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행복학교 참가자들과 함께 문경새재 나들이를 했습니다. 햇살이 나지 않은 흐린 날씨여서 산책하기에는 딱 좋은 날씨입니다. 문경새재에 도착하자 행복학교 참가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스님을 반깁니다.

전국에서 모인 350여 명의 행복학교 참가자들과 먼저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양 옆으로 나란히 선 모습이 마치 제1관문의 성벽 같았습니다. 늘 유튜브를 통해서만 스님 얼굴을 보다가 가까이에서 직접 스님 얼굴을 본 사람들은 어쩔 줄을 몰라하며 기뻐했습니다.

전체가 모인 김에 먼저 스님이 문경새재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옛날에 서울로 갈 때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고개가 소백산맥이었습니다. 당시 영남의 큰 도시는 경주, 상주 이런 도시들이에요. 부산은 당시에 큰 도시가 아니었어요. 이렇게 영남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한양을 가려면, 걸음이 빠른 사람은 하루에 40km씩 걸어서 열흘이 걸렸어요. 총 400km 정도 되니까요. 걸음이 느린 사람은 보름 정도 걸렸고요. 이 소백산맥을 넘어갈 때 가장 짧은 거리로 넘어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문경새재입니다.

영주에서 넘어가는 고개가 죽령입니다. 현재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곳입니다. 문경에서 충주로 넘어가는 고개가 문경새재 즉 조령입니다. 김천에서 영동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추풍령이에요. 이 세 개의 고개가 가장 유명합니다.

‘새재’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에는 세 가지 설이 있어요. 첫째, 가운데 있는 고개인 죽령과 추풍령 사이에 있는 고개라고 해서 ‘새재’라고 했다고 합니다. 실제 그랬는지 아닌지는 저도 몰라요. 전설이 그렇습니다. 둘째, 여기에 억새가 많아서 ‘새재’라고 했답니다. 셋째, 새도 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고개라고 해서 ‘새재’라고 했답니다. 어느 게 가장 일리가 있는 것 같아요?”

“세 번째요.”

“새재를 한문으로 바꾼 것이 ‘조령’입니다. 이 고개의 오른쪽에는 주흘산이 있고 높이가 1106m입니다. 왼쪽에는 조령산이 있고 높이는 1025m입니다. 1000m가 넘는 두 산 사이를 넘어가는 고개입니다.

여기에는 원래 성벽이 없었습니다. 이 성벽은 다 임진왜란 이후에 만든 거예요.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동래에 도착해서 한양까지 점령하는데 한 달 밖에 안 걸렸어요. 왜냐하면 중간에 방어벽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문경새재에서 막았어야 했는데, 여기에 아무런 성벽이나 방어 장치가 없었던 겁니다. 일본이 쳐들어 올 것이라고 예상을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임진왜란이 끝나고 ‘여기만 제대로 막았으면 환난을 안 겪었을 텐데...’라고 후회를 하고 나서 현재 제2관문이라고 불리는 조곡관을 제일 먼저 세웠어요. 거기가 방어하기에는 제일 좋았어요. 그 후 입구에도 성벽을 쌓은 것이 제1관문인 주흘관입니다. 여러분 뒤에 보이는 저 성벽입니다.

이 고개를 넘는 곳에 쌓은 성벽이 현재 제3관문인 조령관입니다. 제3관문인 고갯마루까지 갔다 오면 좋기는 한데, 여러분들이 인생 고민 물을 게 많다고 해서 오전만 산책을 하고, 오후에는 대화를 가져야 해서 제2관문까지만 다녀오겠습니다.

오전에는 계절의 봄을 만끽하고, 오후에는 마음의 봄을 만끽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계절의 봄을 느끼며 문경새재 옛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꼭 내가 앞에 가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뒤에 서 계신 분부터 먼저 출발하세요.”라며 대중 사이에서 천천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350여 명의 대중이 모였는데 와 몰려가면 여기 온 관광객들에게 민폐를 끼칩니다. 절대로 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지 마세요. 절반을 넘어가면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이 그럽니다.

‘이 길이 다 니꺼가?’(모두 웃음)

그러니 딱 반을 잘라서 오른쪽으로만 붙어서 가도록 합니다. 많은 대중이 움직이는 단체에서 예의를 먼저 지켜야 전체 산행에 불편이 없습니다.”

스님은 여러 차례 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지 않도록 강조했습니다. 주위에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언제나 스님의 철칙입니다. 길가에는 봄꽃이 활짝 피어 얼굴에 미소를 짓게 했습니다.

“저기 분홍색 꽃 보이죠? 복사꽃입니다.”

약간 경사가 진 길을 걷기 시작하자 숨이 가빠지고 등에 땀이 나기 시작합니다.

“걸을 만 해요? 봄기운이 좀 느껴집니까? 해도 안 나고 걷기에 딱 좋네요.”

옆으로 계곡물이 큰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습니다. 스님은 우리나라 경치의 멋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경치가 좋으려면 바위가 있고, 물이 있고, 나무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바위가 좋아도 물과 나무가 없으면 별로예요. 바위, 물, 나무가 아기자기하게 있는 게 우리나라 경치의 멋이에요. 외국에 경치 좋다고 해서 가보면 바위만 있거나 물만 있거나 나무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이 참 맑죠? 속이 다 들여다 보여요.”

꽤 오랜 시간을 걸어 계곡 깊이 들어오니 활짝 핀 벚꽃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야, 골짜기 깊숙이 들어오니까 벚꽃이 한창이네요.”

길 가에는 연달래가 피어 있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저기 보이는 게 연달래예요. 색깔이 진하다고 진달래, 연하다고 연달래라고 부릅니다. 연달래는 철쭉과에 들어갑니다. 철쭉과는 잎이 먼저 피고 꽃이 나중에 핍니다. 진달래는 꽃이 먼저 피고 꽃이 지면 잎이 핍니다. 시골 말로는 진달래는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참꽃, 연달래는 먹을 수 없다고 해서 개꽃이라고 불렀어요.”

꽃구경을 하다 보니 조령원 터에 다다랐습니다. 옛날에는 이곳에서 고개를 넘기 전에 잠도 자고 밥도 먹었다고 합니다. 돌담 안에 수레를 고치는 대장간, 말을 보호하는 마굿간도 함께 있었을 법한 작은 움막집 한 채가 복원되어 있었습니다.

“여기가 주막터입니다. 한 잔 하고 갈래요?” (모두 웃음)

다음은 교귀정을 지났습니다. 정각 위에 올라 잠시 경치를 구경했습니다. 경상도 감사에 새로 부임하는 사람과 퇴임하는 사람이 이곳에서 만나서 업무를 교대했다고 합니다.

계곡을 건너자마자 제2관문이 나타났습니다.

“아마도 계곡을 건너는 곳에 성벽을 쌓아야 적을 방어하기가 쉽기 때문에 이곳에 성벽을 쌓은 거예요.”

제2관문을 지나 너른 터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각자 집에서 가져 온 도시락을 꺼내 삼삼오오 모여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을 먹었습니다. 스님도 싸온 도시락을 펼치고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있어서 식사가 끝날 때까지 잠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생겼는데요. 잠시 여흥을 즐겨보기로 했습니다.

“아직 다른 사람 식사가 덜 끝났으니까 내가 대중을 위해 노래를 한 곡 하겠다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세요.”

용기있게 손을 번쩍 들고 앞으로 나오는 몇 사람 덕분에 숲 속은 온통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노래 부르며 웃는 사이에 식사가 모두 끝났습니다. 다시 내려가는 길에는 꽃구경을 더 여유 있게 하면서 도반들과도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오전에 계절의 봄을 만끽한 행복학교 참가자들은 오후 1시 20분부터 마음의 봄을 만끽하기 위해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350여 명이 모인 유스호스텔 실내 강당은 스님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로 열기가 가득했습니다.

먼저 오전에 나들이를 다녀온 느낌과 행복학교를 다닌 후 생긴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행복학교 다니고 무엇이 달라졌나요?”

“일단 집에서 큰 소리가 없어졌고요. 말귀 잘 못 알아듣는 남편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옷으로 치면 입다가 버리고싶은 옷이었는데 지금은 다시 주워서 어디가 터졌는지 살피고 꿰매서 잘 입고 있습니다.”(모두 웃음과 박수)

“처음엔 아이 담임선생님이 행복학교를 하신다고 해서 가봤어요. 아이 성적이 바닥인 데다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었거든요.(모두 웃음) 한번 가보니 너무 좋아서 계속 다니게 됐어요. 저는 일단 몸이 많이 바뀌었고요. 몸무게가 100kg가 넘었는데 20kg가 빠졌어요. 제가 음침한 성격이고 사람도 잘 안 사귀었는데 성격도 많이 바뀌었어요.”(모두 박수)

참가자들은 환한 표정으로 자신의 변화를 이야기했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듣는 참가자들도 박수를 치며 축하해주었습니다.

이어서 몸 풀기를 했습니다. 잘 뭉치는 어깨와 독소가 쌓이는 겨드랑이를 팡팡 두들겨주었습니다. 몸과 마음을 한 차례 풀고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문경새재 참 좋죠? 밥도 잘 먹었어요?”

“네!”

“아까 밥 먹을 때 노래 좀 하려고 했더니 주위를 시끄럽게 한다고 제대로 못했어요. 노래 부르고 싶은 사람 나와 봐요.”

한 분이 나와서 농부가를 구성지게 불러주었습니다. 평소에는 함께 노래 부를 일도 흥을 돋울 일도 잘 없습니다. 노래 한 자락에 긴장이 스르르 풀립니다.

노래가 끝나고 스님은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새벽에 시간을 할애해서 참회를 하고 있습니다. 대상은 아내입니다. 기도문을 하나 받고 싶습니다.”

“질문자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데요?”

“결혼하기 전에는 아내 외에 다른 사람과 연애를 했었는데, 결혼 후에는 바람을 피운 건 아니에요. 상황이 잘못 돼서 엮이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결혼하기 전에 있었던 일과 결혼 후에 일을 하면서 문제가 생긴 일, 그리고 노래방에 가서 립스틱을 묻힌 사건으로 인해 지난 20년 동안 무슨 일만 생기면 늘 그 일로 돌아가서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이것도 못해? 저것도 못해?’ 하는 추궁을 당했습니다. 저는 방금 스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도망가고 싶고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제가 마음 아프게 했으니까 ‘참아야지, 잘해줘야지’ 하는 생각으로 20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제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고, 이대로 살면 꼭 제가 죽을 것 같았습니다. 지난번에는 계속 이렇게 사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는 말도 했는데, 이렇게는 같이 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제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렇게 같이 힘들게 사는 것보다는 혼자 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손뼉도 부딪쳐야 소리가 나듯이 우리 부부의 갈등에는 제가 잘못한 부분도 있고 아내가 잘못한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잘못한 부분에 대한 참회의 방법으로 기도문을 받으려고 왔습니다.”(모두 박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이렇게 더 살면 아마 숨이 막혀서 죽을 거예요. 예전에 미국에서 상담한 사례가 있는데, 아내는 남편을 너무 사랑한다고 하면서 아침마다 이렇게 한대요. 남편이 넥타이를 하면 색깔이 안 맞다고 아내가 풀러서 다른 걸로 하고, 옷도 신발하고 안 맞다고 다시 입으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남편이 어느 날부터 아침에 속옷만 입고 가만히 서있게 되었대요. 어차피 자기가 입어봐야 아내가 마음에 안 든다며 다 새로 입힐 것이기 때문에 미리 입을 필요가 없다는 거죠.

아내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편은 자기 없으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요. 그런데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끔은 간섭이 너무 심하니 화가 나서 아침 출근길에 넥타이를 땅에 패대기치고 나가다가 자동차 액셀을 콱 밟아서 죽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대요. 그런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생각해보면 또 아내처럼 그렇게 알뜰하게 살림을 살고 다른 데 한눈 안 파는 사람도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녁때가 되면 또 같이 살 마음이 난대요.

이렇게 남편과 아내가 서로 입장이 달라요. 질문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선 아내는 남편에 대한 의지심이 있고 의심병이 조금 있어요. 그러니 그 부분부터 치유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내도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상대방의 일거수일투족이 의심스러워지는 거예요. 남편 입장에서는 자기는 아무 일도 안 하는데 계속 의심을 받고, 또 어쩌다가 립스틱이 묻는 일이 생기니까 입장이 곤란해지는 거예요.

아내는 아직 환자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치료가 조금 필요합니다. 남편도 아내가 화를 낼 때 변명을 하려고 하지 말고 ‘여보, 미안해’라고 말해주어야 해요. 아내의 마음 속에서 화가 올라올 때는 그런 영상이 돌아가기 때문에 사실이 어떠한지 자꾸 따지지 말고 미안하다고 말해주세요.”

“제가 가장 힘든 게 그 부분입니다. 평상시에는 관계가 좋은데 한 번 화가 나면 감당이 안 돼서 집사람이 끝이 나야 싸움이 끝나는 거예요. 아내가 지쳐서 끝을 내줘야 제가 비로소 쉴 수 있습니다. 때론 밤을 새울 때도 있어요.”

“그러니 아무것도 따지지 말고 무조건 미안하다고 해야 해요. 남편이 잘못하고 있는 건 뭐냐면 이런 의지심과 의심증이 있는 사람은 마음을 우선 가라앉혀야 되는데, 그걸 잘 모르고 계속 건드려서 터뜨리는 겁니다. 아내한테는 그런 증상이 있으니까 그걸 이해하고 절을 많이 해야 합니다. 자기가 죄를 지었다는 게 아니에요. 어리석은 겁니다. 아내가 힘들어하는 부분에 대해서 정상인처럼 생각하고 접근을 해서 생기는 문제예요. 그러니 사실 관계가 무엇인지 따지면 안 돼요. 이럴 때는 진위를 따지면 안 되고, 아내가 그런 증상을 보이면 ‘여보, 진정해’하고 진정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아내가 성질이 나서 막 난리를 피워도 우선 진정을 시키는 게 중요해요. 그러려면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를 하는 게 필요합니다.”

“제가 일주일 전부터 아침에 기도하는 걸 시작했는데, 유튜브로만 공부를 해서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라고만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기도문을 하나 받고 싶습니다.”

“기도문은 ‘당신은 환자입니다’ 예요. 매일 이렇게 기도하면, 어떤 난리를 피워도 ‘아, 저 사람은 환자라서 저렇다’라고 받아들여집니다. 난리를 저렇게 피우는데 좋은 사람이긴 뭐가 좋은 사람이에요?(모두 웃음)

그러니 그 말은 사실과 맞지 않는 말이에요. 그렇게 사실과 다른 말로는 아무리 기도를 해도 해결이 안 돼요. 사람이 안 좋은데 어떻게 좋은 사람이라는 거짓말로 기도가 되겠어요? 화를 낼 때 정상인이라고 생각하면 진짜 문제라고 여겨지지만, 환자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되잖아요. 환자라고 생각하면 ‘아, 환자니까 내가 보살펴야 되겠구나’ 마음이 이렇게 납니다.

‘당신은 환자입니다. 제가 잘 돌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매일 아침 기도를 해야 아내가 난리를 피울 때도 질문자 마음이 안정이 돼요.”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초등학교 3학년 둘째 아이가 학교에 적응을 못해서 등교를 거부하고 무단결석을 합니다. 20년 다녔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아이에게 좀 더 신경을 써야 할까요?
  • 막내 아이가 지적 장애 3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돈을 들이면 사회생활에 지장 없을 정도로 치료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빚을 내서라도 치료를 하고 싶은데 남편은 월급 내에서 치료하자고 합니다.
  • 작년 봄 뇌종양 판정을 받았습니다. 노후 대책으로 아들이 마련해준 아파트에서 월세를 받고, 시골에 작은 집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1가구 2 주택으로 세금을 많이 내야 해서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도 없어질 것 같은데 집을 하나 팔아야 할까요?
  • 20년 차 사회복지사로 LH아파트에 성인 장애인 4명과 살고 있습니다. 아래층에 사는 아주머니가 매일 새벽 3시에 일을 마치고 와서 청소기와 세탁기를 돌립니다. 자제해달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내가 그 시간에 일을 마치는데 어떡하냐. 내가 잠자는 8시에 당신이 움직여도 나는 뭐라고 하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장애인 두 분이 무척 예민해서 잠을 깨고 이상행동을 보이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 2016년 9월에 행복학교에 입학해서 4년을 다니고 행복 시민증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교장 선생님께서 알려주세요.

개인적인 고민에도 사회적으로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었습니다. 장애아동이나 중증환자를 돌보는 가족에게 마음공부도 필요하지만 사회안전망도 필요합니다. 행복시민의 역할에 대해 물은 질문자에게 스님은 두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내가 어리석은 것을 깨우쳐서 행복으로 나아가는 ‘수행’이에요. 다른 하나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불평등을 해소하고, 불공정을 시정하고, 사회를 평화롭게 하는 ‘사회운동’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아픔을 외면했다가 자기 문제가 되어서야 뼈저리게 후회하곤 합니다. 한쪽만으로는 부족해요. 두 가지를 함께 해야 합니다.

사회 문제라고 하면 멀게 느껴지지만 세금을 어떻게 걷고 쓸 것인지 정책에 따라 우리 삶이 달라지잖아요. 앞서 질문하신 장애를 가진 부모님도 장애에 대한 기본 정책이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그래서 우리가 낸 세금이 잘 쓰이는지, 정치인들이 공약을 잘 시행하는지 감독도 해야 돼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투표할 때만 민주주의가 작동합니다.

사회문제는 관심 없이 수행만 해서도 안 되고, 자기는 안 고치고 남 탓만 하는 사회운동만 해도 안 돼요. 행복시민이란 자기 마음공부를 하면서 사회변화를 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스님은 30분간 자세히 설명해주었고, 질문자는 씩씩하게 대답했습니다.

“네. 행복학교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개인 행복지수와 사회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모두 박수)

“굉장하네요.”(웃음)

마지막으로 질문자들의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새벽 3시에 청소기를 돌리고 세탁기를 돌리는 아래층 아주머니 때문에 함께 거주하는 장애인들이 힘들어해서 고민이었던 질문자는 웃으며 “스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소통해보고 안 통할 때는 제가 아래층 여사님을 좋은 곳으로 취직시켜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의 이야기만 듣고 어떤 판단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잘잘못을 따지는 게 아니라 ‘마음을 어떻게 써야 치료가 되느냐’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상대가 괜찮은 사람이지만 내가 원하는 수준은 안 돼요. 같이 살려면 내가 기대를 낮춰야 돼요. ‘그 정도도 훌륭하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다.’ 이렇게 생각하면 매사에 괜찮은 사람입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은 세 시간 가까이 법회를 하고도 ‘다 못해서 죄송합니다.’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나들이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꽃비가 날리고 있었습니다. 스님과 참가자들은 정겹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했습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스님은 행복학교 참가자들이 변한 모습을 보고 뿌듯해 했습니다.

“행복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이 이렇게 빨리 변하는 걸 보니 자리를 잘 잡을 것 같다. 그래도 시간이 오래 걸릴 거야. 5G, 3D, VR 등...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이제 무엇을 해야 참신할까?”

내일은 마을 어르신을 모시고 두북 정토수련원을 출발해 쌍계사로 봄나들이를 다녀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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