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춘천에서 ‘통일’을 주제로, 여주에서 ‘행복’을 주제로 시민들을 만나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아침 7시부터 평화재단에서 기획위원들과 회의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전 내내 회의를 한 후 11시에는 미얀마 우진페인 스님을 비롯해 아시아의 분쟁 피해 지원 단체인 ‘아디(ADI)’에서 스님의 자문을 받고 싶다며 평화재단을 찾아왔습니다.

미얀마 우진페인 스님은 “지난 1월 스님과 JTS가 로힝야 난민캠프에 가스버너 10만 개를 지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라고 하면서 스님을 꼭 뵙고 싶다고 해서 오늘 모임이 갖게 되었습니다. 우진페인 스님은 한국 NGO단체인 아디(ADI)와 미얀마에서 메이크틸라 평화 도서관 사업을 함께 추진하면서 함께 인연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디(ADI) 관계자와 우진페인 스님은 로힝야 난민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저희가 로힝야 난민들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유엔은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돈을 받지만 그 돈이 전부 난민캠프로 지원되지 않는다고 해요. 로힝야 난민들은 자기들 스스로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지원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유엔에서 하지 못하는 일을 저희 같은 NGO가 했으면 해서, 스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스님은 지난 1월 로힝야 난민캠프에 가스버너 10만 개를 지원하고 온 경험한 바탕으로 스님의 생각을 들려주었습니다.

“미얀마 로카인주에 아직 몇 십만 명의 로힝야족이 살고 있잖아요. 원래 저는 그 사람들이 미얀마 사회 안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어요. 방글라데시로 넘어갔던 로힝야 난민들이 다시 미얀마로 돌아오면, 불태워진 집, 허물어진 외양간, 도망간 소들, 이런 것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방글라데시로 넘어간 사람들은 지금 유엔에서 많은 지원을 받고 있거든요.

물론 난민캠프에 사는 사람들도 희망이 없어요. 밭도 없고, 유엔에서 주는 식량만 먹고 앉아 있어야 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그러나 다른 난민캠프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고, 대부분의 국가가 난민들을 서로 안 받으려고 해서 유엔의 지원이 어려운데, 방글라데시가 난민들을 수용해버리니까 유엔과 각국에서의 재정 지원이 원활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미얀마 쪽 사정을 들어보면 다시 미얀마로 돌아가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타협이 쉽지가 않아 보여요. 미얀마 스님들도 ‘벵갈 사람’이라고 부르지 미얀마 사람이라고 인정을 안 하거든요. 그런데 로힝야족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으니 시민권을 달라’고 요구하거든요.

JTS는 현재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있습니다. 학교가 없는 곳에 학교를 세워서 아이들 교육을 하고 있고, 병원을 세워서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필리핀 민다나오에서는 주로 원주민 마을에 학교를 지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후 미얀마 스님은 JTS가 인도와 필리핀에서 어떻게 구호 활동을 하고 있는지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어 했고, 스님은 약 1시간가량 JTS가 어떻게 100% 자원봉사 방식으로 구호활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미얀마 스님은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JTS의 사업 방식에 대해 매우 관심 있어했습니다.

“미얀마도 JTS가 매우 관심을 갖고 있는 곳입니다. 첫째, 학교가 없는데 아이들은 많고, 둘째, 지방 군청에서 기술자를 지원하거나 물자를 운반할 도로를 내어주겠다고 하고, 셋째, 주민들도 학교 짓는 일에 노동력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하고, 넷째, 교육청에서도 선생님을 파견하겠다고 하고, 이런 조건들이 갖춰지면 JTS가 여기에 필요한 자재를 모두 지원해서 학교를 짓습니다. 그래야 이 학교가 내실 있게 운영이 되기 때문입니다.”

대화를 모두 마치고 스님은 평화도서관 사업에 보탬이 되라고 보시금을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영어로 번역된 스님의 책도 선물했습니다.

1시 20분에 평화재단을 출발한 스님은 춘천시청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3시부터 춘천시청 대회의실에서 평화통일 시민교육을 주제로 즉문즉설이 열렸습니다.

강연 전 스님은 이재수 춘천시장님과 잠시 차담을 했습니다. 강원도에서는 최근 ‘강원 평화 특별자치도 종합추진계획’을 수립하여 남북통일을 준비하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고 합니다. 스님은 “국민들이 통일에 관심이 없더라도 지도자는 나라의 미래를 위해 국민들이 통일에 관심을 갖도록 적극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시장님도 적극 동의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약 1시간 동안 강연을 했습니다.

“통일은 경제적으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옵니다. 전체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겠지만 그중에 어디가 제일 시너지 효과가 많이 날까요? 바로 강원도입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가 한국이라면 한국 안에서 유일한 분단도가 강원도예요. 만약에 통일을 해서 경북, 경남, 호남, 충청, 경기, 서울,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이렇게 10도 연방 같은 것을 만든다면, 강원도는 남북 강원도를 합해야 될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제일 먼저 통일해야 될 곳이 강원도입니다. 남북 관계가 평화로워지기만 해도 제일 이득이 크고, 통일까지 되면 부동산부터 모든 분야에서 이득이 가장 큰 곳이 강원도입니다.”(모두 박수)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통일을 하기 위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물었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이 춘천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짧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스님 말씀을 듣고 오늘 좀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통일을 하려면 주변 4대 강국을 설득을 해야 되는데, 주변 4대 강국이 우리의 통일을 별로 반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떤 논리로 설득을 하면 될까요? 중국과 러시아, 일본과 미국이 전혀 생각이 다른 것 같아요. 이 양쪽을 어떻게 설득해서 우리의 통일을 이루어야 할지 스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제가 어떤 여자하고 결혼하고 싶은데, 저 여자는 나를 별로 안 좋아해요. 그러면 어떻게 설득해야 될까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습니다.” (모두 웃음)

“첫째, 저 여자와 결혼을 해야 되겠다는 입장이 확고 부동해야 합니다. 확고 부동하다고 해서 막 밀어붙이면 안 되겠지요.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도록 뭔가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물고기를 잡으려고 해도 미끼를 던져야 하듯이 그분이 무엇이 필요한지 연구를 해야 합니다. 친절한 남자를 좋아한다면 친절을 보여야 되고, 집이 가난하다면 경제력을 보여줘야 되겠죠. 그렇다고 무턱대고 다가가면 안 돼요. 돈 있다고 자랑했는데 그쪽도 돈이 많은 집안이라면 돈 있다고 자랑해봐야 아무 도움이 안 돼요. 자기 아버지가 굉장히 친절하지만 줏대가 없어서 친절한 남자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다가가서 친절을 보이면 ‘저 남자도 아버지처럼 줏대가 없겠다’ 이렇게 됩니다.

주변 4 대국이 통일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에요. 지금처럼 분단된 상태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더라도 예측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통일된 대한민국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가 지금 불확실해요. 그래서 다 망설이는 거예요. 이럴 때는 외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통일이 너희 나라에 이익이라고 까지는 설득을 못해도 절대로 너희 나라에 손해가 나는 일은 아니다.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한테 이익이 됐으면 됐지 손해는 안 된다.’

이것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관건입니다. 한 사람 비위도 맞추기 어려운데, 네 사람 비위를 맞춰야 하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외교력이죠. 그런데 지금 우리는 북한과 미국 두 나라 비위 맞추기도 어려워하고 있잖아요. 만약 북한과 미국이 핵전쟁을 한다고 하면, 둘은 당사자지만 우리는 애꿎게 피해는 제일 많이 보게 됩니다. 싸움은 둘이서 하지만 피해는 우리가 제일 많아요. 그러니 전쟁은 바로 ‘우리’가 막아야 하는 겁니다.

전쟁 막으려고 우리가 미국에 가서 뭐라 뭐라 하니까 미국 사람은 ‘북한을 길들이려고 하는데 한국은 동맹 편을 안 들고 적을 편든다’라고 기분 나빠합니다. 또 우리가 북한에 가서 ‘그러지 말라’라고 설득을 하니까 북한은 ‘같은 민족 편은 안 들고 외세 편을 든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쪽저쪽에서 왕따 당하고 있어요. 미국도 우리를 별로라고 하고, 북한도 우리를 별로라고 합니다. 이렇게 두 나라에게 맞추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통일을 하려면 다섯 나라에게 맞춰야 합니다. 남북이 맞추고, 그것을 또 중국이 손해가 안 나게 맞춰야 하고, 미국, 일본, 러시아까지 손해가 안 나게 맞춰야 해요. 그러려면 한반도의 통일이 한국한테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국에도 다 이익이 된다고 설득을 할 수 있어야 해요. 즉, 한반도의 평화가 동아시아의 평화를, 한반도의 통일이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설득을 해낸 나라가 바로 독일입니다. 독일의 통일에 대해서 유럽은 우려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독일은 ‘통일을 해서 우리끼리 잘 사는 것이 아니라 EU과 함께 잘 살도록 하겠다’, ‘인구가 늘어도 프랑스와 유럽의회 국회의원 수를 똑같이 하고, 경제적 부담은 더 많이 지겠다’ 이렇게 하면서 통일 비용을 많이 썼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금 통일 비용을 이야기하면 반대가 많잖아요. 그러나 큰 것을 얻으려면 미끼를 던져야 합니다. 그럴 정도로 지도자가 원이 있어야 하고, 국민이 그것을 뒷받침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북한과 딜을 좀 하려고 하거나 미국과 맞서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보수가 반대하고, 북한한테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라고 말을 하면 진보가 싫어합니다.

이 상황을 돌파하려면, 첫째, 지도자가 원이 있어야 해요. 통일은 정부가 할 수 있지 민간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남북 관계를 풀려면, 안보, 국방, 외교, 경제 문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통일 정책은 반대하는 야당까지 설득해서 합의한 만큼 추진해야 힘을 받습니다. 야당을 팽개치면 정권 바뀌면 다 무산돼요. 남북 간 합의한 것을 야당도 모두 동의를 하도록 하려면, 국내 정치에서는 좀 양보를 해야 됩니다. 이것을 할 수 있으면 우리가 통일의 희망을 가질 수 있고, 힘들어서 못하겠다면 통일은 안 되는 거예요.

결혼을 하고 싶다면 신부집이 어려울 때 돈을 좀 줘야 해요. 그럴 때 ‘네가 바보같이 여자한테 왜 돈을 주냐’ 이런 생각을 하면 결혼하기 어려워요. 또 예를 들어 내가 예쁜 꽃을 주며 결혼하자고 했는데도 신부가 그 꽃을 집어던져 버렸다고 합시다. 이때 기분 나쁘다고 확 뺨을 때려버리면 결혼은 안 되는 겁니다. 결혼을 하고 싶다면, 던진 꽃을 주워서 다시 갖다 줘야 해요. 그래도 또 집어던져 버리면 또 새 꽃을 사서 갖다 줘야 해요. 그러면 옆에서 다 그러겠죠.

‘네가 뭐가 못나서 여자한테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 바보 같은 짓을 하니?’

이런 말에 넘어가면 결혼이 안 되겠죠. 정말 결혼을 하고 싶다면 이럴 때 남의 말을 들으면 안 돼요. 목표가 딱 분명해야 이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북한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꽃을 갖다 줬는데 꽃을 집어던지고 말을 독하게 하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뭐가 못나서 저렇게 수모를 당하나’ 이렇게 생각하면 통일에 대한 의지가 없는 사람이에요. 통일에 대한 의지가 있는 사람은 꽃을 열 번 집어던져도 북한을 살살 달래야 합니다. 조금만 달래주면 통일을 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발로 차서 중국에 주려고 합니까.

그런 정도로 통일에 대한 목표 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통일을 하고 난 뒤에 돌아보면 모두 우리의 평화와 이익을 위해서 이렇게 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은 다툼은 조금만 포용력을 더 가지면 극복할 수 있어요. 그런데 자신이 없으면 신경질을 같이 부리게 돼요. 북한은 남한과 경제력으로 비교하면 50 대 1입니다. 남한이 인구도 두 배이고, 국제적인 영향력도 훨씬 커요. 그런데도 남한이 북한과 똑같이 맞서려고 하는 것은 통일이라는 큰 목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큰 목표가 있다면 상대가 욕을 해도 웃으면서 대화할 수 있어야 해요.”

강연장을 빠져나가는 춘천 시민들은 “통일에 대한 쉽고 명쾌한 강연을 들어 너무 좋았다”며 만족해했습니다.

시청 직원이 스님을 배웅하며 “법적으로 강연료를 드리게 되어있어요.”라며 강연료를 드리려고 했지만 스님은 사양했습니다.

“저는 공공단체 행사에는 강사료를 안 받아요. 공익을 위한 일에 나도 참여하는 거예요. 시민들이 낸 세금인데 시민들을 위한 좋은 일에 써주세요.”

춘천시청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저녁 강연이 열리는 여주로 향했습니다. 오후 6시 30분에 여주시 세종국악당에 도착한 스님은 먼저 이항진 여주시장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시장님과 스님은 4대 강 공사를 반대하는 집회에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저녁 6시가 되어도 날이 밝습니다. 세종국악당은 금세 만석이 됐습니다. 강연장 안에 들어오지 못한 백여 명의 시민은 무척 안타까워하고 있었습니다. 봉사자들은 사람들을 차례로 입장시키고 통로 한쪽으로 앉도록 했습니다.

강연 전에는 잠시 청중과 대화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즉문즉설을 듣고 무엇이 달라졌는지 물었는데, 많은 분들이 다양한 사연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제가 메이크업 프리랜서라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이 심했어요. 보시다시피 제가 뚱뚱해서 자존감이 매우 낮았거든요. 그런데 법륜스님을 알고부터 아름다움이란 속세에서 벗어나게 됐어요.” (모두 박수)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아담한 강연장은 열기가 점점 뜨거워져 갔습니다. 여주 시장님도 인사말을 해주었습니다.

“제가 인사말이 길면 스님 말이 짧아지니 짧게 인사드리겠습니다. 4대 강 공사를 반대할 때 처음 스님을 뵜었습니다. 보통 인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청중은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보냈습니다. 작은 강연장은 오백여 명이 내뿜는 열기로 뜨거웠습니다.

“이렇게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따가 즉문즉설 시작하면 무슨 야단을 들으려고 박수를 그렇게 쳐요. (모두 웃음)

시장님과 오랜만에 만나서 옛날 4대 강 공사를 반대했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4대 강에 가서 평화 시위도 하고 ‘4대 강을 자연 그대로 두자. 꼭 해야 한다면 일부만 해보고 괜찮으면 나중에 하자’ 이렇게 당시 정부에 타협안까지 제안했지만 안 받아들여졌어요. 그 많은 돈을 들여서 4대 강을 개발했지만 물이란 고여 있으면 썩잖아요. 게다가 아름다운 백사장이 없어져버려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어제 제가 노인들을 모시고 섬진강을 갔습니다. 섬진강은 4대 강 공사에 포함이 안 되었어요. 봄날 모래사장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개발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지나친 개발은 인간에게 오히려 재앙이 됩니다. 요즘 미세먼지로 괴롭죠? 미세먼지도 우리가 만들어낸 하나의 재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환경을 생각하는 시민이 되면 좋겠습니다. 성장만 중요한 게 아니라 삶의 질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동안 50년 동안 물질적 생산을 늘리는데 줄달음쳐 왔는데 과연 우리가 행복해졌는가 이게 문제예요.”

스님은 한국이 세계에서 국가 GDP 11위, 1인당 GDP 28위로 성장했지만, 복지지수는 57위, 행복지수는 117위인 현실을 이야기하며 개인의 행복과 사회 환경의 개선을 함께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질문 지함 속에는 십여 장의 질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 통 속에 든 이야기는 전부 욕심 아니면 고집이에요. (모두 웃음) 좋은 이야기는 살면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많이 들어왔잖아요.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내 인생이 변하는 것은 아니에요. 졸리기만 해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의 고민을 먼저 듣고 대화를 하면서 실천 가능한 길을 함께 찾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면 지금 보다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럼 고민을 들어보겠습니다.”

총 9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재혼을 했지만 남편이 너무 어렵고 소통이 안 된다는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재혼한 지 4년째입니다. 제가 막내딸로 자라다 보니 성격이 원래 강해요. 공장도 부도나고 힘들다 보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이사장에게 시집을 가라 하시고 돌아가셨어요. 마침 그분이 청혼도 하고 혼자 살기 힘들어서 결혼을 했어요. 그런데 계속 내가 참아야 된다 하는 강박관념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숨이 막히고 이 사람이 굉장히 어려워졌어요. 밤에 오면 말할 거리가 없으니까 계속 먹을 것만 주고 밤새 주물러 주기만 해요. 저는 남편에게 할 말도 다 하고 편안하게 지내고 싶어요. 사람들 보면 신랑하고 길거리 가서 떡볶이도 먹고 이러는데 저는 남편이 어려워서 절대 그렇게 못해요.”

“남편 하고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나요?”

“8살이요.”

“8살이면 요새 친구처럼 지내는데 그 정도 가지고 왜 그래요.”

“남편이 너무 세거든요. (한숨) 근데 저도 성격이 세요. 그런데 부모님께서 결혼에 한 번 실패를 했으니 계속 참으라고 하셨어요.”

“질문자 이야기를 들어보면 할 말을 또박또박 다 하는데요. 아니 제가 질문자 남편보다도 더 편해요?”

청중은 공감하는 듯 크게 박수를 치며 웃었습니다.

“스님은 오늘 뵙고 내일 또 안 뵙잖아요.”

“그런데 질문자가 말을 잘 못 한다는 것은 인정하기 어려워요. 이야기하는 거 들어보면 자기 할 말 다 할 사람이에요.”

“저를 잘 보셨는데요. 참고 살고 있는 거예요. (모두 웃음) 정말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싶거든요. 그런데 말을 해봤자 돌아오는 건 상처뿐이에요. 어느 날 창문에 보이는 새를 보고 ‘저 새도 그 정도 말을 하면 알아들을 텐데’라고 저를 무시했어요. 저는 이런 말이 정말 속상하거든요. 그래서 말을 해봤자 소용이 없으니까 참고, 참다 보니까 대화가 단절이 되고 또 어려워져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남편과 소통이 안 된다는 거죠?”

“그렇죠.”

“남편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안 들어준다 이 말이지요?”

“제가 볼 때는 그 사람이 자기 잣대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요.”

“그러니까 내 말을 안 들어주면 소통이 안 되는 거고 내 말을 잘 들어주면 소통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질문자 식으로 생각하면, 옛날 왕조 사회에서는 왕이 얘기하면 백성이 말을 잘 들으니까 소통이 잘 되는 거잖아요. 질문자는 독재자 근성이 있어요. ‘내가 말하면 네가 들어줘야 된다’ 이런 전제가 있다는 말이에요. 소통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지도자가 말하면 국민이 잘 들어주는 게 소통을 잘하는 거예요? 국민의 말하는 걸 지도자가 잘 들어주는 것을 소통을 잘하는 거예요?”

“국민이 말하는 걸 지도자가 잘 들어주는 것이요.”

“잘 들어주는 것을 소통을 잘한다고 하는 거예요. 내 말을 상대가 잘 들어주는 게 소통이 아니에요. 그건 독재예요. 질문자는 지금 독재가 안 돼서 지금 나한테 질문하는 거예요. (모두 웃음) 그러니 질문자가 남편과 소통을 잘하려면 말을 잘 들어주면 됩니다. 뭐든지 말하면 ‘네 그래요, 아 그러네요’ 이렇게 얘기하면 되는 거예요.”

“스님 저 말씀드려도 돼요?”

“안 물어보고도 할 말 다 하면서 새삼스럽게 왜 물어봐요?” (모두 웃음)

“제가 52살인데, 귀가시간도 남편 마음대로 정해요. 저도 친구를 만나면 늦어지기도 할 수 있잖아요. 찜질방에 가서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싶은데 저는 그렇게 못해요. 만약 제가 귀가시간을 어기면 남편이 며칠 동안 저에게 말을 안 해요.

“말을 안 하면 좋지요. 다른 남편 같으면 늦게 왔다고 막 욕을 할 텐데 질문자 남편은 아무 말도 안 하니까 얼마나 좋아요. 훌륭한 사람에게 왜 그래요.” (모두 웃음과 박수)

“제가 아니라 남편이 질문을 하러 와야 스님께서 제 편에 서서 말씀해주실 걸 알고 왔어요.”

“질문자는 내 말도 듣기 싫다는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모두 웃음)

“제 말도 듣기 싫은데 남편 말을 듣겠어요. 안 듣죠. 저는 질문자와 이해관계가 없어요. 그리고 남편 말만 듣고 제가 선입견을 갖고 질문자한테 얘기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는 질문자의 남편이 누구인지도 몰라요. 저는 오직 질문자 얘기밖에 안 들었잖아요. 제가 편들어 주려면 질문자 편을 들지 남편 편을 들어줄 이유가 없어요. 그런데 방금 질문자 얘기만 들었는데도 제가 보기에 질문자는 좀 답답한 사람이에요. (모두 웃음)

질문자의 얘기를 남편이 안 들어준다고 생각하면 죽을 때까지 이렇게 스트레스받고 살아야 돼요. 제가 이렇게 말해도 제 말을 듣고 안 듣고는 질문자의 자유예요. 그런 것처럼 내가 말하는 건 내 자유이고, 그 말을 듣고 안 듣고는 남편의 자유입니다. 마찬가지로 남편이 어떤 말을 하는 것은 남편의 자유이고, 그 말을 듣고 안 듣고는 나의 자유입니다.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세요. 그러나 남편이 내 말을 반드시 들어야 된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그것은 독재입니다. ‘옷 사주세요’ 이렇게 말하고 싶으면 하세요. 남편이 ‘안돼!’ 이러면 ‘알았어요’ 하면 돼요. ‘오늘 동창회 갔다가 10시에 올게요’라고 했는데 남편이 ‘안돼!’ 이러면 ‘알았어요’ 하면 돼요. 어떤 말도 나는 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그 말을 듣고 안 듣고는 남편의 자유라는 것을 인정해야 돼요. 질문자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내가 말하면 남편이 그 말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질문자가 남편에게 말을 못 하는 이유는 남편이 내 말을 안 들어줄 것 같아서 그래요. 질문자가 남편을 존중해서 말을 못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 적어서 말을 못 하는 것도 아니에요. 내가 말하면 남편이 내 말을 들어야 하는데, 눈치를 딱 보니 안 그럴 것 같으니까 말을 안 하는 겁니다. 할 말 다 할 사람 같은데 왜 말을 못 할까요? 남편이 내 말을 안 들을 것 같아서입니다. 그게 바로 독재입니다. 나에게도 말할 자유가 있지만, 그 말을 듣고 안 듣고는 남편의 자유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자기 할 말을 못 하는 거예요. 길 가다가 예쁜 옷을 보면 이렇게 말해 보세요.

‘여보, 저 옷 참 예쁜데 사주면 안 될까?’
‘안돼!’
‘응, 알았어.’

그리고 이튿날 또 물어보는 겁니다.

‘여보, 어제 그 옷 사주면 안 될까.’
‘안 된다 그랬잖아!’
‘알았어.’

그래도 그 옷을 사고 싶으면 또 말하면 돼요. (모두 웃음) 이렇게 하면 남편이 그 옷을 사 줄 확률이 높을까요, 낮을까요?”

“높아요.”

“그런데 한 번 딱 얘기해보고 남편이 ‘안 돼’라고 하면 ‘알았다. 까짓것 네가 싫다는데 내가 앞으로 두 번 다시 얘기하나 봐라’ 이러면서 말을 안 해요. 그러면 자기만 손해예요. 본인은 똑똑한 줄 알고 그렇게 말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질문자가 바보예요. 그러니 남편에게 자유를 주세요. 알았어요?”

“네.”

“남편이 ‘10시까지 들어와’ 그럴 땐 ‘네” 이러면 돼요. 그런데 10시까지 들어오고 안 들어오고는 나의 자유입니다. 늦게 들어오고 싶으면 늦게 들어오면 되고, 일찍 들어오고 싶으면 일찍 들어오면 돼요. 늦게 들어오면 남편이 야단을 치겠죠. 그러면 ‘죄송해요. 여보’ 이러면 돼요. ‘내일은 일찍 들어올 거지?’ 그러면 ‘네!’ 이러면 돼요. (모두 웃음)

내일 별 일 없으면 일찍 들어오면 돼요. 일부러 늦게 들어올 필요는 없잖아요. 그러나 내일도 오늘처럼 법문 들으러 갈 일이 생기면 늦게 들어가면 돼요. 그리고 이렇게 대화하면 됩니다.

‘너 어디 갔다 왔어?’
‘법문 들으러 갔어.’
‘어제 일찍 들어온다고 그랬잖아.’
‘아, 어제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오늘 일이 생겨 일정이 바뀌었어.’

이렇게 대화하는 연습을 해 보세요. 그러면 할 말 다 하면서 살 수 있어요. 내가 할 말을 못 하는 건 내가 남편을 배려해서가 아니고 ‘내 말을 들어주나, 안 들어주나’ 이렇게 자꾸 머리를 굴리기 때문입니다. 그건 내 문제예요, 남편 문제예요?”

“내 문제예요.”

“웬일로 인정을 해요?”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주인 없는 개나 고양이를 봐도 마음이 아프고, 밭에서 풀을 뽑아도 겨울 동안 힘들게 자란 풀이 불쌍해요. 불쌍한 게 많아서 너무 힘들어요.
  • 채식을 해보니 좋아서 두 아들도 채식을 시키고 싶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고기를 좋아해서 갈등이 생깁니다.
  • 아미타불은 실제로 존재하셨나요? 존재하셨다면 어떻게 깨달음을 얻으셨나요?
  • 스님은 상당히 많은 분에게 위로를 해주시는데, 스님은 누구에게 위로받으십니까?
  • 작년에 공기업에 입사했으나 업무가 어려워 자진 퇴사를 했습니다. 다른 곳에 취직했지만 후회가 됩니다. 어떻게 과거를 잊고 미래를 바라보며 살 수 있을까요?
  • 작년 가을에 아이가 아파트 15층에서 떨어져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개를 들 수 없고 사람을 만나지도 못하겠어요.
  • 남동생이 조현병을 앓은 지 15년째입니다. 어머니가 남동생을 낫게 하려고 계속 굿을 하시는데 그만두게 해야 할까요?
  • 업이 두꺼워서 사는 게 힘듭니다. 어떻게 업장을 녹일 수 있을까요?

웃음과 눈물이 함께 했던 2시간이었습니다. 질문자의 사연에 마음이 먹먹해지는가 하면 스님의 한 마디에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강연을 끝마칠 무렵 스님은 질문을 했던 한 명 한 명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대부분 마음이 가벼워졌다며 웃음을 보였지만, 아이가 자살을 해서 가슴이 먹먹하다는 분은 아직도 멍한 눈빛을 하고 있어 청중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마지막에 업이 두터워 힘들다는 분은 아주 밝아진 얼굴로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격려의 말을 덧붙였습니다.

“큰 걱정 하지 마세요. 그 정도면 여생이 괜찮은 편이에요.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이렇게 자신감을 가지셔야 해요. 아이도 셋이나 낳았겠다, 늙은 영감 뒷바라지할 일도 없겠다, 얼마나 좋아요? 늙어서 눈이 잘 안 보이면 꼴 보기 싫은 거 안 볼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거예요. 이걸 긍정적 사고라고 해요. 우리가 괴로운 것은 대부분 부정적 사고를 하기 때문이에요. 긍정적 사고를 하셔서 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청중석에서 큰 환호와 함께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가운데 강연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책 사인회를 하며 시민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인사를 한 후 강연을 준비한 행복학교 활동가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어요. 갈 길이 멀어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세종국악당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밤 12시가 넘어서 두북에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차 안에서는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

내일은 은사 스님인 불심 도문 큰스님의 생신을 맞이해 찾아뵙고 인사를 드린 후 저녁에는 제천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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