 말해놓고도 무책임해요. ‘결혼 축하한다’ 하면서 결혼식 날 박수쳐 놓고는 이튿날부터 서로 싸움을 붙입니다. 집에 늦게 들어가야 할 일이 생기면, 가족이나 친구들이 ‘결혼했으니까 빨리 집에 가라’ 이렇게 얘기하지 않습니다. 남자 쪽 가족이나 친구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왜 그렇게 빨리 들어가냐. 신혼 초에 딱 기를 잡아야 돼. 지금 일찍 들어가면 평생 잡혀 사는 거야. 늦게 들어가야 돼.’

여자 쪽 가족이나 친구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늦게 들어오면 그걸 놔둬? 신혼 초에 꽉 잡아야지. 신혼 초에 그렇게 잡아도 나중에 말 안 들어.’

이렇게 이혼을 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면 이게 꼭 이혼을 시키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거예요? 아니에요. 그냥 해보는 소리예요. 아무 의미 없이 그냥 하는 소리예요.(모두 웃음)

친구들끼리 만나서 누구 뒷담화를 하는 것도 꼭 상대를 비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냥 입이 심심하니까 ‘걔는 어떻게 지내니? 걔는 아직 장가도 안 갔지’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진짜 장가를 가냐 안 가냐는 관심도 없어요. 관심 있으면 여자를 딱 데려와서 소개를 해 주겠죠. 그렇게는 안 하잖아요. 아무런 관심도 없어요.

아이들을 만나면 누구든지 ‘몇 살이야?’, ‘몇 학년이니?’ 이것부터 먼저 묻잖아요. 진짜로 아이들한테 관심이 있어서 이렇게 묻는 걸까요? 아이들을 만났는데 할 말이 없으니까 그냥 묻는 거예요. 아이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고장 난 녹음테이프 돌아가듯이 똑같은 질문을 물으니까 신경질을 내지만, 사람들은 할 말이 없으니까 그냥 던지는 말이에요. 그런 질문에는 그냥 아무 대답이나 하면 됩니다. ‘몇 살이니?’ 이렇게 물으면 아무 나이나 대답하면 됩니다.

아무 나이나 말하면 되는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서른다섯 살입니다. 그런데 이건 한국 나이고요. 만으로는 서른넷입니다’(모두 웃음) 이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어요. 그 사람이 서른다섯이든 마흔다섯이든 아무도 관심은 없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나이를 듣고 나면 그냥 덕담으로 ‘아이고, 나이보다 젊어 보이시네요’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꼭 젊어 보여서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할 말이 없어서 그러는 거예요.(모두 웃음) 그런 것을 신경 쓰는 것이 병이에요. 알았지요?”

“네.”

“스물다섯 살 밖에 안 됐는데 벌써 병이 나면 어떡해요. 오늘 질문 잘했어요. ‘장가를 가라’, ‘직장이 어떻다’ 앞으로 누가 뭐라 그러든지 다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들으세요.

요즘 젊은이들이 제일 스트레스받는 것이 결혼과 직장 문제입니다. 그런데 명절에 집에 가면 계속 이것만 물으니까, 명절에 잘 안 가려고 해요. 그래서 제가 힘들어하는 청년들한테 ‘신경 쓰지 마라. 엄마도 별 관심 없이 그냥 하는 소리다’ 이렇게 얘기해 줍니다. ‘우리 아들, 장가갈 거지?’ 이렇게 물으면, ‘네’ 이러면 돼요. ‘언제?’ 그러면 ‘곧 갈 거예요’ 이렇게 그냥 받아주면 돼요. 그런 말에 너무 신경 쓰는 것을 불교 용어로 ‘경계에 끄달린다’라고 표현합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소리에 휘둘려서 자기중심을 못 잡는 거예요. 남의 시선에 좌우되어서 사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뭐라 하든 ‘네. 그렇죠’ 이렇게 말하고 넘어가면 돼요.

똑같은 스님 얼굴을 두고 어떤 사람은 ‘스님, 요새 얼굴이 안 좋아 보이세요’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아이고, 얼굴이 좋습니다’ 그럽니다. 실제로는 제 건강에 아무 관심이 없어요. 유튜브에서 본 얼굴과 비교해서, 그것보다 살이 빠졌으면 안 좋다고 얘기하고, 살이 쪘으면 얼굴이 좋아졌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이 나쁜 의도로 하는 말도 아니고, 그냥 인사 치례로 하는 말입니다. 지나가는 새가 그냥 짹짹짹짹 하듯이 짹짹 대는 거예요. 그걸 문제 삼는 것은 아침에 새가 짹짹 댄다고 ‘쟤는 왜 아침 5시에 짹짹 대지?’ 이렇게 얘기하는 것과 똑같아요. 그러니 남이 하는 그런 말은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들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누구나 크고 작게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쓰고 삽니다. 첫 번째 대화부터 마음이 툭 시원해졌습니다. 이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둘째 아들이 좋은 대학교에 못 가서 자존감이 낮아요. 어떻게 하면 자존감을 높일 수 있을까요?
  • 막내가 8-9년을 집에서 놀고, 딸이 결혼했다가 건강이 안 좋아져서 집에 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식들이 건강하고 행복할까요? 굿을 해야 할까요?
  • 남편이 무조건 시어머니 편만 들어서 힘들어요.
  • 감정에 중간이 없어요. 너무 좋거나 너무 싫어해서 인간관계나 일에 영향을 받아요.
  •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요?
  • 남편이 폭행을 해도 자식을 위해 참고 살아왔습니다. 자식들 결혼을 다 시켰는데, 또 상을 뒤집어서 집을 나왔습니다.
  • 경찰공무원이 되려고 9년 공부를 했습니다. 경찰공무원에 또 도전해도 될까요?

아들딸 걱정에 굿이라도 해야 할지 물어 청중을 웃게 했던 질문자는 스님과 대화 후에 ‘아무 문제없다!’하고 크게 외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시어머니 편만 드는 남편, 폭행을 하는 남편에 대한 질문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그 괴로움에서 빠져나올 길 없이 답답했는데 스님과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웃음이 나오고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그 비법은 4차 산업혁명 이후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과도 통했습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법에 대해 물었던 청년과 대화 일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온다고 다들 말하지 않습니까. 어떤 누구도 어떤 직업이 유망하고 어떤 직업이 없어질 것인지 확답을 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저 같은 20대는 어떤 식으로 준비를 해야 그런 시대를 제대로 맞을 수 있을까요?”

스님이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라며 운을 띄우자 청중석에서 웃음이 터집니다. 이어서 스님은 대충 예측은 하지만 어떤 직업이 늘고 어떤 직업이 줄지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며 먼저 변화의 흐름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미래에 어떤 직업이 늘고 어떤 직업이 줄어들지 정확하게 진단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 면 지금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미래 사회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청소하자 그러면 청소할 수 있는 사람, 밥 하자 그러면 밥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농사가 필요한 세상이 되면 농사지으면 되고, 공장이 필요한 세상이 되면 공장을 지으면 되고, 지식이 필요한 세상이 되면 지식을 배우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은 경직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할 줄 아는데 저것은 할 줄 모르고, 이 생각은 할 줄 아는데 저 생각은 할 줄 모릅니다. 천당 가는 사람이 있으면 지옥 가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 하고, 모두 천당만 간다고 생각합니다. 사고가 유연하지 못합니다. 미래 사회에 제일 중요한 능력은 유연함입니다. 유연함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유로움’입니다. 불교 용어로 표현하면 ‘해탈’이에요. 어릴 때부터 이렇게 사고의 유연함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지금처럼 정답이 있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학교 교육은 앞으로 점점 쓸모가 없어져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풀면 좋을까?’라고 물으면, 학생들이 손을 들고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다’, ‘저렇게 하면 되겠습니다’라고 하는 방식의 교육이 필요합니다. 이때 정답을 찾는 방식으로 가르쳐서는 안 돼요. ‘그건 선생님도 생각을 못 해 봤네’, ‘그것도 좋은 의견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라고 의견을 받아주되, 다만 학생이 한 말에 모순이 있다면 그 모순만 발견하게 해 주면 됩니다. 앞에서 한 말과 뒤에서 한 말이 모순 관계에 있다는 것만 발견하게 해 주면 되지, 옳다 그르다 맞다 틀렸다 이런 말은 할 필요가 없어요. 교육이 이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죠. 이것을 ‘창의력’ 또는 ‘사고의 유연성을 키우는 교육’이라고 합니다.

인류 역사상 제일 유연한 사고로 문제 해결을 잘했던 사람이 누구였을까요? 바로 부처님입니다. 앞으로 종교로서의 불교는 점점 필요가 없게 돼요. 대신 사고를 유연하게 하는 훈련이 더욱더 필요해집니다. 사고를 유연하게 하려면 긍정적 사고를 연습해야 해요. 지금 즉문즉설을 통해 여러분은 이런 훈련을 하고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 고부 갈등을 겪는 며느리가 유연한 사고로 대처를 한다는 건 어떤 뜻일까요?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당신 아들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유연한 사고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남편이 엄마와 나 사이에서 엄마 편만 든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경직된 사고예요. 그러면 머리가 아픕니다. 아들이 자기 엄마 말을 듣는 것은 너무 당연해요. 그러니 엄마 말을 안 들으면 오히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해요.

‘너 엄마 말 좀 들어라. 엄마 말도 안 들으면 나하고 어떻게 사니. 나는 효자하고 살고 싶지 불효자 하고는 살기 싫어.’

그리고 남편이 월급을 300만 원 벌어오면 이렇게 대화를 나눠보세요.

‘투자한 사람에게 돈을 돌려줘야 하지 않겠어?’
‘한 30만 원 드릴까?’
‘30만 원은 원가도 안 되잖아. 50만 원 드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투자자에게 배당을 정확하게 해 줘야지.’

이렇게 부인은 50만 원 주자고 하고, 남편은 우리도 살아야 되니 30만 원만 주자고 하면서 싸우면 아무런 갈등이 안 생겨요. 그런데 대부분은 남편이 50만 원 주자고 하고, 아내는 30만 원만 주자고 하면서 싸우니까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갈등을 안 일으키려면 항상 선수를 처야 돼요. ‘다 줘버리자’ 이렇게 세게 나오면 해결이 간단합니다. 쫀쫀하게 굴기 때문에 일이 자꾸 복잡하게 되는 거예요. 이런 것을 ‘사고의 유연성’이라고 합니다. 일을 딱 보고 이렇게 사고를 유연하게 할 줄 알아야 돼요.

옛날에는 한 번 결혼하면 헤어질 방법이 없어서 쫀쫀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같이 살아보고 나서 싫으면 이혼하는 방법이 있기 때문에 쫀쫀하게 굴 필요가 없습니다. 대화를 나눠보고 합의가 안 되면 ‘오케이. 그럼 너는 너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살자. 계약 끝내고 해약하자’ 이러면 됩니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어보면 정답이 있습니까?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적응력이 높아요. 아프리카 가서 살아도 되고, 미국 가서 살아도 되고, 아무 곳에 가서 아무 일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청소할 일 있으면 청소하고, 밥 할 일 있으면 밥 하고, 공부할 일 있으면 공부하고, 법문이 필요하면 법문을 합니다. 이렇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미래에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때 그때 닥치는 대로 대응을 하면 돼요.

미래가 걱정이라고 했는데, 그럼 질문자는 미래 걱정을 안 해도 되는 67세인 저와 몸을 바꿀래요? 미래를 걱정하는 25살과 미래를 걱정 안 해도 되는 67세,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나아요?”

“제가 낫습니다.”(모두 웃음)

“67세인 저도 웃으면서 사는데 25살밖에 안 된 질문자가 왜 걱정을 해요? 제일 중요한 건 사고의 유연성이에요. 알았죠?”

“네, 감사합니다.”

“여기 연세 드신 분들도 계신데, 아이들이 결혼을 하든 혼자 살든, 동거만 하고 결혼식은 안 하든, 애를 낳든 안 낳든, 그런 것에 별로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내가 신경 쓴다고 해서 자식이 내 말을 안 듣습니다.

기성세대가 보면 젊은이들이 크면 세상이 망할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젊은이들이 커서 또 세상을 잘 돌아가게 해요. 옛날 대가족 제도에서 소가족 제도로 변했고, 핵가족 시대를 지나 지금은 혼밥 시대입니다. 이런 세상의 변화 속에서 어느 게 옳고 그른지 따지면 사고가 경직됩니다.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른 게 없어요. 그냥 하나의 물결이에요. 그 물결에 휩쓸려 가지도 말고, 둑을 막고 고집도 하지 말고, 흐르는 대로 놓아두고 그중에 선택해서 살면 돼요.

세상이 다 혼밥 시대라 하더라도 나는 대가족 제도가 좋으면 대가족을 이루고 살면 됩니다. 세상 사람이 다 결혼해도 나는 혼자 살고 싶으면 혼자 살면 되고요. 세상 사람이 다 교회에 다녀도 나는 절에 다니고 싶으면 나 혼자 절에 다니면 돼요. 세상이 가는대로 따라가고 싶으면 절에 다니다 교회 가면 돼요. 어렵게 살지 말고, 쉽게 사세요.”

앞선 질문자와 대화 덕분에 스님의 이야기가 더욱 와 닿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질문자들의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결혼하라는 남의 말이 신경 쓰인다는 청년은 “생각해보니 별 문제 아니었네요.”, 자존감이 낮은 아들 문제로 고민했던 어머니는 “아들 인생은 아들에게 맡기고 제 인생을 살랍니다!”, 아들딸 걱정에 여념이 없었던 70대 할머니는 “자기 인생 자기 살아야 되는 게 맞습니다!”, 남편이 시어머니 편만 들어서 속상하다는 며느리는 “남편은 시어머니 것입니다.”, 감정 기복이 심하다는 20대 직장인은 “오늘은 두 다리 뻗고 자렵니다.”,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는 법에 대해 물은 20대 청년은 “유연하게 사고하면서 이것저것 다 해보겠습니다.”, 폭행하는 남편 때문에 힘들다는 여성은 “남편을 지혜롭게 이용해서 행복하게 살겠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오늘은 모두 시원하고 밝게 소감을 말했습니다. 함께 모든 과정을 지켜본 청중은 큰 박수를 치며 감탄했습니다.

“즐거웠어요?”

“네.”

“유익했어요?”

“네.”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렵지 않아요. 불교의 핵심 목표는 해탈과 열반입니다. 즉,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쪽으로 나아가려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는 사실을 잘 파악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성질이 나서 그릇을 팍 깰 때 지혜는 무엇일까요?

‘차마 나를 못 때리겠으니까 그릇을 깨는구나. 고마워.’

이렇게 사실을 잘 파악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아이고, 환자가 또 발작을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게 자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셨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두 사람을 향해 이렇게 말했어요.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두 사람은 요즘 말로 하면 교도소 직원이에요. 법원에서 판결이 나면 매일 하는 일이 사형을 집행하는 일인 사람들입니다. 그 당시 사형을 집행하는 방법이 사람을 십자가에 매다는 거였어요. 매일 그 일을 해야 했던 사람의 심정을 예수님께서는 온전히 이해하셨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신 겁니다. 보통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기 어렵죠. 그분은 비록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이 가질 수 있는 이런 마음을 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인 동시에 하나님이 될 수 있었던 겁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이 그릇을 깰 때 무엇이 진실일까요? 마이크를 저기 남자분에게 줘봐요. 만약에 성질이 나서 그릇을 팍 깼다면 차마 아내를 못 때려서 그릇을 깬 게 진실일까요?”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못 때린 거죠.”

“남편을 좋게 생각하라는 게 아니라 진실을 진실대로 보는 것이 진리이고 지혜라는 겁니다. 그걸 알면 마음에 미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 남편은 그릇을 깨는 행동을 했을까요? 자기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그래요. 자기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지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이렇게 진실을 발견하면 우리들의 고뇌가 사라집니다. 마치 불을 켜면 어둠이 사라지는 것과 같아요.

누구나 진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는 것과 진실을 발견하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채식을 하면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결혼 안 하고 혼자 살면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어요. 누구나 다 진실을 볼 수 있어요. 이것을 불교에서는 일체중생이 다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앗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일체중생 개유성불(一切衆生 皆有性佛)’이라고 표현합니다. 종교를 넘어서서 이런 마음공부를 하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어떤 각본도 없었지만, 다양한 질문자들과 스님의 대화를 통해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강연장을 나서는 청중의 모습이 보슬보슬 내리는 빗방울처럼 가벼워 보였습니다.

내일 스님은 멀리서 손님이 찾아와 하루 종일 손님들과 시간을 보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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