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신라문화원 개원 26주년 기념 초청 강연에서 ‘한반도 평화공존의 지혜’를 주제로 강연했습니다.

봄기운이 완연한 따뜻한 봄날입니다. 스님은 그동안 미뤄두었던 화단 정리를 했습니다. 큰 돌들이 어수선하게 놓여 있어 대중이 다니기에도 불편하고 꽃을 심기도 어려웠는데, 다시 돌을 쌓고 깨끗하게 정비를 했습니다.

나무들이 어수선하게 높이 자라 있어 이발을 한 것처럼 깨끗하게 가지치기를 해주었습니다.

밭에는 비료를 뿌렸습니다. 물도 듬뿍 주었습니다. 조그마한 텃밭이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손이 가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고소가 쑥쑥 자라고 있었습니다.

“고소가 너무 많이 자라면 질겨서 맛이 없어져.”

스님은 제법 크게 자란 것들만 따로 뽑았습니다. 고소를 뽑은 곳에는 다시 물을 듬뿍 주었습니다.

“자, 할 일 없는 사람들은 여기 와서 고소 다듬자.”

바구니에 담아 온 고소를 하나씩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하나 칼로 다듬으려니 시간이 제법 걸렸습니다.

다듬은 고소는 물로 수차례 깨끗이 씻어내었습니다. 아침 일찍 상추도 많이 뽑아서 씻어두었는데요. 오늘 뽑은 고소와 상추는 모두 서울로 가져갈 수 있게 포장했습니다. 이번 주에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을 위해 밥상 위에 올려질 예정입니다. 늘 자원봉사로 평화재단을 도와주는 분들을 위한 스님 방식의 감사함의 표현입니다.

농사일을 마친 후 오후 5시에 저녁 강연이 열리는 경주로 출발했습니다. 강연 시작 전 신라문화원 관계자들과 국수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스님을 초청한 진병길 신라문화원 원장님이 스님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스님이 “비싼 한정식 집이면 안 가겠다. 간단한 국수 정도면 괜찮다”라고 해서 국수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원장님은 스님이 젊은 시절에 청소년 불교학생회를 지도할 때 제자였던 분입니다.

국수집은 스님이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 다닐 때 지나다니던 길에 있었습니다. 스님은 큰 은행나무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며 잠시 가 보기도 했습니다.

국수를 가볍게 먹고 난 후 강연이 열리는 서라벌 문화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행사를 주최한 신라문화원은 경주의 특징을 살린 문화재 교육, 보존, 활용사업을 하며 신라문화의 현대적 가치 재창출과 문화·예술·관광분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 오고 있습니다. 개원 26주년을 맞아 기념식과 법륜스님의 초청 강연을 열었습니다. 스님은 ‘한반도 평화공존의 지혜’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

530석의 강연장은 시작 전부터 꽉 찼습니다. 늦게 오신 분들은 뒤에서 서서 들었습니다. 스님, 동국대학교 불교학생회 학생들을 포함하여 8백 여명의 경주시민이 참석했습니다.

신라문화원 개원 26주년 기념 영상을 보고 진병길 원장님이 인사말을 한 뒤 스님이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올랐습니다. 스님이 삼배와 청법가를 마다하자 주최 측에서는 삼배를 대신하여 꽃다발을 전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경주 신라문화원 창립 26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주요한 내빈들도 많이 계신데 제가 강의를 하게 되어 송구한 마음도 있습니다.

오늘은 인생에 대한 즉문즉설이 아니라 통일에 대한 즉문즉설을 하는 자리입니다. 개인 문제는 다음 주 25일 경주 동국대학교에서 물어주세요. 오늘은 신라가 어떻게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는지, 현재 우리 시대의 과제인 남북통일을 하는데 신라로부터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여러분의 질문을 받겠습니다.”

도시 전체에 신라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경주 시민들이어서인지 오늘 주제에 대해 관심이 뜨거웠습니다. 스님은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역사에는 늘 결과가 남습니다. 결과가 좋으면 처음부터 잘했다고 기록하고 결과가 나쁘면 처음부터 못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래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처럼 결과적으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기 때문에 신라는 처음부터 나라가 아주 강한 나라였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사 전체에서 보면 신라는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였어요.

우리 민족의 뿌리는 환인의 한나라입니다. 지금의 중국이나 몽골 서쪽에 있었다고 추측해요. 한나라에서 한 무리가 갈라져 나와 환웅이 배달나라를 세웠습니다. 이 나라가 바로 우리 민족이 세운 첫 국가였어요. 배달나라는 지금의 요녕성(랴오닝성) 서쪽 또는 외몽골 자치구 남쪽, 하북성(허베이성) 북쪽 지역인 적봉과 우하 와량이라는 지역에 해당합니다. 이렇듯 우리 민족이 활동했던 주요 무대는 한반도가 아니라 대륙이었어요. 배달나라는 시간이 지나 단군의 조선 나라로 바뀌었습니다. 단군의 조선 나라가 멸망하고 그 일부가 동쪽으로 이동해서 세운 나라가 부여입니다. 또 다른 일부는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와서 한반도에 일부 부족 국가들을 세우거나 일본으로 건너가서 나라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주류는 부여였어요. 부여를 계승한 나라는 동부여, 고구려, 백제였습니다.

우리 민족의 주류 문화를 계승한 나라는 고구려와 백제였고 신라는 아니었어요. 신라는 선진문물을 받아들인 게 아니라 한반도에서 토착적으로 일어나서 조금씩 발전한 나라입니다. ‘박혁거세가 나라를 세웠다’라고 할 때 그 ‘나라’가 고대 왕국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부족이 만들어졌다고 이해하셔야 합니다. 신라 지역에 있었던 여섯 개 씨족이 모여서 하나의 지역공동체인 부족을 만든 거예요. 그러다가 영토를 안강, 울산, 영천 지역까지 넓히면서 조금씩 커졌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왕’이라는 칭호도 없었어요. 박혁거세는 거서간이었고, 2대는 차차웅, 그다음부터는 이사금, 그러다가 마립간이라는 칭호를 썼습니다. 22대가 되어서야 왕이라는 칭호를 썼습니다. 22대 지증왕이 왕위에 오른 게 500년입니다. 신라가 BC 57년에 나라를 세웠다고 하지만 557년간은 왕국이라고 할 수 없는 부족 연맹 수준이었어요. 거기에 비해 고구려나 백제는 이미 거대한 왕국이었습니다. 그 당시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와 힘을 겨룰 수 있는 하나의 국가 수준이 아니었다는 얘기예요.

오늘 얘기하고 싶은 요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한반도의 동쪽에 치우친 작은 나라일 뿐 아니라 문화도 뒤처졌던 신라가 어떻게 민족사에 주류로 등장하게 됐을까요? 어떤 계기로 신라는 비약적 발전을 하게 됐을까요? 이 점은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중요한 내용입니다. 둘째, 민족사의 비주류였던 신라가 주류로 등장하면서 뭘 잃어버렸을까요? 이 점은 비판적으로 고찰해봐야 합니다. 경주 사람이라고 무조건 신라만 다 잘했다고 하면 안 돼요. (모두 웃음) 신라의 결과적 승리만 기록하다 보니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잘 몰라요. 우선, 신라가 원래 민족사의 주류가 아니다 보니 민족 자주성이 좀 약해요. 그리고 반도의 동쪽에 치우친 작은 나라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광활한 대륙에 대한 야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사가 축소돼버렸어요. 민족사 전체로 보면 축소가 됐고, 신라를 중심으로 보면 신라가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했죠.

우리는 지금 남북통일의 과제가 있습니다. 통일을 하는데 신라로부터 꼭 배워야 할 것을 배우는 동시에, 신라가 잃어버렸던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 유의해야 합니다. 신라를 보며 성공의 사례도 배워야 하고, 실패의 교훈도 얻어야 해요.”

스님은 먼저 작은 부족 연맹이었던 신라가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설명했습니다. 신라는 가야와 평화적으로 통일하면서 비약적 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신라가 어떻게 가야를 포용해서 평화적 통일을 이루었는지, 그리고 현재 우리는 어떻게 북한을 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생생한 이야기였습니다.

“신라는 가야와 통일한 지 30년 만에 백제보다 훨씬 더 큰 영토를 차지하고 고구려를 위협할 정도의 국가로 성장을 했어요. 이건 가야와 평화적으로 통일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가야와 신라가 싸워서 통일을 했다면, 통일은 했을지 몰라도 가야의 저항이 거셌을 겁니다. 가야 부흥 운동 같은 저항이 거세서 신라가 발전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런데 가야와 합의 통일을 한 시너지 효과로 전보다 영토가 세 배 가량 확장됐습니다. 그렇게 국력이 커지자 기존의 반월성은 작아서, 새로운 궁궐을 크게 짓다가 용이 나와서 그 터에 황룡사를 지었어요. 왕궁을 지으려고 터를 닦다가 절을 짓는 바람에 동양에서 제일 큰 절터라고 할 만큼 어마어마한 절을 짓게 된 거예요. 그때 신라의 국력이 폭발적으로 커진 덕분에 그렇게 큰 절을 지을 수 있었는데, 국력이 커진 원인은 바로 가야와의 평화적 통일이었습니다. 이게 통일의 시너지 효과예요. 1+1이 2가 되는 게 아니라 3이 되고, 5가 되고, 10이 됐어요.

우리도 오늘날 우리의 상황에 빗대어 이 교훈을 생각해 봅시다. 남북한이 전쟁을 통해서 통일을 한다면 남북한이 전쟁하는 통에 중국이 앞서가고 일본도 앞서가서 우리가 ‘낙동강 오리알’이 됩니다. 동남아보다도 뒤처질 위험이 있어요.

그런데 남북한이 평화적으로 통일을 한다면 어떨까요? 남북한이 전쟁을 한다면 통일은 할 수 있어도 남한이 이기면 중국하고 원수가 될 가능성이 크고, 북한이 이긴다면 일본이며 미국 하고 원수가 될 가능성이 크죠. 그러면 어느 쪽이 이기든 통일을 해도 통일의 시너지 효과가 없습니다. 엄청난 손실만 따르죠. 그런데 평화적으로 통일하면 우리의 우방인 미국과 일본은 물론 북한의 우방인 러시아와 중국까지도 다 통일된 국가에서 협력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우리가 지금 우리의 경쟁상대를 일본이나 중국이나 러시아로 본다면 북한을 포용해서 통일을 해야 하겠죠. 그런데 아직도 ‘6.25 때 원수를 꼭 갚아야 한다!’라면 우리는 아직도 경쟁상대를 북한으로 보고 있는 거예요.

북한의 국력은 GDP로 비교했을 때 남한의 50분의 1입니다. 지금 죽기 살기로 덤빈다곤 하지만 이런 상대를 꼭 경상도 말로 ‘갋아가지고’ 본때를 보여주는 게 좋을까요? 6.25 때 겪었던 상처를 생각하면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죠. 그러나 우리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 문제를 우리가 극복해야 합니다. 통일된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 국가가 된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면 북한도 포용할 수 있어요. 그런 꿈이 없이 ‘북한만 이기면 된다’라고 생각하면 끝까지 한번 싸워볼 수도 있겠죠.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통일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건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통일 문제를 이야기할 때 독일에서 교훈을 얻자는 사람이 많습니다. 동시대에 다른 국가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베트남이나 예멘보다는 독일 통일이 비교적 우리와 가깝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역사 속에서 교훈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찾아보면 우리 역사 속에서도 교훈이 되는 사례가 있습니다. 신라와 가야가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었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집니다. 저는 가야와 신라의 통합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는지를 발표하는 학자는 아직 한 명도 못 봤어요. 늘 남의 나라 얘기만 합니다. 경주가 지금은 좀 보수적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만큼 포용적인 면이 있었기 때문에 삼국이라는 세 발 중의 한 발로 굳건히 설 수 있었던 거예요.”

신라와 가야의 평화적 통일을 들으며 현재 우리는 어떤 통일을 이루어야 할지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신라의 한계를 짚으며 우리가 새겨야 할 교훈에 대해서도 알려주었습니다.

“신라는 외세의 힘을 빌려서 무력으로 삼국을 통일했어요. 그래서 후유증이 생겼습니다. 첫째, 신라의 원래 영토보다는 영토가 늘었지만 민족사 전체로 볼 때 민족의 활동 영역이 확 줄어버렸어요. 두 번째, 패배한 쪽에서 원한을 갖고 있었기에 신라가 힘이 약해지니까 후백제가 생기고, 또 후 고구려가 생겼어요. 그런데 후 가야가 생겼다는 말은 못 들어봤잖아요. 가야와는 평화적으로 통합했기 때문입니다. 힘으로 통합을 하면 언젠가 분열이 생겨요. 그래서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잘 살펴야 해요. 신라와 가야의 통합은 비약적 상승효과를 가져오는 원동력이 된 반면, 신라의 삼국 통일은 민족사를 축소하고 나중에 다시 분열을 겪게 되는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남북통일을 할 때 신라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은 첫째, 남한 중심으로 평화롭게 통일을 해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남북한을 떠나서 공평하게 얘기해야 할 텐데 스님이 남한에 산다고 너무 남한 중심으로 얘기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실 수 있죠. 저는 아무리 남북한을 동등하게 본다 해도 통일하려면 제도나 여러 측면에서 봤을 때 남한 중심으로 통일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물론 남한도 개선해야 할 문제가 많겠지만, 통일은 남한을 중심에 놓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남한 중심으로 통일하되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평화적으로 해야 해요. 평화적으로 통일하려면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게 포용이에요. 그래야 합의통일을 할 수 있고, 합의통일을 해야 통일 이후의 시너지 효과가 나요. 그리고 우리의 경쟁 상대를 북한으로 보지 말고 중국이나 러시아, 일본 같은 세계적인 국가로 봐야 해요. 그런 국가들과 꼭 힘으로만 경쟁하는 게 아니라 문화적으로 경쟁을 해서 21세기 후반에는 통일을 넘어서서 우리가 세계 문명의 중심 국가로 등장하는 걸 목표로 삼아야죠. 그러면 우리는 지난 100년의 아픔을 극복하는 것을 넘어서 발해 멸망 이후 1100년 동안 우리가 잃어버렸던 꿈을 되찾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너무 통일을 부정적으로 보지 마세요. 그러나 통일을 하되 절대로 전쟁은 안 돼요. 평화적으로 해야 합니다. 평화적으로 하자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이루어놓은 것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에요.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민주적으로 이뤄놓은 성과를 잃어서는 안 되잖아요. 또 현재의 남한만으로 세계적 국가들과 경쟁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남북이 통일을 하면 국가의 규모가 커져서 인구나 영토 면에서 이탈리아, 영국, 독일, 프랑스와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 됩니다. 우리가 그런 꿈을 한번 그려본다면 어떨까요? 저는 경주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좀 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은 동의하지 않으십니까?”

청중은 큰 박수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저는 매년 두 가지 역사기행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경주에서 신라의 역사를 살펴보고, 또 하나는 중국에 가서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살펴봐요.

경주 역사기행에서 제가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신라와 가야의 평화적 통일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느냐’ 예요. 두 번째, 좀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 신라가 삼국 통일의 주역이 된 것을 너무 나쁘게만 평가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래도 김유신은 당나라 하고 싸울 배짱이 있었어요. 오늘날 정말로 민족의 이해가 달려 있다면 우리도 중국이나 미국하고 당장 맞붙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할 텐데, 그럴 각오가 없잖아요. 신라 사람들이 당나라 하고 협력하긴 했지만, 마지막에는 자주성을 위해서 그 거대한 당나라와 8년 동안 전쟁을 할 배짱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신라의 삼국통일을 너무 비판적으로만 보면 안 돼요.

그리고 고구려, 발해 역사를 살펴볼 때는 한반도가 우리 영토의 중심이 아니라 대륙이 원래 우리의 중심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땅을 되찾자!’는 게 아니라 우리의 포부가 커야 한다는 뜻이에요.

스님과 불자에게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신라의 이차돈은 종교를 넘어서서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한 몸 던졌습니다. 이차돈의 순교는 신라와 가야가 통일을 하는데 획기적 계기가 되었어요. 그리고 선덕여왕이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황룡사 9층 탑을 세우면서 동시에 삼한일통(三韓一統)을 발원했어요. 황룡사 9층 탑을 세우고 삼한일통을 발원한 지 30년이 안 돼서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황룡사 9층 탑과 사천왕사지, 그리고 ‘이 절이 망하면 나라가 망하고 이 절이 흥하면 나라가 흥한다’라고 했던 천룡사도 복원해야 합니다. 제가 승려라서 절을 짓자는 의미로 말씀드리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평화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이루어내려면 이런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지금도 충분히 먹고살만한데도 늘 경제생활에 찌들려서 큰 꿈이 없어요. 불교식으로 표현하자면 원(願)이 없어요. 우리가 원을 좀 크게 가지고 꿋꿋이 정진을 해야 하는데 그런 것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에게는 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소승(小乘)은 계율이 중요하고 대승(大乘)은 원이 중요해요. 소승은 계율을 어기면 안 되고 대승은 원을 놓으면 안 됩니다. 원만 있다면 대도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여기 오신 여러분은 개인적으로도 다 원을 가지고 꾸준히 정진을 하시고, 우리 공동체인 대한민국의 발원을 위해서도 함께 큰 원을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이 올해로 100년을 맞았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년이에요. 지난 100년은 참 험난했지만, 미래 100년은 통일된 대한민국이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되는 꿈을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그 첫걸음이 통일입니다. 통일은 목표가 아닙니다. 통일은 다만 첫 걸음입니다. 통일된 대한민국이 세계 문명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원이지, 통일만이 원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이 그다음 시너지 효과를 가지려면 반드시 평화적으로 합의 하에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모두 박수)

거침없이 한 시간 반이 흘렀습니다. 이천 년 전 신라에서부터 천년의 꿈이 이루어진 통일 대한민국이 펼쳐졌습니다.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인사를 나눈 뒤 스님은 밤새 서울로 이동했습니다. 내일은 경기도 성남과 서울 양천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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