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 엄나무순을 딴 후 오후에는 운문사 학인 스님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저녁에는 경남 MBC에서 마산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아침부터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더니 낮 기온이 무려 24도까지 올라가는 초여름 날씨였습니다. 며칠 전 스님의 속가 누님에게서 엄나무순을 빨리 따러 오라고 연락이 왔었습니다. 엄나무순은 너무 많이 자라면 맛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장비와 장갑을 챙기고 엄나무순을 따기 위해 밭으로 향했습니다. 누님댁에서는 수십 그루의 엄나무를 밭에서 키우고 있었습니다. 전지가위로 순이 달린 가지들을 잘라낸 후 땅에 떨어진 가지에서 엄나무순을 하나씩 따서 박스에 담았습니다.

스님은 키가 높게 자란 엄나무 앞에 사다리를 놓았습니다.

“우리는 저기 높은 데에 열린 것만 따자.”

누님은 연세가 많으셔서 키가 큰 나무에 있는 순은 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다리에 오른 스님은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있는 가지들을 모두 잘라내었습니다. 사다리에 올라간 스님이 쑥딱쑥딱 가지들을 시원하게 쳐내자 누님이 한마디 합니다.

“아이고, 시원하다. 저 높은 걸 우찌 하나 싶었는데, 잘 됐다!”

1시간 남짓 부지런히 순을 따고 나니 2~3박스 정도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아이스박스에 순을 차곡차곡 담은 후 비닐을 덮고 아이스팩을 넣은 후 뚜껑을 닫았습니다.

“일부는 서울에 가져가서 평화재단 손님들을 위해 내고, 일부는 잘 포장해서 오늘 운문사에 강연하러 가면 선물로 드리자.”

엄나무순만 선물로 드리기에는 아쉬웠는지 스님은 밭으로 가서 고소 한 바구니를 따왔습니다. 고소를 정성껏 다듬은 후 엄나무순과 함께 선물용으로 포장했습니다.

점심 식사도 엄나무순을 삶아서 먹었습니다. 스님이 아침에 딴 상추와 엄나무순을 고추장과 함께 쌈을 싸서 먹으니 꿀맛이었습니다.

일을 모두 마치고 12시 30분에 운문사로 향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자 운문사 주지 스님을 비롯해 비구니 스님들이 반갑게 스님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아이고, 법륜 스님 오셨습니까.”

제일 먼저 회주 스님을 찾아뵈러 갔습니다. 회주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드린 후 오전에 딴 엄나무순과 고소를 선물로 전달했습니다. 스님이 직접 따서 포장했다는 말에 회주 스님도 무척 고마워했습니다.

“전법하느라 그렇게 바쁘게 다니시는데 농사는 언제 짓습니까.”

회주 스님은 갈수록 출가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드는 문제에 대해 우려를 말했습니다. 스님도 공감을 하며 대화를 잠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회주 스님에게 5월 30일에 동남아 스님들을 모시고 다시 찾아뵙겠다고 인사한 후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스리랑카, 미얀마, 부탄에 계신 테라밧다 스님들을 일 년에 한 번씩 제가 한국에 초청해서 정토회 견학을 시켜줍니다. 남방에는 비구니가 없잖아요. 그래서 운문사를 반드시 방문해서 비구니 제도를 꼭 보여줍니다. 5월 30일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운문사 대강당에는 70여 명의 학인 스님들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들어서자 큰 박수로 환영했습니다.

2시간 동안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먼저 인사말과 함께 농사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운문사에서는 비구니 스님들이 농사일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운문사 스님들이 농사짓는 것을 엄청나게 높게 평가합니다. 안 그래도 밭일하기 힘든데 법륜스님까지 와서 이렇게 말하니까 부담됩니까.(모두 웃음)

그런데 옛날부터 선농일치라고 해서 농사짓는 것이 마음공부에 큰 도움이 됩니다. 제가 남은 여생에서 마지막으로 개발하고 싶은 것이 농사와 수행을 접목시킨 프로그램이에요. 앞으로 주 4일제가 시행되면 지금처럼 주 3일을 소비적으로 놀게 되면 모두 빚쟁이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주 3일을 농사일을 하면서 마음공부를 하도록 해서 소비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대화는 자연스럽게 수행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총 3명이 질문을 했는데, 그중 수행 점검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학인 스님들이 목말라하던 부분을 잘 해결해 주었습니다.

“저는 출가하고 나서 이곳 운문사에서 강원 생활을 하고 있는데요. 수행을 해야 한다는 말은 많이 듣는데, '어떻게 수행이 되고 있는지 점검을 하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수행을 어떻게 점검해 나가야 할까요?”

“원래 인생은 별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내가 문제를 삼는 거예요. 원래 날씨는 덥기도 하고 춥기도 하고, 비가 오기도 하고 맑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소풍 간다는 계획을 하고 있는데 비가 오면 날씨를 문제 삼는 겁니다. 날씨는 별 문제가 없는데 내가 문제를 삼는 거예요.

이것을 나중에 논리적으로 정리한 것이 ‘다 내 마음이 짓는다’는 뜻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다 내 마음이 짓는다고 하니까 금을 돌이라고 하면 돌이 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일체유심조는 그런 개념이 아닙니다. 본래 뜻은 ‘나의 분별이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에서 일어났다’는 의미입니다.

이 사실을 머리로 알고 있어도 실제 생활에서는 자각이 잘 안 됩니다. 업식이 오랫동안 자동 반응을 해 왔기 때문이에요. 내 반응이 아는 것과 다르게 일어나는 이유는 무의식적으로 바로 반응을 해버리기 때문입니다. ‘무의식적으로 반응한다’, ‘나도 모르게 그랬다’, ‘습관적으로 그랬다’ 이 세 가지 말은 모두 같은 뜻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지’입니다.

지식적으로 무지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반응을 할 때 알아차림이 없는 것이 바로 ‘무지’ 예요. 지혜라는 것은 곧 ‘알아차림’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자동 반응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팔정도에서 말하는 ‘정념’이에요. 이렇게 되려면 연습을 굉장히 많이 해야 합니다. 연습을 안 하면 자기 마음이 자동으로 반응하는 것을 알아차리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벌컥 화를 내놓고도 한참 있다 알게 되기 쉽습니다. 반응을 한 후 수(受)가 일어나고 애(愛)가 일어나고 취(取)가 일어날 때나 겨우 ‘내가 화를 냈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알아차림이 없으면 옆 사람이 ‘너 화냈다’ 이렇게 얘기해줘도 ‘아니, 내가 언제 화를 냈다고 그래!’ 이렇게 나오게 돼요.(모두 웃음)

이렇게 자기 점검을 해나가시면 됩니다. 수행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선할 때는 수행이 되고, 부엌에서 일할 때는 수행이 안 되고, 도반 하고 있을 때는 수행이 안 되고, 혼자 있으면 수행이 되고, 이런 개념이 전혀 아니에요. 외부의 환경은 다 경계일 뿐이에요. 참선 시간이 되면 참선하면서 알아차리면 되고, 걸으면 걸으면서 알아차리면 되고, 대화할 때는 대화하면서 알아차리면 되고, 일할 때는 일하면서 알아차리면 됩니다. 기분 나쁠 때는 기분 나쁜 자기를 알아차리고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공부를 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강원에 있을 때 이런 분별이 많이 일어날까요? 졸업하고 선방에 앉아 있거나 혼자 살 때 분별이 많이 일어날까요?”

“강원에 있을 때요.”

“분별이 많이 일어나니까 자기를 볼 가능성이 더 크죠? 그래서 강원에 있을 때 공부가 더 잘 되는 거예요. 저는 재가자들에게 ‘관점만 잘 잡으면 속세 생활에서도 공부를 잘할 수 있다’라고 늘 얘기합니다. 옆에서 자꾸 긁어주니까 분별이 자주 일어나잖아요. 자기 업식을 알아차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겁니다.

그런데 초심자는 쉽게 휘둘리니까 약간 격리가 필요해요. 초보 운전자가 바로 차 몰고 도로 주행을 하면 안 되잖아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기를 알아차리는 연습을 좀 해서 초견성을 한 후 두 번째로 해야 하는 것이 보림입니다. 사실 초견성은 언하에 깨닫는 경우도 많아요. 늦어도 3년 안에는 이런 이치를 탁 체험을 해서 초견성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일상에서 늘 작용하도록 보림을 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혜능 대사도 언하에 깨쳤는데 보림을 16년 동안 했습니다. 용성 스님도 22살에 오도했는데 세상에 나와 법을 설하기 전까지 보림을 20년 가까이했습니다. 이렇게 보림은 오래 걸립니다. 거지를 해 봐도 평정심이 유지되는지, 장사를 해 봐도 평정심이 유지되는지, 온갖 생활을 다 하면서 확인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부처님 경을 읽으면서도 확인을 해야 됩니다. 내가 주관적으로 체험한 것은 잘못되면 사도로 빠지기 쉽습니다. 경전을 통해서 객관적으로 검증을 해야 됩니다. 반대로 책을 읽고 공부한 것은 알음알이로 끝날 위험이 있어요. 그래서 경험을 통해서 체험적으로 검증을 해봐야 합니다.

지식이 앞서면 체험을 통해서 검증하고, 체험이 앞서면 부처님의 경전을 읽으면서 내가 경험한 것이 부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지, 어떤 오류가 있지 않은지 늘 검증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 공부가 점검이 됩니다. 어떤 사람이 저한테 찾아와서 물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스님, 제가 어느 정도 공부가 됐을까요? 제가 깨달은 것 같습니까?’
‘못 깨달았지’
‘어떻게 알아요?’
‘네가 묻는 거 보니 못 깨달았지.’(모두 웃음)

원칙을 딱 지켜서 공부해야 자기 점검이 됩니다. 그리고 공부하다 보면 깨달았다는 환영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반드시 스승의 점검이 필요합니다. 특히 산에 가서 혼자 공부하면 어떤 순간에 순식간에 사로잡히기 쉽거든요. 책을 많이 읽고 대중생활을 하는 사람은 안주하기가 쉽고, 혼자 독살이하는 사람은 용맹정진은 굉장히 잘하는데 환영에 사로잡혀서 사도로 떨어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객관적인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부처님의 법은 항상 이치에 맞습니다. 이런 좋은 법을 여러분들이 공부해 나간다면 나날이 행복해질 수 있어요. 이 법 이상 가는 건 없습니다.”

학인 스님들은 큰 박수로 스님의 대답에 공감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주지 스님을 비롯한 관계자 분들과 잠시 차담을 나눈 후 운문사를 나왔습니다.

저녁 강연이 열리는 경남 MBC홀로 향했습니다. 스님은 강연이 시작하기 20분 전에 경남 MBC홀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은 걸음을 재촉하며 강연장으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저녁식사로 간단히 김밥 몇 개를 먹은 후 무대에 올랐습니다.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한참 동안 뜨거운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청중은 천백여 명이었지만 스님은 마치 한 사람과 대화하듯 인사를 건넸고, 청중도 대답을 했습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셨어요? 따뜻한 봄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은 농사일이에요. 저는 오전에는 농사일을 하고 오후에는 운문사 학인 스님들에게 법문을 하고 마산으로 왔습니다.

저는 매일 돌아다니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한 곳에 있으니까 지루하죠? 저는 지루한 줄은 몰라요.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매일 돌아다니는 사람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사냐’라고 하고, 한 곳에 있는 사람은 ‘매일 한 곳에서 답답해서 못살겠다’라고 해요. 그런데 돌아다니는 인연이 되면 돌아다니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한 곳에 있으면 한 곳에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는 걸 ‘긍정적 사고’라고 합니다. 있는 건 있어서 문제고 없는 건 없어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부정적 사고예요. 사람들은 대부분 부정적으로 사고합니다. 그래서 늘 불만이 많아요. 긍정적으로 사고하면 아주 좋아요.

옛 선사의 일화 가운데 긍정적 사고가 무엇인지 대표적으로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있어요. 어떤 할머니에게 두 딸이 있었어요. 큰딸은 짚신장수와 결혼을 하고, 작은딸은 나막신장수와 결혼을 했어요. 짚신은 맑은 날 신고, 나막신은 비 오는 날 신잖아요. 그래서 이 할머니는 비가 오나 날이 맑으나 항상 걱정을 했어요. 비 오는 날은 짚신장수 딸을 걱정하고, 맑은 날은 나막신장수 딸을 걱정하는 거예요. 이런 고민을 스님에게 이야기했더니, 그 스님이 비 오는 날은 ‘나막신 장사가 잘 되겠네’라고 생각하고 맑은 날은 ‘짚신 장사가 잘 되겠네’라고 생각하라고 했대요. 그 이후로 할머니는 항상 웃고 살았다고 해요.

이것을 ‘관점의 전환’이라고 합니다. 수행은 애를 써서 오는 비를 막고, 맑은 날에 비를 내리게 하고, 젖지 않는 신발을 발명하는 게 아니에요. 관점을 바꾸면 아무 노력을 안 해도 지금 이대로 좋아져요.

오늘 질문이 많네요. 이야기 들어보나 마나 다 부정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에요. (모두 웃음) 자, 이제 사연을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객석에서는 여기저기서 ‘그렇제, 맞제’하는 찰진 추임새가 들렸습니다. 오늘은 총 여섯 명이 질문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 긍정적 사고방식이 무엇인지 보여준 질문자와의 대화를 소개해드립니다.

“저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왔는데 저에게 질문할 기회가 온 것은 장애를 가진 덕분이 아닌가 싶어요.

저는 평생에 한 번도 오기 어렵다는 장애의 기회가 두 번 왔어요. 10대, 20대에는 장애인과 함께하는 삶을 살려고 공부도 하고 관련한 직업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서른 살에 큰 교통사고를 당해서 한 쪽 다리를 잃었어요. 주변에서는 굉장히 슬퍼했지만 저는 누워서 아무것도 못하는 환자에 비하면 다리 하나 없는 것쯤은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원래 열정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다리를 잃은 후에도 열정적으로 살았는데 작년에 뇌에 문제가 생겼어요. 그래도 누워있는 환자에 비해서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또 패혈증이라는 병이 왔어요. 그 병에 걸리면 90%는 죽는다고 합니다. 또 그 병에서 회복되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죽는 게 낫다고 하는 사람도 많아요. 저도 정말 극도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었고, 10분 정도 저승을 경험했어요. 죽음을 경험하고 나니까 가슴속에 있던 열정이 사라졌어요. 제가 원래 기쁨도, 화도, 슬픔도, 사랑도 크게 느끼는 사람이었거든요. 이제 감정이 크게 느껴지지 않아요. 사람들은 요즘 제가 편해 보여서 좋다고도 하는데 굉장히 허전하고 허무해요.”

“우선 격려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 분의 사고방식이 바로 긍정적 사고방식이에요. 우리는 다리를 하나 잃으면 ‘사고만 안 났으면 나도 걸어 다닐 텐데’라고 생각하잖아요. 이게 부정적 사고예요. ‘그 정도 사고를 당하면 살기 어려운데, 나는 다행히 다리 하나만 잃었구나. 부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긍정적 사고라고 해요.

‘차 떠난 뒤에 손들기’란 말이 있죠.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나도 한 때 잘 나갔는데’, ‘나도 부자였는데’, ‘나도 젊을 때는 예뻤는데’ 자꾸 이렇게 지나가버린 것을 생각하면서, 현재의 자기를 부정합니다. 이 부정적 사고가 괴로움의 원인입니다. 질문하신 분은 긍정적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비록 사고로 다리를 하나 다쳤고 또 큰 병을 앓아도 다른 사람에 비해서 괴롭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죽음을 경험한 후 열정이 사라져서 고민이라고 하셨는데, 행복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해요. 사람들은 보통 즐거움이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즐거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감퇴하는 법칙이 있습니다. 누가 저에게 ‘스님, 어려운 데 쓰십시오’ 하면서 매달 100만 원을 보시하면, 기분이 좋겠죠? 그런데 이번 달에 처음 돈을 받을 때와 다음 달에 받을 때 그다음 달에 받을 때 기분이 똑같을까요, 갈수록 조금씩 기분 좋은 정도가 낮아집니다. 3년쯤 지나면 기분 좋음이 반으로 떨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3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100만 원이냐’ 이런 생각이 들고 기분이 나빠져요.(모두 웃음)

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면 살면 살수록 점점 좋아집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자기가 보기에 이 세상에서 제일 괜찮은 사람과 결혼하기 때문에 결혼 생활이 힘들어져요. 좋은 사람을 구했기 때문에 기대가 높은 거예요.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기대에 그 사람이 못 미치는 겁니다. 다른 남자를 만났으면 괜찮았을 것 같지만 이 남자를 만나도 불만, 저 남자를 만나도 불만이 생겨요. 그 사람의 실력이 100인데, 내가 200을 기대하면 엄청나게 실망스럽습니다. 그런데 내가 50을 기대했는데 그 사람의 실력이 100이면 ‘아 그 사람 정말 괜찮더라’ 이렇게 평가해요. 실제로 실력이 높아서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남편이나 아내에게 실망한다면 그 사람의 문제일까요, 내 기대가 높아서 그럴까요? 기대가 높은 거예요. 100을 기대했는데 50이니까 실망을 하는 겁니다. 실망해서 헤어지면 그 50마저도 없어지니까 허전합니다. 그래서 또 후회를 해요. 연애든 결혼이든 좋음이 있으면 반드시 괴로움이 뒤따라와요. 이것은 피해 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 인생이 널뛰기를 하는 거예요.

어떤 현상이든 그 현상이 일어날 만한 원인이 있습니다. 기분 좋음을 행복으로 삼으면 필연적으로 기분 나쁨이라는 괴로움이 따라옵니다. 이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사람이 죽어서 새가 되고 말이 되고 개가 된다고 하는 것은 힌두교의 문화관이에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윤회란 즐거움과 괴로움이 돌고 돈다는 뜻입니다. 윤회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즐거움에 집착하지 않으면 괴로움도 같이 없어집니다. 괴로움이 완전히 소멸되면 즐거움도 같이 없어집니다. 이것을 열반이라고 해요. 그러면 마음이 들뜨지도 않고, 가라앉지도 않는 평정심이 유지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굉장한 기대를 하고 실망을 하고, 즐거웠다가 괴로웠다가를 반복합니다. 저녁에 술 먹을 때는 좋고 아침에 토할 때는 괴롭고, 취직할 때는 좋고 막상 직장에 다닐 때는 괴롭고, 연애할 때는 좋고 헤어질 때는 괴로워요. 늘 이렇게 반복하는 인생을 삽니다.

질문자는 한 번 죽다가 살아나는 경험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희로애락에 대해 널뛰기가 없어진 겁니다. 큰 고생을 하고 나면 작은 일들은 별일이 아니잖아요. 누구 집 아들이 대학에 붙었다 떨어졌다 이런 것은 큰일이 아닙니다. 떨어지면 한 번 더하면 되지 뭐 큰 일이에요. 이혼을 했다는 것이 큰 일이에요? 못 가본 사람도 있는데, 한 번 가봤으면 됐지 뭐가 큰 일이에요.

세상 사람들은 들뜨지도 않고 가라앉지도 않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잘 안 됩니다. 좋음에 집착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경험해버리면 어떨까요? 아무리 집착을 하려고 해도 잘 안 됩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때는 질문자에게 아주 잘 된 일이에요. 잘 된 일인데 뭐가 문제일까요? 막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흥분하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수행을 하다가 ‘사는 의미가 없네’라고 생각하고 자살하는 사람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러니 사는 데까지 사세요.(모두 웃음과 박수)

그런데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나쁘다고 해도, 자기가 굳이 한번 해보겠다 할 때는 해야 됩니다. 자기가 선택하는 거예요. 나는 감정이 들쭉날쭉하고 두근두근하는 게 좋다면 남은 인생이 괴롭지요. 이미 벌써 한 번 죽었다 깨면서 ‘인생이 별거 아니구나’를 깨달았는데, 새삼스럽게 두근두근해지려고 노력해도 그렇게 안 돼요.

질문자는 자연스럽게 죽음을 경험하면서 희로애락에 덜 물드는 경지가 되었으니까 그냥 밥 먹고 살면 됩니다. 뭐가 되면 뭐해요? 재벌이라고 하루에 5끼 먹나요? 미국에서 뚱뚱한 사람 중에 부자가 많을까요, 가난한 사람이 많을까요?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요. 배 안 곯고 다니면 되고, 벌거벗고 안 다니면 되고, 추위에 안 떨면 되고. 살아있으면 된 거예요.”

“스님 제가 정말 괴로웠거든요. 너무 감사합니다.”

질문자는 밝은 목소리로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수술 후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 우울증까지 겪어 병원에 소송을 걸었는데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요?
  • 승복은 왜 회색이고, 가사 왜 주황색인가요? 이천 년 전 스님들은 어떻게 옷을 염색했나요? 또 30대 남녀 중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은 월급에서 세금을 절반은 내면 좋겠습니다.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무례하고 몰상식한 어른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
  • 주식투자가 부처님의 오계 중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는 것을 어기는 것인가요?

스님은 승복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부처님 당시 수행자가 옷을 입던 법에서부터 지금까지 승복이 변하게 된 과정과 본래 정신에 대해 재미나게 알려주었습니다. 다섯 명의 질문을 받고 나자 아홉 시가 넘었습니다.

“제가 말이 길었네요 죄송합니다. 한 분만 더 하고 마치겠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70대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의 이야기에 청중은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지는 휴대폰에 스님 즉문즉설을 넣어가지고 매일 2년을 들었습니다. 제가예. 자식 하고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우리 아저씨하고 사이가 안 좋습니다. 지난번에 스님 오셨을 적에 남편과 사이가 안 좋다고 질문을 해서 기도문을 하나 받았습니다. 그 뒤로 제가 마음속으로 계속 외웠습니다. 그래서 우리 남편한테 이혼을 요구했어요. 그래서 이혼을 했습니다.(모두 웃음) 이혼을 했는데요. 한집에 살자고 하더라고 예.(모두 웃음) 그래서 한집에 살고 있는데, 자기하고 나하고 남인데 제가 밥을 다 해주고 빨래를 다 해줍니다.(모두 웃음) 근데 이 아저씨가 한번씩 기분이 안 좋으면 저를 또 마누라한테 하는 식으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나는 남입니다 당신 마누라 아닙니다’라고 말했어요.(모두 웃음) 또 성질을 부리길래 ‘제가 1층으로 갈까예?’ 하니까 2층에 같이 살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또 유투브를 듣고 마음을 달래고 사는데예. 스님, 제가 스님이 주신 기도문을 받고 가서 이혼을 했나봐예. 이제 한집에 살면서 화가 안 나고 아저씨가 저한테 잘하는 기도문이 없습니꺼. 기도문 하나 해주이소.”(모두 웃음)

“보살님 참 똑똑하세요. 아저씨가 화내면 ‘나 네 마누라 아니다. 착각하네. 자꾸 그러면 나 1층으로 내려 간다.’라고 하신다잖아요. 저 정도로 줏대가 있어야 됩니다.”

“잘하고 있는 겁니까?”(모두 웃음)

“네. 잘하셨어요. 이제 그 집에 살아도 내가 선택해서 살고, 나가도 내가 선택하는 거니까 보살님 좋을대로 하면 돼요. 그 집에 사는 거 보니까 그래도 같이 사는 게 좋은가 보네요. 원래 기도문이 뭐였어요?”

“그래도 남편이 죽는 거 보다는 낫다.”(모두 웃음)

“아직도 그 기도문이 유효합니다.”(모두 웃음)

실컷 웃고 나서 마지막으로 질문자들의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실제로 정신질환을 겪어보니까 마음이 마음대로 잘 안됐습니다. 스님 말씀 들으면서 정신질환에 대해 잘 몰랐다는 걸 알았습니다. 장애를 가지신 분 이야기를 들으며 용기를 얻었습니다.’

‘죽음을 경험한 덕분에 자연스럽게 수행이 된 거였네요. 감사합니다.’

‘홀가분합니다. 장애를 가지신 분 이야기 듣고 내 이야기가 별거 아니구나 하고 돌아봐졌어요.’

‘지는 법륜스님 알고부터 마음이 참 즐겁고 편할 때가 많고예. 남편하고 이렇게 같이 살고 있어도 주인은 나입니더. 즐겁게 살겠습니더.’

스님은 행복할 권리를 향유하라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누가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어리석어서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고 삽니다. 괴로워하면서 살 이유는 없어요. 어떤 사람도, 어떤 상황에 처해도 큰 병을 앓고 장애를 앓아도 살아있는 동안은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 권리를 향유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입니다. 감사합니다.”

살아있는 행복이 마음 가득히 퍼지는 저녁이었습니다. 스님은 책 사인회를 마치고 봉사자들과 기념촬영을 한 후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했습니다.

내일은 무안 미륵사에서 즉문즉설 법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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