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정초 정회원 순회법회 여섯째 날로 창원에서 하루 종일 법회가 열렸습니다.

스님은 오전 10시에는 창원법당 개원 법회 축하 법문을 하고, 오후 2시에는 경남지부 주간반 정회원을 대상으로, 저녁 7시 30분에는 경남지부 저녁반 정회원을 대상을 법문을 하였습니다.

새로 자리를 잡은 창원 법당에 들어서니 넓은 창밖으로 정병산과 용지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졌습니다. 일찍 법당에 도착한 사람들은 도반들과 함께 창밖의 풍경을 즐기며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10시 법회 전 일찍 도착한 스님도 법당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오늘 이곳에 창원법당을 개원하기까지 8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2011년 4월, 창원에 법당을 개원했으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더 큰 법당이 필요했습니다. 경남지부에서는 8차 천일결사 때부터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2015년부터 모연을 시작하여 계약금과 시설 수리비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겨울 이곳에 계약한 후 직접 대중들의 손으로 이사하고 정리까지 마쳤습니다.

창원 지역에서 정토회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중심적으로 활동해 온 정홍자님에게 이번 법당 개원의 과정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창원은 계획도시라 우리가 원하는 위치로 이전하려면 월세가 정말 비쌌어요. 8년 동안 계속 공간을 알아보다가 지금 이곳으로 이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불사 모연에 창원법당 회원들을 중심으로 경남지역의 모든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동참을 해주셨습니다. 창원법당 회원들은 예전에 법당을 마련할 때도 본부의 지원 없이 회원들이 백 프로 모연을 해낸 전통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본부에 부담을 주지 말자고 마음을 모았고, 회원들이 백 프로 모연을 해서 마련했습니다.”

개원을 축하하기 위해 경남 각 지역에서 240여 명이 모였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쁨과 함께 불사를 이뤄낸 뿌듯함이 배어있었습니다.

10시가 되자 개원식이 시작되었고, 첫 순서로 불사 경과보고가 있었습니다. 경과보고 후 불사를 완수하기까지 대중들이 건물을 찾으러 다니고 청소하고 수리한 영상을 보니 더욱 감회가 새롭고 울컥했습니다.

이어서 유수 스님이 환한 미소로 수고하신 한 분 한 분의 공로를 격려하며, “열심히 정진하는 도량이 되어 정진과 전법으로 우리 사회에 기여하자”라고 축사해주었습니다.

특별한 날인만큼, 특별 공연도 있었는데요. 창원법당 임현숙 님의 청아한 오카리나 연주와 졸업률 100%인 마산법당 봄불교대생들의 즐거운 공연에 대중들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법륜스님의 개원 기념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침 정초 순회법회 기간이라 스님의 법문을 직접 청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먼저 한 분 한 분, 보이게 보이지 않게 애쓴 분들의 노고를 빠짐없이 축하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 진정한 도량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절이라고 하면 자꾸 기와집 건물을 생각하지만, 부처님 당시에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절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건물을 뜻하는 게 아니라 수행자들이 머무르는 공간을 절이라고 해요. 그러니 ‘어떻게 집에서 법회를 하나?’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가정집이라고 해도 거기서 법문이 이루어지면 그곳이 절입니다. 식당에서라도 법담이 이루어지면 그곳이 절이고, 교회에서라도 법담이 이루어지면 그곳이 절이에요. 원래는 그랬는데, 우리가 기와집을 지어서 절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꾸 상(相)에 집착하게 되다 보니 절이라고 하면 기와집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기와집이 아닌 곳에 스님이 있으면 ‘스님이 왜 절에 안 있고 여기에 있냐!’ 이런 소리를 듣게 됩니다.

공동묘지 비닐하우스에서 시작한 정토회

제가 정토회 초창기에 서울 변두리 서오릉 너머 공동묘지 근처에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좀 살았습니다. 그때는 별로 유명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름을 알게 된 사람이 있었나 봐요. 법륜 스님이 어디에 있냐고 하니까 서오릉 뒤 어디에 있다고 해서 물어물어 찾아왔어요. 그렇게 근처까지 와서 ‘여기에 절이 어디 있습니까?’ 하니까 아무도 몰라요. 우여곡절 끝에 비닐하우스에 있는 줄을 알고 와서 이분이 첫 번째로 하는 얘기가 ‘스님, 왜 절에 안 계시고 여기 계세요?’ 였어요. (모두 웃음)

그분은 절이 기와집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곳이 어디든 수행자가 머무르는 곳이 절이에요. 공동묘지에 머물면 공동묘지가 절입니다. 부처님이 초전법륜(初轉法輪)을 한 녹야원(鹿野園, 사르나트)도 공동묘지에요. 시체를 갖다 버리는 시타림(屍陀林)이었으니까요. 거기서 첫 설법을 했기 때문에 4대 성지 가운데 하나가 된 겁니다.

제가 그 비닐하우스에 가서 살게 된 동기는 이래요. 홍제동에서 포교당을 하고 있는데 하루는 어떤 보살님이 눈물을 흘리면서 들어왔어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부부싸움을 하다가 남편한테 맞고 쫓겨났대요. 그래서 방에 잠깐 보호해드리면서, 각해 보살님의 법문 테이프를 틀어줬어요. 그 테이프를 듣다가 반성을 하고 집에 가겠다기에 가시라고 인사하고 헤어졌어요. 그런데 얼마 있다가 호박잎, 고추, 호박 같은 걸 가지고 찾아왔어요. 그래서 시장에서 사 왔냐고 물어보니 집에서 따가지고 왔대요. 집이 어딘데 이런 게 있냐니까 서오릉 인근이래요. 어떤 데 있냐고 물어보니 ‘거기에 저희가 비닐하우스를 치고 살고 있습니다’ 이래요.

그래서 제가 서오릉 쪽으로 갔을 때 그 집에 한 번 들러서 어떻게 사는지 봤더니 비닐하우스를 세워놓고 거기서 부부가 살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들이 지금은 그렇게 살아도 절을 하나 짓는 게 소원이라는 거예요. 그런 얘기를 나누면서 공동묘지가 있는 지역을 쭉 둘러보다 보니 옆의 비닐하우스가 비어 있는 것 같았어요. 왜 비어 있는지 물어보니까 동생이 살다가 얼마 전에 세를 얻어 나가서 비어 있대요. ‘비어 있으면 제가 살면 안 될까요?’ 하니까 ‘아, 사세요’ 그래요. 한두 달 더 있다가 거기 아직도 비어 있냐니까 비어 있대요. 그래서 제가 거기 들어가서 살게 됐어요. 기존의 포교당은 다른 법사님에게 관리를 맡기고 저는 행자들을 데리고 그리로 들어가서 살았어요. (모두 웃음)

그러다가 어느 날 그 부부와 차를 마시면서 얘길 나누는데, 또 절 짓는 게 소원이라고 해요. 자기가 꼭 그 소원을 이룰 거래요. 그래서 제가 ‘당신 소원은 다 이뤄드렸습니다’라고 하니까 눈이 휘둥그레져서 무슨 소리냐고 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예!” (모두 웃음)

“그분이 절 짓는 게 소원이라고 해서 제가 그 집에 들어간 거란 말입니다. 스님이 들어가서 살면 그곳이 절이에요. 이미 소원이 이루어졌는데 또 그 얘기를 해서 제가 ‘아이고, 당신은 형상에 집착하는구나’ 했습니다. (모두 웃음)

거기서 지낸 때를 정토회 초기 역사에서 ‘용두리 시대’라고 불러요. 만일결사의 출발인 제1차 천일결사를 거기서 시작했고, 정토회 창립총회도 거기서 했고, ‘깨달음의 장’도 거기서 시작했어요. 정토회 역사로 보면 굉장한 곳이에요. 나중에 정토회가 여유가 생기면 그곳을 유적지로 개발할 거예요.(모두 웃음)

그렇게 살다가 사람이 자꾸 늘어나니까 땅을 좀 더 파서 사는 곳을 좀 더 넓혔어요. 땅을 넓힌다고 팠더니 아래에서 유골이 많이 나왔어요. 그래서 제가 농담으로 이랬어요.

‘안 그래도 잠잘 때마다 아래에서 누가 자꾸 비키라고 해서 누군가 했더니 내가 남 위에 누워있었구나.’ (모두 웃음)

다른 사람 위에 떡 하니 누워있었던 셈이에요.

생불 앉을자리도 없는데 불상 앉을자리가 어디 있냐

그러다가 서울에 9평짜리 조그마한 포교당을 냈습니다. 계약상으로는 20평인데 실 평수는 15평 정도 되고, 사무실이 붙어 있어서 법당 크기는 9평 정도 됐어요. 그래 놓고 서암 큰스님께 전화로 법문 요청을 드렸더니 큰스님이 개원식에 오셨어요. 불상이 없어서 ‘불상은 어떻게 할까요?’ 여쭤보니까 큰스님 하시는 말씀이 이래요.

‘아니, 생불 앉을자리도 없는데 불상 앉을자리가 어디 있냐?’(모두 웃음)

그렇게 해서 관세음보살 족자 한 장 덜렁 붙여놓고 시작을 했어요. 오늘 창원법당에도 불상을 모시지 않고 이렇게 사진을 붙여놓는 건 정토회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랬던 거예요.(모두 웃음)

이렇게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절이 비까번쩍하고 스님들이 많이 있고 염불을 잘해서 정토회가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아셨으면 해요. 정토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지방에 법당을 개원하면 ‘스님 한 분 보내달라’, ‘스님이 안 되면 법사님이라도 한 분 보내달라’ 이런 요구가 많았어요. 그 다음엔 ‘법당이 너무 좁다’ 하는 얘기가 나왔고요. 정토회의 시작은 대부분 평범한 가정집에서 했어요. 불교대학도 다 가정집에서 시작했고요.

정진을 해야 이곳이 법당이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오늘 창원 법당의 개원에 이르게 됐습니다. 제가 이런 옛날 얘기를 하는 이유는 이 건물만 갖고는 법당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예요. 법당 건물이 크고 깔끔하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여기서 정진을 해야 여기가 법당이 됩니다. 여기서 싸우면 여기는 난장판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아, 여기는 절간 같다.’라고 할 수 있으려면, 첫째, 이곳이 깨끗해야 해요. 도량은 항상 깨끗하고 청정해야 합니다. 둘째, 뭐든지 질서 정연하게 갖춰져 있어야 해요. 어질러져 있으면 안 돼요. 셋째, 시끄럽지 않고 조용해야 해요. 그런데 아까도 보니까 시끄럽던데요. ‘아이고, 오랜만이다!’ 이러면서 소리를 질러대고요.(모두 웃음) 도량에 오면 말을 조용조용히 해야 합니다. 이렇게 조용해야 도량이에요.

또 도량이라 할 때는 너무 화려하면 안 돼요. 수행자는 항상 검소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수행할 때의 모습을 보면 나무 밑이라도 깔끔하게 해놓고 수행을 했지, 지저분하게 해놓거나 뭘 울긋불긋하게 갖다 붙이고 한 게 아니에요. 그래서 디자인 같은 걸 할 때도 화려하게 하면 안 됩니다. 막 금칠을 해놓은 절도 있는데, 그건 종교로서의 절이라서 그래요. 이곳은 수행도량이기 때문에 화려하게 하면 안 돼요. 검소하지만 깔끔하고, 질서정연하면서 조용한 공간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공간만 그럴 게 아니라 여기서 대중이 내는 재정이 투명하게 관리가 돼야 합니다. 지금 종교단체들이 다 돈 때문에 시끄러운 거 아시죠? 그러면 안 돼요. 이 도량이 중생의 귀의처가 되려면 이런 환경도 좋아야 하지만, 우리가 낸 보시금이 아주 아껴서 쓰여야 하고, 장부 정리 등 모든 것을 투명하게 해야 합니다. 1원도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해야 해요. 대중이 올리는 공양물, 보시물도 필요한 곳에 쓰이도록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우리는 참 소중한 도반입니다

수행 도량은 항상 화합해야 합니다. 그래서 도반이 소중한 줄을 알아야 해요. 이 불사를 할 때 도반이 없었으면 누가 보시를 하며, 도반이 없었으면 누가 청소를 했겠어요? 그러니 도반이 귀한 줄을 알아야 해요. 또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일은 다 도반이 있어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도반이 내 시각에 조금 안 맞더라도 수용하고 이해하는 자세를 가져야 해요. 그런데 여러분들 중에는 집에서 남편이나 아내한테 막 삿대질하던 그 버릇을 여기까지 갖고 와서 ‘수행자라면서 왜 저래!’ 이러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남을 비판하지 않고 자기를 돌이키는 사람이 수행자예요. 남을 보고 ‘수행자가 왜 그래!’ 이러는 것은 내가 지금 수행을 안 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상대가 수행을 안 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화합을 해서 잘 운영해주시길 바랍니다. 공간이 넓어진 만큼 세상 사람들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데 더욱 유용하게 쓰인다면, 넓은 공간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공간만 넓어진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수행하는 곳이 진정한 도량이라는 말씀이 이 법당에서 실현되기를 기원해봅니다. 스님은 충분히 개원 법문을 한 다음, 창원 법당 총무님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다며 즉문즉설도 하였습니다.

그중 성인이 되었지만 장애가 있는 자식을 돌보는 어려움에 대해 질문한 분에 대한 즉문즉설이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스님의 답변 중 일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도 깨달을 수 있을까요?

“아이를 바꾸겠다는 생각을 하는 한 질문자는 불교와 아무 관계없이 사는 사람이에요. 그건 수행이 아니라 기복을 구하는 종교예요. ‘우리 아들 대학 시험에 합격하게 해주세요’, ‘우리 남편 병을 낫게 해주세요’, ‘우리 아들 대통령 되게 해주세요’ 하는 것과 똑같아요. ‘이 아이도 장애가 있지만 깨달아서 훌륭한 사람 되게 해주세요’ 하는 건 남을 바꾸려는 거예요. ‘부자 되게 해주세요’ 하는 것만 기복이 아니에요. ‘우리 아들 깨닫게 해주세요’ 하는 것도 기복입니다. 내가 남을 바꾸고자 하는 건 불법이 아닙니다. 질문자는 지금 절에 다니지만 불교하고 아무 관계없이 절에 다니는 거예요.

수행도량은 일반 절하고는 달라요. 일반 절에서는 내 마음에 들도록 뭘 바꿔달라는 기도를 주로 합니다. 돈을 벌게 해달라, 병을 낫게 해달라, 대통령 되게 해달라, 입시에 합격하게 해달라, 뭐가 되도록 해달라고 기도하죠. 경전을 읽어보면 이런 사람들은 마왕 파순의 제자입니다. 부처님의 제자는 남을 바꾸게 해달라는 게 없어요. ‘저놈이 나한테 욕 안 하게 해달라’ 이런 기도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에요. 그 사람이 욕을 하더라도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 게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은 사람 중에는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도 있었어요. 그의 이름은 주리반특이 었습니다. 주리반특이 설명을 못 알아들으니까 다들 성질을 내서 ‘안 되겠다, 집에 보내야겠다’라고 했지만, 부처님은 주리반특이 못 알아듣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셨어요. 그래서 주리반특이 못 알아들어도 부처님은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그런 분이 부처님이에요. 그런 공덕으로 주리반특이 깨달은 거예요.

그것처럼 아들이 어떤 행동을 해도 질문자는 엄마로서 오직 ‘아, 그래. 그런 부족함이 있더라도 너 역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행복할 권리가 있다. 너도 행복할 수가 있다’ 이렇게 말해 줘야죠.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해도 ‘아이고, 얼마나 답답하면 저런 행동을 할까’, 난장을 피워도 ‘그래, 장애가 있으니 저렇게 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받아들일 때 이 아이에게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어요. 반드시 일어난다는 게 아니라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수행은 오로지 나에게 적용하는 것

질문자가 먼저 수행자가 돼야 합니다. ‘부처님 말씀 듣고 어리석은 주리반특도 깨달았는데, 우리 아이도 스님이 잘 말해주면 깨닫지 않겠느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기복이에요.”

“혹시 그런 일이 있을까 해서 제가 기대를 좀 했어요.”

“그건 법을 듣는 자의 자세가 아니에요. ‘그런 일이 있을까’ 이 생각을 하는 자체가 잘못됐어요. 그런 생각을 했다면 갓바위에 가서 기도를 하세요.(모두 웃음)

‘부처님, 우리 아이가 주리반특처럼 깨닫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는 기복입니다. 질문자가 수행자라면 이 아이를 부처님처럼 생각해야죠. 이 아이의 어떤 행동도 부처님의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이렇게 담담히 받아들일 때 질문자는 수행자가 되고, 아이의 엄마가 되는 거예요.

아이가 막 행패를 피우고 난리를 피울 때 ‘애가 행패를 피우고 난리를 피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문제는 해결이 안 돼요. 아이가 얼마나 힘이 들면 저렇게 악을 쓸까요? 뭔가 자기표현을 못 하니까 악을 쓰고 물건을 때려 부수게 되는 거예요.

남편이 싸우다가 그릇을 집어던지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분을 못 참으니까 보통 같으면 상대를 때려야 하는데, 상대를 때리기는 차마 못 하니까 대신 그 사람이 좋아하는 그릇을 부순다는 말이에요.(모두 웃음) 그러면 ‘이 인간이 미쳐서 그릇을 부순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인간이 차마 나를 못 때리니까 그릇을 부수는구나’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남편이 그릇을 부술 때 ‘이 인간이 그래도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구나’ 이 마음을 내가 탁 알아차릴 수 있으면 이 문제는 금방 풀려버려요. 그런데 ‘이게 성질내는 것도 모자라 그릇까지 깨!’ 이렇게 하기 때문에 ‘밥은 못 줄망정 쪽박은 왜 깨나!’ 이렇게 대응하는 것과 똑같아져 버리는 거예요.

지금 질문자는 장애아이를 키울 수준이 안 되는 거예요. 장애아이는 그런 부족함을 갖고 있는 아이예요. 그래서 그 문제를 잘 이해하는 전문가들이 원래 보살펴야 하는데, 어떤 전문가보다도 더 전문가는 엄마의 사랑입니다. 엄마의 사랑은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해도 그걸 감싸 안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제가 ‘요즘 세상에는 엄마가 없고 전부 이웃집 아줌마만 있다’라고 하는 거예요. 아이가 건강하고, 공부 잘하고, 말도 잘 들으면 이웃집 아줌마도 좋아하죠. 얼굴도 못나고, 장애가 있고, 성격도 더럽고, 행동도 나빠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이고, 저런 인간은 죽는 게 낫지, 왜 저러나’ 할 때도 그를 불쌍히 여기는 게 엄마예요. 지금 우리 사회에는 엄마가 없어요. 다 자기 마음에 드는 자식만을 원하잖아요.

지금이라도 질문자가 진정으로 엄마가 되려면 질문자가 아이를 돌보세요. 그런 이웃집 아줌마 같은 심보로 아이를 돌보겠다면 그건 질문자의 욕심이에요. 남한테 좋은 소리를 듣고 싶고, 또 자기 양심에 괜히 찔리는 걸 보상하려고 애를 데려오는 거지, 진짜 아이를 위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아이를 돌보지 못하면, 내 수준을 인정하고 세상 사람으로부터 비난을 받아야 해요.

질문자가 정말 엄마로서 한 번 아이를 돌보겠다고 하면 어떤 전문가보다 잘할 수가 있어요. 엄마니까요. 어떤 행동을 해도 ‘아이고, 얼마나 힘들면 네가 그러겠니? 그래, 그래, 그래’ 이렇게 감싸줄 때 아이에게 변화가 옵니다. 고함을 지를 때 가서 껴안아주면 변화가 오는 거예요. 내가 먼저 변해야 변화가 오는 거지, 나는 놔놓고 ‘어떤 기술로 접근해야 아이가 바뀔까’ 이러면 소용없어요. ‘이렇게 하면 변화가 올 것이다’라고 자꾸 생각하는데, 그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래야 이 아이에게 진짜로 도움이 되고, 그것이 아이에게 변화를 가져오는 씨앗이 됩니다. 큰 사랑을 베풀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말처럼 그로 인해 변화가 옵니다. 그런 변화는 아이를 위하는 마음을 낼 때만 오지, 아이를 변화시키겠다는 마음으로는 안 옵니다. 부처님이 주리반특을 변화시켰다고 보면 안 돼요. 천하의 모든 사람이, 사리풋트라마저도 주리반특을 감당하지 못해서 내보내려 했는데, 부처님은 그런 주리반특을 감싸 안았기 때문에 주리반특에게 변화가 온 거예요. 지금 질문자는 부처님처럼 아들을 감싸 안는 게 먼저예요. 아이를 어떻게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을 하는 이상은 이 문제가 절대 풀리지 않습니다.”

스님의 따끔하고 정곡을 찌르는 말씀은 질문자뿐 아니라 다른 대중들에게도 큰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또 법문 중간중간, 눈물을 훔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 고민이라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다시 한번, 법당 개원을 축하하며 이 곳이 수행도량으로 자리잡기를 당부하며 법회를 마쳤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나가며 스님은 질문자들에게 다가가 격려의 악수를 건넸습니다.

오늘은 개원법회라 특별히 맛있는 공양도 준비했습니다. 색색 나물과 귤, 떡을 받아 든 대중들은 멋진 풍경 아래 도반들과 둘러앉아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점심식사가 끝나자 다시 청소를 하고 2시 정회원 법회를 준비하느라 법당은 분주해졌습니다. 오후 2시, 150명이 자리를 꽉 채운 가운데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경남지부 상입법사인 여광법사님이 “법당의 주인으로서 내 인생, 사회의 주인으로서 역할을 잘해나갔으면 한다”는 인사말에 이어 선주법사님과 경남지부를 담당하는 향자재, 향웅, 향상법사님 소개를 했습니다.

다음은 정토회별 참가자 소개가 있었습니다. 각 정토회는 열심히 연습한 구호로 밝고 신나게 자신들을 소개했습니다. 소개가 끝나자 경남지부 활동가와 통일특위가 함께 하는 ‘남누리 북누리’ 노래와 율동이 있었습니다. 꽹과리, 장구, 북이 어울린 신나는 한마당이어서 공연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를 받았습니다.


‘함께 가세. 함께 가세. 평화의 큰 춤추며 남누리 북누리 하나되는 그날까지. 함께 가세. 함께 가세. 통일의 큰 춤추며 남녘땅 북녘땅 통일되는 그날까지’

가사가 마음을 울렸습니다. 뒤를 이어 한 해 동안의 활동을 모아 놓은 영상을 보았습니다.

모두들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설은 잘 쇠었는지, 정초기도와 법사님들의 순회법회는 잘 끝났는지에 대해 묻고, 정회원의 역할과 수행자로서의 자세에 대한 얘기, 수행, 보시, 봉사한 정회원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한 후 곧이어 즉문즉설이 시작하였습니다.

봉사가 너무 하기 싫을 때가 있어요.

총 9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소임을 권유받을 때 하기 싫고 도망가고픈 마음 때문에 고민이라는 질문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았는데요. 그에 대한 스님의 설법 중 ‘수행’이 무엇인가에 대한 부분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누구나 다 그래요. 저도 피곤해서 법문 안 하고 저 방에 누워서 자고 싶을 때가 많아요.(모두 웃음)

그래도 법문 시간이 되면 법문하러 와요. 또 건강을 위해서 약간 산책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자주 못해요. 오늘도 날씨가 추워서 밖에 나가기가 싫었지만 그래도 나가서 앞산에 잠시 다녀왔어요.

싫다고 안 하고, 좋다고 하고, 이게 너무 분명한 사람은 자기 까르마에 속박받는 사람이에요. 남한테 속박받는 게 아니라 자기 업식에 자기가 속박받는 거예요. 수행이란 건 남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라 자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겁니다. 그래서 싫을 때도 능히 할 수 있고, 하고 싶을 때도 능히 멈출 줄 아는 게 수행이에요. 자기 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진정한 자유라고 합니다. 그걸 우리가 연습하는 거예요. 절을 108번 하는 게 수행이 아니에요. 하기 싫은데 해야 진짜 수행이 돼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절이 곧 수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절이 하고 싶은 날에 300배 한 걸 가지고 수행을 잘했다고 해요. 이건 맞지 않아요.(모두 웃음)

하기 싫을 때 하는 것이 수행

하고 싶어도 그게 나쁘면 멈출 줄 아는 게 수행이에요. 다리가 아파서 의사한테 ‘108배 이상 절을 하면 무리입니다. 무릎 관절에 나쁩니다’라고 진단을 받았는데도 ‘절을 더 해야지’ 하는 마음이 든다고 300배를 했다 합시다. 그러면 이 사람은 수행을 한 게 아니라 욕구를 따른 거예요. 반대로 ‘다리가 아프니까 절하기 싫다’ 하는 이유로 절을 안 하는 것 또한 욕구를 따르는 거예요. 이런 경우에는 다리가 아프더라도, 절하기 싫더라도 천천히 108배를 하는 게 수행이에요. 때로는 멈추는 게 수행이고, 때로는 하는 게 수행이라는 말이에요. 수행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질문자의 질문이 많은 정회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질문이기도 해서인지 스님의 답변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했습니다. 청중들은 질문자를 위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법당이 좁아서 새 법당을 얻고 싶은데 계약기간이 5년이나 남아서 부담스러워요.
  • 몇 달 후에 둘째 아이가 태어나는데 봉사를 못 할 걸 생각하니 힘듭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 어떻게 수행자로서의 자세를 갖고 임해야 하는지요?
  • 불대생이 나누기 후에 봉사하는 분의 나누기에 대한 험담을 듣고 정토회에 실망해서 정토회를 그만뒀어요.
  • 아픈 딸을 데리고 혼자 사는 62세의 가을불대 담당입니다. 돈도 벌고 정토회 봉사도 해야 하는 게 힘들어요.
  • 남편이 자기를 버릴 것 같다고 합니다. 내가 믿음을 못 주고 있는 건지, 수행을 잘 못하고 있는 건지요?
  • 엄마가 청각장애(언어장애)여서인지, 상대의 얼굴 표정에 민감해요.
  • 불대생이 너무 많이 들어왔을 때 인원수를 제한할 수 있는지요?
  • 출석 때문에 자격 미달 정회원이 생겨서 봉사자가 부족합니다. 명절과 이어지는 법회는 출석률에서 봐줘야 하지 않을까요?
  • 행복학교 출신 학생은 불대에 가서도 행복학교 봉사를 함께 할 수 있는지요?

9명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으며 박장대소하고 웃기도 하고 때로는 안쓰러움에 마음 아파하기도 하면서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지구환경 보전하고 전세계 고난 받는 이들을 도우며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운동을 하는 정토행자로서 자부심을 가져라. 수행자는 비굴하지 말고 당당하고,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라.” 하며 법문을 마쳤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에게 삼배로 세배를 올리고 각 정토회 별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것으로 경남지부 주간반 정초법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은 “새해에도 부지런히 정진하십시오.”라며 덕담을 해주었습니다.

마치고 돌아가는 분들 중 첫 번째 질문을 했던 분의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의문이 풀리고 마음이 가벼워졌다”라고 하면서 “하기 싫은 걸 하는 게 수행이다 라는 스님의 말씀에 뛰어넘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주간반 정회원이 빠져나간 법당은 다시 저녁 법회를 준비하느라 바빴습니다. 다시 청소를 하고, 방석을 깔았습니다. 저녁반 정회원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고, 정토회별 구호를 연습하는 소리로 법당이 활기찼습니다.

저녁 7시 30분, 오늘의 마지막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법사님들의 소개 끝에 스님이 일어나 “법륜입니다.”라고 하자 대중은 큰 웃음과 박수로 맞이했습니다. 다음으로 경남지부 각 정토회 소개가 이어졌습니다. 마산정토회, 창원정토회, 김해정토회, 진주정토회 순서로 열심히 준비한 구호를 외쳤습니다.

이어서 방탄소년단의 아리랑 노래에 맞춰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사회자 멘트를 시작으로 흥겨운 우리 가락에 맞추어 공연팀이 어깨춤을 추었습니다. 보는 대중들도 절로 어깨가 들썩들썩했습니다.

방탄소년단이 세계에 한국을 알리듯 방탄보살단의 아리랑은 온 정토회에 전해질 듯합니다. 법당 여기저기서 공연을 촬영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공연팀은 화려한 부채춤까지 선보여 대중들의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받았습니다.

다음으로 2018년 경남지부 정회원 활동 영상을 보았습니다. 에코붓다, 불교대학 입학식, 봉림사지 기도, 애광원 나들이, JTS 활동 등 각각의 자리에서 활동한 모습이 모자이크 붓다처럼 펼쳐지자 대중은 가슴이 뭉클한 듯 숙연한 분위기였습니다. 활동 영상이 끝나자 박수가 길게 이어졌습니다.

이어서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법당 개원에 대해 개원법회에서 해주었던 말씀을 간략히 해주고, 청정하고 화합하여야 한다고 당부하며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총 네 분이 질문할 수 있었는데요. 주간반에서 “봉사가 하기 싫어요.”가 고민인 분이 있었다면, 저녁반에는 도반들이 봉사를 안 해서 고민이라고 질문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질문에 대한 스님의 설법 일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봉사를 안 하려고 해요.

“사람의 심리를 좀 알아야 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절을 찾아올 때는 자기가 편해서 찾아오는 게 아니라 힘들어서 찾아와요. 힘들어서 찾아오면 도움을 요청할까요, ‘제가 뭐 봉사할 일이 없나요’ 이런 질문을 할까요? 대부분 어떤 이유로든 도움을 요청하러 찾아오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 처음 오는 사람한테 바로 무슨 일을 맡기면 안 돼요. 그러면 그 사람은 도움을 요청하러 왔다가 덤터기를 쓴다고 생각하고 이튿날부터 안 나와 버려요. 그래서 처음 온 사람에게는 도움을 줘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앉혀놓고 밥 해먹이고 뭐든지 다 해주면, 그 사람이 계속 나올까요? 그것도 안 그래요. 처음에는 아주 좋아하다가 나중에는 안 나와요. 전화해서 왜 안 나오는지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해요.

‘저 필요 없잖아요. 저는 폐만 끼치지 도움이 안 되잖아요.’

왜 그럴까요? 사람이라는 건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도움을 계속 받기만 하면 심리가 위축이 됩니다. 상대방 앞에서 자기가 작아져요. 처음에 도움을 받을 때는 좋은데, 그게 지속되면 자기가 작아져요. 그래서 처음에는 도움을 주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기여하도록 해줘야 그 사람이 여기에 주인의식을 갖게 됩니다. 도움만 계속 주면 미안해 하기만 하고 자기 집이라는 생각을 안 해요. 그래서 주인의식을 갖게 조금씩 이끌어줘야 해요.

일을 나누는 방법

그러면 어떻게 해야 주인의식을 갖게 될까요? 주인의식을 갖게 한다면서 ‘너도 뭐 좀 해라’ 이렇게 접근하면 안 돼요. 일을 배울 때는 어린애 하고 똑같아요. 따라 배우기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같이 하면서 해야 해요. 내가 먼저 청소를 막 하면서 ‘거기 빗자루 좀 주세요’라고 하든지, 내가 먼저 방을 닦으면서 ‘일손이 부족하니까 빗자루로 좀 쓸어주세요’라고 하든지, 내가 먼저 방석을 깔면서 ‘그쪽 편 방석 좀 깔아주세요’라고 하든지, 이렇게 책임은 내가 지고 그 사람은 일을 거들도록 해야 해요. ‘방석 까는 건 네가 해라!’ 이러면 그 사람은 부담이 돼요. 그렇다고 ‘가만 있어라!’ 이래도 안 돼요. 내가 하면서 조금만 거들어 달라고 해야 해요.

애들도 마찬가지예요. 엄마가 먼저 청소를 하면서 ‘아이고, 엄마가 청소하는데 거기 가서 빗자루 좀 가져오너라’, ‘엄마가 바쁜데 네가 앞쪽을 좀 쓸어줄래?’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일을 맡겨야 해요. 처음부터 책임을 덜렁 맡기면 부담이 되거든요. 책임은 내가 지고, 그 사람은 돕는이로 참여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계속하면 좋아할까요? 아니에요. 자기는 늘 보조자인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어떤 일을 떼어줘야 해요. ‘법우님이 청소는 잘하시니까 이제 청소는 법우님이 도맡아서 하면 어떨까요?’ 이렇게 떼어줘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이 사실을 자꾸 선전하고 칭찬해줘야 해요. 예를 들어 누가 오늘 총무님에게 ‘아이고, 오늘은 방석을 잘 깔았네요’ 그러면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 방석은 이 분이 깔았어요’ 이런 식으로 말해주는 거예요. ‘아이고, 총무님, 밥 잘 먹었습니다’ 하면 ‘고맙습니다’ 이렇게 받아들이면서 ‘사실 오늘 밥은 이 분이 했어요’ 이렇게 공로를 좀 돌려줘야 해요. 그래야 그분이 뿌듯해집니다. 이렇게 점차적으로 변화를 시켜가면서 재미를 붙여서 하도록 이끌어줘야 해요.

재미있게 하기

인류 역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교육은 ‘따라 배우기’입니다. 따라다니면서 늘 보고 듣는 것으로 교육이 돼야 하는데, 우리는 지금 그걸 안 하고 있어요. 그래서 항상 모범이 필요한 거예요. 그러니 이걸 힘들어하지 마세요. 맨날 힘들어하면서 ‘아이고, 죽겠다’ 하니까 보는 사람도 ‘나는 저 일은 안 해야지’, ‘팀장은 절대 안 해야지’ 이렇게 되는 거예요. 웃으면서 즐겁게 하세요. 재미있어 하는 마음을 내어서 맡은 일을 해보세요.”

“따라 배우기, 따라 하도록 하겠습니다.”(모두 박수)

이외에도 국가부도설이 진짜인지, 경남도지사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 지에 대한 질문과 경전반 졸업 후 정회원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제안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수행자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고 겸손하게 살 것을 당부하며 법회를 마쳤습니다.

아침 10시에 시작된 법회는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습니다. 대중들은 새로 지은 법당에서 새집 증후군으로 목이 붓고 눈이 따가운 가운데 세 번의 법문을 해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내일은 인천경기서부지부 정회원을 대상으로 인천과 서울에서 법회가 열립니다. 스님은 밤새 서울로 다시 이동하였습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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