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수자타 아카데미 인도인 스텝들과 함께 하루를 보낸 후 저녁에는 한국인 활동가들을 위해 즉문즉설을 해주었습니다.

원래 오늘은 인도인 스텝들과 함께 소풍을 가는 날입니다. 아침 7시에 학교 앞에서 대절한 버스를 타고 출발하기로 했는데, 버스가 약속한 시간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닥터 쁘리앙카 지는 어젯밤에 버스 회사와 연락해서 확인하고, 오늘 새벽에도 여러 차례 제시간에 도착 가능한지 드라이버와 확인 통화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인도는 약속 시간에 늦는 일이 빈번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스님이 함께 하는 일정이기에 혹시나 늦어질까 봐 쁘리앙카 지는 수차례 확인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버스는 어김없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쁘리앙카 지는 “이번엔 취소를 시켜버려야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 같다” 고 스님에게 건의했습니다. 아무래도 1년에 한 번 가는 소풍인데, 인도인 스텝들이 서운할 것 같았습니다. 스님은 인도인 스텝들에게 동의를 구했습니다.

“이번에 취소를 해야 얘네들이 정신을 차릴 것 같은데, 어때요? 소풍 못가도 괜찮아요?”

“YES!”

인도인 스텝들도 동의하자 스님은 “오케이. 그러자!”라고 한 후 전정각산으로 오늘 코스를 변경했습니다.

아침 7시, 안개가 자욱한 전정각산을 향해 함께 걷기 시작했습니다. 가방에는 물과 간식거리를 푸짐히 챙겼습니다.

스님은 인도인 스텝들에게 물었습니다.

“전정각산에 부처님이 머무셨던 곳을 기념하여 쌓은 탑이 총 몇 개인지 알아요?”

대답은 분분했습니다.

“12개요.”
“15개요.”
“17개요.”

과연 정답은 몇 개일까요. 스님은 “정말로 몇 개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며 전정각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학교 정문 앞에 부처님이 시체더미 속에 누워 있는 한 여인으로부터 분소의를 받았다고 한 곳에 세워진 탑터를 지났습니다.

산 중턱에 오르니 부처님이 물을 마셨던 곳인 샘터가 나타났습니다. 예전에는 여기에도 탑이 쌓여져 있었는데, 시장이 허물어진 이곳의 연못을 크게 파면서 일부 남아 있던 탑이 허물어지고 묻혀버렸다고 합니다. 탑이 세워져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벽돌 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다음은 부처님이 명상을 하셨던 자리에 세워진 탑터에 도착했습니다. 탑은 다 허물어지고 큰 바위에 둘러싸여 제법 아늑해 보이는 공터가 나타났습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간식을 꺼내 먹었습니다. 전정각산을 넘어가는 시원한 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주었습니다.

간식을 다 먹고 일어서는데 스님이 한마디 던집니다.

“오늘 소풍이 취소되는 바람에 제일 손해가 막심한 사람은 강도들인 것 같다.”

10여 년 전에 스님은 오늘 소풍을 갈 예정이었던 구릅바(마하가섭 마운틴)에서 총을 든 강도를 만나 위기를 모면했던 일화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도 강도가 우리를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우리가 못 갔으니 손해가 가장 크다는 것입니다. 모두들 크게 웃었습니다.

벌써 탑터를 5곳을 지났습니다. 이제 전정각산 맨 꼭대기를 향해 가파른 산길을 올랐습니다. 가시나무가 많아 자꾸 바지를 잡아당겼습니다. 안개가 자욱해서 10미터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걷다 보니 어느덧 능선 위에 올랐습니다.

능선 위에는 우뚝 솟은 봉우리마다 탑터가 계속 나왔습니다. 부처님은 이곳에서 6년 간 머무셨다고 하니 그 흔적도 참 많을 것입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더 깊이 다가왔습니다. 스님에게 “그럼 이 산에는 탑터가 총 몇 개가 있는 거죠?”라고 물었습니다. 정답은 19개였습니다.

능선을 어느 정도 걷고 나니 이제 칼날처럼 뾰족한 능선이 나타났습니다. 양 옆이 절벽이어서 아찔하기도 했지만, 인도인 스텝들은 다들 신나 하면서 스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약간 숨을 가쁘게 쉬던 스님이 스텝들에게 한 마디 합니다.

“내가 전정각산에 여러분들과 함께 올라보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스님 옆에 있던 빠완 지가 약간 서운했는지 대답합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수십 번 함께 오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스님은 한국으로 가기 전 인도인 스텝들과 전정각산을 함께 오르고 싶었나 봅니다. 소풍이 취소되긴 했지만 인도인 스텝들과 함께 부처님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전정각산을 함께 오르는 것만큼 뜻깊은 일도 없겠다 싶습니다.

다시 수자타 아카데미로 돌아온 스님과 인도인 스텝들은 운동장에서 크리켓과 축구를 함께 했습니다. 매일 학교 수업을 해야 하는 교사들이다 보니 좋아하는 크리켓을 정말 오랜만에 한다고 합니다.

스님도 배트를 들고 타석에 섰습니다. 스님이 헛 방망이질을 하니 모두들 키득키득 웃습니다. 그러다가 배트에 공을 맞출 때는 환호를 질렀습니다.

신나게 경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 점심은 라면입니다. 인도인 스텝들도 뜨거운 라면을 후후 불어가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식사 후에는 축구를 했습니다. 한국인 남자 스텝들도 양 팀에 들어가서 함께 어울렸습니다. 맨발로 공을 차는 데도 뻥뻥 소리가 났습니다. 스님은 함께 하다가 틈틈이 공을 주워 주시기도 하고, 스텝들이 열심히 달리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다들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 함께 가야로 저녁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덜컹거리는 트럭에 비좁게 앉은 스텝들은 가야로 가고 오는 내내 입가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맛있는 식사뿐만 아니라 집으로 가져갈 ‘미타이’라는 선물까지 손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는 한국인 활동가들을 위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 수자타 아카데미에는 마을개발 1명, 병원 1명, 건축부 2명, 회계 1명, 행자대학원 3명, 법사 1명, 총 9명의 한국인 활동가들이 파견되어 각 파트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각 파트에서 수고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격려하면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멀리 이곳까지 와서 기후에 적응하고 음식에 적응하고 인도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힘든데, 일을 맡아서 일정한 성과까지 내려고 하니까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을 겁니다. 그건 굳이 말을 안 해도 우리가 이미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에요.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미리 예측하고 왔다고도 할 수 있고요. 그러나 현장에 와서 막상 그것을 경험해보면 아무리 예상하고 각오하고 결심하고 왔다고 해도 어려운 일입니다.

현장에서 부딪히는 그 어려움에만 너무 사로잡혀서 어렵다고 얘기할 수도 없는 일이고, 또 그런 현장과 현실을 무시하고 ‘이렇게 하면 된다, 저렇게 하면 된다’고 얘기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될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가고자 하는 이상과 그렇게 되지 않는 현실 사이에서의 모순, 갈등, 어려움을 나날이 겪는 게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원리원칙을 따져서 보면 괴로울 일이 없지만, 우리가 현실에 부딪히는 순간순간은 매사가 다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상을 어떻게 실현해 나가느냐가 수행의 과제이고 그게 곧 인생이에요. 그러니 제가 막연히 ‘수행은 이런 거다, 저런 거다’ 얘기하는 것보다, 실제로 부딪히는 삶 속에서 일어나는 번뇌를 가지고 ‘왜 이런 번뇌가 일어나며 어떻게 하면 우리가 여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렇게 대화를 해보는 게 그래도 현실에서 조금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즉문즉설을 하는 거예요.”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3명이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직접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하겠습니다. 학교 파트 담당자인데, 인도 학생들과 함께 일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물었습니다.

“저는 지금 고등부 9, 10, 11학년을 맡고 있는데요. 아이들과 같이 일을 하다 보면 게으르거나 일을 잘 안 하는 경우에 정리가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스스로 자각하지 못할 때가 있어서 그렇지 밑바탕에는 봉사를 하고 싶다는 선한 마음이 분명히 있거든요. 이럴 때 이 친구들을 정리하는 일이 참 어렵습니다. 한국에서도 좀 비슷한 것을 느꼈어요. 선한 의지를 가지고 봉사를 하러 오신 분이지만 일을 하다 보니까 뭔가 손발이 안 맞고, 그렇다고 좀 나가주십사 부탁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자꾸 원칙을 내세우다 보니까 마음이 흔들려요. 제가 요구하는 원칙대로 행동하지 않는 선배 스텝들이 있는데도, 이 아이들한테만 지금 너무 엄한 요구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요구 때문에 아이들이 그만둬서 형평에 안 맞는 건 아닌지 이렇게 여러 가지 고민이 충돌합니다. 선한 의지에 대해 생각하면 어느 선에서 이 아이들을 정리해야 하는지 고민이 됩니다.”

“인생을 살면서 두 가지 관점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첫째, 이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거의 다 무의식적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돼야 한다’ 이렇게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이성적으로 얘기하면 ‘아,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안 되지’ 이건 다들 알아요. 그런데 나도 모르게 어떤 일을 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이 돼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일이 안 됐을 때 괴로움이 생깁니다.

둘째, 세상 사람이 나한테 원하는 것을 내가 다 해줄 수는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나도 모르게 ‘해줘야 한다’라고 잘못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다 이뤄질 수 없고, 이 세상에서 나한테 원하는 걸 내가 해줄 수가 없어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잖아요. 남이 원하는 걸 내가 어떻게 다 해줘요? 남이 원하는 걸 내가 다 해줄 수 있다는 건 내가 무한 능력자라고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거 다 할 수 있어, 남이 원하는 건 내가 다 해줄 수 있어.’라고 하는 게 바로 자재 천왕(自在天王)이에요. 경전에 보면 이 자재 천왕을 마왕이라고 불러요. 왜 마왕(魔王)이라고 이름 붙일까요? 이 착각이 수행에 최대의 장애라서 그래요.

인도에서 길을 가다가 가난한 아이들을 봤는데 그걸 내가 못 도와줘서 가슴이 아프다고 합시다. 얼른 생각하면 굉장히 착한 사람 같죠. 그런데 이건 바로 자기가 그걸 다 도와줘야 한다는 착각 때문에 생긴 거예요. 내가 그 모습을 안 봤으면 번뇌가 안 생겼을 거예요. 내가 그 모습을 봐서 번뇌가 생겼다면 그건 내 문제지,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내가 다 해줄 수 있는 존재라는 착각, 해줄 수 있는데 마치 안 해준 것 같은 착각 때문에 생긴 문제입니다.

질문자도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이 두 가지가 계속 오고 가는 거예요. 아이들이 내 마음대로 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내가 ‘잘라버릴까, 붙여 놓을까’하고 고민을 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니까 잘라버릴까’ 하는 것은 내 마음대로 안 돼서 생긴 번뇌예요. ‘애들이 선의를 가지고 있는데 이걸 자르면 어떡하나’ 하는 것은 애들이 원하는 걸 내가 들어줘야 한다는 착각에서 생긴 번뇌예요. 아이들이 잘못해서도 아니고, 아이들이 선한 의지를 가져서도 아니에요. 나의 이 두 가지 착각 때문에 이런 번뇌가 생기는 거예요. 감이 좀 잡혀요?”

“네, 조금...”

“아이들은 내 마음대로 될 수가 없어요. 내가 낳은 자식도 내 마음대로 안 되고, 내가 제일 좋다고 선택한 배우자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데, 남의 집 자식이, 심지어 한국 아이도 아닌 인도 아이가 어떻게 내 마음대로 되겠어요?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당연한 거예요. 안 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해서 괴로울 일은 없잖아요. ‘얘들이 어떻게 돼야 한다’라는 목표를 세웠다면 나는 그렇게 되도록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지, 그게 괴로울 일은 아니라는 거예요. 한 번 얘기해서 안 되면 두 번 얘기하고, 두 번 얘기해서 안 되면 세 번 얘기하고, 세 번 얘기해서 안 되면 열 번 얘기하고 스무 번 얘기하면 돼요.

지금은 스텝들이 나이가 들고 달라졌지만, 지난 25년 중 20년은 매년 똑같은 얘기를 했어요. 7살 때 했던 얘기를 8살 때 하고, 8살 때 했던 얘기를 9살 때 하고, 9살 때 한 얘기를 10살 때 하고, 10살 때 한 얘기를 11살 때 또 했어요. 중학생들한테 ‘유치원에서 애들이 뭐가 필요하냐’라고 물어도, 유치원 애들이 뭐가 필요한지에 대한 건의는 하나도 안 했습니다. 유치원에 드라이 푸드가 필요한지, 건물에 물이 새는지, 뭐가 필요한지를 얘기하라는데 손 번쩍 들고 하는 얘기가 ‘제 책값이 부족합니다, 뭐가 부족합니다’ 이런단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수자타 아카데미가 어떻게 해서 시작했고, 중학교 과정이 어떻게 해서 생겼고, 어떤 이유로 이걸 운영하는지를 두어 시간 쭉 얘기하고 ‘알아들었니?’ 하면 중학생들이 ‘네’ 해요. 그런데 이듬해에 와서 물어보면 또 잊어버려요.

그런데 절대로 안 변할 것 같았는데도 20년이 지나니까 좀 변했어요. 제가 매년 와서 늘 물어보잖아요. ‘마을에 뭐가 필요하지? 유치원에 뭐가 필요하지? 학교에 뭐가 필요하지?’라고 하면 ‘내가 뭐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애들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여러분들도 어제 여기서 쭉 지켜봤잖아요. 안 변할 것 같은데 변해요. 지난 20년은 안 변했는데, 25년이 지나니 어느덧 변해 있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돼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힘들어요. ‘벌써 10번 얘기했는데도 안 변하네. 잘라버릴까’ 이렇게 생각하니까 내가 힘든 거예요. 안 되는 게 정상이에요.

그런데 안 되는 게 정상이라는 것만 알면 포기해 버리기 쉽습니다. ‘안 되니까 안 하면 되지, 뭐 때문에 하느냐’라고 하기 쉬워요. 그런데 우리는 이 일이 되도록 하는 게 목표예요. 안 되는 게 현실이고, 되도록 하는 게 목표예요. 수행이란 될 때까지 하는 겁니다. 10년 만에 안 되면 11년 만에 하고, 20년 만에 안 되면 21년 만에 하고, 25년 만에 안 되면 26년 만에 하고, 30년 만에 안 되면 31년 만에 하는 거예요.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꾸준히 하는 거예요.

안 되는 건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노력이 필요한 거예요. 처음부터 한 번 말해서 되면 우리가 여기 뭐 하러 와 있겠어요? 인도 사람들이 알아서 다 하면 되죠. 우리가 오기 전에 벌써 다 됐겠죠. 얼마나 안 되면 우리가 와서 할 일까지 남아 있겠어요? 안 되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와 있는 이유는 이게 되도록 하려고 와 있는 거예요. 그러니 꾸준히 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됐다고 화를 내거나 낙담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자기 뜻대로 돼야 한다는 욕심 때문이에요. 그래서 지치고 힘들고 화내는 거예요.

본인이 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되는 아이는 10년이라도 기다려줘야 합니다. 그런데 본인이 할 의향이 별로 없는 경우가 있어요. 자기가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자기도 하려고 애를 쓰지만 잘 안 되는 아이는 10년이라도 기다려줘야 해요. 그런데 본인이 할 의향이 별로 없고, 적당히 붙어 있겠다는 아이는 정리를 해야 해요. 의향이 있어도 안 되는 세상인데 의향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되겠어요? 본인이 할 의향이 없는 사람을 내보내는데 가슴 아파할 이유는 없어요.

본인이 의향이 있다고 말해도 실제로는 없는 경우가 있어요. 이건 관찰이 좀 필요하죠. 의향이 있다고 말하지만 말뿐이지 실제로는 의향이 별로 없는 사람인지, 진짜 의향이 있지만 잘 안 되는 사람인지 구분해야 해요. 의향이 있는데 안 되는 사람은 10년이라도 기다려줘야 해요. 10번 얘기해서 안 되면 20번, 20번 얘기해서 안 되면 21번 깨우쳐줘야 합니다. 그런데 의향이 아예 없으면서 말로는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자기의 어떤 개인적 이득 때문에 적당하게만 하는 거예요. 그러면 적절한 기회를 주다가 안 되면 정리해야죠. 첫째, 본인을 위해서도 정리해줘야 하고, 둘째, 다른 사람에게 주는 영향 때문에도 정리해줘야 해요.

8학년, 9학년, 10학년 아이들은 물론 필요해요. 아이들이 여기서 공부도 하고 봉사도 하면 얼마나 좋아요? 우리도 초등학생들 가르칠 사람이 필요하고, 애들도 지원이 필요하잖아요. 여기서 지원해주는 걸로 학교 공부를 하니까요. 이게 상부상조예요. 어른이니까 서로 도와야죠. 일방적으로 돕는 건 어린애와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봉사를 하도록 하는 겁니다.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어야 해요. 문제가 있으면 또 얘기하고, 또 얘기해야 해요. 그래도 까먹는 건 어쩔 수 없어요. 그러나 한두 번 얘기해서 안 된다고 성질내면 안 돼요. 애들 정신 차리라고 형식적으로 야단치는 척할 수도 있죠. ‘그러면 안 돼!’ 이럴 수는 있지만, 이런 문제로 진짜 성질을 내서 길길이 뛴다면 정신병자예요. (모두 웃음)

그건 둥게스와리 돌산에 올라가서 나무가 없다고 성질내고, 가시나무에 가시가 있다고 성질내는 것과 같아요. 그건 이미 가시가 있게 돼 있고 그건 이미 돌산인데, 그걸 갖고 뭐 어떡하겠어요? 여기는 그렇게 돼 있는데요.

수행의 관점을 그렇게 잡기 바랍니다. 절한다고 수행이 아니에요. 이 관점대로 안 되기 때문에 절을 하는 거예요. ‘아, 내가 놓쳤구나’ 하고 알아차리라는 거예요. 그 순간에 깨어있지 못한 나를 돌아보고 나를 참회하라는 겁니다. 내가 뭘 잘못했다는 죄의식을 가지려고 참회하는 게 아니라 ‘아, 내가 이 관점을 놓쳤구나’하고 알아차려서 돌이키는 거예요. 그래서 수행문이 있는 거예요.

‘수행적 관점을 내가 놓쳤구나. 순간에 깨어있지 못했구나.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감정에 휘둘려서 화내고 짜증 냈구나. 내가 다 해줘야 한다는 그 헛된 생각에 사로잡혀서 불쌍해하며 눈물을 흘렸구나.’

이렇게 알아차리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겁니다. 그걸 매일 아침 수행 시간에 하고, 한 달에 한 번 포살 시간에도 하고, 마음 나누기도 하는 거예요. 절하는 것 자체가 수행이 아니에요. 수행적 관점을 놓치지 않고 좀 더 유지하고자 각오하고 결심하고 참회도 하는 거예요.

이게 다 공부예요. 어제 이사회 같은 걸 하면서 스텝들이 보고 배우게 해 줘야죠. 그래도 여기 스텝들은 다른 인도 사람들보다는 나아요. 5살 때부터 학교에 와서 한국 사람들하고 20년을 살다 보니 여러분들이 보기에는 아직 한참 멀었을지 몰라도 다른 인도 사람들에 비하면 굉장히 재빠르고 말귀를 잘 알아듣는 축에 들어갑니다. 여러분이 볼 때는 답답해 죽을지 몰라도요. (모두 웃음)

수업 시간에 칠판에 써가면서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그게 다 20년 동안 귀가 아프도록 듣고, 배우고, 회의하고, 같이 다니고 일하면서 이뤄진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소풍을 한 번 가더라도 누구는 어떻게 해서 차를 제시간에 오게 하고, 누구는 가스통을 챙기고, 누구는 어떻게 어떻게 하고, 쓰레기는 어떻게 치우고, 이런 모범을 보여야 해요. 인생도 그렇고 교육도 그렇고 이런 게 다 따라 배우기잖아요.

이런 게 교육이에요. 아이들 보고 ‘이렇게 해라!’하고 시키면 볼 때만 하고 안 볼 때는 안 합니다. 우리가 솔선수범해서 하면 아이들은 안 하는 것 같아도 ‘아,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 이런 걸 알게 돼요.

여기서 살려면 기후에도 적응하고, 이 사람들의 늦는 문화에도 적응하고, 그냥 말만 해놓고 안 지키는 것에도 적응해야 해요. 이걸 적응 못 하면 성질나서 못 살아요. 그러나 적응만 한다면 변화가 없잖아요. 적응만 한다면 우리가 여기 올 필요가 없어요. 개인이 수행하기 위해서 적응하는 훈련을 받기는 하지만, 우리는 수행만 하러 여기 온 게 아니라 뭔가 변화를 주러 왔잖아요. 그러면 변화를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노력을 안 하고 욕심만 내면 뜻대로 안 되니까 지치게 돼요.

이런 관점을 갖고 여러분들이 여기서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그래도 몇 년 살면 수행이 확 돼요. 인도에 한 5년 살면 급한 성질도 좀 누그러지고, 변화를 위한 꾸준한 노력을 하는 끈기도 좀 생깁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2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사홍서원으로 즉문즉설 시간을 모두 마쳤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활동하는 모든 분들이 자유롭고 행복해지고 세상에 잘 쓰여지기를 기원합니다.

상카시아에서 온 수바스 지와 수라즈 지가 내일 새벽 기차로 떠나고, 스님도 내일 아침에 이곳을 떠날 예정이어서, 스님은 “떠날 사람은 왼편, 여기 사는 사람은 오른편에 서 보세요” 라며 “지금 서로 인사를 나누자”라고 했습니다. 삼배로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가야 시내로 가서 인도 JTS 사업을 도와주고 계신 분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나눈 후 가야 공항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델리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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